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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라남도 순천 지역 농민이 일제 식민통치 하의 열악한 정치·경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일으킨 반일운동. 토지를 매개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민은 토지의 소유를 어떤 문제보다 중시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해 토지 수탈과 식민지 지주제를 축으로 무단농정을 추진했다. 그 결과 다수 농민은 소작인으로 전락해 각종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토지를 상실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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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가곡동은 산수가 수려하여 ‘가곡(佳谷)’이라 하였으며 마을에 햇볕이 잘 들고 기온이 따뜻하여 양지마을이라 하기도 한다. 또한, 고려 충렬왕 때 유명한 관기인 호호(好好)의 출생지여서 아름다울 가(佳)자를 붙였다는 설, 비단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의 가매장터가 이름으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가곡동의 자연마을로는 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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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집안에서 가족들의 무사안일을 기원하며 부녀자들이 사제자가 되어 모시는 신앙. 가신신앙은 그간 ‘가택신앙’, ‘가정신앙’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신(家神)은 집안 곳곳에 좌정하여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집을 지켜주고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준다고 한다. 그만큼 집은 사람들의 안식처로서 단순한 생활공간을 뛰어넘는다. 가신신앙을 통해 집은 신이 좌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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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마리(渴馬里) 명칭은 갈마마을에서 유래했다. 갈마마을은 형국이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 ‘갈촌(葛村)’이라 부르다가 1914년 ‘갈마(渴馬)’라 개칭하였다. 감성(甘星)마을은 마을 형성 당시 입향조인 인동장씨와 하동정씨의 꿈에 하늘에서 길상이 뻗쳤다 하여 ‘갑숭골’로 불러오다가 후에 감성마을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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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평리 명칭은 갈전(葛田)마을과 무평(武坪)마을에서 유래했다. 갈전(葛田)마을은 칡넝쿨이 많아서 ‘갈전’이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의 형국이 큰 계곡의 갈라진 곳에 있어 갈라진 골〉갈골〉갈밭으로 변했고 한자명인 ‘갈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무평(武坪)마을은 ‘물이 있는 들’에서 유래하여 ‘물들’이라 불리다가 한자 표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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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를 상징하는 시목. 감나무는 6~14m 높이까지 자라며, 어린 가지에는 짧은 털이 있다. 잎은 크고 넓은데 녹색의 광택이 나며 톱니가 없는 형태이다. 감꽃은 흰빛을 기본으로 한 담황색으로 자웅잡성(雌雄雜性)이며 6월에 피는데 꽃잎은 크고 네 개로 갈라진다. 열매의 모양이 방추형인 고종시(高種枾), 편원형(扁圓形)인 사곡시(舍谷枾), 오각형인 반시(盤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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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검암리 명칭에 대해서는 마을 앞에 ‘검 바위’라는 검은 바위가 있고, 서쪽과 남쪽에 있는 산 능선에 검은 바위가 있어 ‘검암리’라고 불렀다는 유래가 있다. 검암마을은 조선 선조 대인 1590년대 말에 강세홍이 낙안군 고상면 추동마을에서 임진왜란을 피하고자 와서 터를 잡아 개척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송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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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경주정씨는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한다. 지백호는 신라를 구성한 사로(斯盧) 6촌 중의 하나인 자산 진지촌(珍支村)[옛 본피부(本彼部)] 촌장이었다. 고려시대 때 정진후(鄭珍厚)가 문과에 급제하여 병부상서 겸 군기시윤(兵部尙書兼軍器寺尹)을 지내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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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월리 명칭은 계영리와 망월리에서 유래했다. 계영마을과 망월마을 모두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을로 달과 관련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현재 망월마을과 계월마을은 폐촌 되었다. 상동마을은 과거 ‘상골내기’라 하였는데 이는 ‘산골’이라는 육면체의 광물에서 유래하였고, 산골내기〉상골내기〉상골〉상동으로 변했다고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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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산지 간의 통로 역할을 하는 낮은 지대. 고개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한다. 재 또는 영(嶺)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산등성이의 낮은 곳에 길이 통한다는 것을 뜻한다. 옛사람들에게는 고갯길이 주요 교통로여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오늘날에는 산등성이를 넘는 도로가 확충되어 그 쓰임이 줄었다. 고개는 산의 양쪽 사면에 계곡이 발달해 있으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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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순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순천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소국이 등장한 것은 삼한 시대부터이다. 순천 지역은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중 마한에 속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마한은 흔히 78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서 마한 소국으로 비정되고 있는 곳은 세 곳이었다. 불사분사국(不斯濆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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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은성학교(현 순천매산중학교, 순천매산고등학교,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 고라복(高羅福)[Coit Robert Thronwell, 1878~1932]은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로서 순천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사립 은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지냈다. 고라복은 1907년 6월 미국 남장로교 맥클렌버그 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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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순천의 행정구역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후삼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진정한 통일국가를 건설한 고려는 지방세력까지 통치체제로 포섭할 여력이 없었다. 태조부터 경종 대까지[936-981] 일부 군사적인 거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지방세력의 자치상태에 있었다. 조세 수취를 맡은 금유,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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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산리(古山里) 명칭은 아미산에서 유래했다. 아미산의 줄기가 고리 모양으로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 ‘고리메’라 불렸는데, ‘고’의 소리를 취하여 ‘고(古)’로, ‘메’를 뜻 옮김 하여 ‘산(山)’으로 옮겨 ‘고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자연마을 중 문성(文星)마을은 아미산과 월치재 계곡을 내려오는 맑은 물을 바라보며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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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위치한 전통 가옥. 순천의 주택은 부엌, 방, 안청[마루]의 3공간을 기본요소로 하고, 이들 공간이 상호결합하는 형태에 따라 결정된다. 그 가운데 순천 낙안읍성은 외곽이 한정된 성곽 마을로서 그 안에서 집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각 초가는 서민 주거의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순천 지역의 가옥은 일반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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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판교리 추동마을에 있는 1905년 지어진 누정. 박병두(朴炳斗)[1883~?]는 1923년부터 순천농민대연합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절초동맹회(折草同盟會)를 조직하여 순천 지역 소작쟁의 운동을 전개하였고, 1929년 순천농민조합 조직 변경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관경정은 순천시 서면 판교리 추동마을[추동길 28[판교리 6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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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천리(廣川里) 명칭은 조선시대 송광사 하천가에 있었던 광천원(廣川院)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광(外廣)마을과 내광(內廣)마을은 행정구역 통합 시 광천마을을 1, 2, 3구로 나누는 과정에서 보성강과 가까운 마을을 ‘외광’, 먼 마을을 ‘내광’이라 하였다. 원동(院洞)마을은 광천원이 있던 마을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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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괴목리(槐木里) 명칭은 마을에 서는 괴목장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이 장을 ‘구나무장’이라도 불렀는데, 장이 서는 곳에 있는 느티나무 9그루가 홍수 때마다 인명을 구했다고 하여 ‘구나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느티나무 괴(槐)와 나무 목(木)을 써 ‘괴목’이라 부르고 있다. 백야(白也)마을은 마을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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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교량동(橋良洞) 지명은 교항(橋項)마을과 양률(良栗)마을에서 유래한다. ‘교항’의 우리말 이름은 ‘다리목’으로, 도사초등학교에서 대대마을로 가는 다릿머리, 다릿목에 있으며 이사천(伊沙川)을 건너는 다리다. ‘양률’은 ‘연동(淵洞)’이라고도 하며, 옛날 ‘역촌(驛村)’이었다. 교량동은 본래 순천군 도리면에 속했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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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 교육의 역사 순천 지역은 구석기시대 이후 한반도 남부의 중심 고을이었다. 낙안 지역을 포함한 순천 지역에는 마한·가야 유물, 백제계 산성 등 역사 유적, 후백제 김총·박영규의 근거지였던 역사적 사실들이 이를 증명한다. 삼국시대 이후 왕권 강화의 방편으로 유교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시도가 있었겠지만,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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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교촌리 명칭은 낙안향교에서 유래했다. 교촌리는 처음에는 ‘금계동’으로 불려오다가 1658년(효종 9년)에 낙안향교가 마을 북쪽으로 이전하면서부터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교촌(校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촌리는 1280년 무렵인 고려 충렬왕 때 현재의 세거 성씨인 경주최씨와 광산김씨의 선조들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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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강리(九江里) 명칭은 구수(九水)마을과 강촌(江村)마을에서 유래했다. 구수마을은 마을 안에 9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여 ‘구수’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강촌마을은 마을 앞에 큰 냇물이 흐르고 있어 ‘강촌’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제(沙堤)마을은 마을이 형성될 때 모래밭으로 되어있다고 하여 ‘사평(沙平)’이라 불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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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룡리 명칭은 구룡마을과 용두마을에서 유래했다. 용두(龍頭)마을은 『승주향리지』[1986]에 의하면 용이 바다를 향하여 한가로이 구슬을 희롱하며 놀고 있는 형국으로, 용의 머리 부분에 마을이 형성되어 ‘용두’라 했다고 전한다. 산 능선을 풍수에서는 용이라 표현하는데,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땅고개의 모습이 마치 용과 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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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룡리 명칭은 구표마을과 오룡마을에서 유래했다. 구룡리의 구표마을은 1673년 초계최씨가 송광면 고읍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설촌했다. 영봉마을은 18세기 이후 장돌뱅이들의 주막에서 발전된 마을이다. 방축마을은 이미 없어지고 ‘방죽골’이란 이름만 남아있다. 구룡리는 본래 순천군 송광면의 지역인데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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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만리는 마을의 모습이 궁형(弓形)이어서 ‘궁만(弓滿)’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뒷산인 복룡산이 활모양이며, 앞에 흐르는 서천이 활줄에 해당하고,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화살에 해당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물굽이 안쪽’ 이라 ‘구만’이라 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둔대(屯垈)마을의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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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구전을 통해 말로 전승되는 언어예술.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속담, 수수께끼 등을 구비문학이라고 한다. 구비문학에서는 전승 공동체가 공유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공동 전승의 체험이 작용하고, 공동작과 개인작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관계가 펼쳐진다. 구전되지만 지속성을 띠면서 전승된 내력이 여기에 있다. 구비문학은 생활 속에서 전승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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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산리(九山里) 명칭은 구산마을에서 유래했다. ‘구산’의 우리말 이름은 마을의 형상이 거북이같이 생겨 ‘거그메’라 부르다가, ‘거그’를 ‘거북’으로 ‘메’를 산으로 뜻 옮김 하여 ‘구산(龜山)’으로 부르다가 1914년 일본의 구산천황(龜山天皇)과 같은 글자를 쓸 수 없다고 하여 ‘구산(九山)’으로 바꾼 후 지금까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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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상’은 우리말 이름이 구랑실 또는 웃구랑실이다. 웃구랑실 또는 구랑실 위란 뜻을 ‘구상’으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구상은 구상천(九上川) 거북보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그 형상이 마을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라고 또는 거북바위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구상(龜上)’이라고 썼는데 일제가 ‘구상(九上)’으로 적었다고 한다. 『호구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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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궁각리(弓角里) 명칭은 궁각마을에서 유래했다. 궁각마을은 마을 형상이 활과 비슷하다 하여 ‘활부리’라 불리다가 한자로 쓰면서 ‘궁각’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화평(花坪)마을은 풍수에 따르면 아미산이 연화도수(蓮花倒垂)[연꽃이 거꾸로 드리운 형상]이며, 화평들의 연못에 연꽃이 피어있는 것 같다고 하여 ‘연지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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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근대사회. 1860년대를 기점으로 동학의 발생, 흥선대원군 정권의 개혁, 양요(洋擾)와 제국주의의 침략, 여기에 대항한 반침략 민족운동의 발생은 근대사회의 주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개항은 조선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항 시기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의 수립과 세계자본주의의 침투 등 다양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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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금곡동(金谷洞) 명칭은 일제강점기의 이름이다. 본래 지명은 청수(淸水)마을로 난봉산 계곡의 맑은 물에서 유래한다. 금곡동은 원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수리(淸水里)와 장내리 일부를 통합하여 금곡리라 하고 순천면에 편입시켰다. 1931년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승격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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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산리 명칭은 마을 북쪽에 있는 금전산에서 유래했다. 신전마을은 1780년경 승주박씨들에 의해 개촌(開村)되었다. 마을 이름은 주변에 대나무와 띠풀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었다고 해서 ‘섶발몰’이라 불렀던 것을 1800년경 연안이씨와 진주강씨가 들어와 한자음을 빌어 ‘신전(薪田)’이라 개명하여 지금까지 부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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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돌이나 금속의 재료에 새겨서 전해지는 석문(石文)과 금문(金文). 순천 지역의 금석문은 크게 석문과 금문으로 나눌 수 있다. 석문은 고승들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 사찰의 역사를 기록한 사적비,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 행적을 새겨서 후손들이 세운 공적비 등이 있다. 금문은 주로 동종이나, 향로 등에 새겨져 있다. 1. 탑비 순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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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성리 명칭은 금성(錦城)마을과 신촌(新村)마을에서 유래했다. 전설에 의하면 신촌 북쪽 골짜기에 사계절 마르지 않고 물맛이 아주 좋은 샘이 넷 있어 이를 사미정(四美井), 이 골짜기를 새미정골이라 불렀다 한다. 여기서 쇠를 금(金)으로 표기하고 마을이란 의미의 성(城)을 묶어 ‘금성(金城)’이라 했고, 이후 아름답고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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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전산에 있는 처사샘·쌀구멍·각시샘에 얽힌 이야기. 「금전산의 삼기전설」은 1997년 순천시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순천시사』2-문화·예술편 31쪽에 「처사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2000년에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순천시의 문화유적』Ⅱ 560~563쪽에 「금전산(金錢山)에 서린 삼기(三奇)」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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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치리 명칭은 금동마을과 진치마을·대치마을·소치마을에서 유래했다. 금동(琴洞)마을은 선녀들이 샘골에서 목욕한 후 마을 북쪽 300m 지점에 있는 비선등을 오르내리고, 옥녀봉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놀았다고 하여 거문고 금(琴) 자를 따 ‘금동’이라 했다고 한다. 대치(大峙)마을은 제석산 중턱 마을에서 낙안으로 다니던 고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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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평리(琴坪里) 명칭은 가소마을과 금평마을에서 유래했다. ‘건들’이라는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건평(乾坪)’이라 부르다가 이를 미화하고자 ‘금평’으로 바꿔 불렀다고 전해진다. 용서(龍栖)마을은 과거에 마을 뒤 골짜기에 나무가 울창하고 폭포의 절벽 암석이 동굴과 같다고 하여 ‘동주굴’이라 불러오다가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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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등의 기록물. 순천 지역의 기록 유산으로는 개인 문집과 같은 저작물, 순천부 향교·향약과 같은 지역 공동체에서 작성한 각종 장부나 고문서류, 순천 송광사와 순천 선암사 등에 보관된 불교 경전·책판, 금석문 등이 있다. 금석문에는 대체로 선정비(善政碑), 충효비(忠孝碑) 등이 많다. 순천대학교 박물관은 매천(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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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대기의 종합적이고 평균적인 상태. 전라남도 순천시는 한반도 남단에 위치하고, 남해안에 접해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보이고 겨울에는 온난 건조한 온대 동계 건조 기후대의 특성을 보인다. 순천시는 한국의 기후구에서는 온대 기후구의 남해안형에 속한다. 호남정맥 중 남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조계산-희아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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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천 지역에 유배 왔던 문신·학자.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본관은 서흥(瑞興)이다. 아명(兒名)은 김효동(金孝童), 자는 대유(大猷), 호는 한훤당(寒暄堂)·사옹(蓑翁)이다. 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김유(金紐), 어머니는 청성군(淸城君) 한승순(韓承舜)의 딸 숙부인(淑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김굉필은 김종직(金宗直)[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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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에 김자점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순천시 일대에는 김자점(金自點)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 김자점 조상의 묏자리에 관한 이야기, 지혜로운 김자점 부인에 관한 이야기, 김자점 집터에 관한 이야기 등이 구전되고 있다. 「김자점전설」은 1997년에 순천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순천시사』-문화·예술편에 이경엽이 현지 조사한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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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견훤을 도와 후백제를 건국한 김총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총(金摠)에 관련 기록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승평지(昇平誌)』, 『강남악부(江南樂府)』 등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승평지』에서는 김총이 상주 가은현에서 여수 등 서남해 방위의 공을 세워 비장이 되어 무진주 등을 정벌했다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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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수리(洛水里) 명칭 유래는 비록 명확하지는 않으나,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물이 마을 뒷산을 감아 흐르고 있어 물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낙수리는 한때 ‘청운(靑雲)’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오수도찰방(獒樹道察訪)에 딸린 역(驛)이 있어 낙수역 또는 낙수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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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에서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인근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액운을 막고 풍년을 기원한 민속놀이. 낙안 디딜방아 훔쳐오기는 마을 장정들이 주도하였다. 매년 1월 14일이 되면 이들은 먼저 한곳에 모여서 어느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올 것인가를 모의한 후, 해가 지는 저녁 무렵에 지정한 마을의 디딜 방앗간으로 간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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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서로 편을 나누어 볏짚으로 만든 줄을 당기며 놀았던 세시민속놀이. 낙안 큰줄당기기는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각각 줄을 만들어서 줄을 당기며 함께 어울렸다. 과거 낙안읍성에 원님이 있을 때 원님이 보이는 낙민루 앞에서 줄을 당겼으나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낙안 큰줄당기기는 동내리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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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에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낙안교촌리은행나무는 낙안향교 명륜당 오른쪽에 있으며 높이는 25m, 둘레는 8.2m이다. 원줄기의 2.5m 부위에서 3개의 줄기로 갈라졌다. 낙안향교는 지방의 관학 기관으로서 조선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658년(효종 9)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낙안교촌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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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낙안군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에 처음 사용되었다. 백제시대에는 분차군(分嵯郡), 신라 경덕왕 때는 분령군(分嶺郡), 고려시대에 처음 낙안군(樂安郡)으로 기록되었다. 고려 전기에 낙안군은 수령이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었다. 995년(성종 14)에는 해양도 소속으로 승주에 설치되었던 연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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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낙안면 명칭은 고려 때 ‘낙안(樂安)’이라고 불렸으나 그 유래를 찾을 수가 없다. 낙안면은 본래 백제의 분차군(分嵯郡) 또는 분사군(分沙郡)이었는데 통일신라 때 분령군(分嶺郡)으로 개칭하고, 고려 때 낙안 또는 양악(陽岳)으로 칭하였다. 조선시대에 군현의 승강이 있었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낙안군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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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분지. ‘낙안’ 지명 유래는 낙토민안(樂土民安) 관악민안(官樂民安)이라고 하여 땅이 기름지니 곡식이 많이 생산되어 먹을 것이 넉넉하니, 굶는 백성이 없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백성들 역시 이처럼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잘살고 있으니 송사(訟事)가 있을 리 없고 더불어 관(官) 역시 정치를 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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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순천 낙안읍성에 있는 노거수. 낙안읍성노거수는 순천 낙안읍성 내 객사 남쪽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가 28m이며, 주 줄기는 가슴 높이에서 둘레를 쟀을 때 10.2m에 이르고 있다. 객사 뒤편 마당에는 높이 23m에 뿌리목 둘레만 9.4m에 이르는 큰 푸조나무가 있다. 푸조나무의 경우 생장 속도가 비교적 빠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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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가리는 마을 앞 옥녀봉의 형상이 마치 옥녀가 천황봉을 향하여 거문고를 안고 잔을 올리는 것 같이 아름답다고 해서 ‘가산(佳山)’이라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남가산(南佳山)’이라고도 불렀으며, 1914년 이후 ‘남가리’가 되었다. 1912년 조선총독부의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용두면 대가리·남가리·서가리가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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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남강리(南江里)라는 명칭은 남정마을과 용강마을에서 유래했다. 