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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제사의 예법. 집안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절차와 예법이 다르다고 해서 쓰이는 말인 가가례는,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1130~1200]가 『가례(家禮)』에서 쓴 예(禮)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하는가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조선시대에 예론의 해석 방법은 크게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로 나누어졌다. 기호학파는 『가례』의 규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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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가구(可久)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측실에게서 출생한 진사 이휘(李翬)이다. 첫째 부인은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둘째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장생(金長生)의 서손(庶孫)이다. 『주역(周易)』을 즐겨 읽어 앞날을 예측하였다. 1681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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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있었던 가등농장에서 발생한 소작 쟁의. 1920년대 들어 동양척식주식회사, 가등농장 등 일본 지주 회사들이 용인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들은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면서 고율의 소작료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1926년 2월 농장측은 일방적으로 수백 명의 소작권 이동을 단행하고, 7월 소작권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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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어린아이가 입던 밑이 터진 바지. 주로 첫돌 정도부터 대소변을 가리기 전까지 입히던 옷으로 주로 남자어린이가 입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1동에서는 남자아이에게 풍차바지를 입혔고, 여자아이에게는 ‘가랑바지’라는 그와 비슷한 모양과 기능의 바지를 입혔다고 한다. 큰사폭, 작은사폭, 조끼허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루폭에 풍차를 대어 뒤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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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어린아이가 입던 밑이 터진 바지. 주로 첫돌 정도부터 대소변을 가리기 전까지 입히던 옷으로 주로 남자어린이가 입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1동에서는 남자아이에게 풍차바지를 입혔고, 여자아이에게는 ‘가랑바지’라는 그와 비슷한 모양과 기능의 바지를 입혔다고 한다. 큰사폭, 작은사폭, 조끼허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루폭에 풍차를 대어 뒤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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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 속하는 법정리. 가실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성 에버랜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민 8명이 거주하였지만 2010년 현재는 전무하다. 가실의 ‘실’은 ‘골짜기 곡(谷)’의 뜻이다. 용인에 있던 12골짜기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원래 용인군 포곡면 가실[가곡]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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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있는 전자통신용 와이어, 케이블 전문 제조업체. 1985년 7월 1일 김민수가 설립하였으며, 1988년 7월에 와이어, 케이블, 와이어 작업설비(wire harness)에 대한 안전 인증 시험 기관(UL: Underwriters Laboratories)의 인증을 획득하였다. 1990년에는 미국 AT&T의 벤더(vendor)와 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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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 있는 인조 대리석 제작과 시공 전문 건설업체. 1990년 7월 성양제가 가우실업을 창업하였으며, 1991년 2월 인조 대리석 공장을 설립하였고, 1999년에 (주)가우테크로 법인명을 전환하였다. 2002년 본사 및 공장을 현 위치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로 이전하였고, 2002년 5월 산업자원부로부터 클린 사업장 인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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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재월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동단에 위치하며, 청미천의 최상류로 마을 북쪽에 답작 지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청미천에 가재가 많이 산다고 해서 가재울·가재월이라 불렀다 한다. 원래 죽산군 원삼면 지역으로 가재울·가재월·가좌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근삼면 석곡리 일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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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좌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부에 청미천이 흐르고 있다. 가재가 많이 나기에 가재울 또는 가좌동이라 하였다. 본래 죽산군 원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근삼면 석곡리 일부와 원일면 미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좌리라 해서 용인군 원삼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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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가재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예수의 증인이 되는 교회를 표어로 삼고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 끝 선교를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1년 8월 23일 제1대 교역자인 이태곤 목사가 가좌리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제2대 교역자로 이부성 목사, 제3대 교역자로 홍종열 목사가 시무하였다. 2007년 현재 최경림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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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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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창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북단, 즉 이천시 마장면·호법면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가창리는 1914년 붙여진 이름으로, 가곡과 신창(新倉)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가창리라 하였다. 가곡은 사람들이 순박하고 부지런하므로 인근에서 일을 많이 하는 마을이라 하여, ‘농사지을 가[稼]’ 자를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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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부도. 가창리 농장 뒤편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200여 미터를 오르면 정원사가 있고, 정원사 왼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150m 정도 더 올라가면 오솔길 한편에 아담한 부도 1기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대대적으로 유행한 석종형(石鍾形) 부도로, 어깨가 넓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진적으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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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 용화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불입상. 가창리 석불입상은 가창리의 용화사(龍華寺) 뒤편에 지은 보호각 안에 안치되어 있다. 보호각은 김호창이 처음 세웠고, 이후에 퇴락된 것을 지금의 용화사 주지가 개축하였다. 불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된 대형 불상에 속한다. 난형(卵形)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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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 용화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불입상. 가창리 석불입상은 가창리의 용화사(龍華寺) 뒤편에 지은 보호각 안에 안치되어 있다. 보호각은 김호창이 처음 세웠고, 이후에 퇴락된 것을 지금의 용화사 주지가 개축하였다. 불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된 대형 불상에 속한다. 난형(卵形)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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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부도. 가창리 농장 뒤편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200여 미터를 오르면 정원사가 있고, 정원사 왼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150m 정도 더 올라가면 오솔길 한편에 아담한 부도 1기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대대적으로 유행한 석종형(石鍾形) 부도로, 어깨가 넓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진적으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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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가천재(嘉川齋). 증조할아버지는 부원수(副元帥) 조양기(趙良琪)이며, 할아버지는 용성군(龍城君) 조돈(趙暾)이고, 아버지는 양렬공(襄烈公) 조인벽(趙仁璧)이다. 태조의 조카였던 조사(趙師)는 종친에 대한 예우로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아버지 양렬공을 따라 은거하다가 양양에서 죽었다. 충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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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17세기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당시 중국에 진출해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과 만나 서양의 과학 기구와 각종 서적들을 얻어 가지고 귀국하게 되는데, 이것이 서양 선교사들과 공식적으로 접촉하는 출발점이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서적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친구 이벽에게 자신이 얻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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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공식 교구가 아닌 조직. 천주교에서 교계 제도에 따라 주교나 신부 등의 성직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그들의 책임하에 운영, 유지되는 본당이나 교구와는 다른 별도의 단체들을 말한다. 이 단체들은 본당이나 교구와 달리 성직자나 평신도 모두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각 본당이나 교구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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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공식 교구가 아닌 조직. 천주교에서 교계 제도에 따라 주교나 신부 등의 성직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그들의 책임하에 운영, 유지되는 본당이나 교구와는 다른 별도의 단체들을 말한다. 이 단체들은 본당이나 교구와 달리 성직자나 평신도 모두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각 본당이나 교구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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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이다. 증조부는 우의정 이정구(李廷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이며, 아버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다.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전설별검(典設別檢)·의금부도사 등을 거쳐 진천현감(鎭川縣監) 때는 치적을 쌓았다. 1694년 인천현감(仁川縣監)·지평(持平)·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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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2년 과정의 초급 초등 교육 기관. 일제강점기에 실무 교육의 강화와 단기 교육을 목적으로 개설된 초등 수준의 교육기관이었다. 2년을 수료함으로써 끝나는 종결 교육기관으로 정규 학제와는 상관이 없는 학교였다. 1934년 이후로 일제가 보통 교육의 보급이라는 미명 하에 용인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저급한 실업 교육과 일본어 교육을 통해 낮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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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최규서(崔奎瑞)[1650~1735]는 경기도 광주시 출신으로 숙종대에 관직에 나아간 이후 경종대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당쟁이 격화된 당시 소론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영조 즉위 후 낙향한 80세의 몸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대한 대책을 올려 공신에 녹훈되고, 영조의 묘정에 배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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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목표는 나라를 사랑하고 예절 바른 어린이, 우수한 학습력을 갖춘 어린이, 창의적으로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성실하고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데 있다. 교훈은 건강하고 슬기로우며 마음이 따뜻한 어린이이다. 2004년 1월 5일 갈곡초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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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갈담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를 경안천이 흐르고 있다. 1914년에 갈월(葛月)과 파담(琶潭)에서 한 자씩 따서 갈담리라 하였다. 갈담은 옛날에 어영대장을 지낸 정찬술이 낙향하여 집을 짓고 「갈지담방 시우중곡(葛之潭芳 施于中谷)」이란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서 갈담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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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묘. 갈담리 사묘는 연안이씨 저헌공파(樗憲公派)의 후손인 이계희의 가옥 후원에 있는 사당으로, 이계희의 직계 8대조인 좌승지공 이홍기의 신위를 배향하고 제사를 받드는 사묘(祠廟)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세기인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안이씨 저헌공파는 조선 초기의 문신인 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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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갈담리 선사유적은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갈담리 540-4[독점로113번길 18-15] 일원의 유적을 갈담리 선사유적1, 갈담리 580-14 일원을 갈담리 선사유적2, 갈담리 산8[갈월로 33] 일원을 갈담리 선사유적3으로 구분한다. 갈담리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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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2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꿈과 향기가 있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감동과 회복이 있는 예배,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선교, 리더를 키우는 교육, 사랑의 섬김과 화목한 교제를 지향하는 교회이다. 기독교 복음을 통해 상처 나고 힘든 모든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주인 되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설립하였다. 1994년 6월 서울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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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송전리에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읍소재지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87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나타나는 송전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갈뫼·갈미·갈산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용인현 하동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전동을 송전리라고 하였다. 송전리는 송전천이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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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송전리에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읍소재지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87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나타나는 송전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갈뫼·갈미·갈산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용인현 하동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전동을 송전리라고 하였다. 송전리는 송전천이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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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송전리에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읍소재지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87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나타나는 송전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갈뫼·갈미·갈산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용인현 하동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전동을 송전리라고 하였다. 송전리는 송전천이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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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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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에 있는 병자호란 때 의병장 김원립의 기념비. 경주김씨 계림군 김균(金稛)의 9세손이었던 갈천 김원립은 1590년(선조 23)에 증 참판 김성진의 아들로 출생하여 1613년(광해군 5)에 등과하였고, 대과를 거쳐 능주목사가 되었다. 김원립은 능주목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649년 9월 7일, 김원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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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전승되는 감투 쓰고 소가 된 농부 이야기 일하기 싫어하며 부귀와 권세만을 부러워하던 사람이 양반들이 쓰는 감투라도 한번 써보고 싶어 내기를 했다가 소가 된 후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는 전설로서 모현읍 능원리 우명동의 지명 유래에 해당한다. 1980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이야기』에 실려 있다. 한 농부가 살았다. 그 사람은 농사를 짓다가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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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만 60세 되는 생일을 축하하는 의례. 회갑(回甲)은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에 의하면 61세에 해당하는 해로서, 60갑자가 다시 돌아온다는 뜻에서 회갑이라 하였다. 환갑(還甲)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60갑자를 새로 바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외에 주갑(周甲), 갑년(甲年), 환력(還曆), 환갑(換甲), 화갑(華甲)이라고도 하였다. 예전에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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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용인청년회는 1920년대 결성된 청년단체로, 전신인 갑성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야학활동과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용인의 중추기관이 되어 신사상운동에 주력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4년 3월 유재헌(劉載獻)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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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종무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무신으로, 이 시기에 빈번하게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성질이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죽은 뒤에 용인시 고기리에 묻혔다. 태종 대에는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여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으며,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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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통합]소속 교회. 선교사 민노아가 기독교 전파와 교회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백봉교회는 경기도 용인시에 최초로 개설된 교회이다. 1894년 이원서, 서경삼, 이덕보 등이 설교를 듣고 예배를 본 것이 백봉교회의 시작이다. 선교사 민노아가 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 피득이 교회를 진흥시켰다.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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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사립 대학교. 기독교 정신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진리·자유·평등·평화·복지를 추구하는 인재의 양성을 창학 이념으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고 인격을 연마하여 민족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봉사하는 교양인 양성, 전문인 양성, 봉사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1946년 8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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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종합 병원. 설립 이념인 ‘사랑, 봉사, 희망’의 정신으로,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경기도 용인시 주민들에게 대학 병원 급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1998년 5월 의학 박사 정영진이 설립하였다. 강남병원은 MRI의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아주대학교, 삼성의료원 등이 사용하는 최신의 MRI인 미국 GE사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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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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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이완(李莞)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활약한 무신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웠는데,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는 이순신의 전사를 알리지 않고 병사를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열보(悅甫). 이정(李貞)의 손자이며, 진주(晋州) 강세온(姜世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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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강복선은 27세 때인 1908년 4월에 이익삼 의병부대에 들어가 의병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2차 의병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부대로, 30~40명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주요 활동지는 경기도 광주·용인·죽산·양성 등지였다. 1908년 1월에서 1909년 6월까지 군수금을 모집하고 교전 활동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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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에 낙향해 살았던 대한제국기 환관. 환관은 조선시대 왕실의 시중을 들던 특수한 관직으로 내시라고도 한다.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들 가운데서 뽑았으며, 대한제국이 종말을 고하기 직전인 1908년 일제에 의해 내시부가 폐지되면서 사라졌다. 강석호는 환관 가운데 최고의 지위인 상선(尙膳)에 올랐고,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아관파천을 단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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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에 있는 강석호의 선정을 기리는 비. 기념비는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문은 뚜렷하여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다. 비의 크기는 비좌 높이 30㎝, 너비 85㎝, 두께 62㎝이고, 비신의 높이 는 130㎝, 너비 41㎝, 두께 20㎝이며, 옥개석은 높이 34㎝, 너비 76㎝이다. 비신 앞면에 종1열의 대자(大字)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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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생원. 강숙지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생원으로서, 용인현에서 살았는데, 도둑 누명을 쓰고 발가락이 뽑히는 형장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더불어 그 아내도 결박당하여 감금되었다가 풀려났다. 이에 명확히 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신(武臣)인 포도장(捕盜將) 이종례(李宗禮)가 함부로 형장을 써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였다며 조정에서 이종례를 추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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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건립된 전통 가옥. ‘강현구 가옥’은 집의 상량문에 “용 단기 4280년 정해 윤○월 사시 성조운 을묘생(1915) 해좌사향 입주상량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 구(龍 檀紀 四二八十年 丁亥 閏○月 巳時 成造運 乙卯生(1915) 亥坐巳向 立柱上樑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龜)”라고 써서, 해방 직후인 1947년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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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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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서 처인구 운학동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지도 84호선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강원도 원주시를 잇는 도로이며 강화~원주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화성시 경계인 처인구 이동읍 서리 상반마을이고, 종점은 운학동 길업마을이다. 이동읍 서리 상반·하반마을, 천리 구수동·적동을 거쳐 염티고개를 넘어 운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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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강화최씨의 정려비와 묘문비. 열부 최씨의 본관은 강화이고 이선양의 처이다. 남편이 역질로 병을 얻어 위독하자 최씨는 갖은 정성을 다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때 최씨는 손가락을 끊어 수혈하였음에도 남편이 마침내 운명하였다. 친척과 이웃이 모여 시신을 거둘 때 최씨는 남편이 사용하던 허리끈을 몸에 간직한 후 장례 준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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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어린아이가 입던 밑이 터진 바지. 주로 첫돌 정도부터 대소변을 가리기 전까지 입히던 옷으로 주로 남자어린이가 입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1동에서는 남자아이에게 풍차바지를 입혔고, 여자아이에게는 ‘가랑바지’라는 그와 비슷한 모양과 기능의 바지를 입혔다고 한다. 큰사폭, 작은사폭, 조끼허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루폭에 풍차를 대어 뒤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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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전역의 야산이나 정원, 공원에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우리나라 각처의 야산에 주로 자생하거나 인공적으로 정원 등지에 관상수로 식재하는 식물로 연분홍색이나 흰 꽃이 핀다. 철쭉은 중국이나 러시아 우수리 등지에도 분포한다. 