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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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芠 |
영어음역 | Bak Taemun |
이칭/별칭 | 풀의 시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인로 |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영도구 출신의 민중 시인.
[활동 사항]
박태문(朴泰芠)[1938~1992]은 1938년 부산광역시 영도구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글재주가 뛰어나 부산상업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요절한 시인 김민부(金敏夫)와 함께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1960년 22세 때 『한국 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밤의 편력」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가난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였는데, 그 가난이 바로 박태문의 특징인 ‘서정적 민중시’의 원동력이 되었다.
박태문은 영도를 배경으로 다수의 시를 썼으며, ‘풀의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 여기에서의 풀은 민중의 고된 삶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 『밤의 편력』[1975], 『풀 하나가』[1983], 『축복받을 일 하나 없어도』[1989] 등이 있고, 『시와 자유』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박태문은 풀의 시인답게 안료 회사의 사무직을 마다하고 현장 노동자로 살다가 1992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박태문의 시는 모두 『박태문 전집』[빛남, 1995]에 수록되어 있다. 그중 「춘궁의 벌판에서」는 박태문 시인과 시인의 아버지, 당대 민중의 상황과 처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이다.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더욱 외”로웠고, “아지랑이 깔리는 춘궁의 이 벌판에서 맨발인 채 나는 방향을 잃”었다.라고 노래하였다.
삶의 고통과 고난은, “하루를 공치면/ 하루의 생계가 위협당하는/ 내 서러운 삶을/ 아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되뇌이는 「내 감기 몸살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민중적인 삶의 쓰라림이 절정을 이루면서 응축되어 있는 시어가 바로 ‘풀’이다. “풀 하나를 흔드는 것은/ 결국 바람이지만/ 풀 하나를 흔드는 것은 그러나/ 누이여,/ 때로는 네 영혼 깊숙이 감춰진/ 눈물일 수도 있다./ 티없이 해맑은 눈물일 수도 있다.”[「무제 5」]
박태문의 ‘풀’은 영도 사람들의 삶을 모태로 하여 탄생하였기에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풀의 굴곡 많은 삶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현대 문학사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박태문은 김수영(金洙暎)보다 늦게 풀의 노래를 시작하였으나 더 오래 노래하였다.
[묘소]
[상훈과 추모]
1962년 제1회 신인 예술상을 수상하고, 1964년 부산시 문화상[문학 부문], 1992년 제4회 봉생 문화상[문학 부문]을 수상하였다. 용두산 공원[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 1]에 「봄이 오면」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