남정(南亭)마을은 1580년경에 형성된 마을로 그 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용강(龍江)마을은 과거 부인 한 사람이 아홉 아들을 낳으면 큰 사람이 된다는 전래로 인해 ‘구남마을’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용강마을’로 부르면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저동(苧洞)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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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남내동(南內洞)의 지명은 조선시대 순천부읍성(順天府邑城)[1430년 축성]의 안쪽이 되므로 ‘남문안’ 이라고 칭한 데서 유래한다. 남내동은 원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내리와 동외리 일부를 병합하여 일본식 지명인 본정(本町)이 되었다. 1931년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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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내리는 순천 낙안읍성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남내리는 낙안읍성이 축조되기 이전인 백제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낙안군의 읍내면 지역으로 읍성을 세 등분하여 중앙에 해당하는 마을이고 동헌이 있던 마을이다.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내리·평촌리·서내리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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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육상선수. 남승룡(南昇龍)[1912~2001]은 순천 출신으로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남승룡이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는 그가 순천공립보통학교[현 순천남초등학교] 학생 시절 우연히 외사촌 형 정종호가 마라톤 1위를 하여 시민들에게 열렬히 환영받는 것을 보고 난 후였다. 그 마라톤 대회는 일본인들과 함께 한 대회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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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남정동(南亭洞) 지명은 남제리와 신흥정마을에서 유래한다. 신흥은 새롭게 흥한다는 뜻이며 ‘신흥쟁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남정동은 원래 순천군 장평면(長平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흥정·남제리(南蹄里)·도리면 지정리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남정리라 하고 순천면에 편입시켰다. 1931년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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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구리(內九里)는 남쪽 산의 형태가 거북이가 들어오는 것 같다 하여 ‘내구(內龜)’라 부르다가 1910년 행정구역명을 개편하면서 ‘거북 구(龜)’를 쉬운 한자인 ‘아홉 구(九)’로 바꿔 쓰면서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내구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구·구동·지당리를 통합하여 순천군 황전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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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운리 명칭은 내동마을과 운동마을에서 유래했다. 내운리의 내동마을은 1504년 연산군 대에 일어난 갑자사화 때에 제주목사 강을부가 귀양살이 오면서 마을이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고, 운동마을은 1610년 광주이씨가 개척했다. 심내마을은 1620년경에 연일정씨 정익이 한양에서 낙향하여 설촌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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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내운리 내동마을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워진 장승. 내운리 내동 벅수는 순천시 낙안면 내운리 내동마을로 들어가는 좌측, 우측 도로에 각 한 기씩 세워져 있는데, 좌측과 우측의 거리는 약 500m이다. 내운리 내동 벅수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천하대장군’은 사모관대를 하였으며, 부리부리한 눈, 도드라진 코, 양쪽으로 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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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주로 농사를 지을 때 사용했던 도구. 농기구(農器具)는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을 말한다. 순천 지역은 산이 많은 지역으로 경지면적은 도시 전체 면적의 19.9%를 차지한다. 반면 농림수산업 종사자는 인구구성의 42.1%를 차지한다. 주로 쌀, 쌀보리, 맥주보리 등을 재배하는데, 전국 최대의 오이 생산지역이며 원예농업도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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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 『호구총수』에는 ‘농곡(農谷)’과 ‘장선(長善)’의 지명이 남아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농곡의 ‘농’과 장선의 ‘선’을 따 농선리가 되었다. 농선마을은 농사짓기에 적합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논이 많아 ‘논골’로 불리다가 ‘농골’이 되었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농곡’이 되었다. 장선마을은 장필원(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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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농주리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새터’라고 불렸으며, ‘새터’라고 불리던 곳이 ‘파랑바구’로 변했다가, ‘농주’로 개명되었다. ‘농주(弄珠)’는 마을 앞산을 용머리라 생각하고 파랑바구를 여의주로 여겨 용이 여의주를 희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농주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용두면 농주리·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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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의 여러 마을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달집을 태우면서 재액초복을 기원하는 달맞이 풍속. 순천 지역에서의 달집태우기는 마을 단위로 거행되는데, 정월 대보름날 달이 떠오를 무렵에 미리 지어놓은 달집에 불을 놓아 풍년과 길흉을 점치며, 모든 액운을 태워버리는 풍속이다. 달집은 마을 청장년들이 소나무, 솔가지, 대나무 등을 가져와서 마을의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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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에서 정월 대보름날 달집태우기를 할 때 부르는 유희요. 순천의 「달집태우기노래」는 1992년 간행된 『순천시의 문화유적』에 수록되었다. 최덕원이 채록한 것으로 조사 일시, 조사 장소, 가창자에 대한 정보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1998년 2월 11일 정월 대보름날 순천시 월등면 송천리에서 채록한 「달집태우기노래」가 『순천시의 문화유적』Ⅱ-옛 승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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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곡리 명칭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큰 골짜기에서 유래했다. 상대(上大)마을은 큰 골짜기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상대’라 했다고 한다. ‘윗 한실’을 한자로 표기하여 ‘상대(上大)’가 되었다. 하대(下大)마을은 큰 골짜기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하대(下大)'라 했다 한다. 이미(二美)마을은 대곡리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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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곡리 명칭은 큰 골짜기를 뜻하는 ‘한실’에서 유래했다. 대곡리는 1469년 처음으로 창녕조씨(昌寧曹氏)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대곡리는 본래 순천군 송광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곡마을과 도롱마을·중대마을·신풍(新風)마을 일부를 합쳐 개설했다. 1949년 8월 15일 순천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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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광리 명칭은 모후산에 있던 대광사에서 유래하였는데, 현재 이 사찰은 사라져 흔적만 전한다. 대광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덕흥마을·모전마을·용문마을·두지마을 일부를 합쳐 개설했다. 1949년 8월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승주군 주암면 대광리가 되었다. 1987년을 전후하여 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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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대구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대구1리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입구의 벅수거리이다. 마을 안의 당산나무는 제의 대상은 아니지만 제 지내는 기간에만 금줄을 쳐놓는다. 벅수거리는 과거에 나무 벅수[장승] 두 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1980년 중반 무렵에 설치한 직사각형의 대리석 상석이 마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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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구리의 우리말 이름은 대구실 또는 대구이다. 땅 모양이 대구처럼 생겼다 하여 ‘대구실’ 또는 ‘대구’라 하였는데 ‘대구(大九)’라고 한자로 표기하였다. 또는 마을이 큰 거북등처럼 생겼다고 ‘대구실(大龜室)’이라고 불렀다는 속설이 있다. 대구리를 ‘행화촌(杏花村)’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많아 봄이면 살구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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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구리(大九里) 명칭은 대구마을에서 유래했다. 대구마을은 과거에 ‘큰 만입부’라는 뜻에서 ‘한구미’라 불리다가 한자로 옮기면서 ‘대구’라 부르게 되었다. 대구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구·구촌에 곡성군 석곡면 봉암리 일부를 합쳐 개설했다. 1949년 8월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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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대대동(大垈洞) 지명은 ‘큰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1914년 일제가 대(大) 자 호칭을 금하여 ‘하대(下垈)’로 부르다가 해방 후 명칭이 회복되었다. 하내(下內)[동너리]마을은 동쪽으로 이사천이 흐르고 있어서 ‘동널·동너리’ 라고도 불리는데 동쪽에 나루터가 있어서 동나루터라는 것이 와전되었다 한다. 금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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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대룡동(大龍洞) 지명은 대동리(大洞里)와 오룡리(五龍里)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대동마을은 ‘서재골[서당]’로 불리다가 ‘대동’이 되었으며, 오룡은 대동회관 자리의 연못 옆에 작은 동산 5개가 쌍둥이처럼 붙어서 불린 명칭이다. 신전은 해방 이후 포전[채소밭·무밭]이 많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들판인 구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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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룡리 명칭은 대동마을과 용안마을에서 유래했다. 대동(大洞)마을은 ‘한골’ 또는 ‘항골’이라 부르는데 ‘큰 골짜기 마을’이란 뜻이다. 한자로 대(大) 자를 취해 쓴 것이 ‘대동’이다. 혹은 ‘한골’에서 ‘항골’로 발음이 와전되어 항(項) 자를 써서 ‘항동’이라 표기한 기록도 있다. 용안(龍眼)마을은 풍수에서 용이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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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안리 명칭은 대안마을에서 유래했다. 대안마을을 ‘안림’이라고 불렀으며, ‘안림’을 한자로 ‘안음(鞍音)’이라고 표기하였다. 안음은 마을의 형태가 마치 말의 안장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후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대안리’로 굳어졌다. 1912년 조선총독부의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해촌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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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치리(大峙里)는 큰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치’라 불렸다. 도롱(道弄)마을은 순우리말로 강물이 돌아 흐르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소리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다. 건천(乾川)마을은 과거에 ‘하늘에 은하수가 있다’라는 뜻인 ‘여의내’라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서 ‘하늘 건(乾)’과 ‘내 천(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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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평리(大坪里) 유래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둔대(屯垈)마을의 ‘대(垈)’와 월평마을의 ‘평(坪)’을 합하여 ‘대평(垈坪)’이라 하였다가 일제강점기의 한자 간소화 정책으로 ‘대평(大坪)’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큰 들이 있어 ‘대평(大坪)’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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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흥리 명칭은 대흥(大興)마을에서 유래했다. 백제 침류왕 때 대흥사(大興寺)가 있었으나 백제 멸망과 함께 사찰은 해남으로 옮겨가고 지명만 남았다고 한다. 대흥리 대흥마을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건국 초 대흥사 창건과 함께 설촌 된 것으로 여겨진다. 효정마을은 1724년 조선 영조 때 청주한씨가 들어와 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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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대흥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대흥리 대흥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한 때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대흥마을이 시작되면서부터 제를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내고 있다. 6.25전쟁 당시 대흥마을 전체가 소개(疎開) 당했을 때도 한두 사람이 들어와서 제를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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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대흥마을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워진 장승.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대흥마을 입구 ‘벅수거리’라고 부르는 곳에 대흥리 대흥 벅수 세 기가 세워져 있다. 대흥리 대흥 벅수 중 한 기는 오래된 벅수이고 두 기가 1995년 무렵에 새로 세운 것이라 한다.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대흥마을을 향해 좌측[북]의 벅수는 ‘천하대장군(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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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림리(德林里)는 과거에 무사들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으로, 활을 쏘던 누각을 ‘관덕정’이라 칭했는데, 마을의 감나무 숲과 관덕정을 결합하여 ‘덕림’으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구룡(九龍)마을은 마을 뒤의 산세가 아홉 마리의 봉 또는 용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구룡’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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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덕림리 미초 당산제 제당은 큰당산 한 곳과 작은당산 세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당산은 벅수거리라고 부르는 곳으로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의 미초마을 옛길 입구에 있다. 여기에는 당산나무 숲이 있고 그 속에 벅수[장승] 두 기와 당집 터가 있고 바로 곁에 ‘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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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워진 장승.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의 미초마을로 들어가는 옛길 입구에 덕림리 미초 벅수 두 기가 서 있다. 지금은 미초마을 북쪽으로 신작로가 나 있지만, 그전에는 옛길이 주 진입로였다. ‘벅수거리’라고 불리는 옛길 입구에는 수십 그루의 크고 작은 당산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당산숲’이 있고, 그 안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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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 미초·신기 마을의 청소년들이 음력 1월 15일에 서로 편을 나누어 돌과 흙을 던지면 싸우는 민속놀이. 음력 1월 15일 저녁이 되면 순천시 황전면 덕림리의 미초마을과 신기마을에서는 각각 달집태우기를 하고 난 후에 덕림리 미초·신기마을 편싸움을 했다. 깡통에다가 숯불을 담아 돌리고 다니면서 논밭 둑에 불을 붙이는 장난을 하고 마을 앞 사당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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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산리는 덕동(德洞)마을과 죽산(竹山)마을에서 유래했다. 덕동마을의 한글 이름은 ‘덕골’ 또는 ‘덧골’인데 더 깊은 산골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옛날에는 죽산마을을 ‘새터’라고 불렀는데, 인근에 봉천(鳳川)이라는 마을이 새로 들어서자 봉은 대나무를 먹고 산다며 마을 이름을 ‘죽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덕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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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덕암동은 ‘쌀앙등’으로 불리다가 ‘덕암’으로 개칭되었는데 뒷산에 덕바우가 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새터’라고 불리는 신기마을, ‘신화정’이라고 불리는 신화[신아]마을, ‘사령뎅’이라고 불린 원덕암마을 그리고 마을터가 거북이 모양을 한 구암(龜岩)마을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신화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바다를 건너와 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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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덕월동(德月洞) 지명은 덕흥리(德興里)와 월곡리(月谷里)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옛날 순천부(順天府)의 중심에서 북쪽으로 오리(五里)가 되는 지점에 정(亭)[현 석현동 순천대학교 앞 오리정(五里亭)]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부사들의 도임과 작별 전송을 하였다고 한다. 남쪽의 오리정 은 덕월동 순천제일대학교 앞 지정(枳亭)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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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덕월동 소라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덕월동 소라 당산제는 ‘제만모신다’고 부르기도 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덕월동 소라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중앙에 있는 당산나무로, 세 그루의 나무 중에 제사를 지내는 나무는 안쪽에 있는 작은 나무이다. 당산나무 밑에는 시멘트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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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정리 명칭은 수덕리와 삼정리에서 유래했다. 수덕(水德)마을은 수덕산 아래 있어서 ‘수덕’이라 부른다. 신촌마을은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새터’라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신촌(新村)’이 되었다. 하삼마을은 삼정지 중 아래쪽에 있으므로 ‘하삼정(下三亭)’이라 한 것인데 이를 줄여 ‘하삼’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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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롱리는 우리말 이름이 ‘도롱굴’이다. ‘도롱굴’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은 대체로 산 굽이나 바다 굽이나 들 굽이를 돌아가는 곳에 있다. 도롱마을도 마을 앞 개펄이 활처럼 굽어 돈다. 그래서 ‘돌아오는 골짜기’가 줄어들어 ‘도론굴’이 되고 다시 ‘도롱골’로 소리가 변하였다. 이것을 한자로 ‘도롱동(道弄洞)’이라 표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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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신리 명칭은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생긴 것인데 그 연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가는골[細谷]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가는’을 ‘도(道)’로 뜻 옮김 했을 여지가 있을 뿐이다. 본래 곳간이 있었던 까닭에 ‘곳간·고치실·도실·도신·고적’이라고도 불렀다. 도신리에는 1560년경 경주(慶州) 정원호(鄭元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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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월리(道月里) 명칭은 마을 뒤에 돌이 많은 산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미곡(米谷)은 ‘쌀이 나는 골짜기’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풀면 ‘쌀실’이다. 이곳의 오래 거주한 노인들은 ‘사시기’라 부른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도월리(道月里), 사색지(士色只) 죽천려(竹川閭) 등의 마을이 있고, 1872년 「순천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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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도정리(道亭里)는 도목(桃木)마을과 송정(松亭)마을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도정(桃亭)’이라 하지 않고 임의대로 도정(道亭)이라 표기하였다. 도목마을은 초기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복숭아를 따 먹고 생활하였다고 하여 ‘도원’ 또는 ‘도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송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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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내리는 순천 낙안읍성 안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동내리는 1397년(태조 6년) 낙안읍성이 김빈길 장군에 의해 토성으로 축성되기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 낙안읍성이 축성된 이후에 성안은 동내리, 성 밖은 동외리로 구분되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낙안군 읍내면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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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동내리 당산제는 ‘도제’또는 ‘제만 모신다’고 부르는데,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에 중당, 상당, 하당의 순으로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동내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이다. 동내리 당산제에 대한 정확한 내력은 알지 못하나, 오래전부터 지내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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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순천 낙안읍성의 동문 밖 다리 앞에 세워진 돌로 만든 개 형상의 석상. 동내리 석구는 순천 낙안읍성 동문 밖 다리 앞에 좌우로 각 한 기씩이 세워져 있다. 순천 낙안읍성 동문 밖 다리 앞에 세워진 돌로 만든 개 형상으로 ‘개바구’또는 ‘독개’라고 부르는데, 오른쪽은 ‘수캐’, 왼쪽은 ‘암캐’라 부르기도 한다. 동내리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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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 동물상이란 일정한 환경이나 사는 조건에 따라 분류된 전체 동물의 종류를 의미하며, 식물상과 합쳐 생물상을 구성한다. 전라남도 순천시의 동물상은 포유류, 조류, 양서·파충류, 어류, 저서생물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순천시는 전라남도 보성군·전라남도 화순군·전라남도 구례군·전라남도 광양시·전라남도 여수시 등과 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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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산’의 우리말 이름은 ‘동메’ ‘동뫼’ ‘동매’ 이다. ‘동메’는 마을에서 동떨어진 작은 동산을 이르는 말로 이를 ‘동산(東山)’이라는 한자로 표기하였다. 동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산리에 산정리·산우리·월산·방석리·임촌리·북차리·당천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순천군 서면 동산리로 개설되었다. 1949년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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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송리 명칭은 동막마을과 신송마을·송천마을에서 유래했다. 동막(東幕)마을은 ‘새로운 삶터’ 즉 ‘새 막터’를 한자로 쓰면서 ‘새’를 날이 새다는 의미로 동(東)자를 취하고 ‘막’자는 장막 막(幕)자를 더해 ‘동막’이라 했다. 신송(新松)마을은 소나무가 많아 ‘아랫솔내’, ‘아래소래’라 하다가 ‘신송(新松)’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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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외동(東外洞) 지명은 조선시대 순천부읍성(順天府邑城)[1430년 축성]의 동문 밖이 되므로 ‘동문밖’ 이라고 칭한 데서 유래한다. 동외동은 원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명리(牛鳴里) 일부를 통합하여 동외리라 하고 순천면에 편입시켰다. 1931년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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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서 발원하여 순천만으로 유입하는 하천. 전라남도 순천시 중심지 동쪽에 있는 하천이라 ‘동천’이라 불린다. 동천 유역의 북부 분수계를 이루는 산지는 중생대 퇴적암을 기반암으로 하며, 서·북·남쪽 지역은 화강암질 편마암이 주를 이룬다. 동천 유역의 동쪽 지역에 해당하는 순천 삼산과 봉화산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 응회암과 안산암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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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동화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동화사는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의 「전낙안군개운산동화사중창기(前樂安郡開雲山桐華寺重創記)」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경내의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되어 사찰의 창건은 대각국사 의천이 아닌 고려 초기로 생각된다. 동화사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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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와룡동 범죽마을에서 돛대를 세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풍속. 순천시 와룡동의 범죽마을은 옥천의 상류골에 자리한 마을로 풍수지리적으로 배형국이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배의 운항 곧 마을의 삶을 순조롭게 꾸려나가기 위해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돛대[범주]를 세워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했다. 1월 14일 오전에 긴 나발[띠띠]을 불면 온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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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고리 명칭은 밀고재에서 유래했다. 말고재는 도홍마을·덕산마을·칠동마을·서동마을 뒤편에 있는데 한자로 ‘두고(斗庫)’라고 표기했다. 서동(書洞)마을은 마을에 서당이 있어 ‘서당골’로 부르다가, 한자명인 ‘서동’으로 쓰게 되었다. 