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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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文基 |
영어음역 | Jeong Mungi |
이칭/별칭 | 유수(流水),도산(島山),수산학 박사 1호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3동 599-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심민정 |
[정의]
근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수산학자 겸 교육자.
[활동 사항]
정문기(鄭文基)[1898~1995]는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호는 유수(流水), 도산(島山)이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마쓰야마고등학교[松山高等學校] 이과,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농학부 수산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직후 귀국하여 조선총독부 수산 기수(水産技手), 평안북도 수산 기사 겸 수산시험장장, 경기도 기사(技師) 겸 수산시험장장,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 목포지점장, 부산수산시험장장 등을 지냈다.
광복 직후 중앙수산시험장장을 거쳐 1947년부터 3년 동안 부산수산대학 학장을 맡았으며, 이때 농림부 수산국장을 겸하였다. 1949년과 1950년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인도 태평양 수산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이듬해 열린 제1차 한일 회담에 한국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 성균관대학교 어류학 강사, 동국대학교와 경희대학교 강사 등을 지냈고, 1962년 부산대학교에서 명예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육수학회, 수산학회, 수산기술협회 등을 만들어 이끌었으며, 1977년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1981년 대한민국 학술원 원로 회원이 되었다. 1995년 9월 27일 세상을 떠났으며, 자녀는 4남 1녀를 두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정문기에게는 생전에 ‘수산학 박사 1호’라는 명칭이 따라다녔다. 『한국 어명보(韓國魚名譜)』 『한국 동식물 도감(어류)』, 『한국 어보(韓國魚譜)』, 『한국 어류 생태』, 『어류 박물지』, 『한국 어류 도보(韓國魚類圖譜)』 등을 발간하고, 정약전(丁若銓)의 『자산 어보(玆山魚譜)』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광복을 전후하여 『동아 일보』에 수산 관련 칼럼 및 논단을 연재하였으며, 각종 언론 매체와 학술지에도 글을 기고하였다.
[묘소]
정문기의 묘는 천안 공원묘원[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신덕리 산22]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55년 제4회 서울시 문화상[자연 과학 부문] 및 제1회 대한민국 학술원상[자연 과학 부문], 1973년 과학 기술상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에 3·1 문화상, 수당 과학상, 국민 훈장 모란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