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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144
한자 金指南
영어음역 Gim Jinam
이칭/별칭 계명(季明),광천(廣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규 2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역관
성별
본관 우봉
대표관직 지중추부사
출생 시기/일시 1654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72년 - 역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82년연표보기 - 사역원 정에 임명, 통신사 통역사로 일본에 다녀옴, 『동사일록』 저술
활동 시기/일시 1690년 - 『역어유해』 편찬
활동 시기/일시 1698년 - 『신전자초방』 저술
활동 시기/일시 1712년 - 『북정록』 저술
활동 시기/일시 1713년 - 지중추부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18년 - 『통문관지』 저술
몰년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김지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18년 - 묘표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20년연표보기 - 『통문관지』 편찬
출생지 고양군 - 경기도 고양시
거주|이주지 고양군 - 경기도 고양시
부임|활동지 동래부 관아 - 부산직할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묘소|단소 김지남 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95-1

[정의]

조선 후기 한학 역관으로 활약하였던 인물.

[가계]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계명(季明), 호는 광천(廣川). 할아버지는 김대충(金大忠)이고, 아버지는 김여의(金汝義)이다. 어머니는 함평 이씨로, 전의감 정을 지낸 이몽룡(李夢龍)의 딸이다. 김지남은 19세에 한학 전공으로 역과에 급제한 이후 숙종 말년까지 많은 업적을 쌓아 우봉 김씨 계동공파가 역관 가계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현문(金顯門), 김찬문(金纘門) 등 다섯 아들도 역관을 지냈다.

[활동 사항]

김지남(金指南)[1654~1718]은 고양군[현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다. 1672년(현종 13) 한학 전공으로 역과에 급제하여 사역원 정에 올랐다. 1682년(숙종 8) 통신사가 파견될 때 압물통사(押物通事)로 따라갔다. 이때 보고 들은 것을 자세히 적어 『동사일록(東槎日錄)』을 펴냈다. 1710년(숙종 36) 동평위 정재륜(鄭載崙)이 사은사로 청나라를 방문할 때도 통역관으로 동행하였다. 김지남은 심양(瀋陽)에서 청나라 장수에게 ‘조선은 법도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여 조공을 줄이는 데 기여하였다.

1712년(숙종 38)에 청 강희제(康熙帝)가 오랄총관(烏喇總官) 목극등(穆克登)을 사신으로 보냈을 때,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을 접반사로 임명하고 김지남을 통역으로 붙였다. 김지남은 목극등과는 구면인데다 중국 말도 잘하여 조선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 백두산을 화폭에 담아 보여 주어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도 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713년(숙종 39)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로 승진하였다. 이때 목극등이 다시 사신을 왔는데, 김지남은 그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지남은 5권의 책을 남겼다. 1682년(숙종 8) 통신사 일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서 쓴 『동사일록』, 1690년(숙종 16) 신이행(愼以行)·김경준(金敬俊)과 공동으로 편찬한 중국어 사전인 『역어유해(譯語類解)』, 1698년(숙종 24) 청의 화약 제조 비법을 소개한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 1712년(숙종 38) 청나라 목극등과 함께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기록인 『북정록(北征錄)』, 1718년(숙종 44) 아들 김경문과 함께 쓴 『통문관지(通文館志)』가 그것이다. 『통문관지』는 사역원(司譯院)의 연혁과 구성, 중국 및 일본과의 외교 관계 등을 자세히 소개한 책으로, 김지남이 죽고 나서 2년 뒤에 간행되었다

[묘소]

김지남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95-1번지에 있다. 묘표의 글은 큰아들 김경문이 짓고 둘째 아들 김현문이 썼다. 묘역에는 할아버지 김대충, 아버지 김여의를 비롯하여 아들들의 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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