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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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善寺- |
영어의미역 | Site of Songseonsa Temple |
이칭/별칭 | 송선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65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최정혜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던 고려 시대 때 건립된 송선사 절터.
[개설]
발견된 유물로 보아 고려 시대 후기에 가장 번창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 시대의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고려 시대 후기 이후에는 사찰의 증·개축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송선사 터 뒤쪽에서 통일 신라의 기와편이 수습되어 초창(初創)은 통일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위치]
송선사 터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651번지 일원으로 일명 기비골로 불리는 금정산 기슭에 위치하며,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인 만덕사지(萬德寺址)와는 1㎞ 정도 떨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송선사 터는 복천박물관이 실시한 만덕사지 3차 발굴 조사에서 송선사 명의 명문(銘文) 기와가 출토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문헌 기록이나 부산 지역의 매장 문화재 조사에서도 관련 유적이 확인되지 않아 그 실체가 불확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구 만덕동 금정산 기슭에서 명문 기와가 출토된다는 문화 관광 해설사인 허탁의 제보에 따라 복천박물관이 세 차례에 걸쳐 조사를 실시한 결과 만덕사지에서 출토된 송선사 명의 명문 기와와 동일한 기와를 확인하였다. 또한 유적의 입지와 환경, 명문 기와의 형식적인 특징 등을 고려할 때 이곳이 부산 지역에 존재하였던 고려 시대의 사찰인 송선사임을 알 수 있었다.
송선사 터에는 정지 작업을 할 때 나온 돌과 평기와 조각이 곳곳에 쌓여져 있었으며, 돌더미 속에는 건물 터의 초석으로 보이는 것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지점에서는 초석으로 추정되는 돌들이 일정한 배열 상태를 보이는 곳도 있으나, 후대에 가해진 훼손과 교란으로 전체적인 양상은 파악할 수 없다. 땅 주인이 경작을 하면서 출토된 기와를 곳곳에 모아 두었는데, 여기서 송선사 터의 사찰 이름과 시기를 알 수 명문 기와와 선조문(線條文)·사격자문(斜格子文)·어골문(魚骨文) 등의 평기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밖에 땅 주인이 따로 보관하고 있는 연화문 수막새편 4점, 당초문 암막새편 1점, 도자기편 4점, 석조물편 1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땅 주인 소유지의 경계면에 세워진 철조망 뒤쪽에서 통일 신라의 선조문 평기와도 채집하였으나, 관련 유구는 숲이 우거져 확인이 불가능하였다.
[현황]
현재 지주가 거처하는 가건물 1동이 있으며, 가건물 주위에는 지주 개인의 사찰 조성과 경작 등으로 곳곳이 원상을 잃고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주요 유물의 일부는 복천박물관에서 수습하여 보관하고 있으나 나머지 유물은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의와 평가]
송선사 터는 만덕사지, 용당동 월천사와 함께 부산 지역 고려 시대의 사찰 문화와 부산 지역사를 연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유적이다. 그러나 송선사 터가 있는 곳이 개인 사유지여서 개간 등으로 인해 유적의 유실과 훼손이 심각한 상태이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성격 규명을 위한 학술 발굴 조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