전라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500m 이상의 고지에서 볼 수 있으나 경기 지방에서는 산록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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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는 루터교(Lutheran),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장로교(Presbyterian), 성공회(Anglican, 聖公會), 침례교(Baptist), 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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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 관련 단체. 개신교는 교회가 중심이지만 교회 이외의 단체들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예배를 보는 곳이라면, 개신교단체들은 보다 특화되고 전문적인 목표하에 세워진 기관과 조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신교단체들은 교회와 관련을 맺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볼 수 있다. 개신교단체들은 개신교 교회의 탄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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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 관련 단체. 개신교는 교회가 중심이지만 교회 이외의 단체들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예배를 보는 곳이라면, 개신교단체들은 보다 특화되고 전문적인 목표하에 세워진 기관과 조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신교단체들은 교회와 관련을 맺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볼 수 있다. 개신교단체들은 개신교 교회의 탄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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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시장. 개천장은 양지와 이천의 경계에 위치했던 장시이다. 개천장은 설시(設市)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신설되었다가, 경기도 이천 오천장의 설시와 함께 이설·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개시일은 4일과 9일의 5일장이었다. 개천장에서 거래되었던 물품은 쌀·면포·마포·과일·어염·연초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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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리들의 숙박 시설. 객관의 건축적 형태는 궐패(闕牌)와 전패(殿牌)를 모시는 상징적 기능을 가진 주사(主舍)와 숙박 장소인 양 익사(翼舍)로 이루어지는데 주사의 지붕이 양 익사의 지붕보다 높게 되어 있어 공간의 위계를 나타내고 있다. 건축의 구조적 면에서도 주사의 양식이 익사의 양식보다 고급스러운 기법을 사용하여 우월한 공간 성격을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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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약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약 200~250종이 자라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으로 10월경에 익는다. 마을 어귀나 동네의 정자목으로 널리 식재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22m, 가슴 직경은 1.18m이며, 수령은 약 200년 정도이다. 지상 4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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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거리제는 대개 음력 정월 대보름 직전에, 마을 어귀나 큰길 등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에서 부정을 막아 마을에 큰 탈이 없기를 비는 뜻에서 지내는 마을 제사의 하나이다. 용인 지역에서는 마을에 따라 의례의 명칭도 ‘○○나무고사’, ‘○○당제’ 등 다르게 부르고 있다. 거리제는 절차나 금기 사항도 다르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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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석화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돌꽃이는 원삼면 문촌리 석화지의 속명으로, 마을 사람들은 석화지보다 돌꽃이란 이름을 주로 사용한다. 돌꽃이란 돌절구 속에서 꽃 한 송이가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3년에 채록되어 1985년에 출간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옛날에 한 거부가 살았는데, 부잣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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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와 이동읍 어비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전체적인 형상이 거북이가 북동쪽을 향하여 기어가는 모습이라 하여 거북산이라 불리었고 전해진다. 서쪽은 급경사이고 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북동쪽으로 이진봉과 어비리고개를 거쳐 안어고개, 그리고 달봉산과 함봉산으로 이어진다. 산의 북쪽에는 막골이 있으며, 그 너머에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부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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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구려 때 용인의 지명은 구성(駒城)이었고, 멸오라는 별칭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군현을 정비하면서 그 명칭을 거서로 바꾸고 한주(漢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구성은 본래 큰 성 또는 높은 성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거서도 크다는 뜻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그 개칭 시기에 대해서 757년(경덕왕 16)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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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토목 및 건축 관련 공사를 시행하는 산업. 건설업은 주로 구조물을 토지에 고정시키는 공사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토지 굴착·지반 개량·설비 공사 등도 건설업에 포함한다. 건설업은 일반공사·특수공사·전문공사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일반공사 및 특수공사는 건설교통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전문공사는 광역자치단체장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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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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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와 이천시 마장면 해일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방건(方巾)과 같다고 하여 건지산으로 불린다. 『동국여지지』에는 건지산(乾之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죽산읍지』, 『여지도서』에는 건지산(巾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2006년에 간행된 『용인시사』와 여러 지도에는 건지산(乾芝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의 서쪽에는 지산컨트리클럽이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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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건지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내지봉수(內地烽燧). 건지산 봉수는 동쪽으로 안성 망이산 봉수(직선 거리 23㎞), 서쪽으로 용인 석성산 봉수(직선 거리 15.5㎞)와 교신하였다. 봉수가 위치하는 건지산은 산 정상의 중심부가 약간 움푹한 채 남북으로 길게 마안형(馬鞍形)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석성산 봉수가 마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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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건지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내지봉수(內地烽燧). 건지산 봉수는 동쪽으로 안성 망이산 봉수(직선 거리 23㎞), 서쪽으로 용인 석성산 봉수(직선 거리 15.5㎞)와 교신하였다. 봉수가 위치하는 건지산은 산 정상의 중심부가 약간 움푹한 채 남북으로 길게 마안형(馬鞍形)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석성산 봉수가 마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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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와 이천시 마장면 해일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방건(方巾)과 같다고 하여 건지산으로 불린다. 『동국여지지』에는 건지산(乾之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죽산읍지』, 『여지도서』에는 건지산(巾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2006년에 간행된 『용인시사』와 여러 지도에는 건지산(乾芝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의 서쪽에는 지산컨트리클럽이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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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건축, 종교건축, 관청건축, 휴양건축, 복지와 교육건축, 상업과 공업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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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집을 짓는 과정에 따라 지내는 의례. 건축의례는 집을 짓기 위해 집터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에서부터 집이 지어진 후 이루어지는 집들이까지 일련의 과정 속에서 행해지는 의례를 가리킨다. 흔히 고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한 가지 일을 매듭짓고 다음 일로 넘어가는 고비에서 잠깐 숨을 돌리는 휴식의 뜻과, 앞으로 해나갈 일을 다지는 뜻이 함께 들어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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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창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창리 마을 앞에 펼쳐진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창리천의 건너편 감바위골 골짜기의 입구에 위치한다. 현재 선돌 유적의 정면 쪽에 공장 ‘준일산업’이 자리하고 있어 들판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감바위골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에 유적이 있다. 선돌의 크기는 길이 200㎝, 너비 70㎝,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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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도사(道士).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庵)이다. 남사고는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공부하다가 진결(眞訣)을 얻어 비술(秘術)에 정통하게 되었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하기도 하였다. 명종 말기에 이미 1575년(선조 8)의 동서분당(東西分黨)을 예언하였고, 1592년(선조 25)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하리라 하였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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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온(汝溫), 호는 겸제(謙濟). 증조부는 황징(黃澄)이며, 조부는 황준원(黃浚源)이고, 외조부는 조계상(曹繼商)이다. 아버지는 황순경(黃舜卿)이고,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준(尹濬)의 딸이다. 황림(黃琳)[1517~1597]은 1552년(명종 7) 식년시(式年試)에서 을과 4인으로 급제하여 1562년(명종 17) 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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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정낙용은 조선 철종 대부터 일제시대까지 활동한 문신 관료로, 철종 대에 관료생활을 시작하여 일제시대에는 남작의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이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읍 갈담리 갈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구(景龜). 방어사(防禦使) 정인기(鄭寅基)의 아들이다. 1855년(철종 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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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국악 공연 전문 시설. 경기도 국악당은 한국 전통예술을 활성화하고 첨단 시설과 앞서가는 문화활동으로 전문적인 문화를 선도함으로써 국악의 대중화, 현대화, 세계화를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전통예술을 널리 보급하여 국악의 저변 확대를 이루고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실현하며, 도민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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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국악 공연 전문 시설. 경기도 국악당은 한국 전통예술을 활성화하고 첨단 시설과 앞서가는 문화활동으로 전문적인 문화를 선도함으로써 국악의 대중화, 현대화, 세계화를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전통예술을 널리 보급하여 국악의 저변 확대를 이루고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실현하며, 도민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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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에 있는 용인 여성 단체 연합회. 여성 단체 간의 협력과 친선 도모를 통하여 여성 단체의 발전과 여성의 지위 향상은 물론 지역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기 위해 1986년 4월 18일에 창립되었다. 취약 계층의 복지 및 사회봉사 사업, 건전 가정 육성 및 지역 문화 사업, 국내·외 여성 단체와의 교류 사업, 지방자치단체의 수탁 사업 등과 관련된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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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장애인 사회 복지 단체.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취업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소외된 장애인들의 자활 의욕을 고취하며 복지를 증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9년 7월 사단법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법인 허가(보건사회부 제133호)를 받았고, 1989년 8월 용인시지회를 창립하였다. 1993년 3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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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에 있는 학생 야영 시설. 경기도학생교육원 용인학생야영장은 용인 지역 청소년들의 심신 수련과 대자연 속의 야영 체험 학습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0년 6월 30일 경기도 학생 야영장 조례에 근거하여 1982년 11월 17일 시설이 준공되었으며, 1983년 5월 1일에 개장하였다. 개장 첫해인 1983년에는 초등학생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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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는 노인 질환 전문 병원.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여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에 대한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여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고, 경기도의 노인 보건 정책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수집·분석하여 제시하며, 노인성 질환 전문 요원들을 교육시킴으로써 경기도민의 보건 복지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6년 5월 18일에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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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있는 박물관. 경기도의 고유 문화유산을 조사·발굴·연구하고 이를 재조명하여 경기도 역사의 정체성을 구현하고 도민의 애향심을 고취시켜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며, 경기 지역의 자연환경을 분석·전시하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성을 추구하고, 도내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모태로 인간과 자연의 친화력을 향상시키며, 생태 자원의 보존과 환경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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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 있는 소방 교육 기관. 교훈은 ‘열린 참교육, 전문 참인재, 복지 참소방’이다. 교육목표는 21세기 소방방제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 1994년 경기, 인천, 강원 등 3개 시도에 소방학교 설치가 승인되어, 1997년 3월 14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청사를 준공(10개동)하고 1997년 6월 2일 개교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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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여성 교육 전문 기관. 여성들의 교육·복지·정보·창업의 복합적 기능을 갖춘 지역 거점 센터를 목적으로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과 사회 참여 확산에 노력하며 여러 경험과 노하우를 세계 여성과 공유하여 여성 인적 자원 개발의 중심을 지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6년 6월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 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997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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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시조 합창단. 현대인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는 우리의 전통 음악인 정가의 소중함을 재인식시키고,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 풍류와 낭만이 넘치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로 창립되었다. 경기시조합창단은 1998년 박종순을 단장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조직된 시조 합창단이다. 2000년 6월 2일 경기도 문화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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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21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에서 일어난 여자기숙사 방화 사건. 성매매 여성들에게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기술을 배우게 해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목적으로 1960년대부터 도립부녀보호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들 보호소들은 직업교육을 강조하면서 공공기술학원이라고 명칭을 바꾼 뒤 단속에 걸린 10대 성매매 여성이나 가출 등의 문제를 일으킨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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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경노(景魯). 할아버지는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평숙(平叔) 목천수(睦天壽)이고, 아버지는 공집(公集) 목회경(睦會敬)이다. 1747년(영조 2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61년(영조 37)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사직서령(社稷署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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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자는 경담(景膽). 1567년(선조 즉위년) 임금에게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화를 당한 사람들을 포증(褒贈)하기를 청하였으며, 그것이 허락되자 『기묘록(己卯錄)』에 기록되었다. 1589년(선조 22) 장성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을 떠나자 도보로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삼등현령(三登縣令)에 임명되었으며, 군사를 다스리는 일과 양곡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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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자는 경모(敬模). 아버지는 정재위(丁載渭)이고, 부인은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효자였던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은 정의현(丁義顯)[1794~?]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정성스레 모셨고, 상을 당한 뒤에는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탈상 후에도 성묘를 거르지 않았다. 정의현은 홍수가 나 성묘하기 어렵게 되자 큰나무로 개울을 막아 물을 얕게 만든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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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경민(景敏). 아버지는 조수린(趙壽麟)이며 조인은 여섯째 아들이다. 부인은 영덕정씨(盈德鄭氏)이다. 조인(趙訒)[1555~1631]은 조선 중기 명종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하였다. 어려서부터 용모와 태도가 크고 위엄이 있어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벼슬하지 않은 일반인으로 의주까지 임금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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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삼계리에 있는 (주)경방의 직물 생산 공장. 1919년 10월 5일 경성방직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74년 2월 28일 용인공장을 준공하였다. 1977년 5월 용인공장 1차 증설공사를 마쳤으며, 1980년 3월 28일 경방용인부설여자중학교를 개교하였고, 1980년 5월 용인공장 2차 증설공사를 마쳤다. 1983년 3월 8일 경방용인여자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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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면 삼계리에 있었던 산업체 특별 사립 여자 중학교. 교훈은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알뜰하게 저축하자’이다. 1975년부터 1980년 2월까지 경성방직 사내(社內) 교양 교육을 실시하다가 1980년 3월 13일 경방용인부설여자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80년 3월 28일 9학급 540명으로 개교하였다. 1981년 2월 13일 경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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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경백(驚百). 양숙공(襄肅公) 어세공(魚世恭)의 후손으로, 아들은 어사량(魚史良), 손자는 어운해(魚運海)이다. 어진혁(魚震赫)[1684~?]은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하자 목욕재계하고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3일 동안 기도를 하였더니 잉어가 스스로 뛰어올라 왔다. 그 잉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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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엄(尹行儼)[1728~1799]은 음서 출신이었으나 실무에 밝았고 북벌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이 극에 달하여 이듬해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효자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보(敬甫), 호는 수묵당(守黙堂).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琰), 부인은 달성서씨(達成徐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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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서 기흥구 고매동까지와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서 진목리까지 연결되는 고속국도.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잇는 고속국도로 고속국도 제1호선이다. 1970년 개통되었으며 경부고속도로라고도 한다. 용인시 서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며 수지구, 기흥구, 처인구를 지난다. 수지구 풍덕천동에서 기흥구 고매동 구간은 13.6㎞, 처인구 남사면 봉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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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서 기흥구 고매동까지와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서 진목리까지 연결되는 고속국도.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잇는 고속국도로 고속국도 제1호선이다. 1970년 개통되었으며 경부고속도로라고도 한다. 용인시 서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며 수지구, 기흥구, 처인구를 지난다. 수지구 풍덕천동에서 기흥구 고매동 구간은 13.6㎞, 처인구 남사면 봉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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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1946년 5월 25일에 승려 보경(普鏡)이 초막 암자를 짓고 경수사라 한 것이 시원이다. 1961년 6월 대웅전을 신축하였고, 1966년 4월에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1969년 5월에는 관음전을 신축하였다. 1979년 4월에는 명부전을 신축하고, 같은 해 6월에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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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이애(李薆)[1363~1414]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396년 태조의 8남 5녀 중 맏딸인 경신공주(慶愼公主)[?~1426]와 혼인하여 상당군(上黨君)과 상당후(上黨候)가 되었다. 본관은 청주(淸州). 아명은 백경(伯卿). 초명은 이저(李佇). 아버지는 청허자(淸虛子) 이거이(李居易)이며, 청평부원군에 봉하여졌다가 공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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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 용해곡 상봉에서 발원하여 광주시 서하리에서 팔당호로 흘러드는 하천. 한강의 지류이기도 한 경안천(慶安川)은 유역면적 561.02㎢ , 유로연장 49.3㎞, 하폭 1,930㎞, 하천연장 22.5㎞인 국가하천이다.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국도가 경안천 유역을 관통하고 있으며, 유역 내에 용인시와 광주시, 곤지암 인터체인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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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경원(景元). 6판서 집안으로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삼현(李參鉉)이다. 1867년(고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되었다. 1880년(고종 17) 성균관대사성에 등용된 뒤 이듬해 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정사(正使) 민종묵(閔種黙)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흥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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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원(景園), 호는 황사(黃史), 사호(賜號)는 지당(芝堂)이다. 증조부는 민백흥(閔百興), 할아버지는 민상섭(閔相燮), 아버지는 민치오(閔致五), 외조부는 김원식(金元植)이고, 아들은 민영소(閔泳韶)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합격한 뒤,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립되자 중용되기 시작하여 1867년(고종 4) 이조참의로 등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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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노동부 산하 고용 안전 지원 기관.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은 경기도 수원시·화성시·용인시를 관할하고 있다. 근로자의 권익 보호, 복지 증진과 참여, 협력적인 노사 관계의 구축, 산업 안전, 실업 대책 추진 등을 실현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은 1968년 8월 20일 수원직업안정소로 발족하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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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강(崔士康)[1388~1443]은 태종의 왕자와 세종의 두 왕자 등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하게 되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와 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聖世)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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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경제(景制)이며, 호는 망은(忘隱). 1575년 청백리에 녹선된 이백지(李伯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6년에 진사가 되었고, 덕산현감과 종묘서령(宗廟署令)을 지냈고, 초서와 예서에 능했다. 