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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056
한자 宋希璟
영어음역 Song Huigyeong
이칭/별칭 정부(正夫),노송당(老松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구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신평
대표관직 함양 목사
출생 시기/일시 1376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02년 - 과거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06년 - 사간원 정언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11년 -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420년 - 회례사로 일본에 다녀옴, 『노송당 일본행록』 저술
활동 시기/일시 1424년 - 함양 목사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446년연표보기 - 송희경 사망
출생지 충청남도 연산 - 충청남도 논산시
부임|활동지 동래부 관아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지도보기
묘소|단소 송희경 묘 -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정의]

조선 전기 회례사로 일본에 다녀온 문신.

[가계]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정부(正夫), 호는 노송당(老松堂). 신평 신씨의 시조인 송구진(宋丘進)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송현덕(宋玄德)이다. 고손자는 「면앙정가(俛仰亭歌)」를 지은 송순(宋純)[1493~1582]이다.

[활동 사항]

송희경(宋希璟)[1376~1446]은 고려 말 우왕 때 충청남도 연산(連山)[충청남도 논산의 옛 지명]에서 태어났다. 1402년(태종 2) 과거 급제 후 한림원 벼슬을 거쳐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1404년(태종 4) 사간원과 사헌부의 마찰에 휘말려 담양에 유배되었다. 1411년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20년(세종 2)에는 회례사(回禮使)에 뽑혀 아시카가 막부[足利幕府]가 있는 일본 교토[京都]에 파견되었다. 1424년(세종 6)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요청하여 함양 목사로 나갔고, 이듬해 은퇴하여 담양에 은거하였다.

송희경이 일본에 다녀와서 쓴 『노송당 일본 행록(老松堂日本行錄)』에 따르면 회례사 일행은 1420년(세종 2) 2월 5일 즈음 동래에 내려갔고, 15일 부산포를 출발해 초량에서 하룻밤을 잔 다음 이튿날 쓰시마[對馬島]에 도착하였다. 송희경은 동래의 동헌에 묵을 때 관원 및 일본 승려와 여러 편의 시를 주고받았다. 교토 방문을 마친 회례사 일행은 9월 26일 제포[현 진해시]로 들어와, 김해를 거쳐 서울로 향하였다.

[학문과 저술]

회례사로 일본에 다녀온 일을 기록한 『노송당 일본 행록』이 전한다.

[묘소]

송희경의 묘는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4.02 담양 유배 관련 연도 수정 <태종실록>의 기록에 의거. 1407년(태종 7) -> 1404년(태종 4년)
이용자 의견
정** 그리고 송희경이 유배에서 풀려난 연도도 1410년이 아닙니다. 실록에 언제 해배되었다는 기사는 없지만 태종실록 1409년(태종 9)에 이미 좌헌납으로 재직 중인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8.03.31
정** 송희경이 담양에 유배된 연도는 1404년(태종 4)입니다. 아래 실록기사 참조.
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6월 28일 정유 1404년 명 영락(永樂) 2년
안등(安騰)을 상주(尙州)로, 김음(金愔)을 창평(昌平)으로, 송희경(宋希璟)을 담양(潭陽)으로, 유장(柳暲)을 청주(淸州)로 귀양보내었다.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소중한 의견을 검토하고, <태종실록>의 기사를 확인하여 해당 연도를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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