칠동(七洞)마을은 옻나무가 많아 ‘옻골’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칠(漆) 자를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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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두월리 명칭은 두모(斗毛)마을과 월평(月坪)마을에서 유래했다. ‘두모’는 두메산골에서 유래했으며, ‘월평’은 효동마을의 평야 지역에서 유래하였다. 자연마을 중 하나인 효동마을은 온동마을·회동마을·월평마을이 합쳐져 ‘회동(灰洞)’으로 부르다 그 후 ‘회동(回洞)’으로 변경되었고, 1970년대 당시 이장의 노력으로 ‘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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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시행된 매년 음력 1월 14일 밤에 인근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액운을 막고 풍년을 기원한 민속놀이. 순천 지역에서는 음력 1월 14일 밤에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 액막이 디딜방아를 훔치러 갔다. 순천시 용수동에서는 삼거리마을이나 풍치마을로, 멀리는 순천시 승주읍까지 가서 디딜방아를 훔쳐 온다. 음력 1월 14일 밤이 되면 디딜방아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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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륜리(馬輪里) 명칭은 마을의 지형이 ‘말터’이고, 낙안군 원님이 행차할 때 마을 앞을 지나는 행렬이 마치 수레바퀴 같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또는 이두 표기로 ‘마륜(馬輪)’으로 쓰지만 ‘륜(輪)’이 단지 ‘ㄹ’을 나타내는 음소로 사용되어 ‘말’[마을]이 되므로, 원래 이름은 ‘마실’일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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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산리 명칭은 주변을 아우르는 천마산(天馬山)에서 유래했다. 신덕(新德)마을은 마을의 산세가 신이 덕을 베푼 곳이라고 ‘신덕(神德)’이라 했다가, 후손이 ‘새로 만들어진 마을’을 뜻하는 ‘신덕(新德)’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고장(古長)마을은 처음에 서씨가 마을을 만들었는데 서씨는 쥐를 의미하므로 창고에 곡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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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자연마을 단위로 마을 사람들의 풍요와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공동으로 올린 신앙. 마을신앙은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이며, 누대에 걸쳐 형성된 민간신앙의 한 유형이다. 자연마을 단위로 마을 사람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올리는 공동제의이다. 마을은 같은 문화권에 거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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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망룡리(望龍里) 명칭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한글학회의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망치리의 ‘망(望)’과 황전면에 속한 용암리의 ‘용(龍)’을 합하여 ‘망룡’이라 하였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망치[보름재터]에서 산줄기[용]가 뻗쳐 내려와 맺힌 곳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망치의 용이다.’ 하여 ‘망룡’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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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법정동. ‘매곡(梅谷)’은 ‘저우실[동곡(冬谷)]’이라고도 하며, 겨울에 매화가 피는 것에서 유래한다. 또한, 수리산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매화의 꽃뫼’를 이룬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매곡동[저우실·매산등·북문밖 포함]은 본래 순천군 소안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정지·우명[구석돔 포함]·못등·청수리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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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전리(毛田里)는 우리말로 ‘띠밭골’ 또는 ‘띠골’이라 불리다가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띠 모(茅)’와 ‘밭 전(田)’을 써 ‘모전(茅田)’이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임의로 한자 표기를 변경하였다. 임선(林仙)마을은 1700년경 전주이씨가 농소마을에서 현재의 내임선마을 자리로 옮겨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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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목촌리는 목씨(睦氏)에 의하여 개척된 마을이라 하여 ‘목화촌(睦和村)’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 중엽에 목(睦) 자가 목(木) 자로 바뀌면서 ‘목촌리(木村里)’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수정마을은 1730년경에 금성나씨와 장수황씨에 의해 개척되었다. ‘수정’이란 지명은 이 마을의 계곡과 산수가 수려하여 붙여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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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사제자인 단골이나 무당이 주축이 되어 민간에서 전승하고 있는 신앙. 순천 지역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무속은 세습을 이루는 사제무가(巫歌)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라남도에서 세습무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은 단골이라 부른다. 단골의 성무과정에는 강신 체험과 무병의 현상이 없다. 전적으로 가계에 따라 단골 신분이 계승되고 학습으로 무업이 전승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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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무당의 조상과 유래를 전하는 이야기. 「무조전설」은 당골 세습무에 의해 구전된다. 씻김굿의 첫 번째 절차인 「안당」에서 “앙와 임금아 공심은 절에 두고 남에 남산은 본이로구나.…”로 시작되는 대목이 있다. 일명 ‘공심풀이’라고 불리는 무가다. 여기에 등장하는 공심은 공주라고 하며 무당의 조상이라고 한다. 「안당」은 굿을 하는 장소와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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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풍리 명칭은 무선마을과 풍류마을에서 유래했다. 무선(武仙)마을은 신선이 춤을 춘다는 선인무수형국(仙人舞袖形局)이라 ‘무선(舞仙)’이라 하다가 임진왜란 때 전투선이 정박하던 곳이라 ‘무선(武船)’이라 했다. 이후 한자명이 ‘무선(武仙)’으로 바뀌었다. 풍류(風流)마을은 선인들이 춤을 추는 곳이라 ‘무풍리(舞風里)’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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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조상 대대로 전승되고 있는 형태가 없는 무형적인 문화유산의 총체. 전라남도 순천 지역은 조상 대대로 무형적인 문화유산을 계승해왔다. 이는 수많은 시간 속에서 한 지역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유심한 관찰과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지혜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우리의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서 면면히 이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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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있는 법정리. 문길리(文吉理)는 풍교리(楓橋里)라 부르다가 일본식 지명을 정비하고자 1995년 8월 ‘풍교리’에서 ‘문교리’로 개칭하였다. 풍교리 명칭은 풍교마을에서 장동마을로 가는 길목에 신나무[단풍나무]로 된 다리가 있어 지금의 장동마을을 ‘신다리’라 부르고 풍교마을을 '문길리[신촌, 새터]'라 부르다가,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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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전개.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문학은 고전문학과 근현대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전문학은 구비문학, 한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순천 지역의 구비문학으로는 설화, 민요, 판소리가 있다. 순천 지역 설화로는 순천시 용당동의 봉우리 세 개가 이어진 삼산(三山)의 유래,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송광면 낙수리·상사면 미곡리 등에 부자(富者) 흥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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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 낙안면에서 생산되는 과채류 특산물. 순천만 습지와 순천만국가정원이 있는 순천시는 대한민국 생태 수도로 알려져 있다. 순천시청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조계산 도립공원과 모후산이 있고, 북쪽에는 봉두산과 계족산 등이 있어 북서쪽의 지형이 높고, 남동쪽으로 내려올수록 고도가 낮아진다. 이러한 지형의 특징으로 물길들은 순천의 남동쪽인 순천만과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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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성립되어 전승되는 문화. 민속에는 의식주를 비롯한 일상문화와 농업, 어업 등의 생업활동과 세시풍속, 통과 의례, 민속신앙, 민속놀이, 민속예술 등이 포함된다. 민속은 공동체가 전승해온 생활문화이며 전통문화이면서 또한 당대 문화이다.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지만 더불어 당대 사람들이 수용하고 선택하면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시켜온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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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일상의 여가나 세시풍속 절기에 맞춰 이뤄지는 놀이와 연희. 순천 지역의 민속놀이는 줄다리기, 달집태우기, 디딜방아 액막이놀이, 돛대[짐대]세우기, 반보기[중로상봉], 돌싸움·편싸움 등이 알려져 있다. 대체로 공동체 단위에서 전승되던 집단놀이가 많다. 순천 시내에서 펼쳐진 큰줄다리기는 남문 곁에 있는 옥천을 사이에 두고 남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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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에서 민중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민요는 민중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과정이 노래로 표출된 것이다. 민중은 일하면서, 의식을 치르면서, 놀이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일과 의식과 놀이는 민중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내용이다. 따라서 순천에서 전승되는 민요에는 순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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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호장이자 대장군. 박난봉(朴蘭鳳)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박난봉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순천박씨의 시조인 박영규의 후손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계보는 분명하지 않다. 고려 충숙왕 때 활약한 박숙정의 후손이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성장하면서, 박영규-박난봉-박숙정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확립되었다. 이후 박난봉은 순천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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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박영규의 후손인 박난봉에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박난봉전설」의 주인공 박난봉(朴蘭鳳)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전라도 순천대도호부 인물조에, 「박난봉전설」은 『강남악부(江南樂府)』 14쪽에 「인제산」으로, 1992년에 발행한 『순천시의 문화유적』 297쪽에 「인제산」으로 실려 있다. 또한, 2018년에 현지조사 내용이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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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견훤을 도와 후백제를 건국한 박영규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박영규전설」의 주인공 박영규(朴英規)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전라도 순천대도호부 인물조에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고, 『강남악부(江南樂府)』에는 의 기록을 인용한 내용이 간략히 실려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박영규는 후백제의 임금 견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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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순천 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박항래(朴恒來)[1861~1919]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판결문에 의하면 재산이 없어 생활이 매우 곤궁한 양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이기도 했다. 한편, 유생으로서 그 성품이 곧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인물임을 판결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일제의 총독 통치에 대한 강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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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반용리 명칭은 용반마을과 가룡마을에서 유래했다. 반용리는 용반(龍盤)마을과 가룡마을의 앞 자를 딴 것이지만 가룡마을 남쪽 치자산에서 수직마을 뒤 국기봉까지 산줄기가 용의 형상을 이룬다 해서 붙여진 것이기도 하다. 가룡마을은 남쪽의 치자산이 마치 소 멍에와 비슷해서 ‘가룡’이라 명했다 한다. 상가룡마을의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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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록리(白鹿里) 명칭은 백록마을에서 유래했다. 백록(白鹿)마을은 마을 뒤의 산세가 사슴 형국으로 생긴 데다 뒷산 바위가 멀리서 보면 흰 바위로 보여 ‘흰사슴 마을’이라 부르다가 한자명인 ‘백록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가음(佳音)마을은 685년(신문왕 5)에 가음현을 설치했다는 기록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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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순천매산고등학교를 설립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 변요한(變要翰)[John Fairman Preston, 1875~1975]은 1910년 무렵부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이고, 현재 순천매산고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은성학교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순천매산고등학교의 설립자로 대우받고 있다. 변요한은 미국 조지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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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별량’이란 이름은 벼랑 진 곳의 안쪽에 위치함을 뜻한다. 『고려사』에 “1277년(충렬왕 3) 승평군(昇平郡) 임내(任內) 별량부곡(別良部曲) 장대충의 집에서 암탉이 변하여 수탉이 되었는데 날개·털·꼬리·며느리발톱은 다 갖추었으나 벼슬만 심히 높지 못하였다.”라는 내용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별량면 중심에 있는 첨산[2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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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일림산과 사자산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으로 유입하는 강. 보성강 명칭은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유래했다. 보성강은 보성군 웅치면에서는 화천강,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에서는 순자강이라고도 불린다. 보성강 발원지를 감싸는 웅치분지 배후산지는 백악기 화산암이나 나머지 대부분은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보성강 유역분지의 지형은 산록 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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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에 보조국사 지눌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는 조계종의 개조(開祖)인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이 신이하게 태어나고, 한국의 대표 사찰인 순천 송광사, 순천 선암사, 대흥사를 건립하는 이야기, 순천 송광사의 도둑을 퇴치하고 신전마을[현 순천시 낙안면 금산리]의 참샘을 만들어 주는 이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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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복다리(福多里) 명칭은 복다마을에서 유래했다. 복다마을은 송광사의 보조국사가 도포 자락에 ‘흙을 담아 계곡을 메워 놓은 다리’ 또는 ‘흙으로 메운 다리[복토다리]’가 ‘복다리’로 줄어들고 이를 ‘복다(卜多)’라고 불렀다는 설과, ‘복(卜)’ 자가 이두로 쓸 때는 ‘짐, 진, 지’로 읽었는데, 징검다리를 이두로 표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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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복성리(福星里) 명칭은 마을이 천극성(天極星)이라는 별자리 모양같이 생겼다고 붙여졌다. 복성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용두면 복성리·상비리·매봉리·평화리와 해촌면 주영리 및 광양군 인덕면 동지리 일부를 합쳐 복성리라 하였다. 1949년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승주군 해룡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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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내리(蓬萊里) 지명은 마을 뒤에 있는 산에서 쑥(蓬)이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동마을은 원래 산이 노루등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노등’이었는데 후에 늙도록 오래오래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노동’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문래산(文來山)마을이 있고, 1872년 「순천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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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봉덕리(鳳德里) 명칭은 봉곡(鳳谷)마을과 육덕(六德)마을에서 유래했다. 봉곡마을은 서쪽에 황새등이 있고 우측에 12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를 황새가 낳은 알이라고 하여 ‘봉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육덕마을은 과거에 ‘대덕(大德)’이라 쓰인 것을 잘못 표기하던 것이 남아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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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덕리(鳳德里) 명칭은 봉동마을과 덕계마을에서 유래했다. 봉동(鳳洞)마을은 과거에 ‘신대[새터]’라 불렸는데, 1914년 ‘봉동’으로 개칭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별봉산 아래 노봉귀소의 명당 혈이 있고, 뒷산이 봉체형이라 하여 ‘봉동’으로 개칭하였다는 설과, ‘새터’를 한자로 옮기면서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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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림리 명칭은 봉덕리와 무림리에서 유래했다. 봉덕(鳳德)마을은 ‘발개’로 부르다가 ‘발포(發浦)’로 표기했고 ‘봉덕정’이라 부르다가 ‘봉덕’이 되었다. 무림(茂林)마을은 거주 성씨인 전주최씨가 숲이 있어야 번창한다며 이름을 ‘무림’으로 했다. 장기(場基)마을은 3일과 8일에 서는 별량 5일 장터가 있어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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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산리 명칭은 봉천마을과 산척마을에서 유래했다. 봉천마을은 수몰로 사라졌고 부근에 널려있는 고인돌과 연관 지어 ‘갱들’이라고도 불렀다. 산척마을은 산골 마을인데 우리말 이름은 ‘산자골’이며 산에서 사냥을 하거나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뜻한다. 봉산리에는 1700년경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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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부유현은 백제 때는 둔지현(遁支縣)이었다. 757년(경덕왕 16) 둔지현에서 부유현으로 개칭되었고, 동복, 구례와 함께 곡성군(谷城郡)의 속현이 되었다. 996년(성종 15) 광양현, 여수현, 돌산현 등과 같이 전국 12군 가운데 하나인 연해군[오늘날 순천]에 속하였다. 1036년(정종2) 승평군(昇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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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평지 또는 평야가 산지나 언덕으로 둘러싸인 지형. 분지(盆地)는 주변이 고지(高地)로 둘러싸인 저평한 지형을 말한다. 분지는 형성원인, 형태, 규모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형성요인으로 보면 침식분지와 구조분지로 나뉜다. 침식분지(侵蝕盆地)는 기반 암석의 경연(硬軟) 또는 침식력 자체의 차이에 따라서 차별 침식(差別侵蝕)이 진행되어 발달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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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전라남도 낙안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분차군(分嵯郡)[분사군]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를 살펴보면, 백제시대에는 분차군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분령군(分嶺郡)으로 불렸다. 백제시대 분차군은 현재 전라남도 낙안 지역으로 추정된다. 분차군에는 조조례현(助助禮縣)[현 고흥군 남양면 추정], 동로현(冬老縣)[현 보성군 조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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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건립된 건축문화역사 보고로서의 불교 구조물. 순천 지역의 불교건축은 산지가람의 대표적 사찰들이 있어서 건물들의 다양한 배치 수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시기적으로 오래된 전각들이 많아 건축문화역사의 보고이기도 하다. 전라남도에는 선종 사찰이 많다. 산속에 있는 사찰이 많으므로 대지가 협소하고 지형에 맞추어 전각을 배치하였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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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통일신라시대~근대에 불교 교리에 따라 예배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조형물. 현재 순천시 관내의 사찰 및 암자에 모셔져 있는 1945년 이전 조성된 상들은 2006년 사찰문화재 총 조사에 따르면 337건에 641점이 조성되었다. 이 외에도 선암사마애여래입상, 향림사 마애여래좌상, 행정리 석불입상, 창촌리석불입상 등이 있다. 주요 봉안처로는 순천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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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룡리(飛龍里) 명칭은 과거에 비룡시우(飛龍施雨)의 명당이 있는 신기(新基)마을을 ‘비룡’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기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의 ‘새터’가 본 이름으로, 한자로 옮기면서 ‘신기’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기룡(起龍)마을은 과거에는 백토를 채취해 사기그릇을 구웠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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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월’은 우리말 이름이 ‘비드리’, ‘비들이’ 이다. 비월에서 승주읍으로 넘는 재 이름을 ‘구현(鳩峴)’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재를 ‘비둘기재’, ‘비둑재’, ‘비드리재’라고 불렀다. 또한, 마을이 월체형국(月體形局)이라고 ‘비월치(飛月峙)’라고 불렀다가, 1784년에 ‘비월(飛月)’로 고쳤다고 한다. 비월리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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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비월리 덕진마을 입구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운 목장승. 비월리 덕진 장승은 순천시 서면 비월리 덕진마을 들어가는 입구의 아랫당산 옆에 있다. 비월리 덕진 장승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비월리 덕진 장승의 총길이는 233㎝, 안면 길이는 75㎝이고, 머리는 사모관대 모양이며 얼굴, 눈, 코, 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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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촌리(飛村里) 명칭은 처음 마을의 이름이었던 우리말 ‘비름’을 한자 ‘비(飛)’자로 소리 옮긴 것이다. 또는 산세가 용(龍)이 날아오는 모양이라는 설도 있다. 선동마을이 형성된 것은 760년경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경주의 가야산에서 마을 뒤 운동산으로 수도처를 옮겨올 때 제자들과 식솔들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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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촌리(飛村里)는 비촌마을에서 유래하였으며 섬진강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날몰’이라 불렸다. 신계(新溪)마을은 별봉산 아래 있는 마을로 ‘진기평(陳基坪)’이라 불리다가 맹수들이 많이 나타나 현재 마을로 옮겨오면서 ‘새 신(新)’에 ‘시내 계(溪)’를 써 ‘신계’라 불리고 있다. 칠안(七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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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의 웃시장과 아랫시장으로 대표되는 전통시장의 오랜 역사와 번영의 원동력. 순천의 전통 시장 현황은 웃장, 아랫장, 승주장, 별량장, 괴목장, 역전시장, 중앙시장 등이 있다. 2019년 3월 순천시청 지역경제과를 통해 파악한 전라남도 순천시의 전통 시장 현황은 다음과 같다. 웃장[5일과 10일]은 순천시 동외동에 있으며 대지 면적은 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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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순천의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유학자와 선비 세력에 대한 호칭. 사림(士林)은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여기에서는 조선 건국 이래 유학을 표방하면서 향촌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재야 선비들을 지칭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순천의 토착 세력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향회 등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외부에서 새로운 세력이 이주해오고, 조위(曺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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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순천 낙안읍성에서 음력 7월 백중날에 마을의 사명기, 덕석기를 뺏거나 빼앗는 놀이를 통해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 순천시 낙안면 순천 낙안읍성에서 7월 백중 무렵이 되면 그해 작황이 제일 좋은 집에서 장원술이라는 술을 내어 동네 일꾼들을 대접하는데, 이를 ‘호미씻이’라 한다. 또 7월 백중 무렵 장원을 한 집의 머슴을 소에 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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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서평리 서정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충의공(忠毅公) 장윤(張潤)[1552~1593]의 네 아들 참봉 장홍도(張弘道)·호조참판에 추증된 장홍적(張弘迪)·첨지중추부사 장홍경(張弘慶)·장악원정 장홍민(張弘敏)이 부친 장윤의 유업을 기리며 우애 있게 지내기 위해 지은 누정이다. 사휴정이 세워진 곳은 장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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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삼거동의 ‘삼거’는 세 차례에 걸쳐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 왔다는 데서 유래한다. 한편, 세 개의 산[국사봉·박덕봉·삼교봉]과 세 개의 성[박씨·이씨·임씨], 세 개의 교량이 있다는 의미라고도 하며, 세 갈래 길이 있어 ‘삼거리’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용쏘배기마을의 ‘용쏘’는 작은 폭포를 뜻하며, 송학마을은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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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삼산동 망북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삼산동 망북 당산제는 현재 지내지 않는다. 