서법에 대한 책을 간행한 것이 있다고 전하지만 제목은 알 수 없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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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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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경종지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이 의주까지 몽진하는 데 참여하였다. 1597년(선조 30) 임실의 수령으로 재직 중, 이 고을이 새로 병화를 겪어 흩어진 백성들을 소집하고 창고 곡식을 수습하는 일을 결코 예사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는데, 수령된 자의 사람됨이 용렬하여 탕패한 고을을 다스리기에 적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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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원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본래 경주김씨는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상갈동·구갈동 등 기흥구의 중심권에 고루 많이 살던 대표적인 세거 성씨이다. 우리나라 성씨 중에서도 명문 거족으로 서기 65년(탈해왕 9)에 경북 지방에서 태어난 김알지를 시조로 삼고 있으나 기흥구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그 중에서도 갈천공파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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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한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표암공이라는 호칭은 알평이 애초에 경주 박바위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이씨 중에는 표암공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아 합천·원주·아산·재령이씨 등이 이에 속하며, 이 밖에도 우계이씨의 일부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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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조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務安郡夫人) 박씨(朴氏)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郎)이 되어 각 도에서 의염(義鹽)의 염분(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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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석농(石儂), 자는 경집(敬集)이다. 유근은 1898년 5월 남궁억·나수연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하였으며, 1905년 11월에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매국 관료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황제와 각부 대신들을 협박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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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집(景集), 호는 완서(翫西). 이용규(李用奎)의 아들이다.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876년(고종 13)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며, 1880년 감찰(監察)로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이후 조병호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영선사 김윤식의 고선관으로, 또 사은겸진주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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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 작용. 넓은 의미로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고 범죄의 예방과 수사, 피의자의 체포, 공안 유지 등과 관련되는 특수 행정 작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법의 집행 및 범죄 수사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국가 조직이나 국가 기관 또는 그 구성원을 지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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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천(敬天), 호는 국은(菊隱)이다. 이한응은 1892년 육영공원을 졸업하고 한성부주사와 관립영어학교 교관을 거쳐, 1901년 3월 영국·벨기에 양국주차공사관의 3등 참서관으로 런던에 부임했다. 1904년에는 서리공사로 승진하였는데, 당시 일본은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하고, 뒤이어 외국인 고문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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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경초. 단양군수를 지낸 신국량(申國樑)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 9)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후 45세에 벼슬길에 올라, 태학의 추천으로 참봉을 거쳐 1590년(선조 23)에 문경현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상주를 거쳐 문경을 침공하자 당시 문경현감이었던 그는 관병 수십 명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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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하(景賀), 호는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이다. 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伉), 할아버지는 권속(權謖),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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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이다. 증조부는 이달선(李達善), 할아버지는 이공인(李公仁), 아버지는 이중호(李仲虎)이다. 외조부는 윤구(尹衢)이고, 부인은 박이(朴苡)의 딸이다. 전라남도 남평에서 출생하였다. 1568년[선조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3년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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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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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이다. 좌의정 정언신(鄭彦信)의 손자이며, 정률(鄭慄)의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화순현령·안산군수를 역임하였는데, 모두 혜정(惠政)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조신(朝臣)들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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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이옥(爾玉), 호는 경호(耕湖). 김새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살았으며, 슬퍼함이 형언할 수 없었다. 그의 효행에 하늘도 감복하였다. 이를 테면, 제사를 지낼 음식이 다 떨어지면 꿩이 부엌으로 날아들었고, 사슴 한 마리는 묘 옆을 지키며 사람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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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대학 이념은 문화 세계의 창조이며 교훈은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이다. 교육 목적을 문화 복지 사회 건설을 위한 유능한 지도자 양성에 두고, 전인 교육, 정서 교육, 과학 교육, 민주 교육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6년에 설립된 배영대학관과 1947년에 설립된 신흥전문관이 합병하여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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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일명 조광좌(趙廣佐). 자는 계량(季良), 호는 회곡(晦谷). 증조부는 도총제(都摠制) 조모(趙慕)이고, 할아버지는 조종효(趙宗孝)이다. 아버지는 군수(郡守) 조훈(趙勛)이다. 형은 조광보(趙廣輔)이고 아우는 조광임(趙廣臨)이다. 조광좌는 1507년(중종 2)에 성균관 유생으로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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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야(季野). 목은 이색(李穡)의 5세손으로서 증조부는 이숙무(李叔畝), 조부는 지중추원사를 지낸 이형증(李亨增), 외조부는 종사랑(從仕郞) 품계를 지낸 선산(善山) 김관안(金寬安)이다. 부인은 찰방을 지낸 최홍보(崔洪輔)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에 진사로 합격하였다. 이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으며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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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증은 세종의 둘째 서자로, 계양군에 봉해졌다. 세종이 끔찍이 사랑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공부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그러나 세조의 즉위와 관련해서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안평대군을 제거하였으며, 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현지(顯之). 아버지는 세종이고 어머니는 신빈김씨(愼嬪金氏)이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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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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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익은 효종 대에서 숙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송시열을 추종하여 치열한 사색당쟁 속에서 노론과 성쇠를 같이 하였다. 1659년 정언(正言)이었을 때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대신을 탄핵하여 강직함을 드러냈으며, 1674년 송시열이 유배된 뒤 계속된 탄핵으로 양덕(陽德)으로 귀양 갔다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후 1682년 송시열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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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운(啓運). 아버지는 이기남(李起南)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이계복은 어려서부터 어버이 섬기는 것을 지성으로 하여, 부모님이 병이 들면 항상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였으며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학질에 걸렸을 때, 어떤 이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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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일찍이 용인 탁영봉(濯纓峰)의 한림대에서 김구(金龜) 등과 학문을 하였다. 그에 따라 봉우리도 김일손의 호를 따 탁영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이 되었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다가 곧 정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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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약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약 200~250종이 자라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으로 10월경에 익는다. 마을 어귀나 동네의 정자목으로 널리 식재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22m, 가슴 직경은 1.18m이며, 수령은 약 200년 정도이다. 지상 4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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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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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호조판서 민겸호(閔謙鎬)의 아들이다. 백부(伯父)인 여성부원군 민태호(閔泰鎬)에게 입양되었다. 1877년(고종 14)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이듬해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정자(正字)·검열(檢閱)·설서(說書)·수찬(修撰)·검상(檢詳)·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 동부승지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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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경(儆), 자는 계중(戒中), 호는 서파(西坡)·방편자(方便子)·남악(南嶽).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목천현감(木川縣監) 유한규(柳漢奎), 어머니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다. 영조 대에서 헌종 대까지 살았던 학자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여 『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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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 자는 계창(季昌), 호는 만암(晩菴). 영의정을 지낸 류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과거에 합격하였다가 그 부친이 고시를 주관하면서 아들을 급제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삭과되었다가 1699년 다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첫 부임지인 용인현에서 재임기간 동안 선치하여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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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행(啓行), 호는 송서(松西), 시호는 문간이다.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한성판윤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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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초명은 용구(用九).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후유(韓後裕)이다. 한용구(韓用龜)[1747~1828]는 영조 대부터 정조, 순조의 3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황감제(黃柑製)에 장원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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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하(景賀), 호는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이다. 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伉), 할아버지는 권속(權謖),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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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수효(秀孝)·계효(季孝)[세종실록에는 계효로 되어 있다.], 호는 나부(懦夫)·신부(侁夫). 아버지는 세종조의 명상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이며, 형은 판서(判書) 황치신(黃致身)이다. 황수신(黃守身)[1407~1467]은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하였다가, 학문이 부진하다고 시관(試官)에게 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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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시와 편지를 모은 첩(帖). 1680년(숙종 6)에 홍수주(洪受疇)가 경북 영덕으로 떠날 때 친구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장도를 기원하기 위해 지은 증별시(贈別詩)와 편지들을, 조선 후기에 해주오씨 문중에서 묶은 것이다. 첩장(帖裝)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고간(古簡)’으로, 크기는 가로 28.7㎝, 세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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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산을 넘어가는 능선부로서 주요 교통로서 이용된다. 보통 고개라는 지명이 쓰이지만 이밖에 재·현·치·령 등의 지명 접미사가 쓰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큰 고개에는 치(峙)나 령(嶺)이 쓰이고 작은 경우는 고개·재·현 등이 쓰인다. 고개는 그 지역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을 통과하는 관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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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었던 중학교 과정의 준(準) 교육 기관. 고등공민학교는 초등학교 또는 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중학교 과정을 교육하던 교육 기관이었다. 직업 교육 및 지역 사회와 연계된 교육을 실시하였다. 해방 후 1948년 1월 미군 군정청 교육부가 고등공민학교 규정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설치하였다. 용인 지역에서는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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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흙도 만져보고 고구마도 캐보면서 아이들이 쉽게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본다. 아빠의 어리숙한 삽질과 아이들의 호미질로 뿌리에 달려있는 고구마를 캐보며 수확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한다. 수확한 고구마는 직접 장작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쪄서도 먹고 숯불에 구워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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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소속 교회. 지역과 함께 하고, 창조 질서 회복의 신앙 고백을 지향하며, 하나님과 이웃 앞에 바로 서는 영성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5년 5월 안병권 목사 집에서 첫 예배가 이루어졌다. 1966년부터 1967년 4월 사이에 미국인 도란 부부가 고기교회 토지를 구입하였다. 1967년 5월 김정심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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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속하는 법정동. 동의 이름은 고분현과 손기동을 병합하여 고분현의 ‘고’자와 손기동의 ‘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용인군 수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분현과 손기동을 합쳐 고기리라 하여 수지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도농 복합으로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면서 수지면이 수지읍으로 승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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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용인시 수지구 고기2리 관음사에서 서편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광교산에서 뻗어 내린 나지막한 구릉의 끝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자는 비교적 양질의 백토를 사용했으며, 유색은 회백색을 띠고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어서 구웠다. 문양 장식은 전혀 없으며 그릇 종류로는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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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용인 고기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용인 고기동 유물산포지1·2·3으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분당에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경기도 성남시와 용인시의 시계가 지나는 동원교를 건너 분기되는 지방도 14호선으로 진입하여 3.5㎞ 정도를 가면 낙생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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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교육, 기초·기본을 다지는 교육, 지식 정보화에 대응하는 과학 산업 교육의 강화,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를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7년 8월 6일 고기강습소로 개소하였다가 1936년 4월 1일 수지국민학교 소속 고기간이학교로 승격되었다. 1950년 수지국민학교 고기분교장으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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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당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중앙에 위치하며, 원삼면사무소 소재지로 면의 중심지이다. 1914년에 고안동(高安洞)과 순당리(蓴塘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고당리라 하였다. ‘고안’은 옛 ‘고안부곡(高安部曲)’에서, ‘순당’은 ‘순채가 나는 연못’에서 유래했다. 원래 죽산군 원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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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으로 넘어가는 국도 304호선변의 안골마을 뒤쪽, 해발 170m 정도의 야산에 위치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용인시 문화유적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많은 양의 백제 토기편들이 채집되었다고 한다. 채집된 토기편들은 외면에 격자문과 승석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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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었던 중학교 과정의 준(準) 교육 기관. 고등공민학교는 초등학교 또는 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중학교 과정을 교육하던 교육 기관이었다. 직업 교육 및 지역 사회와 연계된 교육을 실시하였다. 해방 후 1948년 1월 미군 군정청 교육부가 고등공민학교 규정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설치하였다. 용인 지역에서는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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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중등 교육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고등학교의 입학 자격은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법령에 의해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에 한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는 교육 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나, 일반계와 실업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종합 고등학교도 있다. 그 외 특수 목적 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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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2동에 있는 종합 건설업체. 1965년 3월 31일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고려개발(주)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정천석이 취임하였다. 1972년 5월에는 네팔 카트만두시에 해외지사를 설치하였으며, 처음으로 해외 공사를 수주하기 시작하였다. 1978년 10월 30일에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을 하였다. 1978년 12월 2일 서울시 용산구 문배동으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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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본동마을에 있는 해주오씨 시조 오인유를 기리는 설단비(設壇碑). 해주오씨의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원래 중국 송나라의 이름난 대학자로 984년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였다. 오인유의 후손들은 해주를 관향(貫鄕)으로 여겨 왔다. 그 후 세월이 지나고 전란 등을 겪으면서 시조의 분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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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며 현재의 경기도 용인 지역은 고려시대에 용구현(龍句縣)으로 지칭되었다. 고려는 통일 전쟁 기간부터 군현의 주속 관계를 통해 지방을 지배하였다. 통일을 이룬지 4년이 지난 940년(태조 23)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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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효부와 불효자 이야기. 1982년에서 채록되어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실려 있다. 옛날에 할머니가 손자에게, "아가, 사랑방에서 할머니 담뱃대 가져온." 하고 심부름을 시켰다. 손자가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장난치다 넘어졌는데, 담뱃대가 코를 통과해 죽고 말았다. 놀란 할머니가 며느리를 보고, "아유, 저걸 어떡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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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법정동. 고림동의 유래는 고진리에서 ‘고’자와 임원리에서 ‘임’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용인군 수여면(용인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진리와 임원리를 합쳐 고림리가 되어 용인면에 편입되었다. 1937년 4월 1일 용인면으로 개칭, 1979년 5월 1일 용인면이 용인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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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고림동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각각을 고림동 유물산포지1, 고림동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고 있다. 고림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고림동 758-1답[고림로110번길 23-21] 일원에 위치한다. 해발 222m의 봉두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능선 사이의 곡간 경작지 일대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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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절터. 절의 이름이나 창건 연대 및 폐사(廢寺) 기록 등이 전혀 전하지 않는 절터이다. 『문화유적총람』에도 "맷돌 등이 남아 있으나 사명(寺名)·유래(由來) 불명(不明)이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 곳이 사지임을 확인시켜주는 주요 유물로 암키와와 수키와가 지표상에서 채집된다. 특징적인 것은 세선어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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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절터. 절의 이름이나 창건 연대 및 폐사(廢寺) 기록 등이 전혀 전하지 않는 절터이다. 『문화유적총람』에도 "맷돌 등이 남아 있으나 사명(寺名)·유래(由來) 불명(不明)이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 곳이 사지임을 확인시켜주는 주요 유물로 암키와와 수키와가 지표상에서 채집된다. 특징적인 것은 세선어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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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위치한 공립중학교. 고림중학교의 교훈은 ‘참되게·알차게·새롭게’이다. 교육목표와 추구하는 인간상은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기른다(도덕인). 자기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을 기른다(실천인). 창의성을 계발하고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을 기른다(창조인). 심신이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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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목표는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린이(도덕인), 기초 기본이 충실한 창의적인 어린이(창조인), 자신의 일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어린이(자주인), 몸이 튼튼하고 의지가 강한 어린이(건강인)를 육성하는 데 있다. 교훈은 정직, 근면, 성실이다. 고림동 일원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면서 설립된 공립 초등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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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매동은 법정동인 기흥동에 속하는 행정동으로, 신갈저수지와 접하며 경부고속국도 기흥IC가 있다. 골맷골 또는 고매동이라 하였는데, 마을 지형이 매화낙지형이라 매화의 뜻을 따서 고매라 하였다. 본래 용인군 기곡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공세동 일부를 병합하여 고매리라 하고 기흥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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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서 화성시 중동 사람들과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고매동 대동산신제는 용인시 기흥구의 고매동 사람들과, 바로 옆마을인 화성시 동탄 중동 사람들이 용수대동회(龍水大同會)를 조직하여 매년 음력 10월 1일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에 고매동 당집에서 지내는 산신제이다. 매년 음력 9월 29일에 고매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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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기흥 IC에서 동쪽으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500m쯤 나아가 나타나는 ‘강동냉장’의 맞은 동편 구릉에 자리한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6점이 채집되었다. 