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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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難民保護所 |
영어의미역 | Protection Center for the Vietnam Refugee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일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에 있던 베트남 난민 수용 시설.
베트남 난민 보호소에 있던 초기 보트피플은 대부분 자유 베트남의 사회 지도층 및 지주 계급 인사들이 공산 치하에서의 탄압을 피하여 탈출한 정치 망명자들이었다. 이들은 외국에 친척 등 연고자들이 있어 난민 보호소 체류 기간은 1~3년 정도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베트남 난민의 성격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경제 난민들로 변화되었고, 냉전 체제의 붕괴 등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하여 인근 국가들로부터 배척을 당해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는 보트피플로 변화되었다. 때문에 초기에는 미국·네덜란드·프랑스 등으로 이민이 순탄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초기 난민의 새 정착지 적응 실패와 각국의 수용 불가 방침에 의해 5~6년 이상의 장기 체류 난민이 늘어나게 되었다.
한국에 수용된 베트남 난민들도 해외 무연고자가 대부분이어서, 격주로 남구 수영동 수영 팔도 시장에 쇼핑가는 것이 유일한 바깥나들이일 만큼 폐쇄적인 생활을 하였다. 1993년 당시 미국인 사업가 존 메너[리복 신발 이사] 부부의 헌신적인 이민 주선 노력으로 150명의 난민들에 대하여 뉴질랜드 정부가 이민을 수락하며 베트남 난민 보호소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1975년 4월 월남전의 패전으로 베트남을 떠나던 대한민국 해군 함정에 메콩강을 떠돌던 베트남 난민 1,355명이 승선하여 같은 해 5월 부산항으로 입국하였다. 베트남의 공산화로 인해 베트남을 떠나야 했던 난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위하여, 부산시와 대한적십자사가 구 부산여자고등학교 건물[서대신동 1가 53번지]에 임시 체류지를 만들면서 첫 난민 보호소가 개소하였다.
1975년 5월 23일 첫 보트피플인 218명이 동지나 해상에서 대한민국 상선 쌍용호에 의해 구조되어 난민 수는 1,573명으로 늘어났다. 수용 난민들 중 584명은 월남 참전 한국 장병 등 국내 연고자들을 찾아 국내에 정착하였고, 977명이 월남 패망을 동정한 자유 우방 국가들의 배려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나 60여 명만 남게 되었다. 1977년부터 보트피플 난민이 급증하며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유엔(UN)의 지원 약속 속에 해운대구 재송동에 1,983㎡ 규모의 난민 보호소를 건립하여 운영하였다. 베트남 난민 보호소는 16년간 운영되다가 1993년 2월 5일과 8일 잔류 난민 110명이 뉴질랜드로 떠나며 완전 폐쇄되었다.
베트남 난민 보호소는 폐쇄 당시 조립식 건물 12개채, 식당, 세면장 등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정확한 구성을 확인 할 수 없다.
1993년 폐쇄 이후 부랑자 임시 수용소로 활용되었으며, 2013년 현재 해운대 동부 센트레빌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