삼산동 망북 당산제의 제당은 ‘큰골짜기’에 있는 산제단과 당산나무 옆에 있는 전주이씨 비각 앞과 벅수골이다. 산제단은 탑 모양으로 돌을 쌓아놓은 것이라고 하며 별도 이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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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삼산동에 있는 삼산의 유래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전라남도 순천시 삼산동에 있는 삼산은 고도 301m의 산으로, 봉화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있으며, 동천에 막혀 우뚝 솟아 있다. 여장사 혹은 도사가 메고 가는데, 이를 지켜본 여자 혹은 소금장사가 산을 메고 간다고 말하는 바람에 멈춰버려서 지금의 자리에 산이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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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이수로 둘러싸인 전라남도 순천시 중심부의 문화적 특색과 의미. 순천 사람들은 예로부터 순천을 ‘소강남(小江南)’이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고 자부해왔다. 물론 순천 사람들만 순천을 ‘소강남’이라 부른 것은 아니고, 그 명칭이 최근 생긴 것도 아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미, “산과 물이 기이(奇異)하고 고와 세상에서 소강남이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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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이후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만세운동. 당시 국제정세의 변화에 민감했던 한민족은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민족대표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1919년 5월에는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었다. 이 확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학생과 청년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연간 집회횟수 1,542회,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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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청리는 물(水) 맑고, 바람(風) 시원하고, 달(月) 밝다 하여 마을 이름을 ‘삼청(三淸)’이라 지었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 일행이 모후산에 입산해 머물렀다 해서 아랫마을을 유경마을이라 명하고, 공민왕이 피신해 살던 골짜기의 터를 왕대마을이라 불렀다. 당시 나복산(蘿葍山)으로 불렸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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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순천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모래드리’ 또는 ‘사평(沙平)’으로 추측된다. 김정호의 『여도비지(輿圖備誌)』에서 순천도호부를 삽평(歃平), 사평, 무평(武平)이라 했다. 그러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사평, 무평이라 하고, 무평(畝平)은 잘못된 것이며, 사평을 순천의 맨 처음 읍호로 규정하였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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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내리 명칭은 웃돔과 내동을 결합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상내리는 1963년 승주군 행정리 조례에 의하여 웃돔·내동·죽동·월산리를 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지명은 즉 웃돔에서 상(上)과 내동의 내(內)가 합쳐진 지명이다. 상내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용두면 방축리·와온리·유룡리·상동리·죽동리·월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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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 와온마을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운 장승.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 쪽에서 해룡면 상내리의 와온마을로 들어서면 어귀에 장승 4기가 세워져 있다. 와온마을에서 보면 왼쪽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나란히 머리를 기대고 서 있고, 길 건너편에는 ‘환경보존대장군’, ‘조류보호여장군’이 나란히 서 있다. ‘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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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상사면(上沙面) 명칭은 이사면(伊沙面) 위쪽이 되므로 상이사면(上伊沙面)이라 하다가 줄여서 ‘상사면’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중엽까지는 ‘매재골’로 불렸다. 상사면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 순천부의 3현, 2향, 3소, 10부곡 중 상이사소였고, 『승평지』[1618년]에 18개 면 중 상이사면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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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금전산에서 발원하여 이사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상사천 명칭은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유래했다. 상사천 유역의 지질은 상사천 수계를 따라 분포하는 충적층을 제외하고는 전부 반상 변정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반은 암석이 깊고 넓게 풍화된 심층풍화층으로 되어있다. 주변에 지름 1m가 넘는 핵석이 산재하는 것은 심층풍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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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삼리는 ‘산부레' 혹은 '삼부레’라고 불렀다. 한자로 ‘삼불례(三佛禮)’라고 표기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상삼리’가 되었다. 상삼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천군 용두면 상삼리에 삼동리와 자야리를 합쳐 상삼리라 하였다. 1949년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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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송리 명칭은 소정이 마을 위쪽에 있다고 하여 ‘웃소정이’ 또는 ‘상송(上松)’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상송리는 상송마을과 화원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의 형성 과정은 알려진 것이 없으나 하송리가 1530년경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상송리도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상송리는 상송제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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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창을 시조로 하고 박증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상주박씨의 시조는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朴彦昌)이다. 박언창은 신라 말 사벌국(沙伐國)을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아 전사했다. 순천 지역에 세거하는 순천박씨는 박언창의 14세손이자 판서를 지낸 박안례(朴安禮)의 후손으로, 판서공파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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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생목동(生木洞) 지명은 마을에 수령 수백 년의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고사(枯死) 직전에 주민들의 정성스러운 제사로 소생하여 그때부터 ‘생목’이라 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또 산샘의 목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이후 ‘샘목’이 변하여 ‘생목’이 되었다는 설도 전한다. 치매바위는 치마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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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생목동에서 전해오는 마을나무에 관한 이야기. 「생목동의 아들나무」는 1997년 순천시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순천시사』-자료편, 2007년 순천시가 발생한 『걸으면서 배우는 순천』, 2013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되어 있다. 순천시 생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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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도구. 생활용구(生活用具)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을 말한다. 생활용구에는 옷을 짓거나 수선하는데 쓰는 의류 도구, 음식을 해 먹는데 사용되는 식기류, 집을 보수하거나 짓는데 사용되는 건축 도구 등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도구가 있다. 아울러 농사일을 할 때 사용했던 다양한 농기구, 사냥과 고기잡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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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내리는 순천 낙안읍성 내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서내리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낙안면이 백제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낙안읍성 안의 서내리도 백제시대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과정에서 서내리·서외리·성북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서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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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서면은 본래 광양군 지역으로 광양 읍내의 서쪽에 있어 ‘서면’이라고 하였다. 서면은 마한을 거쳐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전기에 이르는 동안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였는지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광양군이 피폐해지자 1599년에 순천부에 편입되었다가 이후 1610년에 광양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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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서 발원하여 동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전라남도 순천시를 관류하는 동천 상류의 서쪽에 있는 하천이라 서천이라 불린다. 서천 유역 분수계를 이루는 산지인 바랑산[620m]과 용암산[410m]은 중생대 화산암인 안산암을 기반암으로 한다. 서천 유역의 대부분 지역은 화강암질편마암이 주를 이루지만, 서천의 지류 하천인 운평천과 유역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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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서평리 명칭은 서정(西亭)마을과 도평(棹坪)마을에서 유래했다. 서정마을은 마을 형성 시에 ‘서정자’라고 불렸는데, 역원(驛院)인 선천원(鐥川院)의 서쪽에 정자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내동마을은 마을 서쪽에 황새봉이 있고 그 아래로 우렁이 속 같은 곳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내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현마을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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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 장산리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추동리 사이에 있는 고개. 석거리재는 원래 ‘섶거리재’로 섶나무가 많았던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섶거리재를 한자화해 신거치(薪巨峙), 혹은 신치(薪峙)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 『호남지도』에 신치(薪峙)가 백이산 서쪽, 주로치 북쪽으로 묘사되어 있어 조선시대에 관련 지명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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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석현동(石峴洞) 지명은 돌고개의 한자 이름인 ‘석현’에서 유래한다. 이 마을의 땅은 깊이 파면 황토인데 표면에는 돌이 많이 있다. 강림골마을은 고려 말의 정승인 강림이 이곳에서 귀양살이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하고, 오리정은 옛날 부(府)의 중심에서 5리가 되는 지점에 있던 정(亭)에서 유래한다. 석현동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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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깃대봉에서 발원하여 동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석현천 명칭은 전라남도 순천시 석현동에서 유래했다. 석현천 최상류 지역은 반상변정화강암질편마암으로 되어있고, 그 외 지역은 화강암질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마암 지역은 풍화층이 발달하고, 골짜기엔 풍화층에서 빠져나온 핵석(core stone)이 흩어져 분포한다. 하천 경사가 가파르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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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흥리 명칭은 석정마을과 흥림마을에서 유래했다. 석정(石亭)마을은 1680년경 절강편씨에 의해 설촌되었다. 현재 마을 입구에 흙 한 줌 없는 돌 위에 정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이런 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장수한다고 하여 마을의 영원무궁함을 기원하여 ‘석정’이라 칭하였다. 흥림마을은 1630년경 칠원윤씨에 의해 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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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변리 명칭은 황전천의 옛 이름인 선천과 진변마을에서 유래했다. 선변(仙邊)마을은 과거에 나룻가 마을이라 하여 ‘진변(津邊)’이라 부르다가 1914년 선천 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선변’으로 개칭하였다. 용두(龍頭)마을은 마을 뒷산이 용의 머리 형국이라 하여 ‘용두’라 불렀다고 전해지며, 용림(龍林)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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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 각황전에 봉안된 고려 초기 불상. 순천 선암사의 경내 북쪽에 무우전(無憂殿)이 있고 바로 뒤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소규모 불전인 선암사각황전이 있다. 선암사각황전의 주불로 봉안한 선암사 각황전 철조여래좌상은 정유재란 때 큰 손실을 입어서 보수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통영의 신도들이 선암사 각황전 철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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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1660년 경잠(敬岑)·경준(敬俊)·문정(文正)의 삼대사가 중창하였고, 1759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60년 다시 중창하였다.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이후 1823년 화재로 다시 불에 타 1824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선암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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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순천 선암사 어귀에 사찰의 경계와 비보 목적으로 세운 목장승. 선암사 목장승은 순천 선암사 입구의 동부도전과 순천 선암사 승선교 사이의 길 양편에 각각 한 기씩 세워져 있다. 순천 선암사 입구에서 보아 오른쪽에 있는 장승에는 ‘호법선신(護法善神)’, 왼쪽 장승에는 ‘방생정계(放生淨界)’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모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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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순천 선암사 비로암(현 보관처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비로암은 순천 선암사의 북서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서 오다가 천불전 약간 뒤에 대각암이 있는데, 대각암에서 다시 산길을 따라 1.1㎞ 정도 오르면 그 모습이 나타난다. 비로암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1652년(효종 3)에 작성된 「조계산 비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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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 불조전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순천 선암사 불조전의 정확한 내력은 확인되지 않으나 임진왜란 전 선암사의 전각 기록에 오십전(五十殿)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순천 선암사 불조전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언제 순천 선암사 불조전이 중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702년에 조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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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선암사마애여래입상은 큰 암벽 벽면에 음각되어 있는데, 방향은 동쪽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최근에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았다. 선암사마애여래입상의 상호는 평면적으로 처리하여 넓은 편이다. 머리는 나발인데 호형의 선각을 이어서 표현하여 회화성이 짙다. 머리 중간에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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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에서 발원하여 상사호로 유입하는 하천. 선암사천 명칭은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 선암사에서 유래했다. 선암사천을 중심으로 조계산 일대는 선캄브리아기 화강암질 편마암을 기반암으로 하나, 순천 선암사 부근은 중생대 백악기 때 관입암인 흑운모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암사천의 본류는 동-서 방향을 보이며, 남-북 방향의 지류 하천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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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월리는 마을 서쪽에 있는 장배등이 행주형(行舟形)이며 마을이 반달 같다고 하여 ‘선월(船月)’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는 ‘선월’을 ‘배드리’, ‘배다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배들이’, ‘배달이’의 소리가 변한 것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배달이’의 ‘배’는 선(船)으로, 그리고 ‘달이’는 월(月)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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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평은 우리말 이름이 ‘선돌배기’ 또는 ‘선돌’이다. 냇물이 감싸고 흘러서 마치 물에 뜬 배와 같다고 ‘선평(船坪)’이라 하였다고 하나, ‘선돌배기’를 한자로 ‘선평(船坪)’으로 표기했거나 ‘섬배미’를 ‘선평(船坪)’으로 표기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마을에 있는 선돌 때문에 ‘선돌배기’, ‘선돌’이라고 불렀다고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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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학마을은 꼬꼬산[앵무산] 아래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 ‘선학(仙鶴)’이라고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황새머리처럼 우뚝 서 있는 학봉에서 신선도사가 터 자리를 잡아주었다고 하여 ‘선(仙)’자와 ‘학(鶴)’자를 써서 ‘선학’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선학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용두면 선학리·계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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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광양만으로 유입하는 강. 섬진강은 예로부터 모래가 풍부하여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사천(沙川)·기문화·두치강 등으로 불렸다. 1385년(우왕 11) 왜구가 섬진강 하구로 침입할 당시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자 왜구가 놀라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고 해서,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리게 되었다.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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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북리는 순천 낙안읍성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금전산의 계곡에 위치한다고 하여 ‘금곡(金谷)’이라 불리다가 동학농민혁명 때 모두 소실된 후에 다시 마을이 형성되면서 낙안읍성의 뒤쪽이라 하여 성 뒤, 성의 북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성북(城北)’이라 불렸다. 성북리는 1200년경에 마을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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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星山)의 원래 한자표기는 ‘성산(城山)’이며, 우리말은 ‘잣메’이다. ‘잣메’의 ‘잣’은 성(城)의 우리말이고 ‘메’는 산(山)의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잣메’를 한자로 ‘성산’이라 표기한 것이다. 정유재란 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쌓은 성 아랫마을이란 의미의 성산(城山)을 말살하려 일제강점기 ‘성산(星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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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주암리 동원재에 있는 성황신 김총을 그린 조선시대의 초상화. 성황신김총영정은 순천김씨의 시조로 벼슬이 인가별감(引駕別監)에 이르렀고, 공훈(功勳)이 있어 평양군(平陽君)에 봉하여 졌으며, 순천부(順天府)를 수어(守禦)하면서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을 평안케 하니, 사후에 향인들이 성황신(城隍神)으로 추앙한 인물인 김총(金摠)의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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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국의 성씨 개념은 중국의 것을 빌렸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국은 성과 씨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지만 원래 성과 씨는 다른 개념이었다. 성(姓)은 혈연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한국의 성씨 개념과 같은 것이다. 씨(氏)는 지연(地緣)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어느 지역 출신인가를 의미했다. 따라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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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송광면과 관련된 문헌 기록은 1618년 이수광의 『승평지(昇平志)』에 처음 등장한다. 송광면은 한자 표기에 따르는 약간의 논란이 있기는 하나 송광산(松廣山)에서 유래된 송광사(松廣寺)의 이름을 본떠서 ‘송광면(松光面)’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1800년대부터 ‘송광(松廣)’으로 쓰기도 하고 ‘송광(松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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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불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송광사 불조전은 송광사 주 사역의 남쪽 개울 건너편에 있으며, 화엄전과 짝을 이루어 북면하여 자리 잡고 있다. 송광사 불조전 내부에는 주벽[남벽] 불단 중앙에 봉안된 석가, 비로, 노사나불의 석조삼신불좌상을 중심으로 주벽의 좌우와 좌우 측벽[동서벽]에 걸쳐 53불이 봉안되어 있다. 주벽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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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송광사 영산전은 순천 송광사에서 약사전과 함께 가장 작은 법당 중 하나이다. 송광사 영산전은 1793년(정조 17)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다포식의 팔작집이다. 송광사 영산전 목조석가모니불좌상은 앞으로 숙인 자세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하체보다 상체가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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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서 발원하여 주암호로 유입하는 하천. 송광천 명칭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서 유래했다. 송광천 유역 분수계를 이루는 동·남부의 산릉은 호남정맥의 한 구간으로 고동산-백이산-조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이들 산지는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마암이 기반암인 산지는 흙산의 특성을 보여 흙 깊이가 깊고 식생이 발달하여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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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기리 명칭은 송정마을과 구기마을에서 유래했다. 송기(松基)마을이 처음 형성된 곳은 침작굴이라 한다. 바깥 당산을 불무형국이라 하며 ‘쇠쟁이’라 부른다. 쇠쟁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발음이 비슷한 ‘송정’으로 쓴 것이다. 송정마을은 1929년 별량면에 통합되면서 송학리의 송정마을[물방골]과 중복을 피하고자 ‘송기리’를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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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천리(松泉里) 명칭은 송산마을에 있는 송천(松泉)이라는 샘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송천은 송산마을 노인당 주차장 자리에 있었는데, 새마을사업 때 간이상수도로 전환되면서 그 모습은 사라졌다. 송산(松山)마을은 1789년 『호구총수』에는 ‘소을동여(所乙洞閭)’라 기록되어 있다. ‘소을동’은 ‘작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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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학구리에서 순천시 월등면 계월리 송치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송치재는 『여지도서』에는 송치원(松峙院)으로, 『승평지』에는 송현원(松峴院)으로, 고지도에는 송원(松院)으로 기록된 곳이다. ‘송치원’·‘송원현’·‘송원’을 ‘솔재원’ 또는 ‘솔원’으로 불렀는데 소리가 변하여 ‘솔원재’로 다시 ‘소련재’로 변하였다. 한편, 송치의 산에 민묘(民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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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학리 명칭은 송정마을과 장학마을에서 유래했다. 송정마을은 물레방아가 많아 ‘물방아골’ 또는 줄여서 ‘물방골’이라 불렀는데, 솔새미등 부근에 있다 해서 솔을 의미하는 송(松) 자와 새미를 의미하는 정(井) 자를 합쳐 발음이 같은 ‘송정(松亭)’이 되었다. 장학마을은 ‘진나래’ 또는 ‘진나리’라 하는 데서 유래했다. 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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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오산리 용지마을에 있는 산과 무덤의 내력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순천시 주암면 오산리 용지마을 앞에는 ‘수퉁산’이라는 작은 동산이 있고, 거기에 네모난 봉분이 있는데 그것을 ‘용녀총’이라고 한다. 이 수퉁산은 총각과 처녀가 내기하여 쌓은 산이고, 용녀총은 용과 교혼한 처녀가 시집가지 않고 살다가 죽은 무덤이라는 이야기이다. 용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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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평리(水坪里)는 물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무들’이라 부르다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수평리’라 표기하였다고 전해진다. 상수평(上水坪)마을은 과거에는 마을에 큰 바위가 9개 있다 하여 ‘구암’이라 부르다 수평마을의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수평’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신촌(新村)마을은 과거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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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둔사지에 봉안된 9세기의 불상.