채집된 빗살무늬토기의 바탕흙은 다량의 가는 돌가루에 약간 굵은 돌가루가 조금 섞인 점토질이다. 또 토기의 표면은 매끈하게 다듬었으나 내면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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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고매동 유물산포지는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고매동 유물산포지1, 고매동 유물산포지2, 고매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하고 있다. 고매동 유물산포지1은 공세천 변의 신고매 주변과 배후의 구릉지 일대에 위치하며 넓은 범위에 걸쳐 유물이 산포되어 있다. 고매동 유물산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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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80년 2월 8일 경기도 수원시 창훈대교회의 홍기배 장립집사가 대지 660㎡을 헌납하여 박양수 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하였다. 1980년 4월 7일에 합판으로 임시 건물 66㎡(20평)을 세우고 고매리교회라는 이름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수원노회에 가입하였다. 1982년 7월 1일에 김경환 전도사가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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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중리 해발 120m에서 발원하여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만평마을에서 오산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고매천은 용인시와 화성시와의 경계를 이루면서 동류하다가 기흥저수지 여수로 하단으로 흘러 들어가 오산천에 유입된다. 하천 연장은 3.25㎞, 유로 연장은 4㎞, 유역 면적은 6㎢이며, 2급 하천이다. 고매천이란 하천명은 기흥구 고매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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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무덤. 우리나라에서 고분을 비롯한 매장 유적 중 가장 이른 것은 강원도 석회암 동굴 지대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인 흥수굴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매장 유적은 각 시대별로 변화하였다. 신석기시대의 패총 유적에서 발견되는 매장 유구는 주로 토광을 만들고 여러 가지 치레걸이로 장식한 시체를 안치하는 간단한 구조였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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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과 의왕시 학의동에 걸쳐 있는 고개. 해발고도는 330m이며, 남서쪽으로는 백운산·광교산을 거쳐 형제봉으로 이어지고, 북동쪽으로는 바라산·학현·국사봉·청계산으로 이어지는데, 이 등산로는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종주 코스이다. 바라산과 백운산 고개·광교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동막천을 이루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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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신과 조상에게 평안과 재수를 축원하고 고하는 의례. 고사는 가족의 평안과 재수를 축원하고 재액을 물리치기 위하여 신이나 조상에게 고하고 비는 의식을 말한다. 지내는 상황에 따라 안택고사(安宅告祀)·재수고사 등으로 부르는데, 안택고사는 이름 그대로 집안의 평안을 비는 고사이다. 고사는 보통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나 음력 시월 상달에 지내는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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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정월이나 추석 명절에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의식요. 「고사반」은 보통 정월이나 추석 명절에 마을 단위로 구성된 걸립패가 집집을 돌면서 복을 부르고 액을 막아 주는 뜻으로 부르는 고사 소리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걸립패 가운데 상쇠가 지신밟기를 할 때 꽹과리를 치면서 부르는데, 고삿상을 차려 놓고 부른다고 하여 「고사반(告祀盤)」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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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군 고삼면에 있었던 광산. 고삼면 광산은 원삼면 광산과 함께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에서 운영된 대표적인 광산이었다. 당시 고삼면은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된 이래로 고서면, 고북면, 고동면을 합친 지역으로 경기도 용인군에 편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광산의 위치는 경기도 용인군의 고삼면과 경기도 안성군의 양성면에 걸쳐 있었다. 광산의 소유주는 경기도 안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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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보개산성은 경안천과 신갈천의 분수령을 이루는 보개산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이다. 성내 시설물로는 성문과 건물지 등이 확인된다. 성문은 동문지, 남문지와 암문(暗門)의 성격을 가진 남벽 서측의 문지 등 세 곳이지만 원래는 이보다 더 많은 문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내에서는 주로 도기편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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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안리는 백암면 동남단, 즉 안성시 일죽면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 양지군에 속한 고안부곡(高安部曲)이 있었기에, 고안부곡 또는 고안이라 하였다. 본래 고안부곡이라 하다가 조선시대에 고안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주천과 백동·입동·중상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안리라 하고 용인군 외사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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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가마 터. 용인 고안리 분청사기 도요지는 고안리 요지라고도 불리며, 15세기 분청사기의 요지이다. 유적의 크기는 가로 30m, 세로 40여m에 이른다. 백암면 고안리의 지내마을 남쪽에 있는 일명 사랑골 안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근래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의 좌측에 묘지가 조성되면서 많이 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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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 대주천 마을에서 남동쪽 진위천 방향으로 뻗어나간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채집된 유물들은 외면에 사격자문을 전면 타날 시문한 후 횡침선을 돌린 연질의 백제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지표에 노출된 토양이 마사토인 점으로 보아 유적의 상당한 부분이 유실되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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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태종실록(太宗實錄)』권28에, "용구(龍駒)와 처인(處仁)을 병합하여 용인(龍仁)으로 하고 광주(廣州) 임내인 주계(朱溪)·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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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에 있는 초소형 뷰파인더와 발광 소자 전문 제조업체. 1998년 1월에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로, 초소형·최고해상도의 사이버 디스플레이(cyber display)를 개발한 미국 보스턴 소재 코핀(Kopin)사와 합작으로 설립됐으며, 대표이사로 김영숙이 선임되었다. 2000년에 사이버 디스플레이 양산라인을 구축하였다. 2000년 발광 소자(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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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의 사후인 1823년(순조 32) 예조에서 각 식년(式年)에 서울과 외방에서 충(忠)·효(孝)·열(烈)에 대해 장계(狀啓)로 의정부에 보고한 것을 등급을 나누어 시행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서울에 사는 고(故) 첨지 최상유, 개성부의 고(故) 사인(士人)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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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고엔돌·되무덤·도무덤 등으로 부르거나 거북바위·독바위·칠성바위·마귀할멈 바위 등으로 불려진다. 대부분 강이나 바닷가 옆의 평지, 구릉 지대에 있으며 드물게는 산기슭이나 산마루에 있는 경우도 있다. 기능에 따라 제단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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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 장군 이야기. 고 장군 묘소라고 불리는 묘는 용인시 호동 해곡에 있다. 「고 장군 묘소의 전설」은 고 장군 묘소를 비롯해 달러리와 양산봉, 감투봉 등의 지명 유래를 포함하고 있다. 1979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이야기』에 실려 있다. 옛날에는 장사가 나면 삼족을 멸한다고 하였다. 어느 해 고씨(高氏) 집안에 겨드랑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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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일명 고철(高哲). 고려 말기의 충신 정몽주의 대종손으로, 아버지는 정의열(鄭義烈)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정철수는 1943년 12월 보성전문학교 3학년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당하였다.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의 황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동료 두 명과 함께 탈출에 성공해 팔로군에 투항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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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피정의 집. 피정의 집이란 얼마 동안 세상일을 멈추고 온전히 영혼의 문제를 돌아보기 위하여 묵상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만든 곳이다. 세상일과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집을 떠나 조용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며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고초골 피정의 집은 2003년에 원삼성당에 의해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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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별미마을과 원삼면 사암리 중리마을·용암마을·내동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양지현지도읍지』에 ‘대곡돈현은 현 남쪽 30리에 있는데 앞은 죽산의 내동촌이고 뒤로는 본 현의 해곡동으로 통한다. 그 아래는 용인의 김량대로이다. 동쪽으로 10리 떨어진 곳에 좌찬현이 있고 서쪽 5리 떨어진 곳에 작은 곡돈현[小曲頓峴]이 있어 좌찬현을 수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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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골프장. 1984년 7월 골프장 건설 공사를 착수해 1986년 9월 17일 36홀의 골프장을 개장하였다. 1988년 9월 36홀 중 18홀에 라이트 시설을 설치하였다. 2003년 4월 5인승 전동 카트 80대를 도입함과 더불어 코스 내 연못을 조성하는 등 코스 보수 공사를 하였다. 같은 해 10월부터 회원제를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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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골프 시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이 있는 용인시는 무엇보다 교통이 편리하여 골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아 ‘골프 8학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골프장은 퍼블릭 골프장(9홀)과 정규홀(18홀)로 구분된다. 용인시에는 현재 골드컨트리클럽과 남부컨트리클럽, 신원컨트리클럽, 88컨트리클럽, 은화삼컨트리클럽, 양지파인골프클럽, 태영컨트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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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김매기를 할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 용인 지역에서는 김매기를 할 때 애벌매기·두벌매기·세벌매기를 하는데, 애벌매기는 호미로 매고, 두벌매기나 세벌매기는 손으로 풀을 대강 뽑는다. 「곯었네 소리」는 두벌매기를 할 때 불렀던 소리로, 「곯었네」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인시와 이천시를 중심으로 하여 광주시와 안성시, 양평군 등 경기도 동남부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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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 모산과 오포읍 매산리 탑골을 연결하는 고개. 탑골에는 매산리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으며, 더 동쪽으로는 백마산·발이봉·노고봉·정광산 등이 남북 방향으로 연속되어 있다. 곱들고개 서쪽으로는 웃담, 아래담마을이 있고, 동쪽에는 한남공원묘원, 남동쪽에는 약수암과 광주공원묘원이 있다. 장전평들·장전평앞들·모산들 등이 펼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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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별미마을과 원삼면 사암리 중리마을·용암마을·내동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양지현지도읍지』에 ‘대곡돈현은 현 남쪽 30리에 있는데 앞은 죽산의 내동촌이고 뒤로는 본 현의 해곡동으로 통한다. 그 아래는 용인의 김량대로이다. 동쪽으로 10리 떨어진 곳에 좌찬현이 있고 서쪽 5리 떨어진 곳에 작은 곡돈현[小曲頓峴]이 있어 좌찬현을 수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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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 모산과 오포읍 매산리 탑골을 연결하는 고개. 탑골에는 매산리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으며, 더 동쪽으로는 백마산·발이봉·노고봉·정광산 등이 남북 방향으로 연속되어 있다. 곱들고개 서쪽으로는 웃담, 아래담마을이 있고, 동쪽에는 한남공원묘원, 남동쪽에는 약수암과 광주공원묘원이 있다. 장전평들·장전평앞들·모산들 등이 펼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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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법령에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기관은 크게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 기타 공공 단체 등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국가기관은 국가의 통치 작용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지방자치단체 기관은 지방자치 행정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립·운영되는 기관을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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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숙기(李淑琦)[1429~1489]는 세조와 성종 대에 활동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기개가 넘쳐 무신의 자질이 뛰어났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에 봉해졌고,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는 등 국경을 수비하는 데 힘을 기울인 명장(名將)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근(公瑾). 증조부는 판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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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와 남사면 원암리를 잇는 도로. 시점은 경기도 광주시와의 경계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이고, 종점은 경기도 평택시와의 경계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서 국지도 23호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서 국지도 57호선과 이어진다. 남사면 방아리·창리·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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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학자. 이행상은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학자이다. 후대에 학문 성과를 인정받아 송단(宋湍)·성덕명(成德明) 등과 함께 이재 문하의 삼처사(三處士)로 불리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골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부터 사서삼경에 통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리(公履), 호는 왕림(旺林). 문강공(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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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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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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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설치·관리하는 공동 묘지. 공설묘지는「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근거하여 광역 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설치, 관리하는 공동묘지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제23조에는 공설묘지의 관리비와 사용료에 관한 항목이 제시되어 있으며, 공설묘지의 설치 기준은 시행령에 별도의 표로 제시되어 있다. 공설묘지의 경우 주변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들이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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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동에 속하는 법정동. 공세동은 법정동인 기흥동에 속하는 행정동으로서, 기흥동 남단에 위치한다. 신갈저수지 동쪽에 접하고 있으며 농촌 지역임에도 큰 사업체가 몇 개 있다. 현물세를 바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어서 공셋굴·공세동이라 하였다. 원래 용인군 기곡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한의동 일부를 병합하여 공세리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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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공세동사지에는 고려시대 양식의 석탑과 석불 조상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이곳에 사찰이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의 이름이나 창건연대의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안양사지(安養寺址)에 대한 기록이 조선 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 『가람고(伽藍考)』,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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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 이 석불좌상이 있었던 절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예전에 안양사지(安養寺址)라 불리던 이곳에는 현재 문화재자료 제43호로 지정된 공세리 5층석탑을 비롯해 석등(石燈)의 연화문(蓮花文) 하대석(下臺石)이 함께 전해오고 있다. 기흥읍에서 지방도 393호선을 타고 오산 방면으로 10여 분 달리면 공세동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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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기흥읍에서 지방도 393호선을 타고 오산 방면으로 10여 분 가면 공세동(공세리)이 나온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좁은 포장도를 약 5분 정도 더 나아가면 탑안마을이 있다. 용인 공세리 오층석탑이 있는 공세리사지는 탑안마을과 신갈 저수지에 인접한 나지막한 야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기단(基壇)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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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공세동 유물산포지는 6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630구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1, 162전 일대를 공세동 유물산포지2, 29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3, 324-2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4, 8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5, 602유 일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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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 이 석불좌상이 있었던 절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예전에 안양사지(安養寺址)라 불리던 이곳에는 현재 문화재자료 제43호로 지정된 공세리 5층석탑을 비롯해 석등(石燈)의 연화문(蓮花文) 하대석(下臺石)이 함께 전해오고 있다. 기흥읍에서 지방도 393호선을 타고 오산 방면으로 10여 분 달리면 공세동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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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 이 석불좌상이 있었던 절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예전에 안양사지(安養寺址)라 불리던 이곳에는 현재 문화재자료 제43호로 지정된 공세리 5층석탑을 비롯해 석등(石燈)의 연화문(蓮花文) 하대석(下臺石)이 함께 전해오고 있다. 기흥읍에서 지방도 393호선을 타고 오산 방면으로 10여 분 달리면 공세동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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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신고매 자봉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기흥저수지로 흘러드는 하천. 기흥구 고매동 신고매 천덕암 부근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능안 북쪽 자봉산 협곡에서 나오는 세천을 합하여 공세동 탑안마을을 지나 기흥저수지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하천 연장은 1.45㎞, 유로 연장은 2.5㎞, 유역 면적은 17㎢이며, 2급 하천이다. 고매동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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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를 사랑하고 생명과 인격을 존중하는 학생, 열심히 공부하고 스스로 배우는 학생, 취미가 다양하고 소질을 키우는 학생, 지혜롭게 새로움을 창조하는 학생, 건강한 몸과 따듯한 마음을 가꾸는 학생. 2009년 9월 1일 초대 기현숙 교장이 부임하고 6학급, 유치원 1학급을 편성하고 개교하였다. 2010년 2월 11일 제1회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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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공소(孔昭). 할아버지는 어진혁(魚震赫)이고 아버지는 어사량(魚史良)이다. 어운해(魚運海)[1750~?]는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효도를 다하였다. 아버지 어사량이 등창으로 병석에 있을 때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낫게 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한겨울에 대추가 먹고 싶다고 하자 눈 속에서 대추를 구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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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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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옥형과 아들 정응두의 신도비. 정옥형은 1513년(중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검열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대사간,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데 힘썼으며, 당시 김안로의 권세가 높아지자 조정을 떠나 외지를 돌며 민심을 두루 살피기도 하였다. 1544년(중종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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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동생인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이 있으며, 여동생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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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오락과 휴식을 위해 따로 조성된 장소와 시설. 도시화되어가는 사회에서 공원과 녹지는 삶의 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도심에서 자연적 공간의 존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측면에서 삶의 질 향상에 공헌하고 있어 도시 기반 시설로서의 도시 공원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도시공원은 도시 구역 내에 「도시계획법」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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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공원의 기능을 겸비한 공동 묘지. 공원묘지란 개인이나 종교 단체 등에서 경영·관리하는 사설 공동묘지로서 묘지 이용자에게 휴식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역 내에 묘지와 공원 시설을 혼합하여 설치한 묘지를 말한다. 2001년 초에 기존의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이 「장사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됨에 따라 공식적인 법률 용어로는 법인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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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해사(海史), 이명(異名)은 공유(公有)·성호(性浩)이다. 맹철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단에 입단하였으며, 4월 만주 각지에 산재한 독립운동 단체를 규합하여 대한독립단을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로써 대한독립단 집안(輯安) 및 환인현(桓仁縣)의 총지단장에 피임되었다. 그 후 일본인 단체인 일민단(日民團)을 격파하고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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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字)는 사홍(士弘)·성지(星之). 공서린(孔瑞麟)의 9대손이며, 공원인(孔源仁)의 아들이다. 공윤항은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1792년(정조 16) 정조가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직접 시험하는 과강(課講)과 일차유생의 전강을 실시할 때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왕명으로 특별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794년 알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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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내촌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공자님과 도척이의 세상지배 경쟁담. 「공자님과 도척이」는 『한국구비문학대계』1-9에 채록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장자』에 기록된 내용이 야화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이야기가 『용인 북부지역의 구비전승』에 「공자 때문에 나쁜 사람 된 도척이」란 제목으로 채록되어 있다. 세상에서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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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의 열녀. 공중노(孔重魯)의 처 홍씨는 18세기 중반에 용인에서 살았던 열녀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는데, 병으로 돌아가시려는 시부모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살리려 하였다가 결국 그로 인해 파상풍에 걸려 죽게 되었다. 1741년(영조 17)에 열녀로 명정(銘旌)되었으나 열녀문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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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증조할아버지는 부사(副使) 임세춘(林世春)이고, 할아버지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윤(司僕寺尹) 임태순(林台順)이다. 아들은 임인산(林仁山)·임명산(林命山)·임갑산(林甲山)이다.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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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시에서는 몸빼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시골은 어디에서든 몸빼를 볼 수 있다. 몸빼는 1940년대 일제 말기 B29의 폭음 아래 근로 보국대에 끌려간 우리나라 여성들이 일본 여성들의 작업복 바지인 몸빼 위에 노동이나 작업 시 편리한 저고리나 실용적인 남방셔츠를 함께 착용하면서 시작된 우리나라 여성들의 최초의 양장바지이다. 지곡동은 현대화되어가는 용인의 한 일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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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재배되어 생식하거나 가공해서 식용에 쓰이는 과실. 