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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02
한자 朴昇吉
영어음역 Bak Seunggil
이칭/별칭 철마(鐵馬),덕수(德洙),재근(材根)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3가 6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대한신민단 왕칭현 지부 부단장
출생 시기/일시 1893년 2월 2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중국 지린 성 왕칭 현으로 망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2일 - 용정시에서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 - 왕칭 현에서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2월 - 대한신민단 왕칭 현지부 부단장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0년 6월 - 봉오동 전투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0월 - 청산리 전투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다뎬쯔무관학교 재정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한인보병자유대대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8년 - 중국 둥닝 현에서 체포되었다가 탈출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귀국
몰년 시기/일시 1960년 8월 18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독립장 추서
관련사건 시기/일시 1920년 6월연표보기 - 봉오동 전투
관련사건 시기/일시 1920년 10월연표보기 - 청산리 전투
출생지 함경북도 온성군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3가 64
거주|이주지 중국 지린 성 왕칭 현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자유시
활동지 중국 지린 성 용정
활동지 중국 지린 성 왕칭 현
활동지 중국 지린 성 왕칭 현
활동지 한인보병자유대대 - 러시아 연해주 자유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 살았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반남. 호는 철마(鐵馬), 별칭은 덕수(德洙)·재근(才根).

[활동 사항]

박승길(朴昇吉)[1893~1960]은 1893년 2월 2일에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 내각 총리대신 서리를 역임한 박정양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어릴 적에 온성에서 부산으로 이주하여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3가 64번지[8통 3반]에서 살았다.

박승길은 서울에서 3·1 운동이 발생한 것을 목격하고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의 지린 성[吉林省] 왕칭 현[汪淸縣]으로 가서 1919년 3월 12일에 용정(龍井), 20일에 왕칭 현에서 만세 시위를 하였다. 이어서 1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의 왕칭현지부 결성에 참여하여 부단장을 지냈고, 대한신민단 왕칭현지부 소속 석현지부의 사령관 및 참모장을 지냈다. 이 지부는 1920년 8월 10일 본부를 연길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으며 병력은 약 200명이었다.

대한신민단은 만주 및 함경북도 지방 등지에서 모집한 군자금으로 러시아에서 무기를 반입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1920년 6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과 함께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나남 제19사단의 야스카와[安川二郞] 부대를 전멸시켰다. 10월에 각 단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파견된 안정근(安定根)의 권고를 받아들여 북간도 일대의 독립군 단체를 통합하여 북로사령부(北路司令部)를 설립하였다. 이때 박승길은 김창순(金昌順)과 함께 대한신민단 대표로 참석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10월에는 김좌진(金佐鎭)의 북로군정서와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도 활약하였다. 이어서 박승길은 다뎬쯔무관학교[大甸子武官學校]를 재정비해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이후 러시아 영토인 고로시카로 망명하여 젊은 교민들의 교육에 진력하였다.

1920년부터 1921년까지 한인 무장 세력이 일본의 토벌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할 때 박승길은 오하묵(吳夏默) 등과 함께 한인보병자유대대의 일원이 되었고, 러시아 귀화 한인 단체인 대한국민의회의 문창범(文昌範) 등과 활동하였다. 박승길은 다시 중국 둥베이로 가서 둥닝 현[東寧縣]에서 항일 운동을 하였고, 1928년 일본군에게 체포되었지만 탈출에 성공하였다. 1935년에는 일본 자작농 토벌대의 선두에 섰다가 붙들려 모진 고문에 고막을 잃기도 하였으며 탈옥한 후 다시 투쟁을 계속하였다. 광복이 되자 귀국하였으며 1960년 8월 18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 표창, 1977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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