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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320
한자 李容稙
영어음역 Yi Yongjik
이칭/별칭 치만(稚萬),강암(剛庵),이강암(李剛庵)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관료
성별
본관 한산
대표관직 동래 부사 겸 부산항 감리|학부대신
출생 시기/일시 1852년 12월 24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5년 - 과거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83년 -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85년 - 참의교섭통상사무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87년 3월 - 동래 부사 겸 부산항 감리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89년 5월 - 동래 부사 겸 부산항 감리 해임
활동 시기/일시 1889년 5월 25일 - 동부승지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사망
거주지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동래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지도보기

[정의]

개항기 동래 부사 겸 부산항 감리를 역임한 관료.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치만(稚萬), 호는 강암(剛庵). 아버지는 사과 이승조(李承祖)이며, 을사조약 때 분사(憤死)한 조병세(趙秉世)의 사위로, 부인은 양주 조씨(楊州趙氏)이다.

[활동 사항]

이용직(李容稙)은 1852년 12월 24일에 태어났다. 1875년(고종 12)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877년 한림의 권점(圈點)을 받았고, 시강원 설서, 예문관 검열, 사간원 정언, 홍문관 응교를 거쳐 사간원 사간, 승정원 승지를 지낸 뒤 1883년(고종 20) 사헌부 대사헌의 직에 올랐다. 1885년에는 참의교섭통상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가 되었다. 1887년 3월부터 1889년 5월까지 동래 부사 겸 부산항 감리를 역임하였다. 1889년 5월 25일 동부승지로 이직되면서 동래 부사에서 해임되었다. 1890년 이후 병조 참의, 형조 참의, 이조 참의, 예조 참판, 한성부 좌우윤, 의주 부윤, 개성부 유수, 춘천 관찰사, 황해도 관찰사, 전라북도 관찰사, 학부대신(學部大臣) 등 다양한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이용직은 2년여 동안 동래 부사 겸 부산항 감리로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래기영회 회원 이추수(李秋水)의 권유를 받고 동래기영회 회원에 가입하였으며, 5천 냥을 기부하였다. 1887년(고종 24) 7월 25일 고종 탄신일 때는 부산감리서 분서에 행차하여 외국인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7월 29일에는 부산항에 정박한 영국 병함(兵艦) 13척의 함장을 위문하는 일로 부산해관을 방문하였다. 8월 10일에는 부산해관장 피리(T. Piry)[프랑스 인으로 한국명 백려(帛黎)]가 초청하는 연회에 참석하였다. 이 연회에는 청국 이사, 일본 영사도 함께 참석하였다.

8월 24일 프랑스 병함 두 척이 부산항에 정박하자, 다음 날 프랑스 병함을 위로 방문하는 일로 부산해관에 행차하였다. 9월 13일에는 부산항에 도착하는 참찬관(參贊官) 이완용(李完用)을 영접하기 위하여 부산감리서에 행차하였다. 9월 18일에는 일본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동래부, 부산감리서, 부산경찰서 관료들과 함께 일본 영사관에 갔다. 10월 4일에는 미국 병함을 타고 부산항에 온 미국 공사 박정양(朴定陽)과 수행원 이상재(李商在)를 전별하였다. 10월 29일에는 청국 거류지에 행차하였다.

1888년(고종 25) 1월 5일 청국 이사부에 신년(新年) 인사를 하러 갔다. 8월 9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이 병선 5척을 타고 부산항에 정박하자, 8월 11일 부산감리서 분서에 와서 이들을 접견하고 위문하였다. 이용직은 이 외에도 부산항을 출입하는 많은 고위 관료들을 전별하였다. 11월 23일은 예수의 탄생일이었는데, 이용직은 당시 부산해관장 헌트(J. Hunt)[영국인으로 한국명 하문덕(何文德)]가 밤에 베푸는 축하 초대 모임에 참석하였다.

이용직은 동래 부사 겸 부산항 감리로서 일본 영사관, 청국 이사부, 부산해관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각종 공문을 보냈다. 부산항의 삭세부(朔稅簿)를 중앙의 각 아문이나 국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여러 차례 청국 이사서, 부산해관[세무사], 일본 영사관, 부산감리서 등을 방문하였다. 이처럼 이용직은 부산해관 감독관, 지방관, 지방 외교 대표 등 감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산감리서 방판 민건호(閔建鎬)[1843~1920]의 『해은 일록(海隱日錄)』에는 이용직이 동래 부사 재임 중에 지은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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