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은 순천시 낙안면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금전산(金錢山) 서록(西麓) 금둔사지에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금전산(金錢山)에 금둔사(金芚寺)가 있다’라는 기록을 통해 금둔사를 이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은 사각형 지대석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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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순천 선암사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순천 선암사 선암매의 높이는 5~12m까지 다양하며, 각 나무는 350년~650년까지 비교적 오래된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 흰 꽃 매화나무는 지상 50㎝ 높이에서 줄기가 남북 방향으로 나누어지는데 남쪽 줄기는 60㎝ 높이에서 다시 서쪽으로 나뉘고, 북쪽 줄기는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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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관음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순천 송광사 관음전은 대웅전을 정면으로 왼쪽에 있는 응향각(凝香閣)을 지나면 이단 석축 위에 있다. 순천 송광사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형태로 건물의 본래 명칭은 ‘성수전(聖壽殿)’이다. 성수전은 고종황제의 51세 생일 즉, 성수망육(聖壽望六)을 맞아 1902년 사액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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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성보박물관에 있는 9세기 초반의 불감. 불감은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작은 규모의 공간에 부처님을 모신 것이다.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높이 13.9㎝, 폭 7㎝의 작은 불감으로 가운데는 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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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 순천 송광사 천자암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곱향나무.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는 두 그루가 나란히 한 쌍처럼 서 있고 두 나무 모두 주요 줄기가 몹시 꼬인 진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가지를 밑으로 내려뜨리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흡사 스승과 제자가 서로 공경하며 절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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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의 음운적·문법적·어휘적 현상. 순천 지역의 방언은 현재 통합 순천시에서 쓰이는 언어로, 통합 이전의 순천시와 승주군 지역의 언어를 합한 것이다. 순천 지역의 언어는 ‘전남 방언’에 속하는 것으로 ‘전남 방언’의 특징과 많은 부분 일치하고 있으나, 인접하고 있는 동남 방언의 영향도 보인다. 순천 지역 언어는 음운적,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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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영동에 있는 최석의 선정비. 순천팔마비는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 최석이 비서랑으로 전직하자 마을 사람들이 관례에 따라 말 8필을 기증하였는데, 최부사가 상경 후 기증받은 말 8필과 그사이 새로 낳은 망아지 1마리를 보태어 9필을 다시 돌려보냈다’라는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근거로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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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 이팝나무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다. 주로 산골짜기나 들판에서 서식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잎은 마주 달리고 난상타원형 또는 도란형이며 나무껍질은 잿빛을 띤 갈색이며, 어린나무의 잎에는 뾰족한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피는데 흰 꽃으로 덮인 나무의 모양이 흰 쌀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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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홍내동, 오천동 일원에 있는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 산성. 순천 해룡산성은 해상교통이 유리한 지역에 설치된 대규모 토축성으로 평산성이다. ‘해룡산토성’, ‘순천홍내산성’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순천 해룡산성은 시굴 조사 결과 성의 축조방법은 판축법과 성토법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시간적인 차이와 공간적인 지형의 조건에 따라 방법을 달리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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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경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출신 이영민이 창작한 가창가사. 이영민(李榮珉)의 초명은 희수(熙守), 호는 취산(醉山)·벽소(碧笑)이며, 현 순천시 상사면 출신이다. 김광렬에게 수학하였으며, 한학과 서예를 배웠고,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06년 순천에 야학을 개설하여 후학을 교육하였고, 1910년 박승휘와 함께 순천남학당[현 순천남초등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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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에 있었던 농업학교. 순천공립농업보습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학교로 순천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전라남도의 각 지역에 농업보습학교가 설립된 시기는 1920년대 후반부터이다. 순천공립농업보습학교 또한 1926년 10월 순천읍성 안 내야[청소년수련관 일원] 자리에 들어선 수비대 건물에 개교하였다. 이듬해인 1927년에 객사[현 순천시 중앙6길과 중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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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위해 설립한 교육기관 순천심상고등소학교는 순천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위해 세워진 유일한 교육기관으로서 순천군 순천면 동외리[지금의 순천시 동외동]에 1911년 3월 18일 설립 인가를 얻어, 1911년 9월 1일 개교하였다. 교지는 3,217평[약 10,635㎡], 교사는 271평[약 896㎡], 기타 부속건물 96평[약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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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순천 출신의 지주이자 기업가로서 육영사업 및 사회 공익사업에 공헌한 인물. 김종익은 전라남도 순천시(順天市) 월등면(月燈面) 대평리(大坪里)에서 김학모(金學模)와 양주아씨(楊州阿氏) 숙경(淑卿)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말 김종익은 유학을 배운 후 신학(新學)을 공부한 다음 1910년대에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부친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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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을 시조로 하고 김윤인과 김태영을 중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토착 성씨. 순천김씨는 신라 말 순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김총(金摠)[825~?]을 시조로 한다. 김총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인가별감(引駕別監)을 지내고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김총의 사후 순천 지역 사람들은 김총을 순천부의 성황신(城隍神)으로 신봉하였다. 가문의 세계가 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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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석현동에 있는 국립대학교. 순천대학교는 순천 지역의 대표적 육영사업가였던 김종익의 지역 인재 양성이라는 건학 이념을 계승하고 있다. 순천대학교는 “진리 창조”를 교시(校是)로 삼고 있다. 진리·창조의 정신으로 학술의 이론과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교육 목적으로 한다. 순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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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순천시의 옛 지명 조선의 지방통치제도는 태종 대에 확립되어 세조 대에 일부가 수정되었는데, 그 내용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되었다. 조선의 지방통치제제는 기본적으로 고려의 체제를 답습·보완한 것이였다. 다만 고려에 비하여 몇 가지 개선된 점이 있었다. 첫째 상급 지방통치제도인 도제가 확립되고, 그에 따라 8도가 확정되었다. 둘째, 계수관제가 진관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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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사립고등학교. 순천매산고등학교 교육 및 학교장 경영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창의적인 민주 시민 육성”이며, 교훈은 “신애, 지성, 자치”이다. 1910년 4월 미국 선교사인 변요한(變要翰)[John Fairman Preston, 1875~1975]과 고라복[Coit Robert Thronwell, 1878~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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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사립고등학교. 교육 목표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인재 양성”이다. 교훈은 “신애(信愛), 지성(至誠), 자치(自治)”이다. 1910년 4월 미국 선교사인 변요한(變要翰)[John Fairman Preston, 1875~1975]과 고라복[Coit Robert Thron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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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사립중학교. 교육 목표는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신앙인, 꿈을 찾고 비젼을 설계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실력인, 건강한 체력과 온유한 정서를 바탕으로 심신이 조화로운 건강인, 창의적 사고와 적성계발로 자기 지로를 개척하는 진로인,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창의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교훈은 “신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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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난봉을 중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토착 성씨. 순천박씨는 나말여초 순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박영규는 견훤(甄萱)[867~936]의 사위로 후백제 건립에 공을 세웠다가, 견훤의 패퇴 이후 왕건(王建)[877~943]의 편에 섰다. 박영규의 세 딸이 태조와 정종의 후비가 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다. 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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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이후 편찬된 전라도 순천부의 읍지. 『순천부읍지』는 정확한 간행 연도를 알 수 없지만, 내용 분석을 통하여 1876년(고종 13) 이후에 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1618년(광해군 10) 이수광이 간행한 『승평지(昇平志)』에 이어 1729년(영조 5) 홍중징이 간행한 『신증승평지(新增昇平志)』의 내용이 당시의 순천부의 상황을 제대로 번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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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있는 불상. 순천선암사금동관음보살좌상은 1988년 천불전 수리 때에 상단 서까래 부분에서 발견되었으며, 전체 높이가 16.8㎝로 소형에 속한다. 출토 당시에는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이듬해인 1989년 개금(改金)하여 지금은 아주 화사하게 보이며 대좌의 밑 부분만 약간 그을린 흔적이 있다. 순천선암사금동관음보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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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동남부의 광양만권에 있는 시. 전라남도 순천시는 전라남도 여수시·광양시와 더불어 전라남도 동남부의 광양만권에 속하는 거점도시의 하나이다. 순천시는 동경 127° 10’37”~127° 35’18”, 북위 34° 49’39”~35° 11’08”사이에 동서 간 38㎞, 남북 간 39㎞에 걸쳐 분포한다. 경계를 따르는 둘레 거리는 178㎞에 달하며 해안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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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선교사 관련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은 2010년 순천 지역에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개신교가 전파된 지 10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이곳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순천시가 2009년부터 추진하여 2012년 11월에 개관하였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이 들어선 매산등 일원은 선교사 주택,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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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에 있는 시립박물관.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순 한글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물』을 펴내고, 전통문화를 발굴 소개하는 데 앞장섰던 한창기(韓彰璂)가 평생 수집해 온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한창기는 조선시대 낙안군 땅이었던 벌교읍 고읍리 출신으로 순천중학교, 광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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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의 판소리계 소설 이본. 2011년 11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자 겸 편집자였던 한창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의 유족들과 전라남도 순천시가 힘을 모아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세웠다.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는 한창기가 형생 수집했던 국보급 문화재와 민속자료, 한글 관련 자료 및 전적(典籍) 등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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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편찬한 전라남도 순천시의 시사. 『순천시사』는 순천의 역사와 지리를 반영한 『순천승주향토지』가 담아내지 못한 순천시의 풍부한 사료를 발굴하고, 수집·정리하고자 1994년 순천시사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3여 년의 준비와 원고 집필 과정을 거쳐 1997년에 발행하였다. 『순천시사』는 이수광이 『승평지』를 발행한 지 380년, 순천문화원이 『순천승주향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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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공립여자중학교. 교육 목표는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알고 창의력을 키우는 사람, 자율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체력을 단련하여 건강하고 심신이 조화를 이룬 사람, 다양한 정보 활용으로 지식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사람, 문화 감성과 내 고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자긍심이 높은 사람”을 기르는 데 있다. 교훈은 “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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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전해오는 민속놀이. 순천중흥·해창 용줄다리기는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1997년부터 2010년까지 12회 동안 순천중흥·해창 용줄다리기 보존회의 주관으로 순천시 해룡면 중흥리와 해창리 일원에서 재현되었다. 순천중흥·해창 용줄다리기는 전해 내려오는 농촌 지역 대보름 세시 풍속을 축제화 한 것으로, 순천시 해룡면 중흥리와 해창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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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평촌리에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 순천평촌리이팝나무의 높이는 13m이며, 가슴 높이 둘레는 3.5m 정도이다.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그 무게로 인해 밑으로 처져 있다. 주 줄기에서 1.6m 정도에서 자란 지점에서 3개의 굵은 가지로 분리되어 크고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재 이팝나무의 생장 정도는 아주 건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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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시행했던 향촌 규약이나 그 규약에 근거한 조직체. 순천에서 향약은 1716년(숙종 42) 11월부터 1718년 11월의 어느 시기까지 순천부사 황익재(黃翼再)[1682~1747]가 주도해 시행했다. 그런데 황익재가 쓴 「향약절목」의 서문을 보면, 성현이 정한 향약 규례와 함께 순천부 사족들이 시행했던 동약(洞約)을 참고해서 절목을 만들었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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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선암사와 송광사가 세운 근대교육을 시행한 사립학교. 순천 선암사와 순천 송광사는 초등교육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각 사찰 안에 설립했다. 순천 선암사는 승선학교를 순천 송광사는 보명학교를 세워 순천 지역의 근대교육 보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승선학교와 보명학교는 기록이 없어 학생의 숫자를 알 수 없지만,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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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고려 초기, 즉 940년(태조 23) 전국의 모든 주·부·군·현의 지명이 바뀌면서 승평군은 승주(昇州)로 개칭, 승격되었다. 이때 별도의 지방관(首領)이 배치되지 않고 관호(官號)만 승격되었지만 당시 승주 지역의 행정 구역상 위상이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승주는 승주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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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읍. 승주읍은 본래 순천군 쌍암면이었는데 1949년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승주군 쌍암면이 되었다. 쌍암면의 유래는 순천시 승주읍 월계리 쌍암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해진다. 석동의 쌍바위가 순천에서 쌍암으로 오는 대로변 첫 관문에 있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조계산의 배바위와 오성산의 형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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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으로 유배온 한재렴이 순천읍성 연자루를 비롯한조망의 풍광 등 10가지를 노래한 시. 송경진사(松京進士) 한재렴(韓在濂)[1775~1818]의 호는 심원자(深遠子)이고, 개성(開城) 사람이다. 1795년(정조 19) 시권(試券)으로 임금의 비답을 하사받으면서 정조(正祖)의 지우(知遇)를 입었고, 1801년(순조 원년) 목만중(睦萬中)[1727~1810]의 참소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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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유지들이 세운 민족주의 사립학교. 승평학교(昇平學校)는 교육구국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승평학교는 승명학교(昇明學校)라고도 불렀다. 1896년 원래 향청 내 설치되었고, 1908년 현재 순천시 중앙동인 순천군 대수정(大手町)에 있는 객사로 이전하였다.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인정함에 따라 보조학교로 인가되었다.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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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자생하는 식물. 전라남도 순천시는 한반도 남단에 위치하고, 남해안에 접해 있어, 온대 동계 건조 기후대의 특성을 보인다. 한국의 기후구에서는 남해안형에 속한다. 산림 식생은 온대 남부림과 난대림에 속한다. 암석에 따라 식생분포의 차별성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편마암 산지는 흙산을 이루어 산림이 울창하고, 화강암 산지는 돌산으로 바윗덩어리가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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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생산된 식자재를 이용한 음식문화. 순천 지역의 식생활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겪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그 시대에 좋다고 인정받았던 것들은 전수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없어지거나 변형되었다. 순천 지역은 1973년에 개통된 호남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 그리고 2011년에 개통된 순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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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기리는 죽산안씨 안지윤이 생계의 어려움을 면하기 위하여 수리가 안전하고 평야가 넓은 이곳에 정착하였으나 좀 더 넓고 농경지에 가까운 새로운 터를 찾아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여 ‘신기(新基)’라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기리는 신기마을·재궁마을·동림마을·구기마을 등 네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동림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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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대(新垈)는 우리말 이름이 ‘새터’이다. 일제강점기에 향매마을 앞 갯벌에 둑을 막음으로써 들이 확장되고, ‘새터’가 생겨 한자어로 ‘신대(新垈)’라 표기한 것이다.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용두면 신대리가 보인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천군 용두면 신대리·봉암리·매안리·미계리·봉서리·산두리·향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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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덕리 명칭은 신기마을과 덕치마을에서 유래했다. 신기마을은 딱나무가 많아 ‘딱바골’이라고도 불렀는데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새터’라는 원래 우리말 마을 이름을 ‘신기’로 바꿔 사용하게 되었다. 덕치마을의 우리말 이름은 ‘덧재’였으며 덧을 덕(德)으로, 재는 치(峙)로 바꿔 표기한 것이다. ‘덧재’를 ‘가치(加峙)’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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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성리(新星里) 명칭은 신대(新垈)마을과 성산(星山)마을에서 유래했다. 신대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대’로 불리다가 지금은 사라져 지명만 남아있다. 성산마을은 마을 뒷산에 성이 있어 ‘성산(城山)’이라 불렸는데, 일제강점기 한자를 ‘성산(星山)’으로 바꾼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서동마을은 뒷산의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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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성리는 우리말로 ‘예달이’, ‘예다리’라 불렸다. 옛날에는 한유마을과 신성마을의 왜성을 연결하는 다리를 ‘옛다리’라 불렀다고 전해 온다. 이 ‘옛달이’, ‘옛다리’가 한자로 ‘예교(曳橋)’로 표기된 것이다. 옛다리에 일본군이 성을 쌓자 ‘예교성(曳橋城)’이라 적었고, 정유재란 뒤에 신성(新城)이 있는 포구란 뜻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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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월리(新月里) 명칭은 신월마을에서 유래했다. 신월마을은 형성 당시 ‘고랫말’이었는데, 마을 형국이 고래와 같아 ‘고랫말’이라는 설과 ‘산골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골+애’가 골애〉고래로 변해 고랫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1915년경부터 ‘신월’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 유평마을은 일본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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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평리 명칭은 신풍마을과 금평마을에서 유래했다. 신풍의 옛 이름인 ‘고대(鼓臺)’와 금평마을은 조계산 줄기의 흐름이 마치 옥녀가 거문고를 타면 고대에서 북을 울려 이에 장단 맞추며 술을 따라 먹는 형국이라는 풍수지리에서 유래했다 한다. 외송마을은 송광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1890년경부터 송광사 밖에 모여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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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학리(新鶴里) 명칭은 신창(新昌)마을과 선학(仙鶴)마을에서 유래했다. 신창마을은 지금도 ‘새창리’라고 불리는데, 과거 새로[新] 창고[倉]가 생긴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일제강점기 글자간소화 정책으로 인해 창(倉)이 창(昌)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선학마을은 1789년 발생한 큰 재난에 피해를 보지 않고 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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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흥리 명칭은 ‘새 터’ 또는 ‘새로 일어나라’라는 뜻에서 ‘신흥리’로 명했다고 한다. 나루터였던 진촌마을은 ‘오미실’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물가 마을이라는 뜻이다. 1895년까지 나룻배가 운행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해방 이후 ‘오미실’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신흥리는 수몰 전 도장굴과 신흥으로 나뉘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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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쌍림리 명칭은 상림마을과 하림마을에서 유래했다. 상림마을과 하림마을 숲이 우거져 ‘숲몰’이라 불렀다. 숲몰은 웃숲몰과 아랫숲몰로 나누어 불렀으며, 윗마을이 ‘상림(上林)’, 아랫마을이 ‘하림(下林)’이 되었다. 진목(眞木)은 참나무가 많고 잘 자란다고 ‘참남기’ 또는 ‘진목’이라 했다고 한다. ‘참나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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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쌍율리는 고동치 남서쪽 아래 골짜기 일대의 지역으로 ‘밤골(栗谷)’, ‘밤실’ 또는 ‘율리’라고 불렀다. 상율마을은 ‘웃밤실’, 하율마을은 ‘아랫밤실’이라고도 부른다. 쌍율리의 상율마을은 1388년경 파평윤씨(坡平尹氏)가 들어와 살다가 1530년경 벌교읍으로 이사한 후, 밀양박씨·달성서씨·진주강씨·김해김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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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쌍지리(雙之里)는 운곡천과 초곡천이 합쳐서 내려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쌍지내[雙池川]’ 였는데 1912년 일제가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쌍지(雙之)’로 기록하면서 굳어졌다. 굼실마을은 쌍지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이며, 구름이 자주 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789년 『호구총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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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안풍동(安豊洞) 지명은 안지리(安之里)와 신풍리(新豊里)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간동은 골짜기가 유달리 깊어 ‘샛골’이라 부르다가 해방 직후 한자 이름으로 고쳤고, 신풍은 마을에 풍년이 깃들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수동은 물이 맑고 맛이 좋다는 데에서, 안지마을은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왔다는 데에서 각각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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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압곡은 우리말 이름이 ‘압실’이다. ‘압실’을 한자어로 ‘압곡(鴨谷)’으로 표기하였다. 