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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339
한자 山淸石南巖寺址石造毘盧遮那佛坐像蠟石舍利壺
영어음역 Yeongtae Inyeon-myeong Napseokjeho
영어의미역 Sarira Container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기명류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766년연표보기 - 제작
이전 시기/일시 1981년 - 부산광역시립박물관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10월 15일연표보기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국보 제23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국보로 재지정
현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4동 948-1]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보선암 터 -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 산152
성격 사리장엄구
양식 무문(無紋)
재질 납석
크기 14.5㎝
소유자 부산광역시
관리자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국보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항아리.

[개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山淸石南巖寺址石造毘盧遮那佛坐像蠟石舍利壺)는 지리산 902m 고지에 있었다고 전해 오는 보선암 터에 있던 석불 대좌 속에서 발견된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1981년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입수하였다. 납석[곱돌]으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1986년 10월 15일에 국보 제2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는 전체 높이 14.5㎝, 입 지름 9.0㎝, 몸 지름 12.3㎝이다. 몸체에 별다른 문양은 없지만 뚜껑과 몸체의 어깨[肩部]에 한 줄, 그리고 하부에 두 줄을 위아래로 음각하여 가로로 둘렀다. 뚜껑 바닥에는 천개(天蓋)를 상징하는 연화문이 선각되어 있다. 그리고 몸체에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의 조성과 관련된 명문이 15행 136자가 음각되어 있는데, 서체는 행서체를 주로 쓰고 초서체와 반초서체도 섞여 있다. 명문은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의 바닥면에도 확인되는데, 4행 23자가 새겨져 있다.

[특징]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는 몸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조상기(造像記)와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766년(혜공왕 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명문에는 구체적으로 승려 법승(法勝)과 법연(法緣)이 죽은 두온애랑(豆溫哀郞)을 위해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였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함께 봉안하였다고 적혀 있다. 실제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가 안치되었던 석불 대좌의 중대석 사리공에는 금동으로 만든 장방형의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 종이 뭉치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종이 뭉치를 꺼낸 직후 부서져 없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이 기록상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추정된다. 몸체에 새겨진 명문 이외에 바닥에 새겨진 명문은 글씨체와 내용도 이질적이어서 다른 시기에 새겼을 가능성이 높다.

[의의와 평가]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와 함께 발견된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내원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에 새겨진 조상 기록을 통해 766년에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는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비로자나불상으로, 적어도 8세기 중엽 통일 신라 시대에 비로자나불상이 출현하였음을 제시하는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납석을 사용한 사리장엄구의 첫 사례로, 이후 성행하는 납석제 사리호의 시원적 작품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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