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언종 풍산파 포교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32
한자 新義眞言宗豊山派布敎所
영어의미역 Sineui-Shingon Buddhism Pungsan-pa Missionary Work Station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교 사찰
설립자 엄홍준(嚴弘尊)
설립 시기/일시 1930년 2월 3일연표보기 -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31년 2월 5일 - 이전
최초 설립지 신의진언종 풍산파포교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주소 변경 이력 신의진언종 풍산파포교소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 있었던 일본불교진언종 소속 포교소.

[설립 목적]

신의진언종(新義眞言宗)은 일본 불교 중 밀종(密宗)인 진언종(眞言宗)의 한 종파이다. 헤이안 시대[平安] 홍법 대사(弘法大師) 구카이[空海, 774~835]가 고야산(高野山)에 곤고부지[金剛峰寺]를 건립하고 진언종을 창립하였으며, 흥교 대사(興教大師) 가쿠반[覚鑁, 1095~1143]이 와카야마[和歌山] 네고로지[根來寺]를 중심으로 이를 재흥시켜 신의진언종의 비조가 되었다. 신의진언종에는 풍산파(豊山派)와 지산파(智山派)가 존재하는데, 그중 풍산파는 나라[奈良] 하세테라[長谷寺]에서 강학하였던 센요[専誉, 1530~1604]를 파조(派祖)로 삼고 있으며, 그 파명도 하세테라의 산호(山號)인 풍산(豊山)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도 포교소가 설립되어, 그 교세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변천]

신의진언종 풍산파 포교소는 1930년 2월 3일 부산부 초량정 1015번지[현재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엄홍준(嚴弘尊)에 의해 설립된 후, 1931년 2월 5일 부산부 수정정 1046번지[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로 이설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종교 의례와 포교가 그 주된 활동이었으며, 1934년 당시 신도 호수가 일본인 3호, 조선인 350호, 1936년은 일본인 3호, 조선인 500호로 되어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주로 수정동 일대의 조선인들에게 포교하기 위해 설립된 종교 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설립자 엄홍준은 진해 경화동 출신의 승려로, 일본 동경에서 유학한 후 신의진언종 풍산파의 포교 활동에 종사하였는데, 수정정의 본 포교소 외에도 동래읍 금사리[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사동]의 금사포교소[1932. 9. 10], 부산부 영선정[현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의 목도포교소[1933. 3. 20], 대신정[현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에 서부포교소[1934. 10. 22], 동래군 서면 전포리[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에 동부포교소[1934. 10. 22] 등도 설립하였다. 이들은 1942년 5월 1일 금사교회, 영화사교회, 부산서부교회, 부산동부교회 등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또, 부산부동래군 외에도 밀양포교소(密陽布敎所)[1935. 4. 4,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가곡동], 관음사포교소(觀音寺布敎所)[1935. 10. 1,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 등 인근 경상남도 동부 지역 곳곳에도 포교소를 설립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한편, 엄홍준은 1934년 10월 20일 통도사 강주(講主)를 지냈던 치익(致益)의 문집인 『증곡집(曾谷集)』을 발간하기도 했는데, 수정정 1046번지라는 포교소의 주소를 발행처로 명시하면서 ‘대원사(大願寺)’라는 사찰명을 쓰고 있어, 수정정의 본 포교소가 ‘대원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엄홍준이라는 한국인에 의해 신의진언종 풍산파가 포교되고 있는 사례를 통해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의 일본 불교 수용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향토사 연구와 불교사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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