산야에서 원예 기술로 생산하지 않고 식용이나 공업용 원료로 쓰이는 과실을 맺는 나무들을 유실수라고 한다. 유실수 중에 식용이 가능하고 집약적으로 재배되는 나무는 과수에 포함시킬 수 있다. 과수는 재배 지대에 따라 온대과수와 열대과수로 분류되며 겨울철의 낙엽 여부에 따라 낙엽과수와 상록과수로도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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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정성으로 가꾼 농작물을 도시민과 농민이 함께 거두면서 풍성한 수확의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체험의 장이다. 또한 직접 수확한 과실 및 농작물을 집으로 가져가는 기쁨도 만끽할 수 있다. 달콤한 과일 향내가 황홀한 과수원에서 탐스러운 복숭아와 배가 열릴 때까지 열매를 솎아주고, 다듬어주고, 봉지를 씌워주며 정성을 다해 키운 농부의 뿌듯한 마음을 잠시나마 느끼면서 토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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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진(如進), 호는 과재(果齋)이다. 증조부는 윤시영(尹時英), 조부는 윤징(尹澄), 아버지는 윤우신(尹又新)이다. 외조부는 유문윤(柳文潤), 부인은 원경심(元景諶)의 딸이고, 아들은 윤형갑(尹衡甲)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檢閱)·지평(持平) 등을 지냈다. 1587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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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근묵이 조광조의 묘소를 지나며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성근묵(成近黙)[1784~1852]이 정암 조광조 선생의 묘소를 지나며 감회를 기록한 칠언절구의 한시 작품으로, 성근묵의 문집인 『과재집(果齋集)』에 실려 있다. 2002년 『수지읍지』에서 「과정암선생묘(過靜庵先生墓)」로 번역 소개되었다. 용인 지역에는 조광조의 묘소와 심곡서원 등, 조광조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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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연구 또는 개발되었거나 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총칭.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의미하나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지칭한다. 그리고 기술은 과학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상호 밀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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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1576년(선조 9) 전라도우수사, 1578년 경상도병마절도사, 1591년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방어사로서 용인·금산(錦山)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패주, 사헌부로부터 전란 이후 단 한 번도 용감하게 싸움을 못한 졸장(拙將)이라 하여 탄핵을 받았다. 1595년 우변포장(右邊捕將)·행호군(行護軍)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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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시호는 문헌(文憲).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곽돈효(郭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곽원진은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郞)으로서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당시는 고려가 정치적으로 몽고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다. 여몽관계가 중요했던 시기에 곽원진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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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곽원진의 신도비. 1926년 8월에 곽원진의 후손들에 의해 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후손 곽찬(郭璨)이 찬(撰)하고 후손인 곽영민(郭泳敏)이 전(篆)하고 후학 이의국(李義國)이 서(書)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을 지나는 국도 17호선의 원터마을 못 미쳐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5㎞ 가량 직진하면 청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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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를 사랑하고 예절 바른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창의력 있는 어린이, 생각과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정서적인 어린이,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하여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데 있다. 구갈지구 개발로 인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구갈초등학교, 산양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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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 주(周)나라(B.C.12~A.D.3) 때의 역경(易經) 가운데 “관국지광 이용빈우왕(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이라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관광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관광 여행은 종교적·민속적 색채가 강했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와 정착되면서 전국 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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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삼(聖三), 호는 관란(觀瀾). 초명은 정동로(鄭東魯)이다. 정관해는 경기도 용인군 지역을 중심으로 후학 양성과 전통 고수에 힘쓴 유학자로서, 일제강점 직후인 1912년부터 해방 공간인 1947년까지의 한문 일기를 남기고 있다. 일기를 통해 신식 교육의 도입으로 인성 교육을 강조하였던 전통 교육이 무너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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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용인 출신의 정관해가 쓴 순한문 일기. 『관란재일기(觀瀾齋日記)』는 정관해(鄭觀海)[1873~1949]가 경술국치(庚戌國恥) 직후인 1912년부터 1947년 광복 직후까지,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일상사에 대한 정황과 소회한 내용을 담고 있는 순한문 일기책이다. 일반적인 생활 일기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정형화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일기체와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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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인화가. 본관은 함안. 자는 종보(宗甫), 호는 관아재(觀我齋) 또는 석계산인(石溪山人). 경기도 양지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조해(趙楷)이며, 형이 한성부우윤을 지낸 조영복(趙榮福)이다. 171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천거로 등용되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 1742년 선조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문집 『어계집(漁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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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우의 사당. 관우를 신으로 숭앙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부터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사전전고편에는 “무술년(1598) 1월에 명나라 장수 진인이 숭례문 밖 산기슭에 관공묘를 모셨더니 이를 본 모든 관원이 은을 내어 그 사당을 낙성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관우 숭앙 사상이 무속인,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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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우의 사당. 관우를 신으로 숭앙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부터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사전전고편에는 “무술년(1598) 1월에 명나라 장수 진인이 숭례문 밖 산기슭에 관공묘를 모셨더니 이를 본 모든 관원이 은을 내어 그 사당을 낙성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관우 숭앙 사상이 무속인,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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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박서봉 은사로부터 비구니계를 승계받은 승려 송덕이 보살 관음행과 함께 1978년에 창건하였다. 일반 사찰과 같이 매월 초하루 보름 법회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신도 수는 300명 정도이며, 1,200평의 대지에 30평의 대웅전과 함께 선방과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에는 금단청을 한 5척 크기의 본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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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용(崔士庸)[1392~1453]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났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당시의 석학인 완역재(玩易齋) 강대민(姜戴敏)과 문절(文節) 김담(金淡)과 교유하였다. 관직은 내외직을 고루 역임하면서 백성을 아끼고 바르게 다스려 선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관중. 증조부는 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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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추계추씨의 시조. 본관은 추계. 자는 관중(慣中), 호는 노당(露堂). 추계(秋溪)는 양지현(陽智縣)의 별호로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과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일대를 말한다. 추적(秋適)[1246~1317]은 1260년(원종 1)에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안동서기(安東書記)·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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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도사(都事) 조간(趙幹)의 딸이고, 아들은 오수채(吳遂采)이다.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성강(星江) 조견소(趙見素)에게 글을 배웠으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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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서낭당.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백봉리에는 백봉2리의 벌말(평촌)과 백동마을(잣나무골), 백봉6리의 사은마을(샛말), 백봉8리의 봉리마을 등에 서낭당이 있었다. 벌말의 서낭당은 광고개 서낭당으로 불리고, 백동마을의 서낭당은 훈고개(큰고개) 서낭당, 사은마을의 서낭당은 숯돌고개 서낭당이라고 불렀다. 이들 서낭당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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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신봉동과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에 걸쳐 있는 산. 『택리지』에는 "광교산으로부터 북쪽으로 관악산(冠岳山)이 되고 똑바로 서쪽으로 수리산(修理山)이 되어서 서해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현(縣) 북쪽 20리에 있는데 서봉사(瑞峯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용인군 『지도읍지』에는 "서봉산(瑞峯山)"으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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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 1637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조는 1만 3,000여 명의 군사로 남한산성을 지키도록 하고 도원수·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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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부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실시되었던 양전 사업.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후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추진하여 그 해 8월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쳤으며,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올림으로써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성립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부국 강병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광무 개혁(光武改革)’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토지와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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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광보(廣甫). 병마절도사를 지낸 원준량(元俊良)의 차남으로 태어나 큰집인 원수량의 양자로 갔다.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된 원균(元均)의 동생이다. 경기도 송탄시 도일동(현재 경기도 평택시 송탄동)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길에 나가지는 않았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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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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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호를 시조로 하고 정응규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광주정씨(光州鄭氏)의 시조 정신호(鄭臣扈)는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에 걸쳐 상호군(上護軍)과 봉은사진전직(奉恩寺眞殿直)을 지내고 삼중대광문하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의 9세손 정응규(鄭應奎)가 용인시 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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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교단 소속 교회. ‘말씀의 생명력을 체험하라’는 표어 아래 설립된 교회이다. 1999년 2월 28일 정성영 목사가 교회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주일 오전 예배가, 오후 2시에는 주일 오후 예배가 열린다. 매주 수요일 오후 8시에 수요 기도회가, 금요일 오후 9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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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던 교량 자재 생산과 시공의 제조업체. 1986년 10월에 광원산업사를 창업하고 공장 등록을 하였다. 1995년 1월에 교량 교좌 장치에 대한 의장 다섯 건을 등록하였다. 1995년 11월 한국무역협회 무역업에 등록하였으며, 1996년 4월에는 광원산업(주)으로 법인 전환을 하였다. 1996년 6월에는 교량 교좌 장치 네 가지를 실용신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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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에 있는 건설업체. 1982년 8월 20일에 광일골재를 처음 설립하였고, 1992년 9월 15일에 주식회사 광일토건이란 이름으로 서울에 설립하였으며, 이후 1996년 9월 6일에 주식회사 광일토건환경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7년 11월 27일에 폐기물 중간 처리업 허가·토공 사업 면허·비계 구조물 해체 공사업 면허를 취득하였고,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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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일명 조광좌(趙廣佐). 자는 계량(季良), 호는 회곡(晦谷). 증조부는 도총제(都摠制) 조모(趙慕)이고, 할아버지는 조종효(趙宗孝)이다. 아버지는 군수(郡守) 조훈(趙勛)이다. 형은 조광보(趙廣輔)이고 아우는 조광임(趙廣臨)이다. 조광좌는 1507년(중종 2)에 성균관 유생으로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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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결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시조는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본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에 세거해 온 호족의 후예로, 신라에서 벼슬을 세습해 오다가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나라를 바치자 이에 불복하고 절의를 지켰으므로 고려 태조가 회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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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호를 시조로 하고 정응규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광주정씨(光州鄭氏)의 시조 정신호(鄭臣扈)는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에 걸쳐 상호군(上護軍)과 봉은사진전직(奉恩寺眞殿直)을 지내고 삼중대광문하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의 9세손 정응규(鄭應奎)가 용인시 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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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귀산(李貴山)[?~1424]은 형 이귀령(李貴齡)과 함께 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의 친구였으나 태조 대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고 주로 태종 대에 활동하였다. 각 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지방 행정을 담당하여 국초의 창업 기틀을 잡는 데 공헌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흥서(興瑞), 호는 괴은(槐隱, 塊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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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관학 기관. 각 지방에 관학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3경(京) 12목(牧)을 비롯한 군현에 박사와 교수를 파견하여 생도를 교육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향학(鄕學)의 시초이다. 용인 지역에는 조선 전기인 1400년(정종 2)에 용인향교가 세워졌다. 이는 태조 이성계의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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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목표는 예절 바른 어린이(도덕인), 생각하는 어린이(실력인), 실력 있는 어린이(창의인), 튼튼한 어린이(건강인)를 육성하는 데 있다. 교훈은 예절 바르고 성실한 어린이이다. 마북동 일원에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2002년에 신설된 초등학교이다. 2002년 1월 14일 설립 인가를 받고 2002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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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현대의 교량은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나 철골로 만들어지고 차량 통행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예전에는 자연석을 이용한 징검다리나 나무를 이용한 섶다리가 대부분이었다. 징검다리는 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주로 커다란 자연석을 이용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놓아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도록 한 구조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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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1569~1618]은 5세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9세 때 시를 지을 줄 알았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잃고 더욱 시 공부에 전념하였다.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나아가 배웠으며, 시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서 배웠다. 이달은 둘째 형의 친구로서 당시 강원도 원주의 손곡리(蓀谷里)에 살고 있었는데, 허균에게 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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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용인 지역에서 교육은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실시가 되었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적 교육기관인 향교나 재지 사족들이 선현의 제향을 위해 세운 서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용인 지역에는 포은 정몽주 등 많은 선현의 유택이 있다. 따라서 그 학덕을 따르기 위해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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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단체. 교육기관은 교육 사업이나 교육 관계 종사자의 연수·보건·권리·후생 등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체이다.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해져 있으나 좁은 의미로는 학교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교육 행정 기관도 포함된다. 따라서 용인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등을 포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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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벌어졌던 교육 활동. 일제강점기 용인에서는 1934년 구성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면서 모든 면에 1개 이상의 학교가 세워졌지만 당시 학령기 아동 중 실제 학교에 다니는 경우는 30%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1920년대부터 지역 유지나 청년회에서 강습소나 야학을 통해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아 가르치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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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 수단 및 관련 시설. 용인시의 교통은 1970년대 이전까지는 철도와 자동차가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자동차 교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주요 교통기관은 자가용과 버스이다. 버스는 공용버스·일반버스·직행버스·마을버스·시외버스 등이 있다. 버스 노선을 보면 2008년 11월 현재 국비공영버스가 3개노선,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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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지역에서 기독교를 신앙하며 종교 활동을 하는 공동체. 개신교 교회는 처음부터 각각 독립적인 교회로 출발했기 때문에 다양한 교파를 형성하게 되어 오늘날에는 수백 개의 서로 다른 교파가 독자적인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 교회도 서로 다른 교파들이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펼치면서 자신들의 교파를 그대로 한국 사회에 이식하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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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일설에 의하면 경주김씨 문중에 김원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호가 갈천이었는데, 이 사람이 사는 곳을 일러 갈곡, 또는 갈천이라 하던 것이 지명으로 바뀌었다. 그 이웃 인접한 곳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이를 신갈이라 하였고, 이에 반해 예로부터 있던 마을이므로 구갈이라고 했다고 한다. 본래 용인현의 구흥면 지역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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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백제의 취락 유적. 구갈동 유적은 경기개발공사에서 시행한 구갈3 택지개발 지역에 위치하며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이후 삼국시대의 원형 수혈유구들은 현 위치에 보존되었으며, 나머지 유구들은 조사 후 모두 훼멸되었다. 이 지역은 조사자에 의해 편의상 A, B, C 세 개 지역으로 나뉘어 보고되었는데,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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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주민들의 문화 복지 편익 신장을 위한 자치공간. 2008년 1월 4일 제1기 주민자치위원회가 출범되어 2008년 5월 1일 개소식을 거행하였다. 지방자치법에 의거 주민 편의 및 복리 증진을 도모하고 주민자치 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8년 1월 4일 제1기 주민자치위원회가 출범되었으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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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를 구성하고 있는 9개 행정동 중 구갈동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구갈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기흥읍과 구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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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마을에 있는 서낭당. 구갈리 갈곡 서낭당’은 현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서낭당으로, 예부터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동제를 지내던 곳이다. 서낭제는 매년 음력 10월에 좋은 날을 택해서 서낭나무 앞에서 지냈다. 구갈리 갈곡 서낭당은 신목으로만 된 형태로, 3~4그루의 느티나무로 되어 있다. 이중 두 그루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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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교훈은 ‘심신이 건강하고 지혜로운 창조인’이다. 부단히 노력하고 학습하여 진로를 개척하는 실력인, 예와 효를 겸비하고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도덕인, 건전한 정신과 체력이 조화로운 건강인, 과학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창조인, 세계 시민의 자질과 기본 소양을 지닌 세계인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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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린이,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 있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구갈초등학교는 도시 확장과 인구 증가에 따라 1990년대 초 설립된 구갈동 최초의 공립 초등학교이다. 1992년 1월 12일 구갈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93년 3월 1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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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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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17세기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당시 중국에 진출해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과 만나 서양의 과학 기구와 각종 서적들을 얻어 가지고 귀국하게 되는데, 이것이 서양 선교사들과 공식적으로 접촉하는 출발점이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서적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친구 이벽에게 자신이 얻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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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렁고개에 얽힌 이야기. 2005년에 출간된 『경기민속지』에 실려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살았는데, 며느리는 깨진 사기그릇에 개밥을 주었다. 개는 밥을 먹을 때마다 깨진 부분을 핥다 상처가 나 피를 흘렸다. 이를 불쌍히 여긴 시어머니는, “동물도 사랑해야지, 그러면 못쓴다. 나중에 죄받는다.” 하고 타일렀지만,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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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 모산마을에 있는 서낭당. 왕산리 모산마을에는 구렁고개와 광주공원묘지로 넘어가는 길, 그리고 장전평으로 가는 중간 길인 장승백이 등 세 군데에 서낭당이 있었다. 그중 두 곳의 서낭당은 사라지고 현재는 구렁고개 서낭당만이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큰 고목에 구렁이가 많이 살아서 구렁고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다. 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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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와 모현읍 매산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전체 형상은 남북으로 긴 역삼각형 모양이며, 정상은 약간 북쪽에 치우쳐 있다. 동쪽에는 경안천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며, 강 건너에는 갈담리 파담마을이 있다. 북쪽 골짜기에는 예천농장, 예산농장, 갈담3리 양돈단지 등이 있고, 그 너머에 달기산이 있다. 