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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전람도』 「조선도」[1721년]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172
한자 皇輿全覽圖朝鮮圖
영어의미역 Joseon-do in Hwangyeojeollamdo[Map of the Qing Dynasty, 1721]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기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도
서체/기법 목판
제작 시기/일시 1721년연표보기 - 제작

[정의]

조선 후기 동래를 비롯한 우리나라 지리 정보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는 조선 전도.

[개설]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 「조선도(朝鮮圖)」는 1717년 중국 강희제(康熙帝)의 지시에 따라 간행된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에 삽입된 조선 전도이다.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1689년 청과 러시아가 맺은 국경 획정 조양]의 통역관 중 한 명이었던 제르비용은 강희제에게 아시아 지도를 바치면서 청나라가 만주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이에 강희제는 전국적인 측지(測地)와 지도 작성을 결심하게 되었고, 1712년 목극등(穆克登) 일행은 측량 도구와 기사를 대동하여 경계 획정에 수반되는 지도를 제작하였다. 1713년 목극등 일행이 조선에 파견되어 한성의 위도와 경도를 측정하고, 북위 37도 39분 15초, 북경 순천부 중선 기준 편동 10도 30분이라는 측정치를 얻었다.

아울러 이들은 조선의 지도를 요구하였고, 조선 조정은 고심 끝에 지도를 내주게 되었다. 이들은 희주에서 한성까지의 거리 등을 측정하였으며, 이들이 수집한 자료는 만주의 봉황성에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전달되었다. 『황여전람도』 「조선도」에서 두만강과 압록강 일대의 지도는 선교사들의 측량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남부 지역은 조선에서 얻은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형태 및 구성]

『황여전람도』 「조선도」는 현재 목판본을 영인한 것이 남아 있으며, 크기는 57.1×42.1㎝이다. 경상도 부분은 실제보다 동쪽으로 돌출되어 그려졌고, 낙동강의 경우 밀양강, 암강, 황강, 금호강 등의 유로와 상류 부분의 유로가 매우 상세하다.

[특징]

『황여전람도』 「조선도」에서 동래의 위치는 북위 34.7도, 경도상 위치는 동 13.2도로 표시되어 있다. 절영도가 표시되어 있으며 대마도가 우측 하단에 한 개의 섬으로 그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황여전람도』 「조선도」는 유럽에서 당빌에 의해 번역되어 「조선 왕국도(朝鮮王國圖)」로 제작되었다. 당시 유럽 사회에 확산된 우리나라 지리 정보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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