압(鴨)은 단순히 소리 옮김 한 글자이고, 곡(谷)은 ‘실’의 뜻 옮김이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계곡에 소(沼)가 있는데, 그 소에 겨울철이면 오리가 찾아들어 오리골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압곡리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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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에 있는 앵무산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에 있는 앵무산을 ‘양미산(糧米山)’이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막기 위해 앵무산을 마름으로 덮어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보이도록 하여 적을 방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앵무산 전설」은 1985년에 승주군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승주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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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야흥동(也興洞) 지명은 야동리(也洞里)와 부흥리(復興里)에서 유래한다. 야동리는 마을 주변의 산들이 마치 '也'자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야흥동은 원래 순천군 하사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흥리와 야동리·신대리(新垈里), 도리면(道里面)·양율리(良栗里)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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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양성이씨는 송나라 출생으로 고려 문종 때 귀화하여 삼중대광보국을 지내고 양성군에 봉해진 이수광(李秀匡)을 시조로 한다. 조선 건국 이후 이옥(李沃)[?~1409]은 자헌대부지중추원사, 판한성부사 등의 벼슬을 내리며 회유해도 끝내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정부에서 이옥의 절개를 기려 정절공(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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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양천허씨는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한다. 허선문은 공암(孔巖)[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지방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서 고려 건국에 공로를 세워 양천허씨 집안의 시조가 되었다. 그로부터 자손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크고 작은 벼슬을 하면서 가세를 이어 갔다. 고려 충렬왕 때 허공(許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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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어왕리(於旺里) 명칭은 상어왕리와 하어왕리에서 유래했다. 상어마을은 과거 ‘웃느레’, ‘웃느렝이’라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서 ‘웃’을 ‘상(上)’으로, ‘늘’, ‘느렝’을 ‘어(於)’로 옮겨 ‘상어’라 칭했고, 하어마을도 ‘아랫느렝이’를 ‘하어(下於)’로 칭한 것에서 현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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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인제동에 있는 인제산 계곡이 억만골, 피내골, 피내또랑이라 부르게 된 것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순천시 인제동 뒤 인제산 계곡에는 피내골, 피내또랑, 억만골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마을 사람들이 건달산으로 난을 피해 숨었으나 도륙을 당해 그 피가 개천으로 흘러 붉은 피로 물들었는데, 그 뒤로 붉은색이 변하지 않아 ‘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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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체계. 하나의 언어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여러 ‘방언’으로 구성되고 그 각각은 서로 대등한 자격을 갖는다. ‘방언’은 ‘그 자체로 독립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한 언어의 변종(變種)’으로서 표준어와 상관없이 지역 또는 계층에 따라 분화된 말의 체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각 방언 사이에는 음운, 문법, 어휘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방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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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역사. 순천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소국이 나타난 것은 삼한 시대부터이다.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불운국(不雲國), 초리국(楚離國)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남북국시대까지의 순천의 역사 중 특이하고 의미가 있는 것은 임나사현(任那四縣)[사타·모루·상다리·하다리]과 관계이다. 순천 지역이 삼국 중 어느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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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역사를 담은 『승평지』와 『강남악부』의 내용과 의미. 어느 지역에나 그 지역만의 역사서는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거나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만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책들이다. 얼핏 보기엔 사소한 내용일 수 있으나 그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에겐 어떤 자료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 전라남도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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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유를 시조로 하고 정소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연일정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간의대부를 지낸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한다. 정종은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연일현백(延日縣伯)에 봉해져서 본관을 연일로 하였다. 중간에 세보의 실전으로 원류는 같지만 소목(昭穆)을 밝힐 수 없는 두 파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고려 예종 때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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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연향동(蓮香洞) 지명은 마을 한복판에 있었던 조그마한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어 향기가 사방으로 진동하였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연향동은 본래 순천군 해촌면(海村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석리·율산리·명말리·운동리·마새리·용곡리·두지리의 각 일부와 용두면 상삼리를 병합하여 연향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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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영동(榮洞) 지명은 일제강점기 일본식 표기명인 ‘영정(榮町)’에서 유래되었다. 영동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순천부읍성(順天府邑城)의 안쪽 남측에 위치하였으며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내리·청수리(淸水里)·장내리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일본식 표기명인 영정(榮町)이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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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곡리(五谷里) 명칭은 다섯 골짜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원래 이름 ‘오실’에서 유래한다. 또는 오씨들이 사는 마을(吳谷)이란 의미였을 수도 있다고 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내오곡(內五谷)·외오곡(外五谷) 등의 마을이 있고, 1872년 「순천부지도」에는 오촌(梧村)·삼지(三之) 마을이 있다. 1912년 『구한국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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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는 ‘오구굿’에서 불리는 서사무가 「오구풀이」는 1992년 발행된 『순천시사』에 필사본 자료 1편, 1997년 발행된 『순천시사』2-문화·예술편에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98년 발행된 『씻김굿무가』에 박경자, 김수정, 이임순이 가창한 창본 자료 3편과 박경자, 박영순 소장 필사본 자료 2편, 2000년 발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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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오천동 오림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신윤보(申潤輔)[1483~1558]가 을사사화 이후 벼슬을 버리고 안동(雁洞), 즉 현 순천시 오천동 해룡산[일명 망월산] 아래로 귀향하여 동천을 마주하는 곳에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유자나무·동백나무[山茶] 5종을 심고 은거와 청절(淸節)을 지향하기 위해 지은 누정이다. 신윤보의 자는 비경(斐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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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봉리 명칭은 내오(內梧)마을과 옥녀봉(玉女峯)[400m]에서 유래했다. 옥령(玉嶺)마을은 1770년대에 백자를 굽는 도공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내오[안오리치]마을과 외오[밧오리치]마을이 있었으나 1680년경 외오마을이 없어지고 중간에 중촌마을이 세워졌으며, 이후 196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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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산리(五山里) 명칭은 오산마을에서 유래했다. 오산마을은 마을 모양이 자라처럼 생겨 ‘자라 오(鰲)’를 써 ‘오산’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한자 간소화 정책에 의해 ‘오산(五山)’으로 변경되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용지(龍池)마을과 용곡(龍谷)마을은 마을에 있는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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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오천동(五泉洞) 지명은 오림리(五林里)와 통천리(桶泉里)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자연마을인 오산마을은 봉우리가 5개라는 데에서, 오림마을은 5종류의 나무를 심었다는 데에서, 통새미마을은 나무 샘에서 물이 매우 많이 나왔다는 데에서 각각 유래되었다. 거멍산은 숲이 우거져 꺼멓게 보인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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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산리 명칭은 옥산(玉山)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옥산 바로 북쪽 능선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가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간 곳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읍내면이라 칭하여 순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동리(書洞里)·녹천리(鹿川里)·온야리(溫夜里)·덕천리(德川里)·사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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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삼거동에서 발원하여 동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옥천 명칭은 전라남도 순천시 옥천동에서 유래했다. 옥천 유역 대부분 지역은 반상변정화강암질편마암으로 되어있으며, 하류 지역은 화강암질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마암 지역은 풍화층이 발달하고, 골짜기에는 풍화층에서 빠져나온 핵석(core stone)이 흩어져 분포한다. 서쪽으로 이사천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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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옥천동(玉川洞) 지명은 난봉산(鸞鳳山)에서 발원하여 이곳을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옥천(玉川)에서 유래한다. 옥천동은 본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내리 일부를 분할 해 옥천리라 하고 순천면에 편입시켰다. 1931년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순천읍 옥천리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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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을 시조로 하고 조유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옥천은 순창의 별칭으로 옥천조씨는 순창조씨라고도 한다. 옥천조씨는 조장(趙璋)을 시조로 한다. 조장은 고려에서 광록대부(光祿大夫)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고 한다. 조장의 후손 조전(趙佺)은 옥천군(玉川君)에 봉해졌다. 조전의 아들 조원길(趙元吉)[?~1391]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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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와룡동(臥龍洞) 명칭은 마을의 형국이 마치 누워있는 커다란 용처럼 생겼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범죽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배 모양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많았고 정월 대보름이면 돛대를 세워 마을의 번영을 빌었다는 짐대 세우기를 해 왔다. 삽다리마을은 ‘아교(芽橋)[싹다리]’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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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 와온마을에서 볼 수 있는 낙조. 와온의 우리말은 ‘눈데미’ 또는 ‘누운데미’다. ‘눈데미’를 ‘누운’과 ‘데미’로 나누어 ‘누운’은 와(臥)로 ‘데미’는 ‘불에 데다’의 뜻으로 여겨 온(溫)으로 뜻을 옮긴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 스님이 인근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를 보고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산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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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왕지동 지명은 처음에는 왕씨(王氏)들이 못자리를 이루듯 살았다 하여 ‘왕지(王之)’라고 표기되었는데, 임금이 지나간 곳이라고 일제강점기 때 ‘왕지(旺之)’로 바꿨다고 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운곡마을은 원래 ‘은곡(垠谷)’이라 하였는데 우리말로 ‘끝실’이나 ‘벼랑실’ 쯤으로 불렀을 것 같다. 현남마을은 고개(峴)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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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외서면은 본래 고려 때 나주목에 속했던 5군의 하나로,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되기 전까지 낙안군의 일부였고, 낙안읍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하여 1700년대 중반에 외서면(外西面)으로 호칭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의 지명으로 서면(西面)과 외서면을 혼용했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대개 방위와 상하(上下)를 따져 지명을 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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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요곡리(寥谷里) 명칭은 요곡마을에서 유래했다. 요곡은 우리말 이름인‘여꾸실’을 한자로 옮긴 이름이다. ‘여꾸’는 풀 이름으로 마을에 여꾸 풀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요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기·희영·요곡·신촌리를 합쳐 개설했다. 1949년 8월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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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계리(龍溪里) 명칭은 마을 형국이 ‘용이 시냇물을 찾아온 것 같다’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구계동(九溪洞), 장모롱이(長毛弄伊) 등의 마을이 있고, 1872년 「순천부지도」에는 구계(九溪)마을·장모(長毛)마을이 있다. 1912년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장수리·구계리·죽전리·안치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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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능리 명칭은 취용리와 사릉리에서 유래했다. 취용리는 개척 당시 마을 형태가 용이 모여드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취용(醉龍)’이라 했다. 용능리는 1690년경에 수원백씨들에 의하여 개척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용능리는 낙안군 동상면에 속하였으나,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읍내면이라 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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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용당동(龍堂洞) 지명은 이곳에 용당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용당동은 원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죽림리(竹林里)·업동리(業洞里)·서면(西面)·강청리(江淸里)·망북리(望北里)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용당리라 하고 순천면에 편입시켰다. 1931년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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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금평리의 용서마을에 있는 자연 폭포. 용서폭포는 용서마을의 유래에서 비롯되었다. 용서마을은 마을 뒤 골짜기에 나무가 울창하고 폭포의 절벽 암석이 동굴과 같다고 하여 ‘동주굴’이라고 불러오다가 1910년경 풍수지리설에 근방의 산세와 골짜기의 울창한 나무가 마치 용이 사는 것 같다 하여 용 용(龍)자와 깃들일 서(捿)자를 써서 ‘용서(龍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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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암리(龍岩里) 명칭은 마을 앞의 바위들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이라고 ‘용박골[용바구골]’로 칭한 데에서 유래한다. 회룡마을은 마을 주위를 용이 감고 있는 형국이고, 동부원은 옛 낙안읍 동부의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회룡동(回龍洞), 용암(龍岩), 신촌(新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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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전리는 마을 앞에 커다란 연못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용(龍)자를 쓰고, 현룡재전(現龍在田)이란 성현의 말씀을 따라서 전(田)자를 써서, ‘용전(龍田)’이라고 하였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산의 형상이 아홉 마리 용이 마을을 향한 것 같다고 하여, 마을을 ‘용밭(龍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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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학산리 우명마을에 전해오는 도깨비와 옥수바위 관련 이야기. 「우명마을 옥수바구」는 1997년 순천시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순천시사』-자료편, 2013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되어 있다. 순천시 별량면 학산리의 우명마을은 옛날에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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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산리 명칭은 마을에 있는 소산에서 유래했다. 외동마을은 ‘소메 바깥마을’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소메’는 소산을 가리킨다. 간동마을은 ‘내외동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내동마을은 소메 안쪽에 있으므로 ‘안쪽마을’이라 한데서 유래했다. 넓은 평야 지역으로 우산들·장산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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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산리 명칭은 내우(內友)마을 앞에 와우(臥牛) 형국의 섬이 있어, 이를 소메·우산(牛山)·우봉(牛峰)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우산리는 본래 보성군 문전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동(外洞)마을·내우(內牛)마을·외우(外牛)마을·중우(中牛)마을·곡천(曲川)마을·장산(獐山)마을과 순천군 송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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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룡리(雲龍里)는 마을이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라 하여 ‘운와리(雲臥里)’라 부르다가 풍수상 용이 승천하는 형국이라 하여 ‘운룡리’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용두(龍頭)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약 6㎞ 떨어진 산 중턱에 용바위굴[꼭두바위]이라는 굴에 살던 진주강씨가 마을을 형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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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운룡리 운룡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운룡리 당산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산제단, 상당, 하당에서 순천시 주암면 운룡리 운룡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이다. 운룡리 당산제는 산제단, 상당, 하당 세 곳에서 지내고, 헌식을 하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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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월리 명칭은 병운마을과 월곡마을에서 유래했다. 병운(倂雲)마을은 과거에 노고치에서 내려온 계곡이 갈라진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가른골’이라 부르던 것을 갈운골〉가운골로 변하면서 ‘갈운’ 또는 ‘가운리’로 부르게 되었고,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함께한다’ 또는 ‘더한다’라는 의미의 ‘병(倂)’을 취해 ‘병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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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천리 명칭은 운룡리와 신천리에서 유래했다. 풍수에서는 산 능선을 용이라 한다. 용운(龍雲)마을은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 곧 산속에 숨은 마을이란 뜻으로 ‘용은(龍隱)’이라 했는데 훗날 한자 표기가 변해 ‘용운’이라 했다. 신천(新川)마을은 마을이 새앙골에 있으므로 ‘새양골’이라 하던 것이 ‘새암굴’로 바뀌고, 한자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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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평(雲坪)은 우리말 이름이 ‘굼들’이다. 물굽이 옆에 들이 있으므로 ‘굼들’이란 설이 있으나, ‘구미안들’이 ‘굼들’로 준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에는 ‘몽평(夢坪)’이라고 한자로 표기하였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굼들’을 ‘꿈들’로 보고 ‘몽평(夢坪)’이라고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914년에 운평리라고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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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창리는 대은리의 은(隱)자와 척동리의 척(尺) 자를 따서 은척리(隱尺里)로 했다가, 서씨들이 세거하면서 서씨는 12간지 중 쥐[鼠]에 해당하고 쥐는 곡식 창고가 있어야 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명칭이 변했다. 그 결과 은척리→은청리→은창리→원창리로 변했고 창고를 뜻하는 창(倉)자를 넣어 ‘원창리’라 표기했을 가능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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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계리(月桂里) 명칭은 월내(月內)마을과 용계(龍溪)마을에서 유래했다. 한편 월내마을에 입촌한 『밀양손씨세보』에 ‘유산천 이거우 순천지월계촌축실(遊山川移居于順天之月溪村築室)’이란 구절이 있어 1600년대에 이미 월내를 월계로 칭했음도 추측할 수 있다. 월내마을은 마을 형태가 마치 달 모양 같다고 하여 ‘월곡촌(月谷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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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월등’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진경문(陣景文)[1538~?]의 『예교진병일록(曳橋陣兵日錄)』에서 ‘월등촌(月登村)’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며, 1618년 『승평지』에는 ‘월등(月燈)’으로 기록되어 있다. 1759년 『여지도서』에는 월등면(月登面), 1750년경 제작된 『해동지도』에는 월정면(月灯面)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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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림리(月林里) 명칭 유래는 조선 영조 때 마을에서 지식과 덕망이 높은 향리 유우철의 아호 ‘월림’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1896년 유영록이 ‘숲이 무성하다’ 하여 월등면의 ‘월(月)’과 ‘수풀 림(林)’을 결합하여 ‘월림’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섬계(蟾溪)마을은 1912년 조선총독부령에 ‘섬계’라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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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 명칭은 모후산에서 유래했다. 모후산의 각종 명당 형국과 연관 지어 ‘월산(月山)’이라는 풍수 지명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추동마을은 갈림길을 의미하는 ‘개래[정]굴’에서 유래했다. 이를 한자로 옮기면 ‘추동(楸洞)’이다. 조선총독부에서 획수가 적은 ‘추동(秋洞)’으로 표기했다. 월산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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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月山里)는 마을 뒷산이 달과 같은 형태라 하여 ‘신월(新月)’이라 부르다 1914년에 ‘월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약수(藥水)마을은 약수가 난다고 하여 ‘약물냉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약수’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성암(星岩)마을은 마을 뒷산에 미합산성 또는 성암산성이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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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암리 명칭은 월평마을과 구암마을에서 유래했다. 구암마을은 주변 형국을 ‘자랏등’이라 하여 ‘구암(龜巖)’으로 표기했다. 조선시대 낙안성 축조를 위한 채석 도중 성이 완성되어 남은 바위를 ‘남바구’라 했는데 이들을 묶어 ‘구암’으로 칭하였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구암(九岩)’으로 썼다. 월평마을은 뒷산이 풍수상 반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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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용리(月龍里) 명칭은 월궁(月宮)마을과 용정(龍井)마을에서 유래했다. 월궁마을은 1912년 조선총독부령 기록에는 남아있으나 현재는 명산마을과 합쳐져 지명이 유래한 연원에 대한 기록은 없다. 용정마을은 현재 운곡(雲谷)마을이라 불리는데, 400여 년 전 마을이 생겼을 당시 용이 쉬면서 물을 마셨다는 샘이 있다 하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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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전(月田)마을의 옛 이름은 ‘오두방(烏頭坊)’이었다. 옛날에는 신흥을 ‘웃아드뱅’이라고 하였고, 월전을 ‘아래아드뱅’이라 하였다. 오두방은 ‘아드뱅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아드방’을 소리 그대로 ‘오두방’으로 옮겨 적은 것이다. ‘아드방’은 아들을 낳은 마을이라는 뜻인데, 아들이 달로, 방이 밭으로 바뀌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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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전해지는 초상화. 순천 지역 유교회화는 순천 동헌재의 「성황신김총영정(城隍神金摠影幀)」1점, 순천 충민사의 「임경업 초상(林慶業肖像)」1점, 순천 충무사의 「이순신 초상(李舜臣肖像)」1점, 개인 소장 「황현 초상(黃玹肖像)」1점 등 모두 4점이 전해진다. 