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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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應植 |
영어음역 | Lym Eungsik |
이칭/별칭 | 영상 시인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진 |
[정의]
부산에서 활동한 사진작가.
[활동 사항]
임응식(林應植)[1912~2001]은 1912년 11월 11일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에서 태어났다. 부산 최초의 일본 유학 서양화가이자 친일 미술인인 임응구(林應九)의 동생이다. 임응식은 부민공립보통학교[현 부민초등학교]와 일본 와세다중학교에 재학하였다. 1931년 부산체신리원양성소를 수료하고,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일본 도시마체신학교를 다녔다. 열다섯 살에 맏형이 입학 선물로 사다 준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1934년 부산여광사진구락부에 가입하고 활동하였으며, 작품 「초자의 정물」로 일본 ‘사진 살롱’에서 입선하였다. 이듬해인 1935년 작품 「둑을 가다」로 ‘전조선 사진 살롱’에서 입상하고, 강릉사우회를 조직하였다. 1935년 임응식은 강릉우체국에서 근무하다가, 1938년 중국 베이징을 여행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사진 현상소 아르스를 개소하고, 1946년에는 사진광화회를 창립하였으며, 1947년 부산예술사진연구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역임하면서 『ARS 사진뉴스』를 발행하였다.
6·25 전쟁 당시 종군 기자로 참전한 임응식은 부산에서 경인 전선 보도 사진전을 개최하였다. 전쟁 중인 1953년 부산으로 피난 와 있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이후 1974년까지 37년간 후학을 양성하였다. 1963년에는 동아 사진 콘테스트·대한민국 미술 전람회·국제 사진 살롱의 심사 위원과 창작사진협회장을 지냈으며, 1970년 건축 잡지 『월간 공간』 편집 주간을 지냈다. 1973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장 겸 고문·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운영위원·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1978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객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96년 한국사진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1997년 ‘98 사진 영상의 해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임응식은 사진을 기록물의 차원에서 예술 영역으로 끌어올린 작가로 일명 ‘영상 시인’으로 불렸다. 리얼리즘 사진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한 철저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생활주의 사진’을 주창하였다. 50여 년간 명동 사진 연작을 찍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연작과 한국의 고건축물 연작을 찍었다.
1952년 작품 「병아리」로 제1회 ‘도쿄 국제 사진 살롱’에서 입상하고, 1955년에는 미국 『세계 사진 연감』에 「나목」이 수록되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부산과 서울에서 임응식의 회고 사진전이 열렸고, 1982년 사진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현대 미술관에 초대되어 회고전이 열렸다. 이후 임응식의 작품 420점은 국립 현대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었으며, 상설 전시장이 만들어져 3개월마다 20점의 사진 작품이 교체 전시되고 있다. 2001년 1월 18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사진집으로는 1976년에 출판한 건축 사진집 『비원』·『경복궁』·『종묘』·『소쇄원』[광장출판사], 1979년에 출판한 『임응식 사진집』[시각출판사], 1982년에 출판한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풍모』[시각출판사], 1992년에 출판한 『한국 현대창작사진 대표작가 12인 선집』-제1권 임응식[금성출판사], 1995년에 출판한 『임응식 사진집』[사진예술사], 1998년에 출판한 대담집 『사진가와의 대화 3』[눈빛출판사], 1999년에 출판한 회고록 『내가 걸어 온 한국사단』[눈빛출판사]이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농가」[1932]·「초자의 정물」[1934]·「둑을 가다」[1935]·「범영루 판석」[1947]·「전쟁고아」·「초연 속의 성당」·「피난민 아이들」·「노점 수레」[1950]·「병아리」[1952]·「나목」·「구직」·「노파와 GI」[1953]·「산마을」·「명동 부감」·「작곡가 윤용하」·「시인 오상순」[1954]·「화극」·「청계천변」·「작곡가 안익태」[1955]·「초여름」[1956]·「입모」[1957]·「절규」[1960]·「서양화가 김환기」[1961]·「사당 앞 보도」[1966]·「뒷마루 밑」[1967]·「승방 창문」[1968]·「서양화가 장욱진」[1969]·「대연각 화재」[1971]·「가족」[1972]·「아동문학가 이원수」[1974]·「지붕과 담」[1977]·「시인 구상」[1979] 등이 있다.
[묘소]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곡리 우성 공원묘원에 묘지가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0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상, 1971년에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1978년에 현대 사진 문화상, 1989년에 대한민국 금관 문화 훈장, 1996년에 한국문인협회 ‘가장 문학적인 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