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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458
한자 金允熙
영어음역 Gim Yunhu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3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888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9일 - 좌천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21일 -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형 확정
몰년 시기/일시 1921년 5월 22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4월 9일연표보기 - 좌천 장터 3·1 운동
출생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38
활동지 좌천 장터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53 일대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김재서(金在序)[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38번지]의 장녀 김임온(金任溫)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결혼 후 본적을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38번지로 이적하였다.

[활동 사항]

김윤희(金允熙)[1888~1921]는 1888년 울주군 언양면 교동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전국적인 3·1 운동 소식과 기장면 3·1 운동 소식을 접하면서 정관읍에서도 만세 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김윤희는 같은 면에 사는 신두성(辛斗星)·오진환·김종복·정지모(鄭智謨)·박일봉(朴一鳳) 등과 김종복의 사랑방에 모여 비밀리에 시위를 계획하고 거사일을 좌천 장날인 4월 9일로 정하였다.

김윤희는 4월 9일 신두성 등 5명과 함께 장시 중앙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이 불렀다. 이에 호응한 500~600명의 장꾼들도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경찰의 제지를 물리치고 장시를 누비며 울산으로 통하는 거리까지 만세 시위를 하였다. 시위가 더욱 고조되고 시위 군중이 점점 더 늘어나자 일본 군경은 야만적인 무력 탄압과 발포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때 김윤희정지모, 오진환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시위 군중들은 붙잡힌 주동자를 석방시키기 위해 좌천주재소로 가서 일본 군경과 투석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체포된 주동자들이 구출되었으며 시위 군중은 좌천에서 정관으로 돌아오면서까지 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김윤희는 일본 경찰에게 주동자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아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21년 5월 22일 사망하였다.

[묘소]

1990년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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