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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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相弼 |
영어음역 | Yu Sangpil |
이칭/별칭 | 사익(士翼),무숙(武肅),류상필(柳相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지현 |
[정의]
조선 후기 통신사 군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무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익(士翼). 증조할아버지는 유선기(柳善基)로, 1719년(숙종 45) 통신사 자제군관에 뽑혀 일본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방어사(防禦使) 유달원(柳達源)으로 역시 1763년(영조 39) 명무군관으로 통신사행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유상필(柳相弼)[1782~?]은 음직으로 여러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1811년(순조 11) 통신사 군관에 뽑혀 쓰시마[對馬島]에 다녀왔다. 유상필이 쓴 『동사록(東槎錄)』에 따르면 통신사 일행은 1811년 3월 1일 동래에 도착하여 연회에 참석하고 물품을 점검하였으며, 11일 영가대(永嘉臺)에서 해신제를 지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한 달여를 부산에 체류하면서 만공단(萬公檀)에 오르고, 다대포 몰운대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일행은 윤 3월 12일 부산을 출발하여 이튿날 오전 쓰시마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7월 3일 부산으로 돌아왔다. 개천 군수로 있을 때는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826년(순조 26)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양주 목사, 우포도대장, 총융사, 훈련대장을 역임하였고 1856년(철종 7) 형조 판서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1811년(순조 11) 통신사 군관으로 쓰시마에 다녀와서 쓴 『동사록』이 있다.
[상훈과 추모]
1875년(고종 12) 무숙(武肅)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