남쪽으로는 신원천이 경안천으로 유입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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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면 가창리에 딸린 자연마을로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가창3리가 된다.가창3리 입구 구백암 표석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와 연결되는 지역으로 예전에는 큰길이 있어 과거 길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작은 마을이지만 예전에는 많은 민가가 있었을 것이고, 교통 편의상 시장도 형성되었음 직하다. 고문헌 자료에 표기된 ‘배관(排觀)’ ‘배감(排甘)’은 본래 이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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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죽능리와 백암면 용천리에 걸쳐 있는 산. 『택리지』에 ‘죽산 남쪽(북서쪽의 오기)에 구봉산이 있는데 봉우리가 빙 둘러 있어 산성을 만들 만하고 또 기호로 통하는 큰 길 복판을 차지한다(竹山南 有九峰山 山回環 可作山城 具據畿湖 孔道中央)’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지』죽산현편에는 ‘현 서북쪽 22리에 있는데 병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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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구봉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봉산은 용인시의 원삼면·외사면과 안성시 고삼면의 분기점이 되는 산으로, 용인시에 있는 산 중에서 높은 산에 해당한다. 예부터 산세가 뛰어나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다. 구봉산이라는 명칭은 봉우리가 아홉 개라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구봉산 앞에는 무학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이 춤을 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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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인류가 연모를 사용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이며, 이 시기부터 빙하가 물러간 약 1만년 까지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전기 구석기는 인류가 연모를 처음 사용한 시기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다. 중기 구석기는 약 12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이다. 이때 사람들이 만든 연모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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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중고길[마북동 연원로 42번길]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올바른 가치관을 배양하여 민주적 공동선을 실현하는 사람을 기르고, 학습에 정진하여 인류 사회에 유익한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을 기르고,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율적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을 기르며, 튼튼한 몸과 건강한 정신으로 질 높은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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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총회 소속 교회.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 사람을 키우는 교회,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교회, 섬김과 나눔이 있는 교회, 간증이 살아 있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2년 2월 18일 마북리 304번지에 교회가 설립되면서 이보형 전도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보았다. 1973년 8월 15일 언남리 333-2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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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언남동과 청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구성읍은 본래 고구려의 구성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구는 ‘크다’는 뜻의 ‘말아지’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으로, 크다와 높다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구성은 ‘큰 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래 용인군 지역이었으나, 1911년 군청이 용인면으로 이전되면서 읍내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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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구성동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를 구성하고 있는 9개 행정동 중 구성동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구성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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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주민들의 문화 복지 편익 신장을 위한 자치 공간. 2006년 6월 13일 제1기 주민자치위원회가 출범되어 2006년 12월 28일 개소식을 거행하였다. 지방자치법에 의거 주민편의 및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주민자치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6년 6월 13일 제1기 주민자치위원회가 출범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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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에서 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던 줄다리기. ‘구성면 줄다리기’는 일제강점기까지도 근처 용인과 수원에서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근에서 유명하였다고 한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마을에서 불상사가 일어나자 줄다리기를 다시 시작한 점으로 미루어, 단순한 겨루기로서의 의미보다 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세시의례적인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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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용인문화원에서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지역의 실상을 기록으로 남긴 면지. 구성면(駒城面)은 본래 용인현 치소가 있던 구 용인 지역을 말한다. 2000년 9월 1일 구성읍으로 승격되었다가, 2005년 용인 지역 행정구역 개편 때 기흥읍과 합쳐져 기흥구가 되었다. 용인의 서부 지역이 주거 지역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에 따라 구성면의 변화 추세를 예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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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이중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2년에 개경의 일청재(一淸齋)에서 태어났다. 소위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진초(秦楚). 증조부는 내시낭중(內侍郎中) 이유정(李惟精)이고,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석(李奭)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板圖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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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총회 소속 교회.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 사람을 키우는 교회,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교회, 섬김과 나눔이 있는 교회, 간증이 살아 있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2년 2월 18일 마북리 304번지에 교회가 설립되면서 이보형 전도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보았다. 1973년 8월 15일 언남리 333-2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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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소속 천주교회. 구성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내의 용인 제2지구에 소속된 성당이다. 주보성인은 한국 천주교의 순교성인으로 1984년에 시성된 성 유대철 베드로이다. 2001년에 모본당(母本堂)인 죽전성당에서 분가하여 정식으로 본당이 설립되었다. 매년 10월 31일을 본당의 날로 기념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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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 구성재(駒城齋)는 구성부원군의 군호(君號)를 따서 제액한 사당이다. 이중인은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으로 태조 이성계가 그의 충절을 흠모하여 구성부원군으로 추봉하였다. 이중인의 묘는 2007년 용인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구성재는 이중인 묘 하단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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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예배와 성경 공부를 통해 신앙인을 육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8년 3월 5일 전영국 전도사가 교회를 설립하였다. 1982년 4월 12일 유복순 목사가 부임하였다. 1988년 2월 28일 김덕필 목사가 부임하여 2011년 현재까지 시무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대예배가, 오후 2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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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교훈은 ‘사랑·정직’이다. 사랑과 정직을 실천하는 인간 육성을 교육 지표로 삼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인(愛國人), 미래 사회에 부응하는 지식인(知識人),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창조인(創造人),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협동인(協同人), 심신이 건전하고 강인한 건강인(健康人)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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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밝고, 곱고, 성실하게’라는 교훈 아래 역사와 전통을 살려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어린이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어린이, 환경을 깨끗이 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가꾸는 어린이를 기르는 것이 교육목표이다. 1934년 9월 20일에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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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행정 구역. 17세기 중엽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빼앗아 구성현으로 삼았다고 서술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본래 백제의 멸오였는데 후에 구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조령과 죽령 지역까지 점령하게 됨에 따라 한강 유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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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용인의 지명인 구성현(駒城縣)의 다른 이름 용인의 옛 지명중 하나인 구성현(駒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지명이었는데, 멸오는 그 이칭이다.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대동지지』·『용인현읍지』(18세기중엽)·『여지도서』(1760)·『용인현읍지』(1842-1843)·『용인현읍지』(1871)·『용인군지도읍지』(1899)·『용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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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고개. 서리천이 동류하다가 원천마을 앞에서 진위천과 합류한 뒤 남류하는데, 그 서안에 구수현이 있다. 여러 지천이 합류하는 곳이기 때문에 덕성리를 거쳐 시미리 사이의 진위천 유역에는 상당히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구수현의 북쪽과 동쪽에는 넓은 하안단구가 발달되어 있고, 그 위에 이코패키징, (주)일화 용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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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통삼리와 평택시 진위면 동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주 능선은 남북 방향인데, 북쪽으로는 길마고개·국사봉·석고개·화성산을 거쳐 함봉산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목골뿌리산·무봉산으로 이어지다가 진위천에 의해서 단절된다. 통삼리 유수는 냉수천·통삼천을 거쳐 진위천으로 합류한다. 고개 동쪽 통삼리에 프라자컨트리클럽이 있고, 고개 서쪽은 아직 개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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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이자 영일정씨 주부공파의 파조.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선술(善述), 호는 구정(駒亭).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7세손으로, 정림(鄭霖)의 둘째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식년시(式年試) 2등에 합격하여 진사(進士)에 오르고, 1642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종묘직장(宗廟直長)에서 호조의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로 2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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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과 2002년 경기도 용인 지역에 가축전염병이 발생해 커다란 피해를 입힌 사건. 구제역은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발굽이 둘로 갈라져 있는 동물(우제류)에 감염되는 질병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입술, 혀, 잇몸, 코, 발굽 사이에 물집(수포)이 생기며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식욕이 저하되며 심하게 앓거나 죽을 수 있는 질병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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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 중 하나로, 조선 초기에 경기도 용인 지역에 금령역(金嶺驛)과 함께 설치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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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에 있는 체육시설. 국궁(國弓)을 수련하는 모임에 붙는 명칭은 대부분 정(亭)으로 이곳에는 용무정(龍武亭)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사장(射場)을 운영하고 있다. 용인상수도사업소에서 정수된 물을 공급하기위해 유방동에 설치한 배수지(配水池)를 활용한 체육시설이다. 위에는 잔디를 심고 전통한옥양식으로 건축하여 환경보호와 생활체육활동이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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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서 백암면 고안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조선시대부터 삼남대로 또는 영남대로라고 불리는 서울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대표적인 도로였다. 여천~용인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 사거리이고, 종점은 안성시 일죽면의 경계인 백암면 고안리 아곡마을이다. 양지면 양지리에서 국도 42호선인 인천~동해 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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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42호선은 인천에서 동해로 연결되는 국도로 용인시를 동서로 횡단한다. 수여국도 또는 인천~동해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기흥구 영덕동 태평양화학에 인접하며, 종점은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와 이천시 마장면 오천리의 경계이다. 1907년부터 개설되기 시작하여 7년간 건설이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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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43호선은 충청남도 연기에서 고성으로 연결되는 국도로 용인시 북부 지역을 동서로 횡단한다. 연기~고성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수지구 상현동-수원시 경계이며 종점은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 왕림교까지이다. 용인시 구간의 연장은 14.20㎞로 상하행 2차선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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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에서 이동읍 묘봉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45호선은 충청남도 서산에서 경기도 가평을 잇는 국도로 용인시 남북을 횡단한다. 서산~가평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광주시 경계인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 독산마을이고, 종점은 안성시 경계인 이동읍 묘봉리 장률마을까지이다. 용인시 구간의 연장은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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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금령로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인지역본부 소속의 지사. 1963년 「의료보험법」이 제정된 이래 1989년에 이르러 「전국민의료보험법」이 시행되었다. 1999년에는 「국민건강보험법」이 새롭게 제정되어 2000년부터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39개의 직장 조합을 통합하였다. 이와 동시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하게 되면서 경인지역본부와 그 하부 조직인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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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교육 사업가.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국사(菊史)이다. 약천 남구만(南九萬)의 5대손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전국에 면리제(面里制)를 시행하였을 때 남계양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慕賢面)[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의 초대 면장(慕賢面長)이 되었다. 1920년 모현면장 재직시 일본을 시찰하고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모현면에 보통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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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에 있는 산. 예로부터 국사봉이라 불렸으나, 그 유래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제학이 쓴 『용인의 산수 이야기』에 "국사봉 정상은 상수리나무가 뒤 섞인 민둥봉이다. 동북 방향에 참호 같은 웅덩이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웅덩이 같이 움푹 패인 곳이 태실을 묻었던 장소로 보인다. "국사봉에 태를 묻었는데, 태 항아리는 도굴되고 절구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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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천(敬天), 호는 국은(菊隱)이다. 이한응은 1892년 육영공원을 졸업하고 한성부주사와 관립영어학교 교관을 거쳐, 1901년 3월 영국·벨기에 양국주차공사관의 3등 참서관으로 런던에 부임했다. 1904년에는 서리공사로 승진하였는데, 당시 일본은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하고, 뒤이어 외국인 고문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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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제지 전문 제조업체. 1978년 8월 설립된 이후 1982년 4월에 초지 2호기를 증설하였다. 2002년 12월에 대표이사로 최우식이 취임하였으며, 1994년 8월 공해 방지 시설인 침전조를 설치하였다. 2004년 10월에는 코스닥 시장에 등록하였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중국공장에 제품을 출시하고 영업을 개시하였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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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에 있는 합기도 무술 단체. 합기도와 명재남 국사가 창안한 한기도, 합기 무예 등을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 보급하는 단체이다. 합기도 정통 술기의 승계·발전과 한국적인 합기도의 보급·장려를 통하여 많은 국민들이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합기도 무술인 명재남이 1974년 8월 국제연맹합기회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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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전문 3자 물류 기업. 1991년에 (주)국제종합물류가 설립되었으며, 1993년에 경기도 용인시에 제1물류센터를 준공하였다. 1996년에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에 제2물류센터를 준공하였으며, 1997년 전산 재고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창고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1998년에는 물류대행사업부를 만들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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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 중인 일련정종의 재가신도 단체에서 유래한 종교 단체. 국제창가학회(國際創價學會)[영문약칭 SGI]는 『법화경』 신앙을 중시하는 일련정종(日蓮正宗)의 재가신도단체에서 유래한 종교단체이다. 주요 지도자로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1871~1944], 도다 조세이(戶田城聖)[1900~1958],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1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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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서 기흥구 고매동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지도 23호선은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경기도 파주시를 잇는 도로로 천안~파주길이라 부르며, 오산시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오산선으로도 부른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성남시와의 경계인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하단이고, 종점은 화성시 경계인 기흥구 고매동이다. 경부고속국도와 병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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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양지면 정수리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지도 44호선은 경기도 용인시에서 경기도 양평군을 잇는 도로이다. 용인~양평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김량장동과 마평동의 경계인 김량교이고, 종점은 광주시 추곡리와의 경계인 양지면 정수리 정수마을이다. 김량교에서 국도 42호선인 인천~동해 선에 접속되어 유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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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서 모현읍 매산리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지도 57호선은 대전광역시에서 경기도 안양시를 잇는 도로이며 대전~안양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안성시 경계인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 구봉마을이고, 종점은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와의 경계인 모현읍 매산리 진해촌이다. 주요 통로는 원삼면 목신리·죽능리·독성리·사암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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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에서 이동읍 송전리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지도 82호선은 경기도 화성시에서 충청북도 음성군을 잇는 도로이며 화성~음성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처인구 남사면 북리 신흥동 마을의 서쪽이고, 종점은 이동읍 송전리 삼거리이다. 용인시 남부 지역을 동서로 횡단하는 주요 교통로이며, 시점인 남사면 북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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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서 처인구 운학동까지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국지도 84호선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강원도 원주시를 잇는 도로이며 강화~원주길이라고도 한다. 용인시 구간의 시점은 화성시 경계인 처인구 이동읍 서리 상반마을이고, 종점은 운학동 길업마을이다. 이동읍 서리 상반·하반마을, 천리 구수동·적동을 거쳐 염티고개를 넘어 운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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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 본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유윤덕(柳潤德)이고, 생부(生父)는 유성(柳城), 양부는 참봉인 유지(柳墀)이다. 유복기(柳復起)와 유복립(柳復立) 형제는 외가에 맡겨져 외조부의 손에서 컸으며 외숙인 학봉 김성일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종부시주부(宗溥寺主簿)가 되었고, 1592년(선조 25)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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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석(君錫).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撫原從功臣)인 홍제(洪霽)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홍유량(洪有量)이다. 첫째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둘째 부인은 정부인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형은 홍하창(洪夏昌)이다. 홍하명(洪夏明)[1645~1705]은 현종 대와 숙종 대에 걸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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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군신(君信), 호는 추은(楸隱). 좌승지를 지낸 오경우(吳景愚)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오경순(吳景醇)의 아들로 경우에게 입양된 오세공(五世恭)이다. 어머니는 삭녕최씨의 딸이다. 첫 부인은 김황(金晃)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이민신(李敏信)의 딸이다. 7세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성인과 같았다고 한다. 광해군 때 문음으로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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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주국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언(君言), 호는 오백(梧栢).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적(李滴)이며, 어머니는 찬성(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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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이다. 좌의정 정언신(鄭彦信)의 손자이며, 정률(鄭慄)의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화순현령·안산군수를 역임하였는데, 모두 혜정(惠政)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조신(朝臣)들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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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서 생산되는 전통 민속주. 유씨 가문에서 가양주(家釀酒)로 1880년경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경상남도 하동의 양조장에서 유양기가 전통 가양주인 알코올 농도 30% 소주를 생산하면서 ‘옥로주’라는 상표를 붙였다. 이는 술을 증류할 때 증기가 액화되어 옥구슬 같은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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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시미리·묵리에 있는 고개. 고개 동쪽에는 굴암마을이 있으며, 골짜기에는 남동쪽에서 북쪽으로 해실천이 흐르고 있다. 동사면의 유수는 해실천을 거쳐 고개 북쪽에 있는 용덕저수지에 고였다가 진위천으로 유입된다. 그리고 서사면은 덕성리 삼배울마을과 시미리 금현마을 쪽으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유수는 진위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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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와 처인구 해곡동에 걸쳐 있는 산. 주 능선은 북서~남동 방향인데, 북서쪽으로는 374고지를 거쳐 무너미고개·함박산으로 이어지고, 남동쪽으로는 바래기산을 거쳐 북쪽으로 문수봉·곱등고개·어은산으로 이어진다. 이곳의 유수는 병목천·해실천을 거쳐 용덕저수지에 모였다가 진위천으로 유입된다. 