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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무덤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922
한자 朴泳孝-
영어의미역 Tomb site of Bak Yeonghyo
이칭/별칭 박영효 무덤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로 544[다대1동 107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덤 터
건립 시기/일시 1939년 9월연표보기 - 박영효 무덤 건립
폐지 시기/일시 1958년 - 매각
소재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1동 1074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1동에 있었던 박영효(朴泳孝)의 무덤 터.

[개설]

철종(哲宗)의 사위이며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역이었던 박영효는 일제 강점기 중추원(中樞院) 고문과 귀족원(貴族院) 의원이 되었다. 박영효가 부산 해운대에 큰 별장을 만들고 지관들을 통해 찾은 명당이 다대포였다. 1939년 79세로 경성에서 사망하고 유언에 따라 1939년 9월 30일 영혜 옹주(永惠翁主)와 함께 합장하여 다대포 명당자리에 묻혔다. 그 당시 경성역에서 특별 열차로 부산역에 닿았고 영구차로 다대포까지 왔다고 한다.

[변천]

1958년 이후 박영효의 손자가 박영효의 무덤 터를 팔았고 시신은 화장되었다. 그 후 밭 등으로 버려져 있다가 건물이 들어서 주차장으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황]

현재 무덤 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그 일대에 라파요양병원이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친일 논란의 대상인 박영효가 부산과 연관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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