김총은 순천김씨의 시조이자 순천 지역의 성황신으로 모셔졌고,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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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유성준(劉成俊)[1873~1944]은 구례 지역과 그 인근을 중심으로 활동한 동편제 소리꾼이다. 유성준은 대대로 음악을 해온 세습 예인 집안 출신으로서, 농악대 상쇠 유경학의 아들이자, 판소리 명창 김정문(金正文)[1887~1935]의 외삼촌이며 판소리 명창 김영운(金永雲)[1917~1972]의 외할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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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유평리(柳坪里) 명칭은 유천(柳川)마을과 두평(斗平)마을에서 유래했다. 유천마을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관덕정’이라 하였는데, 그 당시 관가의 덕망 높은 선비들이 모여서 활을 쏘는 곳에서 유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등줄기가 남쪽으로 향했다 하여 ‘유남(柳南)’이라 부르다가 광복과 동시에 마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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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우산리 간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율봉서원(栗峰書院)은 정극인(丁克仁)[1401~1481]·정숙(丁淑)·정승조(丁承祖) 3인의 문덕과 무공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정극인은 자가 가택(可宅)이고, 호는 불우헌(不憂軒)·다헌(茶軒)·다각(茶角) 등이며, 태인현(泰仁縣)에서 살았다. 정극인은 70세에 정언(正言)에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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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응령리(膺嶺里) 명칭은 마을 뒤의 고개 이름인 ‘매재’를 한자로 뜻 옮김 하여 ‘매 응(膺)’ 자에 ‘재 영(嶺)’ 자를 써서 ‘응령’이라 하였다. 금곡마을은 사금이 나온다고 하여 개칭했고, 서정마을은 순천 원도심의 북정마을·남정마을과 대비되는 ‘서정’의 정자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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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곡리 명칭은 이동리와 세곡리에서 유래했다. 이곡리의 이곡마을은 1600년경에 구씨와 최씨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하며, 노암마을은 1913년경에 진주강씨와 김해김씨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한다. 1929년 순천군 동초면이 폐지되어 순천군 낙안면과 별량면·보성군 벌교면에 분할 편입되면서, 순천군 낙안면 이곡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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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유치산에서 발원하여 순천만으로 유입하는 하천. 이사천은 과거 이사면(伊沙面) 지역을 흐른다고 하여 ‘이사천’이라 불렸다. 이사천 유역의 지질은 이사천 수계를 따라 분포하는 충적층을 제외하고는 선캠브리아기의 반상변정 화강암질 편마암과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반은 암석이 깊고 넓게 풍화된 심층풍화층으로 되어있다. 풍화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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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부사를 역임한 문관.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이다. 이수광은 태종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 대까지 종실의 일원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선사정(仙槎正) 이승손(李承孫), 할아버지는 신당령(神堂令) 이정(李禎)이었다. 아버지 대부터 관직에 나갈 수 있어서 아버지 이희검(李希儉)[1516~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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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읍리 명칭은 신라 말에서 조선 초까지 존재했던 행정 단위인 이촌부곡(梨村部曲)에서 유래한다. 우리말로 ‘이촌’을 ‘배골’이라 했고 이를 한자로 ‘이곡(梨谷)’ 또는 ‘이읍’으로 바꿔 썼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한 것은 고려 때였지만 1184년 한 고승이 마을의 형국이 마치 배와 같다 해서 ‘배골’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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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천부사를 역임한 문관. 이정(李楨)[1512~1571]의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이다.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이담(李湛)이며, 어머니는 진주정씨(晉州鄭氏)이다. 이정은 1536년(중종 31) 유학자의 신분으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정의 나이 52세인 1563년(명종 18) 순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순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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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신문기자이자 사회운동가. 이창수(李昌洙)[1886~?]는 1886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난 후 1920년대에 순천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창수는 전라남도 영암군 명남학교를 중퇴한 후 면작조합의 주사, 금융조합의 서기를 지냈다. 1920년대 순천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동아일보사 순천분국장, 조선일보사·시대일보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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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흘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이천서원(伊川書院)은 조선 중기의 문신 박세희(朴世熹)[1491~1530]·박증손(朴曾孫)[1496~1573]·박대붕(朴大鵬)[1525~1592] 3인의 유풍(儒風)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박세희는 자가 이회(而晦)이고, 호는 도원재(道源齋)이며, 1514년(중종 9) 별시 문과에 장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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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인월동(仁月洞) 지명은 인덕리(仁德里)와 월평리(月坪里)에서 유래한다. 조례마을은 예(禮)가 으뜸이라는 뜻이며, 마을 형국이 복조리와 같다는 뜻도 있다. 인월동은 원래 순천군 하사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인덕리·월평리·조례리(照禮里)의 일부를 통합하여 인월리라 하고 도사면(道沙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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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인제동(麟蹄洞) 명칭은 순천의 진산인 인제산(麟蹄山)[346.2m]에서 유래한다. 인제동에는 상인제마을·하인제마을이 있는데 원래는 윗역골, 아랫역골로 불렸으며 문헌에는 ‘역동(驛洞)’이라 표기되어있다. 인제동은 원래 순천군 장평면(長坪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인제리라 하고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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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낙안군수를 역임한 문관. 임경업(林慶業)[1594~1646]의 본관은 여흥(驪興), 평택(平澤)이고,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다. 판서 임정(林整)[1356~1413]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임황(林葟)이다. 출생지는 충주 달천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평안도 개천이라는 설도 있다. 임경업은 1618년(광해군 10) 아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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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에 낙안군수 임경업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경업(林慶業)[1594~1646]은 충주부 달천촌[현 충청북도 충주시 달천동] 출신인데, 1626년(인조 4) 낙안군수로 부임해온 것이 인연이 되어 「임경업전설」이 낙안 일대에 전승되고 있다. 「임경업전설」은 1997년에 순천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순천시사』-문화·예술편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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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농민들이 수령과 향리들의 조세 수취의 부정 행위 등에 항거해 일으킨 농민항쟁. 세도정권기 삼정문란으로 표현되는 통치 질서의 이완과 문란으로 인해 농민들은 극한상황에 내몰렸다. 임계점에 달한 농민들의 분노는 1862년(철종 13) 한꺼번에 타올랐다. 1862년 2월 4일 경상도 단성에서 처음 일어난 농민항쟁은 1862년 5월까지 각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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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의 산림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경제 행위. 임업은 천연 또는 인공의 삼림에서 목재와 임산물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1차 산업이며, 임산물을 국민의 소비생활 및 상공업 방면에 공급할 뿐 아니라 국토 보전 작용, 수원 함양 작용, 관광 휴양을 위한 자원적인 가치와 여러 가지 효용을 유지, 증진시켜 나가는 활동이다.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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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 조선 초기에 이루어진 국방체제가 무너져 가고, 남해안 일대 왜구의 침략과 두만강 일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진족의 침입으로 이이(李珥)는 남왜북호(南倭北胡)[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오랑캐]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조정의 갑론을박 속에 군사력 강화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에서는 도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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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서 발원하여 순천의 역사·문화공동체를 형성해온 하천. 하천은 식수원 및 생태 공간, 그리고 생활공간으로서 지역 주민 생활과 지역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천에서 물을 끌어들여 식수와 생활에 사용하거나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하천 자체의 배수 기능에 의해 우수(雨水)와 오폐수를 배출시켜 ‘사람이 살만한 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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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민의 삶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 지리적 환경. 전라남도 순천시는 한반도 남서부에 있는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동서 간 약 38㎞, 남북 간 약 39㎞이며, 순천시의 주변에는 전라남도 광양시·구례군·곡성군·화순군·보성군·여수시가 접해 있다. 남쪽으로는 여수반도를 가운데 두고 동으로는 광양만을, 서로는 순천만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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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산리 명칭은 장거마을과 한산마을에서 유래했다. 장산마을은 장거(長距)마을과 한산(閑山)마을이 합쳐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장거는 긴 개울과 큰 밭이 있는 마을인 대전(大田)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며 ‘한밭’이라고도 불렀다. 따라서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장산리의 장산마을은 1380년경 마을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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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안리 명칭은 고려 때 중국 금나라 장종의 셋째 아들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천자암에 머물렀다 하여 서울이란 뜻으로 ‘장안(壯安)’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월은마을의 옛 이름은 ‘월산(月山)’이었으나 앞산이 높아 달이 숨은 형상의 마을이라 해서 1970년경 ‘월은(月隱)’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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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장안마을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워진 장승. 장안리 장안 벅수는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장안마을 들어가는 입구인 벅수거리에 두 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장안리 장안 벅수는 장안마을 밖에서 볼 때 왼쪽이 ‘천하대장군’이고, 오른쪽이 ‘지하여장군’이다. 장안리 장안 벅수는 모두 나무를 깎은 것으로 천하대장군은 높이 238㎝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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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천 지역에 부임하여 세거하던 목천장씨 순천 입향조이자 문관. 장자강(張自綱)[1461~1526]의 본관은 목천(木川)이고, 자는 가거(可擧)이다. 목천군 장빈(張彬)의 7세손이다. 장자강은 조선 성종 때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생원으로 있을 때 순천향교의 교수관으로 부임한 것이 입향 동기가 되었다. 『강남악부(江南樂府)』의 「교수관」에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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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송광면 낙수리, 상사면 도월리, 별량면 덕정리 등에서 전해내려 오는 인색한 부자가 시주하러 온 스님을 박대하여 오히려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순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전설로, 인색한 부잣집에 시주하러 온 승려를 박대하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승려가 부자를 망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장자못전설」은 광포전설로 여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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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법정동. 장천동(長泉洞)은 오래전부터 샘이 많은 동네였다. ‘장천동’ 지명도 마을 샘[우물] 이름에서 유래한다. 지명 유래가 된 마을 샘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현재 순천시청과 옥천(玉川)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장천동은 본래 순천군 장평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평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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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순천에서 중앙과 지방 관청의 운영을 위해 거두었던 조세의 내역과 그 변천. 조선시대 순천의 재정은 크게 중앙에 상납하는 부분과 지방관청의 재원으로 활용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중앙 상납분은 조선 전기에는 전세, 공납, 군역으로 대별된다. 후기에는 대동법 시행으로 공납이 전세화 되면서 전정[토지에 부과되던 모든 조세를 일괄하여 수취하는 일종의 전결세 수취행정제도]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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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법정동. 저전(楮田) 명칭은 종이 만드는 닥나무밭이 있어 ‘딱밭’·‘닥밭’이라 하던 것을 ‘닥나무 저(楮)’, ‘밭 전(田)’ 자를 써서 ‘저전’이라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저전동에는 구릉 지역에 말이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는 갈마곡[갈마골·다마골]이 있다. 현재 순천여자고등학교 앞 동쪽 들판을 청사들(菁沙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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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두월리와 순천시 주암면 행정리 사이에 있는 고개. 송광산[조계산] 기슭의 산골 마을인 접치는 ‘학마을’ 또는 ‘학골[鶴洞]’이라 불렀으나 1912년에 ‘접치’로 바뀌었다. 세맹골에서 승주읍으로 넘는 고개가 접치인데 보통 ‘접치재’라 부른다. ‘접치(接峙)’라 불러도 재의 뜻이 있는데 뒤에다 재를 더 붙여 부른다. 접치재 아래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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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학구리 출신 한말 의병장 정몽굴에 관한 이야기. 「정몽굴전설」은 1997년 순천시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순천시사』-문화·예술편 127~128쪽에 「정몽굴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2년 1월 10일 서정규[남, 당시 63세, 순천시 서면 학구리]에게서 채록한 이야기이다. 정몽굴은 한말 때 의병장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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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천 출신의 학자이자 연일정씨 순천 입향조. 정소(鄭沼)[1518~1572]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함(仲函), 호는 청사(靑莎)이다. 아버지는 돈녕부판관 정유침(鄭惟沈)[1493~1570]이다. 을사명현(乙巳名賢)인 정랑(正郞) 정자(鄭滋)[1515~1547]가 형이고,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막냇동생이다. 큰누이는 인종의 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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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정혜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정혜사의 정확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순천시 불우조에 계족산 하에 있고,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1226~1292]가 기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13세기에는 이미 정혜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기록인 대웅전 상량문에 임진왜란 시 소실되어 신욱(信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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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법정동. 송아지 독(犢)자를 써서 ‘독실’이라고 불렀다는 설, 천변 둑이 있는 골짜기라서 ‘둑실’이라고 했다는 설 등이 유래한다. 죽도봉 밑 남쪽 천변에 율전(栗田)[장대]마을이 있는데, 1743년(영조 19)에 군사들의 진이 설치되고 군사를 지휘하는 곳을 돌로 쌓아 지휘했다 하여 ‘장대(將臺)’라고도 한다. 1936년 10월 전라선 개통 때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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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례동(照禮洞) 명칭은 마을의 지세가 조리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조례동은 원래 순천군 해촌면(海村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월리(新月里)·연동리(蓮洞里)·재궁리·비봉리(飛鳳里)·운동리(雲洞里)·두지리(斗旨里)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조례리라 하고 해룡면(海龍面)에 편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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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역사. 조선이 건국되어 1413년(태종 13) 순천부는 순천도호부로 바뀌었다. 그보다 앞서 1396년(태조 5)에는 여수현이 다시 순천부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여수현과 함께 순천도호부의 관할 지역이었던 돌산현, 부유현 및 다수의 향·소·부곡 등은 15세기 말까지는 모두 직현이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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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주거 형태와 가옥의 특징 순천을 비롯한 전라남도 지역에는 이름난 씨족마을이 많다. 승주조순탁가옥, 승주조승훈가옥, 조경한가옥 등처럼 잘 알려진 전통 가옥은 특정한 세거 성씨가 거주하는 씨족마을 안에 입지하고 있다. 또 씨족마을이 아니더라도 순천 낙안읍성과 같이 전체가 전통문화재 보존지구로 지정된 곳도 있다. 전통사회에서 생산활동을 포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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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암(住岩)은 용전에 딸린 배티재를 한자로 옮기면서 ‘주암(舟岩)’이라 하였다가, 후에 배가 항해를 안전하게 하려면 사람이 많이 살아야 하므로 한자표기를 ‘주(住)’자로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주암마을 이름이 주암면의 유래가 되었다. 자연마을 중 상주(上住)마을, 중주(中住)마을, 하주(下住)마을은 주암마을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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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주암(舟岩) 지명은 ‘배바위’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주암’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때는 고려시대로 승평군 주암면(舟岩面)이라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자 표기가 변경되었다. 1757년 『여지도서』에는 ‘주암면(住巖面)’으로 기록되어 있고, 1861년 『대동지지』에는 ‘가암면(佳岩面)’으로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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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고산리 환곡, 원고산, 문성마을 사람들이 음력 1월 15일에 이웃 마을과 편을 나누어 돌을 던지면서 싸우는 민속놀이. 순천시 주암면 고산리의 환곡·원고산·문성 마을 사람들은 산 뒤쪽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신기리, 대곡리 마을 사람들과 ‘돌싸움’이라고 하는 편싸움 놀이를 했다. 원고산의 뒷산에서 보면 작은 들을 지나 신기마을이 내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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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에서 발원하여 보성강으로 유입하는 하천. 주암천 명칭은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서 유래했다. 주암천의 발원지이자, 주암분지의 배후산지인 조계산, 오성산, 유치산은 편마암 산지로, 화강암 산지보다 기반암 노출은 제한되어 있으며, 바위부스러기[너덜겅, talus]의 밀도가 높게 나타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토양 피복층이 전체적으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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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내리 명칭은 죽동마을과 내동마을에서 유래했다. 죽동(竹同)마을은 근방에 노송과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죽골’이라 부르다가 1910년부터 ‘죽동’이라 불리고 있다. 내동(內洞)마을은 병자호란 때 각지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은거하면서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사는 곳이라 하여 ‘냇골’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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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 내동마을에 세워진 풍수 비보 목적의 돌탑. 죽내리 내동 탑은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의 내동마을 들어가는 입구 좌측에 세워져 있다. 죽내리 내동 탑은 돌들을 둥그렇게 쌓아 만든 것으로, 형태는 밥그릇을 엎어놓은 둥근 모양이다. 죽내리 내동 탑 높이는 160~280㎝, 지름 185㎝, 둘레 640㎝이다. 죽내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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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림리(竹林里)는 대밭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대숲골’로 부르다가 한자로 옮기면서 ‘죽림리’가 되었다. 둔대(屯垈)마을은 고려 말엽에 군량미 저장창고가 마을 뒤에 지어진 곳이라 하여 ‘둔터’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죽림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둔대마을·호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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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산리 명칭은 죽림마을과 원산마을에서 유래했다. 죽림(竹林)마을은 마을 북쪽의 대밭골에서 처음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대나무가 많아 숲을 이루기 때문에 ‘대밭골’을 ‘죽림’이라고 한자 표기한 것이다. 원산(圓山)마을은 원산교회가 자리한 도리메등에 있는데, 이곳은 작고 둥그런 산으로 도리봉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바꾸면서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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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청리(竹淸里)는 과거 쇠를 캐서 솥을 만든 곳이라 하여 ‘쇠점’이라 부르다가 1910년에 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맑고 대나무가 많아서 ‘죽청’[주민들은 ‘원죽청’이라 부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상검(上檢)마을은 마을 주변의 산이 험준하고 맹수가 많았을 뿐 아니라 뒷산의 형태가 귀호와룡(歸虎臥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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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평은 오병사(五兵使)가 날 터라고 ‘오봉실’이라 하였다. 한양으로 가는 길이 마을 앞으로 나자 냇가로 마을을 옮겼는데 수해를 당해, 현재 마을로 옮기고 ‘대대(大垈)’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호구총수』에 ‘대대(大垈)’ 대신 ‘죽평(竹坪)’이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죽평은 ‘대대’에서 ‘대’를 ‘대나무’로 여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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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죽학리 명칭은 죽림(竹林)마을과 무학(舞鶴)마을에서 유래했다. 죽림마을은 마을 형성 당시 주변에 대나무가 큰 숲을 이루고 있어 ‘대숲골’이라 불리다가 한자명인 ‘죽림’으로 표기하면서 ‘죽림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무학마을은 마을을 이루는 산이 마치 학이 춤추는 형국 같다고 하여 ‘무학(舞鶴)’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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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의 여러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 서로 편을 나누어 볏짚으로 만든 줄을 당기며 풍요를 기원한 민속놀이. 순천 지역에서는 여러 마을에서 줄다리기를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 거행했다. 집마다 볏짚을 거두어 줄을 꼬아서 만든 줄로 동편과 서편 혹은 위편과 아래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기며, 한해의 풍흉을 점치고 마을 사람들 간의 단합과 화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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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 부르는 유희요. 순천의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행해졌으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민속놀이였다. 남문 곁에 있는 옥천을 사이에 두고 남문 밖과 성 안으로 나누어진 줄다리기, 순천시 인안동 대대마을의 줄다리기, 순천시 해룡면 해창마을의 줄다리기, 순천시 오천동 오림마을의 줄다리기 등이 큰 줄판이었다. 순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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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중앙동(中央洞) 지명은 1949년 일본식 동명을 변경하면서, ‘순천시의 복판이 된다’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중앙동은 본래 순천군 소안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소안면의 동내리와 동외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수정이라 하고, 소안면의 남내리와 동외리 일부를 병합하여 본정이라 하고, 소안면의 동외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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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흥리는 옛날에 ‘안골’이라 불렀으며, ‘내동(內洞)’이라고 한자로 표기하였다. 이를 다시 ‘중촌(中村)’으로 표기하였다. ‘내동’은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 비중을 둔 것이고, ‘중촌’은 중간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 비중을 둔 것이다. 