북사면에는 동부동 관할 호동의 용해곡마을이 있고, 대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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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있는 용인신문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월간잡지. 『The Good People』은 창간 16주년을 맞은 『용인신문』에서 자매지격으로 발행하고 있는 월간잡지이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농업, 교육, 연예, 사회, 종교계는 물론 오랜 기간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외길을 걸으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온 사람들을 소개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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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부. 본관은 순흥(順興). 남편은 안동권씨(安東權氏) 권석기(權錫器)이다. 안씨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였으며, 결혼 후에도 가난한 생계를 삯바느질과 길쌈 등으로 꾸렸고, 1857년(철종 8) 남편이 죽은 뒤에도 더욱 정성을 다하여 시부모를 공경하여 귀감이 되었다. 1872년(고종 9)에 효부·열녀로 정려(旌閭)되었다. 정려문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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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문신. 황보인(皇甫仁)[?~1453]의 사위이며, 홍원숙(洪元淑)의 동서이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한명회(韓明澮)[1415~1487] 등과 함께 문종의 유지를 받드는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권은은 용인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의금부(義禁府)에서 백호(百戶)를 보내어 쫓아가서 체포하여 변방에 안치하도록 건의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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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하(景賀), 호는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이다. 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伉), 할아버지는 권속(權謖),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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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종목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蒲谷面)에서 삼계리 주민 200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가 이끄는 시위대는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금어리(金魚里)로 진출하여 홍종욱(洪鍾煜) 형제가 이끄는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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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약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약 200~250종이 자라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일그러진 편구형으로 10월경에 익는다. 마을 어귀나 동네의 정자목으로 널리 식재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22m, 가슴 직경은 1.18m이며, 수령은 약 200년 정도이다. 지상 4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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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추(士秋), 호는 귀락당(歸樂堂)·행호거사(杏湖居士)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후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추증된 중부(仲父) 이흡(李翕)의 후사가 되었다. 부인은 안동김씨로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의 딸이다. 효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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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있는 용인시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무용 단체. 현재 한국무용협회 용인지부에 소속되어 있는 단체로 청소년들에게 예술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훌륭한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9년 6월 5일 용인문예회관에서 창단 공연을 하였으며 「마주르카」, 「지젤」, 「실비아」, 「호두까기인형」, 「파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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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청정 환경 기술 개발업체. 2002년 5월 법인을 설립하였고, 8개 제품군에 대하여 상표 등록을 하였다. 2002년 11월에 공포탄용 탄피 제조 및 발명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3년에는 생분해성 제품군에 대하여 ISO 14001 인증과 환경 표지 인증서를 획득했다. 2004년 8월에 사단법인 산업기술연구조합 고등기술연구원 내에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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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종직이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집인 『점필재집(佔畢齋集)』권10에 전한다. 본래의 제목은 「문극기행차용인 마사 입경우선원사 차기(聞克己行次龍仁 馬死 入京寓善源舍 借騎: 극기가 용인 행차 때 말이 죽어서 선원의 집에 머물다 말을 빌려 타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이다. 친구인 김극기(金克己)를 조롱해서 지은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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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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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연극협회 용인지부 소속의 연극 단체. 극단 용인에서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해 온 한원식이 지역 연극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설립하였다. 2000년 전문 연극인 10여 명으로 구성된 극단 개벽이 창단되었다. 2001년 4월 21일 김태수 작, 한원식 연출의 「해가 지면 달이 뜨고」를 창단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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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연극협회 용인지부 소속의 연극 단체. 1996년 12월 7일 박남춘 대표가 13명의 단원으로 창단하였다. 1997년 3월 31일 창단 기념 작품으로 이선희 작, 김창율 연출의 「노래하라 그대」를 용인문예회관에서 공연하였다. 1997년 4월 김창율 연출의 공동 창작극 「용인의 별들」로 경기도 소인극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장려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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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있는 한국연극협회 용인지부 소속의 연극 단체. 1997년 6월 극단 용인에서 연극 연출을 맡아 오던 연출가 김창율이 창단하였다. 같은 해 10월 창단 기념 작품으로 「사랑과 슬픔은 같은 길로 온다」를 용인문예회관에서 공연하였다. 2011년 현재 단장은 김창율이며 회원은 10여명이다. 2000년 5월 제10회 경기도아마추어연극제에서 김창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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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근곡리는 백암면 북쪽에 위치한 법정리로, 가창천이 동쪽에서 남류하여 청미천에 유입되고 있다. 1914년에 근삼면과 석곡동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근곡리라 하였다. 석곡동은 돌실에서 유래했다. 본래 죽산군 근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노동리와 종평리 석곡동, 양지군 박곡면 신창리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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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근도테크놀러지의 옥외광고물 제작 공장. 1981년 1월 4일에 근도산업을 설립하였으며, 1985년 6월에는 종합 사인 전시 사업장을 강남구 청담동에 개장하였다. 1985년 9월에는 수입품 대체를 위하여 내부용 시트를 개발하여 시판하였다. 1989년 4월에는 (주)근도트레이딩으로 법인 전환을 하였으며, 엄영철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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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근삼리는 백암면 동단, 즉 원삼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1914년에 양준리 등 여러 리가 통합되면서 근삼면의 이름을 따서 근삼리라 하였다. 본래 죽산군 근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영곡리·양준리와 내수곡리·외수곡리·강촌·가이산리의 각 일부와 양지군 고안면의 백동·입동·봉리의 각 일부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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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 장계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백암면소재지에서 지방도 329호선을 따라 안성 삼죽 방향으로 가면 근삼교를 지나기 전에 장계마을이 있다. 고인돌 유적은 장계 뒷산의 능선(해발 118m)에 위치한다. 유적 주변의 지세는 동쪽에 청미천이 흐르고 이 물줄기를 따라 비교적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확인된 3기 중에 1호의 덮개돌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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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덕은마을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사립 초등 교육 기관. 교육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정명근(鄭明根)은 일제강점기에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포천에 살고 있는 교사 유기헌을 자신의 사랑(舍廊)으로 초빙하여 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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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죽산군 근삼면(近三面) 일부 지역과 원삼면 창동 일부 지역을 병합할 때 근삼면과 창동에서 한 자씩 따서 근창리라 하였다. 근삼면은 죽산군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근일면(近一面), 근이면(近二面), 근삼면(近三面)으로 해서 세 번째 면이란 뜻이며, 창동은 옛 사창(社倉)이 있었기에 유래했다. 본래 죽산군 근삼면 지역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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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 비두와 새말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근창리의 비두와 새말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을 북쪽에 있는 두무산에서 산신제를 지내 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유력한 성씨나 토박이는 별로 없고,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대부분이나, 두 마을의 이장이 합심하여 ‘산제사(산지사)’라고 부르는 산신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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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산포지. 근창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근창리 유물산포지1, 근창리 유물산포지2, 근창리 유물산포지3, 근창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고 있다. 근창리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 새터말의 야산 서사면상 경작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고, 근창리 유물산포지2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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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용인문화원 주최 주부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여성들이 만든 여성 문학동호회. 용인여성문학회는 1993년 ‘글이랑 동인’이라는 명칭으로 결성되었고 2007년에 용인여성문학회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인여성문학회에서는 동인지를 발간하고 시화전을 개최하며 현재까지 꾸준하게 활동해 오고 있다. 회원들 가운데 여러 명이 문단에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용인지부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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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가재월리에 있는 말 목장. 일반인들에게 승마를 널리 보급하고 마필 산업을 발전시킬 목적으로 1995년 5월 10일 준공하였다. 용인금강목장의 면적은 약 16,000㎡이며, 야외 운동장을 비롯해 축사, 실내 운동장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양지파인리조트에서 10~15분 거리에 있다. 용인금강목장이 보유하고 있는 마필은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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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어비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 절터. 어비리 이동저수지에 수몰된 금단사지에 대한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마을에 전해지는 구전에 의하면 어비리 높은재[금단골]에 금단사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폐사되었다고 한다. 폐사된 금단사의 유물들을 어비리 주민들이 수습하여 봉안하고 어비울절[금단사지 하단 300m 지점]을 짓고 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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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7세기 초 백제 양식의 보살입상. 현재 광배(光背)는 없고, 육각형을 이룬 높은 대좌(臺座) 위에 놓인 세장(細長)한 형태의 보살상(菩薩像)이다. 앞면은 조각을 하였으나, 뒷면은 평평하여 옆에서 보면 상을 반으로 자른 듯한 모습이다. 뒷면에는 주조된 면과 일부 잡물(雜物)이 남아 있다. 신광과 두광을 부착하였던 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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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삼국시대의 금동제 반가사유상 형식의 보살상.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에 반가(半跏)한 사유상(思惟像)이다. 왼쪽 발을 내려 둥근 연꽃 족좌(足座)를 딛고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었으며, 오른손은 턱을 괴어 사유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머리에는 다섯 개의 꽃잎 모양이 산봉우리 형태를 이룬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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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통일신라 때의 불상. 전체적으로 풍만한 양감에 8세기 통일신라 금동불 양식과 도식화된 9세기 통일신라 금동불의 대표적인 형태가 혼재되어 있다.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는 없으며 도금의 흔적은 남아 있으나 곳곳에 푸른 녹이 슬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놓았으며, 머리 정상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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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에 있는 산. 금박산은 일명 오봉산(五峯山)이라고도 하는데, 『양지현읍지』에는 ‘주동면 추계리에 있는데, 높이가 4리요, 주위가 25리이다’ 라고 되어 있다. 또한『양지현읍지』에는 ‘고서면 봉림산 아래 주곡리에서 북쪽으로 50리 떨어져 있는 주동면의 금박산 아래로 읍을 옮기고 읍호를 추계(秋溪)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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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전해지는 금속(金屬)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 금석유문(金石遺文)이라고도 하며 이를 연구하는 것을 금석학이라고 한다. 도장 또는 도서를 인각하는 것을 전각(篆刻)이라 하는데, 김정희나, 오세창, 정학교 등이 이 방면의 대가로 손꼽히고 있다. 용인에서는 일호 남계우가 전각한 『도서기(圖書記)』가 있어 그가 나비뿐만 아니라 전각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인물임이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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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석성산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금수암에 대한 상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문헌 자료에도 위치만 명기되어 있을 뿐이다. 조선 후기부터 근대까지의 문헌을 살펴보면, 『경기읍지』에는 “금수암은 현의 동변면 보개산에 있다”고 소개되어 있고, 『용인현읍지』에는 “금수암은 현의 동쪽 13리 보개산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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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 봉불사에 있는 조선 전기 탑재. 태화산(泰華山)에 자리 잡은 봉불사(奉佛寺) 경내에 있는 탑재로, 원래 금수암지에 있었던 것을 김묘인(金妙仁)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고 전한다. 현재 조합되어 있는 현황을 살펴보면, 폭 69㎝, 높이 30㎝의 옥개석 위에 폭 43㎝, 높이 28㎝의 탑신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폭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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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 봉불사에 있는 조선 전기 탑재. 태화산(泰華山)에 자리 잡은 봉불사(奉佛寺) 경내에 있는 탑재로, 원래 금수암지에 있었던 것을 김묘인(金妙仁)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고 전한다. 현재 조합되어 있는 현황을 살펴보면, 폭 69㎝, 높이 30㎝의 옥개석 위에 폭 43㎝, 높이 28㎝의 탑신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폭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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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표시석. ‘금양(禁養)’이란 ‘풀과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숲과 나무를 기르는 일’을 의미하므로 금양계(禁養界) 표석은 땔감 채취 등을 금지하는 구역임을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뒷면에는 구역의 범위도 명기되어 있다. 머리 부분이 둥글게 처리된 원수형(圓首形) 비석으로 장방형 대리석제 받침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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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 속하는 법정리. 금어리는 포곡읍 동쪽 광주시 도척면과의 경계에 위치하며, 에넥스 용인공장이 있다. 1914년에 용인군 수여면 금천리(金川里)와 어매리에서 한 자씩 따서 금어리라 하였다. 금천은 쇠내[金川]가 흘러서 쇠내실이 금천리로 되고, 어매는 마을 형국이 매화나무 밑에서 고기가 노는 모양이라 해서 유래되었다. 원래 옛 용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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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 어매실마을에 있던 서낭당. 금어리 어매실 서낭당은 금어리 어매실마을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둔전 방향으로 약 300m 떨어진 공동묘지가 있는 고개에 있었다. 이 고개를 넘으면 포곡읍 삼계리 두계울이 나오는데, 현재 포곡읍사무소가 그곳에 있다. 신목과 돌무더기로 된 형태로, 신목은 자생 벚나무이며, 그 아래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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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금어리 유물산포지는 경안천의 지류인 금어천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가다보면 금어리 어매실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이 어매실마을의 남쪽에 길게 뻗은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무문토기편과 통일신라시대의 회색 경질토기호와 완 등의 조각이 채집되었다.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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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 통점 북쪽 협곡에서 발원하여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금어천은 금어리 통점마을 북쪽에 위치한 474.7m의 고지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류하면서 쇠내실천 등 10여 개의 세천을 합류하여 둔전리와 유림동의 경계를 흐르다가 둔전리 남단 수포교 부근에서 경안천에 유입되는 하천이다. 금어천은 양쪽 주위에서 유입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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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의금부 관원들의 계첩. 『금오계첩(金吾契帖)』은 조선 후기에 의금부에서 근무하던 관원들의 모임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계첩(契帖)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해주오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1817년(순조 17) 8월에 의금부에서 근무하던 10여 명이 모여 계회(契會)를 마련하고 이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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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금융기관 및 금융 현황. 금융은 경제상 가치 이전의 수단으로서 통화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발생되는 자금의 유통을 의미한다. 즉 가계, 기업, 정부 등의 경제 주체가 자금 모집을 통하여 자금을 배합하고 사용하여 생산하는 자본 유동 모두를 일컬어 금융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 사이에 금융이 이루어지는 채권 및 채무 관계의 질서를 금융 제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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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지역 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 예금 등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업 또는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총칭해서 금융기관이라 한다. 한국의 금융기관은 취급하는 금융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은행, 비 은행 예금 취급 기관, 증권 회사, 보험 회사 및 기타 금융기관으로 대별된다. 여기서 은행은 다시 일반 은행(시중은행,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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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조변(趙汴)[1500~1582]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부터 선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본래 학식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나 천성이 매우 명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안처겸(安處謙)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 뒤에 그와 동서 사이가 되었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호연(浩然), 호는 금재(琴齋). 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趙光祖)가 족숙(族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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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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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부아산 북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금학천은 용인시 내 한복판을 흐르는 경안천의 지천으로 하천 연장은 5.1㎞, 유로 연장은 5.5㎞, 유역 면적은 14.3㎢, 몽리 면적은 5㏊이며, 호안은 6.2㎞의 하천이다. 발원지는 크게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북쪽의 멱조고개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세천이고 다른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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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 1980년대 초 승려 김해동이 포곡읍 금어리에 와서 산 이름을 금어산이라 이름 붙이고, 움막을 지어 해동사라는 이름으로 포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김해동은 중풍 예방을 위한 침을 잘 놓아 인근에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해동사는 2004년 김해동이 떠나자 조계종단에서 인수하여, 사찰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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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정보통신용 부품 전문 제조업체. 1980년 10월 13일 홍익사로 설립되었으며, 1983년 동양정밀공업(주)로부터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드라이버(HDD) 정밀 생산업체로 지정을 받았다. 1987년 삼성시계(주) 정밀 부품 생산업체 지정을 받았으며, 1992년 1월부터는 정보통신기기 무선 고주파 접속기와 케이블 하니스(Cabl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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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대술과 유대건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기계유씨(杞溪兪氏)의 시조는 신라 때 아찬 벼슬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이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신라 멸망 후 고려에 불복하자 고려 태조가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인 기계의 호장을 삼은 것을 연유로 하여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그 후 기계유씨는 유의신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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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지역마다 지형, 기온과 강수량에 차이가 있고 토질이 달라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은 특산물이 생산된다. 특히 한국은 예부터 지역성이 강하여 지방 특산물이 많다. 지방 특산물은 곧 관광 토산품으로 중점 육성되어 그 지역의 브랜드가 된다. 현재 도시화, 산업화에 밀려서 우리 고유의 특산물이나 지역 특성 음식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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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인조 16) 김육이 기묘사화와 관련된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 간행한 책. 『기묘록(己卯録)』은 본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당한 김정국(金正國)의 『기묘당적(己卯黨籍)』과 기묘팔현(己卯八賢)의 한 사람인 안당(安瑭)의 손자 안로(安璐)가 저술한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기묘당적』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인물 94인의 생년·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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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기묘사화의 핵심 인물인 음애 이자와 그의 정치적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조광조가 언제 만났는지 분명치가 않다. 다만 기묘사화가 훨씬 지난 뒤 조광조의 일족이며 함께 친하게 지냈던 조광좌(趙光佐)의 아들인 조항(趙沆)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의 인연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용인의 음애 선산 부근에 사은정을 세웠던 옛 일과 관련해 보면, 조광조와 음애의 분산(墳山)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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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정을 보수하여 고친 기록을 보면, 4인의 인연과 마지막 운명을 알 수 있다. ‘서로 의(誼)를 맺고 또 그 근처에 산소가 있는 언덕과 전원을 사이에 두고 지냈으며 한강 남쪽 용인 땅에 자리를 잡아 정자를 지으니 그 정자 이름이 사은정이다. 대체로 밭갈고 땔나무하고 낚시질하고 나물캐고 하는 네 가지 낙에서 취한 것으로 노년의 생활을 즐길 계획이었다. 또한 사현의 서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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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전의 사람들에게 한복을 1벌이라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예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한복을 일 년에 몇 번 입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별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한복을 종종 입어온 것을 알 수 있다. 태어나서 배냇저고리를 입었다. 물론 예전같이 손수 지어서 만든 배내옷은 아니지만 그 모양새는 예전 모양새 그대로다. 50년대 이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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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의선은 1919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재학 중 2·8독립선언이 있자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그 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경기도 대표 신석우(申錫雨)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 의원이 되었으며, 청원법률심사위원회 위원, 세칙제정위원회 위원, 예산결산위원장 등에 선임되어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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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충정공 김약시(金若時)의 후손이다. 