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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위안의 밤 행사 참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145
한자 市民慰安-行事慘事
영어의미역 Participation in the Night of Consoling the Citizens Ev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 3가 21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병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사고
관련인물/단체 국제신보사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9년 7월 17일연표보기 - 발생
발생|시작 장소 구덕 운동장 -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 3가 210지도보기

[정의]

1959년 부산 구덕 운동장에서 열린 ‘시민 위안의 밤’ 행사 중 일어난 압사 사고.

[경과]

1959년 7월 17일 오후 5시 부산 구덕 운동장에서는 『국제 신보』가 개최한 제2회 시민 위안의 밤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출연한 연예인은 사회자 후라이 보이 곽규석(郭圭錫), 영화배우 복혜숙(卜惠淑)·최은희(崔銀姬), 가수 김정구(金貞九)·현인(玄仁)·황금심(黃琴心)·나애심(羅愛心)·백설희(白雪姬)·권혜경(權惠卿), 만화가 김용환(金龍煥)·안의섭(安義燮)·김성환(金聖煥), 코미디언 구봉서(具鳳書)·김희갑(金喜甲) 등으로 초호화판 멤버였다. 이런 탓에 행사는 무려 10만여 명의 관중이 참가, 입추의 여지가 없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당초 행사는 7월 1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대한배우협회의 사정으로 연기되어 17일에 개최되었다. 그런데 당일인 17일에 화창할 것이라는 일기 예보와는 달리, 행사 도중인 8시 45분께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면서 상황이 벌어졌다. 공연이 중단되면서 관중들이 비를 피해 서로 먼저 빠져 나가려 입구로 몰리면서, 넘어지고 짓밟히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경비 경찰관들이 정문을 막아서서 공포 20여 발을 쏘는 등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관중을 막기에는 불가항력이었다.

[결과]

이 날 시민 위안의 밤 행사 참사 사고로 모두 59명이 숨졌는데, 이들 대부분이 부모들을 따라 구경을 나온 어린이였다. 한꺼번에 밀려나오는 인파 속에서 어린이들이 어른들에 밀려 엎어지고 밟히면서 무참하게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국제 신보』는 사고 이틀 뒤인 7월 19일자 석간에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시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시민을 위한 정성이 참변을 가져온 결과에 애석한 동정 있기를 빕니다.”라는 이례적으로 긴 제목의 통사설을 실었다.

7월 25일에는 경남불교종무원에서 합동 위령제를 엄수하였고, 9월 3일 구덕 운동장에서 7·17 참사 영위 49제를 국제신보사와 7·17 유족회가 공동으로 거행하였다. 당시 흥아타이어주식회사를 비롯한 많은 지역 기업과 기관, 단체에서 조의금품을 보내왔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장면(張勉) 부통령도 금일봉을 전달하였다. 각계의 조의금은 9월 3일까지 이어져 총액이 101만 2877환에 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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