중흥리는 도롱마을과 해창마을의 중간 또는 중앙에서 크게 흥할 것이라는 기대감과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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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본은 우리말 이름이 ‘못밑’, ‘묏밑’이다. 이는 못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본(池本)’이라고 한자로 표기하였다. ‘지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지연동(池連洞)’이라 불렸다. 지본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평리·대동리·신기리·구룡리를 병합하여 순천군 서면 지본리로 개설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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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창녕리는 창녕조씨가 설촌하여 마을을 이루었기 때문에 ‘창녕(昌寧)’이란 명칭이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녕리 창녕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다른 마을보다 설촌이 더 빠른 것으로 보인다. 가정마을은 1680년경에 창녕조씨들이 개척한 마을이고, 간원마을은 같은 시기에 밀양박씨가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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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 가정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공동제의.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의 가정마을 앞에는 미륵이라 불리는 입석이 두 개 서 있는데, 모두 ‘미륵’이라 부른다. 큰 입석 위에는 들돌이 하나 올려져 있는데, 마치 사람 몸통 위에 머리가 얹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가정마을 사람들은 이 들돌이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 해당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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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창촌리 명칭은 창촌마을에서 유래했다. 창촌(倉村)마을은 조선시대 사창이 있어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창몰’이라 부르다가 1914년 ‘창촌’으로 개칭하였고, 법정리 명으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천평(泉坪)마을은 서기 1200년경 보조국사가 마을에 샘터를 잡아주어 ‘샘바대’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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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창촌마을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워진 미륵 입석. 창촌리 미륵은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창촌마을 뒤편 밭에 세워져 있고, ‘미륵할멈’이라 부르는데, 행정리 사포 미륵과 함께 부부라 인식한다. 창촌리 미륵 바로 앞에 ‘새끼미륵’이라고 부르는 작은 입석이 세워져 있다. 창촌리 미륵은 입석 형태로, 크기는 높이 150㎝,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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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의 밭 가운데에 세워진 고려 후기 불상. 창촌리석불입상이 있는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사지는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 ‘고려시대의 사지라고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석불 주변에 고려 전기~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이 수습되고 있어 고려시대에 사찰이 창건되어 조선시대 이전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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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를 상징하는 시화. 철쭉은 2~5m까지 자라며, 어린 가지에는 선모(腺毛)가 있으나 점차 자라나면서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달걀 모양인데 가지 끝에서는 조밀하게 붙어서 돌려난다. 잎의 앞면은 녹색이고 잎의 뒷면은 연둣빛으로 좀 더 옅으며 털이 나 있다. 꽃은 늦은 봄에 연분홍색으로 피며, 꽃잎 위쪽 중앙에는 자갈색의 반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철쭉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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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순천 지역의 학생, 노동자, 농민 등의 청년이 일으킨 반일운동.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회의 중추세력인 청년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진영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원동력으로 인해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들의 선도적인 역할이 바로 순천 지역에서도 있었다. 3.1운동 이후 문화 통치 아래 부분적으로 결사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1920년 순천에서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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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순천 지역에서 승평부사를 역임한 청렴한 관료이자 오늘날 순천의 정신을 대표하는 순천팔마비의 주인공. 고려시대 관료 최석(崔碩)은 퇴임하면서 관례로 받던 말 여덟 마리를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최석의 행동은 관례를 깬 것이었고, 이후 퇴직 수령에게 말을 주던 관행은 폐지되었다. 순천 사람들은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고, 지금까지도 최석의 청렴함은 순천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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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소리 명칭은 계곡의 맑은 청쏘(淸沼)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청소가 메워져 버렸으나 소(沼)를 마을 이름으로 쓰면서 한자로 ‘청소(淸沼)’로 표기한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물이 맑고 신선한 곳이라고 ‘청소(淸所)’라고 하였다. 청소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내리·원동리·심원리를 병합하여 순천군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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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행하여진 스포츠 및 학교체육의 제반 활동. 한국의 체육활동은 전통 무예 및 민속놀이 중심에서 근대 개화기의 서구 문명 유입에 따라 점차 체조, 유희, 스포츠 등으로 확대되었다. 서구식 근대 체육은 개화사상과 신문물의 영향을 받은 개화된 지식인, 외국의 선교사 등에 의해 우리나라 전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사립학교들의 역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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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초곡리(草谷里) 명칭은 ‘푸실’로 불린 데에서 유래한다. ‘푸실’은 풀이 우거진 곳이라는 의미의 고유어로 '풀'에다 마을을 나타내는 '실'을 합해 '풀실'이 되고, 거기서 발음하기 어려운 'ㄹ'이 떨어져 '푸실'이 되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초곡(草谷)마을·개령려(開嶺閭)마을·해롱려(海弄閭)마을이 있고,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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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천 지역에서 승평부사를 역임한 문관. 최석(崔碩)은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를 지내고 물러나면서 관례로 받던 말 여덟 마리를 받지 않고 돌려주었고, 이후 그러한 관행이 없어지게 한 인물이다. 최석의 가계나 본관 등 구체적인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사(高麗史)』에 딱 두 번 언급된 인물로 고려시대의 명문가 출신은 아니었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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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의 지표를 덮고 있는 흙의 분포와 특성. 전라남도 순천시의 토양은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화강편마암에서 유래한 적황색토의 분포가 가장 우세하다. 적황색토는 하천 주변과 해안가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순천 동천 하류와 순천만·광양만 일대의 간척지에는 소금기가 남아 있는 염류토가 분포한다. 염류토는 생성 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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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판교는 우리말 이름이 ‘너더리’, ‘너드리’이다. ‘너’를 널(板)로, ‘더리’를 교(橋)로 여기고 한자로 ‘판교(板橋)’라 표기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판교에서 기동으로 널판자로 다리를 놓고 건너다녀서 그 다리를 ‘너더리[판교]’라고 불렀고 그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판교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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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사리는 평평한 바위가 많아 ‘평암(平岩)’으로 부르다가 바위보다는 자갈이 많아 ‘평사(平沙)’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화목마을은 1780년경에 동복오씨에 의해 설촌되었으며, ‘움터[韻基]’라고 부르다가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도중에 ‘화목’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평사리의 평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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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평중리(平中里) 명칭은 평지(平地)마을과 중대(中垈)마을에서 유래했다. 평지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중에 평지에 있어 ‘평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중대마을은 ‘담터’라 불렸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 마을에 대장군혈이 두 군데 있고 그 중간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어 담을 쌓아둔 형국이어서 ‘담터’라고 불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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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촌리 명칭은 조계산에서 유래했다. 조계산 정남쪽이 전란(戰亂) 때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평화스러운 마을 이름을 골라 ‘평촌(平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평촌리는 660년경인 백제 의자왕 때 개척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부여서씨·경주김씨·서산진씨 등의 조상들이 이 무렵 정착했다고 한다. 마을은 처음에는 ‘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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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촌리 명칭은 상평마을과 하평마을에서 유래했다. 평촌(平村)마을은 과거에 ‘죽몰’이라 불렸는데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마을이 형성되면서 ‘아랫죽몰’, ‘웃죽몰’로 불리다가 1914년 ‘상평’과 ‘하평’으로 개칭하였고 이 두 마을을 합쳐 ‘평촌’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저촌(苧村)마을은 마을에 모시가 많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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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법정동. 풍덕동 명칭은 상풍(上豐)마을과 하풍(下豊)마을에서 유래했다. 상풍마을은 이전에 훈련장과 밭으로 이용해 ‘역밭’이라고도 했으며, ‘조산’·‘원풍’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풍마을은 마을에 윤씨가 많아 ‘윤촌’이라 불렀으며 산이 없고 들로만 이루어진 평평한 땅이기 때문에 ‘평촌’으로도 불렸다. 풍덕동은 본래 순천군 장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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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꽹과리, 장구, 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펼치는 민속놀이. 풍물굿을 흔히 농악이라고 부르며 순천 지역에서는 매구[농악], 굿, 마당밟이, 풍장, 걸궁, 걸립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각 이칭에 공연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 매구, 굿, 마당밟이 등은 정월 달에 일년 동안의 평안을 빌고 축원을 할 때 치는 농악을 말하며, 걸궁, 걸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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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삼거동과 순천시 승주읍 신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 풍치는 고지대에 있어서 고개를 넘을 때마다 거센 바람을 만나게 되므로 ‘바람재’ 또는 ‘풍치’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용수동에서 삼거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에 분사(芬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구전한다. 전라남도 순천시 삼거동에는 용쏘배기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용쏘’는 작은 폭포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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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 순천향교 내 1900년대 초기 세워진 누정. 풍화루(風化樓)는 순천시 향교길 60[금곡동 182]에 있다. 순천향교의 서재(西齋) 뒤쪽으로 사무국 건물을 향해 가는 길 중간지점에 있다. 풍화루는 원래 향림사(香林寺) 옆 양사재(養士齋)에 있던 누정이다. 풍화루는 1900년대 초기에 양사재 내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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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사리 옛 이름은 ‘사배' 혹은 '사베’이다. 풍수지리상 마을에 금사복지(金沙福地)가 있다고 하여 ‘사배(沙培)’라고 하였다. 하사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용두면의 상동리·죽동리·월산리·구림리·하사리·상내리 각 일부를 합쳐 해룡면 하사리라 하였다. 1949년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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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송리 명칭은 소정이 마을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하송(下松)’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하송리는 1530년경에 칠원윤씨(漆原尹氏)에 의해 개척된 마을이다. 하송리는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읍내면이라 칭하여 순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순천군 낙안면 하송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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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구는 우리말 이름이 ‘합구[수]장아’, ‘학구[수]징이’ 인데 ‘학구정(鶴口亭)’이라고 한자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산세가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국이라 ‘학구(鶴口)’라고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학구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원리·장척리·와요리·개운리·화룡리의 각 일부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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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산리 명칭은 학서마을과 장산마을에서 유래했다. 학서(鶴捿)마을은 마을 뒤 이승굴산[113m]이 학의 형국인데 학을 길들인다는 뜻으로 ‘학서’라 했다고 한다. 장산(長山)마을은 마을 북서쪽 150m 지점에 있는 진등의 이름을 따서 ‘장산’이라 했다고 한다. 진등은 긴 산등이므로 긴 산등을 뜻하는 ‘장산(長山)’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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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곡리(閑谷里) 명칭은 한곡마을에서 유래했다. 한곡(閑谷)마을은 과거에 마을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대사동(大寺洞)’이라 부르다가 ‘한곡’으로 개칭하였는데, ‘큰 절이 있는 마을’에서 ‘한곡’이라 불렀다는 설과 주위의 경치가 한가로워서 ‘한곡’이라 불렀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약촌(約村)마을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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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이전 시기까지 전라남도 순천에서 전개된 항일투쟁. 한말 의병은 1894년 이후 약 20년 동안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활동했다. 처음에는 1895년 10월 일본이 자행한 명성황후시해사건(明成皇后弑害事件)에 반대하여 복수토적(復讎討賊)을 표방한 의병이 일어났다. 그 후 일본의 강요에 의해 체결된 1904년의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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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해룡면(海龍面) 명칭은 해촌면(海村面)과 용두면(龍頭面)에서 유래했다. 해촌면의 ‘해(海)’자와 용두면의 ‘용(用)’자를 결합하여 ‘해룡면’이라 하였다. 해룡면은 마한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해촌면[북]·용두면[남] 2개면으로 구분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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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해창리 명칭은 조운창에서 유래했다. 1896년 을미개혁으로 조운제도(漕運制度)가 혁파되면서 조운창(漕運倉)인 해창(海倉)도 없어졌다. 조운창의 명칭인 ‘해창(海倉)’이 마을 이름으로 남아 사용하고 있다. 해창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용두면 해창리와 송정리를 병합하여 해창리라 하였다. 194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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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행동 지명은 일제강점기 일본식 표기명인 ‘행정(幸町)’에서 유래되었다. 행동은 원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내리(北內里)·청수리(淸水里)·서내리(西內里) 등의 일부가 통합되어 일본식 지명인 행정(幸町)이 되었고, 순천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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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와 명칭의 변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천 지역의 명칭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삽평군을 시작으로 승주목, 승주연해절도사, 승평군, 순천부, 순천도호부, 순천군이 그것이다. 이러한 명칭 변화가 나타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명칭 변화는 단순히 이름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순천이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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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있는 법정리. 행정리(杏亭里) 명칭은 마을에 은행나무 정자가 있어 ‘은행정’ 또는 ‘오능정’이라 부르다가 1914년 한자명인 ‘행정(杏亭)’으로 개칭되었다. 접치(接峙)마을은 과거에 학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학동(鶴洞)’이라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큰 재와 연접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접치’로 개칭되어 오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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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행정리 사포마을에 풍수비보 목적으로 세워진 미륵. 순천시 주암면 행정리 사포마을 앞으로 국도가 있고 도로 건너에 당산나무가 있으며 그 밑에 행정리 사포 미륵이 있다. 사포마을 사람들은 행정리 사포 미륵을 ‘영감’이라 부르고,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에 있는 창촌리 미륵을 ‘할머니’라고 한다. 행정리 사포 미륵은 입석 형태로 하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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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석현동 향림사에 건립된 고려 후기의 석탑. 「향림사대웅전중수기(香林寺大雄殿重修記)」에 경문왕 5년(865)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에 의해 창건되었고, 현종 10년(1669)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도선국사 창건과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향림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는 동·서삼층석탑과 석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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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두(狐頭)의 우리말 이름은 ‘여숫머리’이다. 마을 뒷산이 여우 머리 같다고 ‘여숫머리’라고 하였다. ‘여숫머리’의 ‘여수’는 여우의 전남 사투리인데, 이를 여우 ‘호(狐)’에 머리 ‘두(頭)’자로 한자로 표기하여 ‘호두(狐頭)’가 된 것이다. 호두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천군 용두면의 당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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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홍내동(鴻內洞) 지명은 홍두리(鴻頭里)와 내동리(內洞里)에서 유래한다. 홍두마을은 고려시대 12조창(漕倉)의 하나인 해룡창(海龍倉)이 있던 곳이며 둑을 막기 전에는 바닷물이 홍두정 바로 앞까지 들어왔다. 또 해룡산신(海龍山神) 박영규 장군을 모시던 해룡산사가 있었으며 해룡산 정상에는 망월정이 1920년대까지 있었다고 한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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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전리 원래 이름은 ‘곶등’이었다고 한다. 곶은 ‘꽃’의 옛말이며 ‘등’을 한자로 ‘전(田)’으로 표기하여 ‘화전’이 되었다. 화전리는 1630년경 보성선씨(寶城宣氏)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기동마을과 함께 화전리에 포함된 한동마을은 1734년경 보성 벌교읍 고읍마을에서 밀양박씨가 전란을 피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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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조곡동 죽도봉 공원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환선정(喚仙亭)은 원래는 순천읍성 동문 밖 동천 가였고, 현재는 순천시 장대길 72[조곡동 278-25]에 있다. 환선정은 1544년(중종 39) 순천부사 심통원(沈通源)이 순천읍성 동문 밖 동천 가에 완공한 누정이다. 초명은 ‘강무정(講武亭)’으로 활터에 세운 정자인 사정(射亭)의 기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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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기독교 민족운동을 주도했던 정치가. 황두연(黃斗淵)[1905~1984]은 1905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전주신흥학교 고등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법학전문학교 제3년을 수료한 황두연은 전주신흥학교 졸업 후 사무원으로 일했던 순천 안력산 병원[알렉산더 병원: 현재 매산고등학교 은성관 자리] 사무원으로 일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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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부사를 역임한 문관. 황익재(黃翼再)[1682~1747]의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재수(再叟), 호는 백화재(白華齋)이다. 황희(黃喜)[1363~1452]의 10대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황집(黃緝), 할아버지는 황재윤(黃載胤)이다. 아버지는 증 좌승지 황진하(黃鎭夏)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 김진익(金震釴)의 딸이다. 부인은 청송심씨(靑松沈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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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과 황전면을 지나 섬진강으로 유입하는 하천. 황전천 명칭은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서 유래했다. 황전천 유역에 해당하는 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과 황전면은 산간분지 지형으로, 황전천 중상류 지역은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과 화산암이 기반암을 이루며, 하류 지역은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의 배열은 산지 배열의 방향성을 반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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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학리(黃鶴里)는 과거 마을 뒤에 있던 미합산성에 주둔하던 군대에 양식을 조달하던 마을이라 하여 ‘둔전’ 또는 ‘둔몰’이라 불렀다가 1914년 풍수지리설에 따라 황학하전 형상의 명당이라 하여 ‘황학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본황(本黃)마을은 황전면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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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회룡리(回龍里)는 1620년경 가뭄이 들었는데 용이 천황봉에서 내려와 가마소의 물을 마시고 백운산 쪽으로 승천한 뒤에 비가 내렸다고 하여 ‘회룡’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하지만 ‘회룡’보다는 과거에 부르던 ‘삽재[눈이 소복소복 내리거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소리를 칭하는 우리말]’를 더 많이 사용한다. 각문(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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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각문마을에 세워진 풍수 비보 목적의 입석. 회룡리 각문 입석은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의 각문마을 도로 옆에 세워져 있다. 회룡리 각문 입석은 자연석으로, 큰 바위 위에 북처럼 생긴 원통형의 바위가 얹혀 있는 형태이다. 각문마을에서는 회룡리 각문 입석을 ‘북바우’라고 부르고 있다. 회룡리 각문 입석의 크기를 두 개로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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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신기마을에 세워진 풍수 비보 목적의 돌탑. 신기마을 도로 좌측에 세워진 회룡리 신기 탑은 반구형으로 맨 위에 입석을 얹어놓았다. 회룡리 신기 탑은 돌로 쌓은 반구형으로 탑 위에 입석을 얹어놓은 형태이다. 회룡리 신기 탑의 높이는 260㎝, 둘레 800㎝이며, 입석은 높이 40㎝, 폭 15㎝이다. 회룡리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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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속하는 법정리. 후곡리 명칭은 모후산골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의 ‘모후곡(母后谷)’에서 유래하였다. 모후산 자락에 자리하여 ‘모후실’·‘모후곡’ 또는 ‘후곡’이라 불렀다. 관공서에서는 마을 이름을 ‘후곡’이라 하나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은 ‘모실’이라는 마을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 후곡리가 처음 형성된 것은 송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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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를 상징하는 시조. 흑두루미는 전체 길이 95㎝ 정도의 겨울 철새이다. 검은색 이마와 어두운 홍색 띤 깃털이 이마 위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나 있다. 머리에서 목까지는 흰색 깃털, 가슴과 몸 아래쪽은 검은 회색 깃털이다. 셋째 날개깃은 길게 뻗어 비옷처럼 되어 꼬리를 덮고 있다. 날개깃은 흑색이며 날개덮깃은 흑회색이다. 부리는 황록색이고 다리는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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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흘산(屹山)의 옛 이름은 ‘멀메’, ‘멀뫼’였다. 옛 말 ‘머흘’을 ‘산 우뚝할 흘(屹)’자로 뜻 옮김 하여 ‘우뚝 솟은 산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흘산마을 앞 이사천에 우산보(洑)가 있는 데, 홍수 때 자주 무너져 ‘우산’이라는 아이를 희생시켜 보를 완성했다는 설화가 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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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흥대는 우리말 이름이 없으며, 마을이 생기면서 크게 일어나라는 뜻으로 ‘흥대리(興垈里)’라고 지은 것 같다. 비봉산[550m] 자락을 등지고 서남쪽 양지바른 곳에 있다고 하여 ‘흥대(興大)’라고 했는데, 1912년 조선총독부가 ‘흥대(興垈)’라고 고쳤다고 한다. 흥대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동리·학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