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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941
한자 菉山抗日無名勇士慰靈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the Unknown Anti-Japanese Heroes in Noksan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 산6-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위령비
재질 화강감|대리석
크기 4.5m[높이]|1.6m[너비]
관리자 녹산향토문화관|부산광역시 강서구청
건립 시기/일시 1995년 8월 15일연표보기 - 건립
이전 시기/일시 2008년 - 장락 마을로 이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 - 조선인 탈영병 자결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 산6-1
원소재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산2-4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의 항일 무명용사 위령비.

[건립 경위]

녹산 항일 무명용사 위령비는 해방을 앞두고 자결한 한 무명용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1995년 8월 15일 녹산향토문화관에서 건립한 위령비이다. 1945년 8월 15일 새벽, 한 청년이 가덕도 외양포에 주둔한 일본 해군 기지를 탈출하였다. 그는 10리 바다를 헤엄쳐 건너 송정 바닷가를 지나 녹산, 성산을 거쳐 서낙동강 가에 닿았다. 그날 오전 10시경 장락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 장락 마을] 모퉁이 산 낭떠러지에서 총을 쏘며 쫓는 일본 헌병과 대치하던 이 청년은 ‘대한 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고 투신, 순국하였다. 청년의 탈영 과정을 목격한 이들은 “큰 키에 좀 마른 얼굴, 누런 일본 수병의 옷을 입었고 어깨에는 옷 보자기 같은 걸 짊어졌다.”라고 증언하였을 뿐 성과 이름, 고향도 알 수 없다.

[위치]

최초의 건립 위치는 투신 장소로 알려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산2-4번지로, 성산 마을장락 마을의 경계인 일명 ‘처녀골’ 입구였다. 그러나 2008년 도로 공사로 인해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 산6-1번지 장락 마을 앞으로 이건되었다. 녹산~생곡 간 도로 중앙 분리 화단의 당산 나무 앞에 있다.

[형태]

높이 4.5m, 너비 1.6m의 비이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의 2층 앞부분에 무궁화가 양각되어 있다. 기단 윗부분 몸체는 세로로 긴 사각형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비의 상부에는 둥근 구슬 모양의 조형물 두 개가 포개져 있다.

[금석문]

한자로 ‘항일무명용사위령비(抗日無名勇士慰靈碑)’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해방을 2시간 앞두고 자결한 무명의 조선인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후세에 널리 알려지고 추도되어야 한다. 좋은 교육 자료가 됨은 물론 향토사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녹산 보감』(녹산향토문화관, 2001)
  • 부산지방보훈청(http://www.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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