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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 부곡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272
한자 沙也部曲
영어의미역 Lowest-class People’s Town in Saya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일광면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정미숙

[정의]

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일광면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고려 건국 이후 기장현(機張縣)은 울주군의 속현으로 강등되었고 기장현의 영역에 네 개의 부곡이 설치되었다. 사야 부곡(沙也部曲)은 네 개의 부곡 가운데 하나이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기장현 고적(古跡)에 “고촌 부곡(古村部曲)은 현의 서쪽 10리에 있다. 결며 부곡(結㫆部曲)은 현의 서쪽 10리에 있다. 사량촌 부곡(沙良村部曲)은 현의 동쪽 5리에 있다. 사야 부곡은 현의 동쪽 3리에 있으며, 지금은 사야촌(沙也村)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기장현의 읍치(邑治)는 고려 전기 현 기장군 기장읍 교리(校里) 일대에서 고려 후기 이후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의 옛 기장 시가지 주변으로 옮겨졌다. 읍치를 중심으로 현의 동쪽 3리에 위치한 사야 부곡기장군 기장읍 동쪽 끝 정도로 비정할 수 있다. 사야 부곡의 주민은 일반 군현민이 내는 기본 세목[租·布·役]을 부담하는 것은 물론, 세포(稅布)·잡물(雜物)·요공(徭貢)을 추가적으로 부담하였다. 또는 집단적으로 특정 지역의 둔전(屯田) 경작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변천]

사야 부곡이 사라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2세기 이후 민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발생하면서 향·부곡 등의 특수 행정 구역은 소멸하게 된다. 사야 부곡도 이 시기 이후 조선 시대에 일반 촌락으로 승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에 부곡제(部曲制)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통해 지방을 제어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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