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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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釋器 |
영어음역 | Seokgi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은정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만덕사에 유폐되었던 고려 충혜왕의 서자.
[개설]
고려 28대 왕인 충혜왕과 후궁 은천 옹주 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백언린(白彦麟)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으나 1375년 부자가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활동 사항]
석기(釋器)[?~1375]는 1351년 12월 출가하여 충정왕에 의해 만덕사에 유폐되었다. 만덕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석기와 함께 반란에 연루된 강윤충(康允忠) 등을 동래 현령으로 좌천시킨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는 ‘만덕사지’라는 폐사지가 바로 기록 속의 만덕사로 추정되고 있다. 석기는 1356년(공민왕 5) 임중보(林仲甫)·손수경(孫守卿)·홍준(洪遵) 등과 함께 반란을 모의하다가 공민왕에게 적발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나 도망하였다. 1363년 서북면 도순무사 전녹생(田祿生)이 공민왕에게 ‘석기의 반란 모의’를 보고하자, 경부흥(慶復興)·임견미(林堅味) 등을 파견하여 석기를 뒤쫓았다. 이때 석기는 살아남아 안협의 백언린 집에 은거하였으나, 1375년(우왕 1)에 평양에서 경복흥(慶復興) 등에 의해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