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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386
한자 張翼遠
영어음역 Jang Ikwo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화잠 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료
성별
대표경력 구포면장
출생 시기/일시 1893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0년대 초 - 동래군청 근무
활동 시기/일시 1910년대 초 - 사립구명학교 교사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구포면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5년 이후 - 구포산업조합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35년 이후 - 경남산업주식회사 전무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구포
학교|수학지 동지사대학 - 일본 교토
활동지 동래군청 -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사립구명학교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2동 725지도보기
활동지 구포면사무소 - 부산광역시 북구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관료.

[활동 사항]

장익원(張翼遠)은 1893년 부산광역시 구포에서 장우석(張禹錫)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일본에서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1912년 판인관 시험[고등 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동래군청에 근무하였다. 이때 사립구명학교[현 구포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25년 장익원은 구포면장이 되어 10여 년간 재직하면서 행정가로 역할을 다하였다. 1930년 그는 김해와 구포를 잇는 낙동강 다리 공사가 시작되자 다리가 건설되면 구포 지역이 손해를 본다고 주장하면서 금전적인 협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낙동강 제방을 쌓게 되어 강변에 있던 장터를 옮겨야만 하자 새로운 장을 세워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즉 현재 장이 열리는 새 장터는 집안의 형 장진원 소유의 땅이 많았다. 장익원은 형을 설득하여 땅을 내놓게 하고, 1932년 상설 시장을 만들어 3·8일의 장날마다 새 장터에서 장이 열리게 하였다. 이곳에서는 오늘날까지 장날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장익원은 이 외에도 구포면에서 만덕까지 도로를 개설하고 화명과 금곡까지 도로를 내었으며, 벽촌인 산성 마을까지도 대천 계곡을 따라 오른쪽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개설하였다. 장익원은 구포면장을 퇴임한 후 구포산업조합을 창설하고 부산의 경남산업주식회사 전무를 맡아 근무하였다. 1942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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