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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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私立明進學校石柱 |
영어의미역 | Stone Pillar of Private Myeongjin School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운산로 65[덕포1동 692-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표용수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1동에 있는 1910년 사립명진학교의 교문에 세운 돌기둥.
[개설]
사립명진학교(私立明進學校)는 1920년 5월 5일 학제 개편에 따라 사상공립보통학교로, 1941년 4월 1일 사상공립국민학교로, 1996년 3월 1일 사상초등학교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립 경위]
1910년 부산광역시 사상구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신학문을 통한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사립명진학교를 설립하고, 교문 양쪽에 2기의 석주를 설치하였다. 이 가운데 1기는 유실되고 나머지 1기만이 남아 있다.
[위치]
사립명진학교 석주는 지금의 사상구 괘법동에 설립한 학교의 교문에 세워 놓았던 2기의 석주 중 하나로, 현재의 사상역 광장 부근에 있었다. 그러다 마을의 개울에 걸쳐서 디딤돌로 사용하던 것을 뒤늦게 발견하여 1986년 8월 26일 사상구 덕포1동 692-1번지에 있는 사상초등학교 본관 앞 화단으로 옮겼다.
[형태]
석주가 세워져 있는 바닥에는 가로 340㎝, 세로 290㎝ 크기의 화강암을 깔아 놓았다. 둘레에는 따로 4개의 작은 석주를 세워 가운데에 있는 사립명진학교 석주와 철 고리로 연결하였다. 석주 아래의 기단석은 3단 화강암으로, 가로 150㎝, 세로 80㎝ 크기이다. 석주는 기단 위에 높이 185㎝, 가로 85㎝, 깊이 34㎝의 오석(烏石)이며, 그 가운데에 홈을 파고 가로 27㎝, 세로 133㎝ 크기의 ‘입명진학교(立明進學校)’라고 새긴 화강암을 끼워 놓았다. ‘사(私)’ 자는 깨어져 보이지 않는다.
석주의 오석 오른쪽에는 ‘사립명진학교 초대 교장 강대성씨 손 호윤, 호덕, 호룡, 호갑, 기증(私立明眞學校 初代校長 姜大成 氏 孫 鎬潤, 鎬德, 鎬龍, 鎬甲 寄贈)’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대정(大正) 8년[1919년] 8월 16일 『매일신보』에 실렸던 ‘명진학교(明眞學校)의 비경(悲境)’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석주의 아래 기단 오석(烏石)에는 ‘우리 학교의 역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학교는 처음 괘내에서 명진학교(明眞學校)로 개교(1910. 4. 1)하여 공부하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교명도 사상공립보통학교(1920. 4. 1)로 바뀌어서 일제 시대를 보냈습니다. 6·25 사변 때에는 임시 사용하던 미군의 실화로 교사가 전소(1951. 1. 25)되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한때는 100학급(1979. 3. 1) 6,0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학장·모라·감전·삼덕·괘법·덕포초등학교 등 6개 교가 우리 학교에서 분리되었으며, 지금까지 1만 명이 넘는 졸업생이 배출되었습니다. 이 돌비는 사립명진학교 때의 것으로 보관 도중 윗부분의 일부가 없는 채로 교정 구석에 세워졌던 것을 이번에 이 자리로 옮겨 세우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이처럼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사상국민학교의 어린이로서 모두가 착하고 바르고 씩씩한 어린이가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합시다.’
[현황]
사립명진학교 석주는 사상초등학교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