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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01
한자 李相悳
영어음역 Yi Sangd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00년 5월 13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동래 장터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75년 6월 6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연표보기 - 동래 장터 3·1 운동
출생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40지도보기
활동지 동래 장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상덕(李相悳)[1900~1975]은 1900년 5월 13일에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태어났다. 이상덕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이던 1919년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3·1 운동의 소식이 부산으로 전해졌다. 이어 3월 7일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달 받으면서 동래 지역의 만세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상덕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고영건(高永建) 등과 함께 구체적으로 계획을 진행시켰다.

이상덕은 주동 학생들과 함께 엄진영·오종식 등의 집과 정종호·백정기·고영건의 하숙방을 전전하면서 협의한 끝에 동래읍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고영건의 하숙집에서 주동 학생들과 교대로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 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태극기, 고종 황제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에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이상덕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고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주위에 모인 학생들과 장꾼들도 호응하여 장터는 독립의 의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50여 명의 일본군과 기마경찰 20~30명이 출동하여 야만적인 발포를 하며 닥치는 대로 군중을 체포하였다. 이때 이상덕도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으며, 부산감옥소에서 복역하고 약 1년 만에 출옥하였다. 1975년 6월 6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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