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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 일람 지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11
한자 騷擾一覽地圖
영어의미역 Map of Uprising Spots for the March 1st Movement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도
제작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연표보기 - 제작
원소재지 조선 총독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2-1

[정의]

1919년 부산 등 한반도 전역에서 발생한 3·1 운동의 현황을 반영한 조선 전도.

[개설]

「소요 일람 지도(騷擾一覽地圖)」조선총독부에서 1919년 4월 30일 작성한 가채 인쇄본의 조선 전도(全圖)로, 3·1 운동의 전국적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도이다. 「소요 일람 지도」를 통해 3·1 운동이 남부의 제주도로부터 북부의 러시아 접경 지역에 이르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위가 경부선과 경의선을 중심축으로 하는 철도망을 타고 전국적으로 확산된 양상도 확인할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소요 일람 지도」의 우측 상단에 붉은 글씨로 ‘비(秘)’가 찍혀 있고, 좌측 하단에는 ‘조선총독부 대정 8년 4월 30일 현재(朝鮮總督府大正八年四月三十日現在)’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소요 일람 지도」가 1919년 4월 30일 직후 조선총독부에서 군사 기밀 지도로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도의 크기는 52.5×37.7㎝이다. 3·1 운동이 발발한 전국 각 지역을 소요(騷擾), 발포(發砲), 미연 방지(未然防止) 등 세 지역으로 분류하고, 붉은색 표시로 소요지인 경우 ◯, 발포지인 경우 ●, 미연 방지 지역인 경우 O으로 표기하였다.

[특징]

부산 지역 3·1 운동의 현황을 보면 부산, 동래, 가덕도 지역은 시위 군중에 대해 발포가 없었던 지역 표시인 ◯로 되어 있고, 구포와 기장은 발포한 지역 표시인 ●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경상남도 지역 최초의 3·1 운동은 3월 11일 부산의 좌천동에서 있었던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학생들의 시위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에 앞서 3월 9일 함안군 칠북면 연개 장터에서 만세 시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경상남도에서 두 번째이면서 부산 최초인 일신여학교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3월 13일 동래고보 학생들이 중심이 된 제1차 동래 장날 시위, 이어서 3월 18일과 3월 19일에 있었던 범어사 명정학교 학생들 중심의 제2차 동래 장날 시위 등이 부산과 동래 인근 지역 3·1 운동 확산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3월 29일 구포 만세 운동, 4월 5일 기장 만세 운동, 4월 9일 정관 만세 운동, 4월 10일 명지의 명호 만세 운동 등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좌천동의 일신여학교 만세 시위와 동래에서 있었던 제1차, 제2차 만세 운동은 준비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이 중심이 된 3·1 만세 운동이었다. 그러나 구포, 기장, 정관 지역의 3·1 만세 운동은 부산과 동래의 3·1 운동과 달리 만세 운동의 모의 단계에서부터 일반인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장날 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의 시위 또한 매우 격렬하였다. 따라서 일제는 구포와 기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대해 발포(發砲)로서 시위 군중을 진압하였다. 부산 지역에서 전개된 3·1 운동의 이러한 성격을 「소요 일람 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소요 일람 지도」는 1919년 3·1 운동의 전국적 현황을 한 장의 지도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일반 지도와 다른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 더구나 전국에서 일어난 시위 현황을 시위 지역, 발포 지역, 미연 방지 지역 등으로 분류, 표시하였기 때문에 일제가 비폭력의 3·1 운동을 명백히 무력으로 진압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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