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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266
한자 全燦一
영어음역 Jeon Chanill
이칭/별칭 고래 박사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삼호가든 아파트 107동 1901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전창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자|교육자
성별
본관 옥천
대표관직|경력 부산수산대학 학장
출생 시기/일시 1915년 8월 13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황해도 내무부 산업과 수산계에 발령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황해도 수산시험장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수산시험장장 퇴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부산수산전문학교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부산수산대학 교수 퇴임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부산수산대학교 명예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수산대학교 명예 교수 퇴임
몰년 시기/일시 2010년 9월 28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자산리 - 평안남도 순천
거주|이주지 부산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삼호가든 아파트 107동 1901호지도보기
수학|강학지 평양고등보통학교 - 평안남도 평양시
수학|강학지 동경수산대학 - 일본 도쿄도
수학|강학지 부산수산대학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3동 599-1지도보기
묘소|단소 동화 경모 공원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32

[정의]

근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겸 학자.

[가계]

본관은 옥천(沃川). 아버지는 전윤병(全允炳)이고, 어머니는 김암석(金岩石)이다. 부인은 정영복(丁永福)으로 정약연(丁若淵)의 딸이다. 아들은 전창남, 전창민, 전창대, 전창영이다. 아버지 전윤병은 일제 강점기 때 천도교청년단에서 활동하다가 1929년 ‘천도교 성지 순례단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으며 장인 정약연은 1920년 조직된 조선 물산장려회 발기인 70명 중 한 명이다.

[활동 사항]

전찬일(全燦一)[1915~2010]은 1915년 8월 13일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자산리 458번지에서 7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동경수산대학 어로과에 진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일본 포경 기지에서 실습을 하면서 고래와 첫 인연을 맺었다. 졸업과 함께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해기사(海技士) 면허장을 받았다. 1937년 귀국 후 공무원이 되어 지방 산업 기수(地方產業技手)로 황해도 내무부 산업과 수산계에서 근무하였고, 1938년 황해도 수산시험장장[옹진군 용호도 소재]으로 옮겼다.

1945년 해방 직후 부산으로 내려가 부산수산전문학교[1946년 부산수산대학으로 개칭, 현 부경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4년가량 장생포의 조선포경주식회사에서 근무한 후 1950년 부산수산대학에 복귀하여 1980년까지 어로과, 수산 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4~1966년에는 대학원장을 지냈다. 1981년 정년 퇴임하여 1995년까지 14년간 명예 교수로서 ‘수산 총론’과 ‘수산 생물’ 과목을 가르쳤다. 전찬일은 우리나라 제1호 고래 연구자로, 국내 연안에 서식하는 고래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 포경 금지 조치’를 내리기 이전부터 상업을 위한 고래잡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학문과 저술]

전찬일은 국내 1세대 고래 연구가로, 고래 박사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일본말을 직역해 놓은 고래의 명칭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여 고쿠쿠지라[克鯨]는 귀신고래, 이와시쿠지라[鰯鯨]는 보리고래, 샤치[鯱]는 솔피[범고래], 시로나가수쿠지라[白長須鯨][흰긴수염고래]에는 대왕고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저서로 『수산 총론(水産總論)』, 『수산 통론(水産通論)』 등이 있다.

[묘소]

전찬일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32번지 동화 경모 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교육 발전에 힘쓴 공로로 국민 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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