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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506
한자 洪斗杓
영어음역 Hong Dupyo
이칭/별칭 일영(逸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모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인
성별
본관 남양
대표경력 한국문인협회 부산지회장
출생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한국문인협회 부산지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부산시 문화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66년연표보기 - 홍두표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거주|이주지 중앙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시부야 농과대학 - 일본 동경
활동지 한국문인협회 부산지회 -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광역시에서 활동한 시인.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일영(逸影)이다.

[활동 사항]

홍두표(洪斗杓)[1904~1966]는 1904년 경상남도 진주 문산[현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5세에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를 여의는 등 정신적인 불우를 안고 살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3년을 마친 뒤, 중학교 4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중학 과정을 모두 마쳤다. 사립 대학인 시부야[渋谷] 농과 대학에 진학하여 3~4년을 다녔지만 졸업장을 얻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그 당시에 많은 문학 서적을 탐독하며 이경순(李敬純)·김용준(金瑢俊)·김진섭(金鎭燮) 등과 백치사(白痴舍)에 모여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고향 문산에서 이상향의 농촌을 실현하려던 홍두표의 꿈은 삼촌의 재산 관리 문제로 수포로 돌아갔다.

1949년 광문학원의 문산중학교 설립에 관여한 것을 보면, 고향에 대한 홍두표의 애착을 이해할 수 있다. 이후 홍두표는 부산으로 이주하여 6·25 전쟁을 맞는데, 피난 온 많은 문인들과 교유하며 문학 활동을 펼치고 1954년에는 한국문인협회 부산지회장을 맡기도 하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집 한 권을 남기지 못하였다. 따라서 한동안 홍두표는 문단의 미아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전하는 홍두표의 작품은 30여 편에 불과하다. 이상향의 상실과 현실 비판, 아나키스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시적 자아의 표출 등이 홍두표의 시에 보이는 표정들이다. 1966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 「산거」·「봉화산성」·「산울림」·「선거풍」·「경고」·「삼천리 강토는 피에 주렸다」·「고구마같은 이야기」·「북소리」·「도살장」·「바다의 이단자」·「새우」·「나는 곰이로소이다」·「소라껍질」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58년 제2회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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