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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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異樣船漂着 |
영어의미역 | Drifting Ashore of Foreign Vessel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허지은 |
[정의]
1797년 10월 부산 지역에 표착했던 이양선 사건.
[역사적 배경]
이양선(異樣船)은 모양이 동양 세계의 배와 달리 특이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황당선(荒唐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황당선의 표착은 1540년(중종 35) 1월 19일 황해도 부근에 나타난 것이 처음이다. 이양선의 표착은 1794년(정조 18)에 “이양선이 표류하여 호서의 마량진(馬梁鎭) 앞바다에 도착하였다.”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때의 배는 서양의 배가 아니라 중국 남부나 류큐[琉球]의 배였다. 조선 해역에 이양선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선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97년(정조 21) 9월로, 영국의 탐험 항해가 윌리엄 브로턴(William Robert Broughton)이 이끄는 프로비던스(Providence) 호였다.
[경과]
프로비던스 호는 1794년 6월 17일 동북아시아 해역 탐사에 나서 류큐, 대만, 남중국 연안, 일본 해역을 탐사한 후 9월 1일 쓰가루[津輕] 해협을 통과, 사할린으로 진입하였다. 10월 3일 청진 근해를 탐사하고 영흥만에 이르렀고, 동해안을 끼고 남해 쪽으로 항진 10월 13일 부산의 용당포(龍塘浦)에 입항하였다. 1797년 10월 14일 프로비던스 호가 부산 용당포에 내항, 10일간 체류하면서 부산 항박도를 제작하였고, 부산 주민과의 대화를 통하여 조선어 38개 단어를 채록했으며, 26종의 식물 표본을 채집하였다.
[결과]
10월 20일에 프로비던스 호가 출항하였을 때 영국 측은 망원경과 영국제 총포를 조선에 선물로 주고 돌아갔는데, 조선을 ‘대외 불교섭 폐쇄국’이라고 규정하였다.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이 발생하자 황사영(黃嗣永)이 프로비던스 호의 군함의 규모에 문화적 충격을 받아 서양 병선을 청래하여 박해받고 있는 천주교도를 구원하고 신앙의 자유를 구현하고자 이른바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의의와 평가]
프로비던스 호의 부산 내항은 당시 해금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조선 사회에 큰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영국의 한반도 항해 탐사의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프로비던스 호는 87톤 급의 소형 범선으로 대원도 35명의 소규모였으나 귀국하여 『항해기』를 1804년에 출판함으로써 그 후 서구 열강의 많은 선박들이 부산항을 인지하고 자주 찾아들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