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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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游夏 |
영어음역 | Yi Yuha |
이칭/별칭 | 경학(景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낙동대로1762번길 75[구포1동 43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상원 |
[정의]
조선 후기 양산[지금의 부산광역시 북구 지역]의 군수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학(景學). 아버지는 이익성(李益誠)이고, 동생은 이택하(李澤夏)이다.
[활동 사항]
이유하(李游夏)[1767~?]는 1786년(정조 10) 생원시에 급제하고, 1795년(정조 19) 문과 별시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1801년(순조 1) 예조의 부정자(副正字)로 벼슬 생활을 시작하여 사헌부 감찰, 사간원 지평 등을 지냈다. 1808년(순조 8) 7월 양산 군수로 부임하여 1810년(순조 10) 12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유하가 양산 군수로 있을 때 현재 부산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구포 대리 마을의 하천이 큰 비만 오면 범람하여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이유하가 제방을 쌓아 하천이 마을 외곽으로 돌아 흐르도록 하였다. 주민들이 이를 감사히 여겨 1809년(순조 9) 공덕비를 세웠다.
1811년(순조 11) 통례원 좌통례가 되었고, 이후 사헌부, 사간원 등의 요직을 거쳐 1820년(순조 20) 북청 부사로 나갔다. 1822년(순조 22) 환곡(還穀) 운영을 잘못하여 삭탈관직되었으나 이듬해 통례원 상례(相禮)로 복귀하였다.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홍문관 부교리 등을 지내고, 1830년(순조 30) 세자시강원 필선(世子侍講院弼善)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행군수 이후유하 축은제비(行郡守李後游夏築恩堤碑)가 1809년(순조 9)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1동 비석골에 세워졌다. 이 비는 현재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1동 430-1번지 구포1동 주민센터 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