김우형은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657년 정언(正言), 1661년 헌납·사간, 이듬해 집의·홍문관교리를 지냈고, 시독관으로 임금 앞에서 통감강목과 대학을 강론하였다. 1669년 좌부승지, 이듬해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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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2리 마을 초입에는 마을 입구임을 알려주는 장승 2기가 세워져 있고, 근래에 만든 사자상이 장승 옆에 놓여 있어, 변화되는 민속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 앞 대로를 따라 흐르는 천(川)의 물은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마을 주변으로는 논밭이 펼쳐져 있다. 몇 년 전부터 마을에 여러 공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은 공장 반, 집 반 꼴로 되어 버렸다. 공장은 토지 주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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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동 기와집마을의 유래가 된 음애 이자 고택의 부엌은 마루를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독은 앞마당 한켠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우물은 남아 있지만 장독대는 없어진 상태이다. 부엌 안에는 2개의 아궁이가 달린 부뚜막에 2개의 가마솥이 걸려 있고, 뒤쪽으로는 나무광이 놓여 있다. 가마솥 중 한 개의 가마솥은 몸통 주변에 4개의 전이 달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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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동에는 이장을 비롯해, 노인회장, 부인회장, 청년회장, 반장, 새마을지도자, 개발위원 등의 직함을 가진 자들이 마을을 위해 주로 활동을 한다. 이장은 마을 주민과 기금을 관리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는데, 마을의 중요한 사항이 있으면 주민들과 의논을 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시에 전달하기도 한다. 이장 밑에는 반장이 있어 이장의 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부녀회 회원은 연령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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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의례. 용인시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농업이 주산업인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따라서 농업과 관련한 민간신앙이나 세시풍속이 다양하게 행해졌는데, 기우제도 그중의 하나이다. 예전에는 보통 양력 6월 21일경인 하지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뭄이 심하다고 생각하여 지방 관청과 민간을 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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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기재(器哉). 이조판서(吏曹判書) 이경증(李景曾)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이혜(李嵇)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光州牧使) 이희담(李喜聃)으로, 이희담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모두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첫째 부인은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홍현(洪鉉)의 딸인데 이식은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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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해마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 고인이 돌아가신 날을 기일(忌日), 또는 휘일(諱日)이라고 하는데, 대상(大祥)을 지낸 일 년 후부터 매년 이날 지내는 제사가 기제사이다. 보통은 제사라고 부른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고인이 돌아가신 날로, 자시(子時)에 시작해서 닭이 울기 전에 끝내는 것이 원칙이다. 보통 4대 조상인 고조부모까지 모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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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풍(德豊). 자는 기지(起之). 증조부는 윤경복(尹景福), 외조부는 윤완(尹完), 조부는 윤춘령(尹春齡)이며, 아버지는 윤집(尹鏶), 부인은 이수길(李綏吉)의 딸이다. 1584년(선조 17)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635년(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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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 모임 단체. 기타동아리 해야는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용인청년일꾼들이라는 단체에서 문화 강좌의 일환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타 강습을 열기 위해 조직하였다. 기타동아리 해야는 소외된 이웃을 직접 찾아나서는 순회 연주와 일일 호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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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기후는 특정 지역에서 관찰되는 기온, 강수량, 바람 등의 종합적 특징으로서 자연지리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암석을 풍화시키고 토양을 발달시킴으로써 주민 생활 및 그 지역의 생물상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보통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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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지방세력가. 기훤(箕萱)은 신라 말기 안성·죽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방 세력가로 가계나 출생에 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진성여왕 때 실정이 겹치고 재해가 잇달아 일어나던 가운데 국내의 여러 주와 군에서 공물과 조세를 바치지 않으므로 국고가 비어 재정이 궁핍하였다. 이에 신라 조정이 공부(貢賦)를 독촉하자 889년(진성여왕 3) 전국에서 이에 저항하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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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경부고속국도 진·출입로. 1971년 10월 30일에 개통되었으며, 경부고속국도 389.4㎞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기흥영업소에서 관리하며, 입구 차로 1개 소, 출구차로 6개소, 가변차로 2개소로 모두 9개의 차로가 있다. 1일 평균 교통량은 2006년을 기준으로 입구 18,001대, 출구 20,487대 등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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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바른 가치관으로 더불어 사는 민주 시민을 육성하고, 개성과 특리를 신장하는 창의적인 사람을 육성하고, 탐구력과 정보화 능력을 갖춘 실력인을 육성하고, 강인한 체력과 의지력을 지닌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0년 1월 5일 기흥고등학교의 설립 인가(24학급)를 받았다. 2001년 3월 5일 개교하였으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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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기곡면에서의 ‘기’자와 구흥면에서 ‘흥’자를 따서 기흥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용구현과 조선시대의 용인현에 속해 있었던 역참 지역의 하나로 중요한 교통 거점 지역이었다. 1911년 군청이 용인면으로 이전되면서 읍내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이 되면서 읍내와 수진·동변·서변의 3면을 통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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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기흥구 관할 보건의료 기관. 기흥구 지역의 시민 보건 사업, 예방 접종, 진료 및 검사, 각종 건강 정보 제공을 통하여 용인 시민의 삶의 질 향상 및 건강한 지역 사회 조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1985년 10월 기흥면이 기흥읍으로 승격됨과 더불어 1986년 8월 기흥읍 공세보건진료소가 설치되었다. 또한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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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기흥구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의 서쪽에 위치한 기흥구의 행정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85년 10월 1일에 용인군 기흥면이 용인군 기흥읍으로 승격되었고, 2000년 9월 1일에는 용인군 구성면이 용인군 구성읍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 10월 31일, 다시 기흥읍과 구성읍을 합쳐 기흥구로 개편되면서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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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공세동과 고매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기흥동의 유래는 기곡면의 ‘기’자와 구흥면의 ‘흥’에서 두 개의 면을 합치면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용인군 기곡면 지역이었으나, 사기막골의 이름을 따서 기곡면이라 하여 하갈천·행의·한의·공세·고매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흥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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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기흥동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를 구성하고 있는 9개 행정동 중 기흥동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기흥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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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서 봄철 김매기 때 행해지던 민속놀이. 용인시 기흥구 일대에서 행해지던 두레싸움은 두레기를 매개로 봄철 김매기 때 두레 공동노동조직 간에 일어나는 싸움으로, 마을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두레기의 꿩장목을 빼앗아 싸움의 승부를 냈다. 싸움이 격렬해지면 두레기뿐 아니라 악기도 부수고 사람이 심하게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지역에 따라 농기싸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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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서 일어난 3·1운동.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용인 지역 3·1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하여 1919년 3월 말부터 4월 초에 걸쳐 발생하였다. 기흥면 시위운동은 3월 30일 김구식(金九植)과 김혁(金爀)이 주도한 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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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소속 교회. 유태준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초대교회를 닮아가는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이다. 1982년 2월 25일에 성도 7인이 설립하였으며, 2007년에는 제6대 목회자인 유태준 목사가 시무했고, 2011년에는 2010년 6월에 부임한 박재만 목사가 시무했다. 2012년 2월 22일 옥승영 목사가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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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기흥휴게소 운영 업체. 1991년 12월 경부고속국도 기흥휴게소가 준공되었으며, 고속도로시설공단에서 운영하였다. 1995년 4월부터 기흥휴게소가 민영화되어 (주)신호상사가 운영하였으며, 1998년 1월부터는 (주)기흥유통이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다. 경부고속국도 기흥휴게소 관리와 운영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지역 사회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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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는 기흥읍 승격 7주년 기념비. 기흥읍 기록비는 일종의 연혁 비이다. 1914년에 기곡면과 구흥면을 통합하여 기흥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198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11772호에 따라 기흥면은 기흥읍으로 승격되었다. 기흥읍으로 승격된 지 7주년을 맞이하는 1992년에 당시의 읍세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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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용인문화원에서 경기도 용인시 구 기흥읍의 실상을 기록으로 남긴 읍지. 기흥읍은 1985년 기흥면에서 기흥읍으로 승격하였다가, 2005년 10월 31일 기존의 기흥읍과 구성읍을 합쳐 기흥구가 되었다. 용인의 서부 지역에 위치했던 기흥읍은 11개 법정리를 관할하였는데, 1996년 3월 용인군 전역이 시로 승격되면서 급진적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져 지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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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고매동·공세동·농서동에 걸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오산천 지류인 수원천·지곡천·공세천·고매천 등이 유입되는 곳에 신갈저수지가 1964년에 축조되면서 오산, 평택 지역의 홍수위가 조절되고, 이 지역의 곡창 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이 되어 전천후 영농이 가능하게 되었다. 신갈저수지 남쪽에서 흘러나온 물길은 신리천, 장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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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던 공립 중학교. 교훈은 성실이며, 누구나 학교에서 아름다운 도전과 배움을 행하며,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함께 성장하는 위대한 변화를 꿈꾸는 배움터를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인간 중심 교육, 창의 지성 교육, 민주시민교육 예의와 창의력을 지닌 세계인 육성을 교육지표로 삼고 있다. 문화융합형 교육과정을 위한 인적 물적 인프라 구축을 심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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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있었던 계몽 운동 단체. 삶의 현실에 뿌리를 둔 건강한 생활 문화를 창조하고, 지역의 공동체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 민주 발전에 앞장서며, 민중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지원하고, 조국의 자주 민족 통일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확산될 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 지역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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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목표는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실력 있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탐구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데 있다. 교훈은 ‘나와 우리를 알고 참되게 살자’이다. 기흥면 남부 지역에서 신갈초등학교로의 통학이 어려운 관계로 고매리, 농서리 등의 주민들의 주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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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경부고속국도 진·출입로. 1971년 10월 30일에 개통되었으며, 경부고속국도 389.4㎞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기흥영업소에서 관리하며, 입구 차로 1개 소, 출구차로 6개소, 가변차로 2개소로 모두 9개의 차로가 있다. 1일 평균 교통량은 2006년을 기준으로 입구 18,001대, 출구 20,487대 등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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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기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김녕(金寧)은 경남 김해의 옛 지명으로 신라 때는 금관군(金官郡), 고려 때는 금주(金州)로 불렸다.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으로 의성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금주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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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로 용인에서 성장한 인물. 본관은 김해. 증조부는 김진후(金震厚)[비오, 1738~1814], 할아버지는 김택현(金澤鉉), 아버지는 김제준(金濟俊)[이냐시오, 1796~1839]이고 어머니는 장흥고씨 우르슬라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김재복(金再福), 족보에 올려진 이름은 김지식(金芝植),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이름은 김대건(金大建), 세례명은 안드레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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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김덕붕의 선정비. 1571년(선조 4) 양지현감에 부임하여 1576년(선조 9)까지 재임한 김덕붕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의 용동중학교 정문 못 미쳐 동아일레콤 담장에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신과 이수가 일석(一石)으로, 비좌는 임시로 마련하여 비신을 고정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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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김도태[1891~1956]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1910년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1910~1912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삼악학교(三岳學校)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 1912년에는 만주 신흥무관학교 교사가 되었다. 1913년 다시 오산학교로 돌아왔다가, 1916년 일본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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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주원은 대한제국의 군부 경리국 제1과장 3등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황해도 연안군과 전라남도 옥과군의 군수를 지내는 고위 관직에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그 후 중국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가, 1915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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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출신의 효자. 상촌(桑村)에서 자수성가하였으며 평소에 아버지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1950년 6·25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피란하였으나 늙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고향에 남았다. 김동현은 비행기가 마을을 폭격하자 아버지를 업고 안전한 곳으로 피란하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때 다른 집들은 폭격을 당하여 대부분 큰 피해를 입었으나 그 집만 무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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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에 있는 김동현의 효자비.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을 갖추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늙은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남는 등 효행이 지극했던 용인 출신 효자 김동현(金東鉉)의 효자비이다. 유방동(柳防洞) 버드실에 있다. 1950년 대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비좌(碑座)와 월두형(月頭形)의 비신(碑身)으로 조성되어 있다. 비신 앞면에는 “효자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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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소년회가 개최하였던 교육 행사. 김량동화회는 1920년대 이후 전국에서 활발히 전개된 소년운동의 일환으로 개최된 교육 행사이다. 당시 소년운동은 유교 윤리의 폐습과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으로부터 조선의 소년·소녀들을 해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근대 교육을 통하여 소년·소녀들이 자유로운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반봉건 근대화운동이자, 반일민족운동으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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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인민군의 남진을 지연하기 위해 벌어진 전투.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인민군의 일부 부대가 김량장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자,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고 있던 국군 제8연대 2대대가 급히 투입되었다. 이들은 인민군을 기습하여 김량장에서 축출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인민군의 반격에 김량장 서쪽으로 이동했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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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을 축출한 전투. 1951년 1월 25일을 기하여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UN군이 중공군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펼치도록 하고, 한강을 향해 북진하라고 명령했다. 이 작전이 이른바 선더볼트 작전이다. 1951년 1월의 김량장 전투는 이 작전의 일환으로 터키여단이 중공군 제50군 예하 제49사단 제447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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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법정동. 고려시대에는 김령역이 조선시대에는 김령역과 김령원이 있었다. 이곳에 시장이 서던 까닭에 김령장으로 불렸는데, 뒤에 소리가 변해 지금의 김량장이 되었다. 또한 김량(金良)이라는 사람이 처음 시장을 연 까닭에 그의 이름을 따서 김량장이 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용인군 수여면(용인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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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에서 ‘김량장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량장동은 용인시 처인구의 중심 지역에 있는 동(洞)으로, 동쪽으로는 내사면 송문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구성면, 남쪽으로는 이동읍, 북쪽으로는 포곡면과 인접해 있다. 1977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김량장동과 관련한 이야기는 1972년과 1977년,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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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 용해곡 상봉에서 발원하여 광주시 서하리에서 팔당호로 흘러드는 하천. 한강의 지류이기도 한 경안천(慶安川)은 유역면적 561.02㎢ , 유로연장 49.3㎞, 하폭 1,930㎞, 하천연장 22.5㎞인 국가하천이다.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국도가 경안천 유역을 관통하고 있으며, 유역 내에 용인시와 광주시, 곤지암 인터체인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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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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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논에서 김을 맬 때 부르는 논일 노래. 김매기 소리는 논에 난 잡초를 제거할 때 부르는 노동요이다. 용인 지역에서 불리는 김매기 소리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명칭 자체도 「찍었네」, 「둘레야」, 「곯았네」, 「오홀로 가세아」, 「방아 소리」, 「상사듸야」, 「얼카뎅이냐」, 「대허리(단허리)」, 「오하 소리」 등 다양하다. 이중에서 「찍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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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명화는 용인군 모현면 부계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을 무렵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의병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된 이후 용인·광주·양지·죽산·양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활발히 벌였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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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온양. 아버지는 정돈지(鄭敦之)이고, 남편은 서흥김씨(瑞興金氏) 통덕랑 김배(金培)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이천(利川)의 거마산으로 피난하였으나 청군(淸軍)이 추격하여 왔다. 이에 욕을 면키 어렵고 그 몸이 더렵혀질까 두려워 두 딸과 함께 연못으로 투신하여 정절을 지켰다. 지금도 이천 자래동에 세 무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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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김범문이 용인 지역을 공격하였던 사건. 김범문이 한산주를 공격할 때 한산주의 직할 영현인 거서현이 그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거서현은 지금의 용인 지방으로 비정되고 있으므로 김범문의 난을 당하여 직접적인 전투를 치룬 정병들이 바로 용인 출신의 장정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범문의 할아버지 김주원은 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하여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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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호는 1937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주로 중국 난징[南京]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포섭하거나 남경군관학교 생도들을 모집하는 등 지하활동을 하였다. 이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44년 8월 15일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의 탐지를 받고 붙잡히고 말았다. 일제에 체포된 김병호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6년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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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사근은 농사를 짓다가 1907년 임오교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수백 명의 의병들과 함께 경기도 죽산·광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초에는 정주원 의병부대에 들어가 경기도 용인·죽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주원 의병부대가 당진 주재소를 습격하는 반일 항전을 일으켰을 때 여본구리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치열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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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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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사철의 효자비. 옛 용인현 관아가 있었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지방도 393호선 변의 선정비군 내에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을 갖추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59㎝로, 비좌 높이 40㎝, 너비 71.5㎝, 두께 45㎝이고, 비신 높이는 119㎝, 너비 상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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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의 열부. 본관은 남양. 홍락원(洪落源)의 딸로 태어났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집(金鏶)의 손자 김상동(金相東)의 처이다. 남편이 병을 얻어 지성으로 간병했으나 자리에 누운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남편의 죽음에도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늙은 시모를 위안하고 진정시키기에 애를 썼다. 망부를 장례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수의를 손수 마르고 꿰매어 입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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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인 출신의 효자. 김상술은 편모 슬하에서 몹시 가난하게 살았으나 효행이 특출하여 늘 노모에게 고깃국을 끓여드리기 위하여 나무와 숯을 구워 용인 장에 내다 팔았다. 대대리에서 용인 장까지는 왕복 30여리가 훨씬 넘었는데, 어느 날 숯을 지고 장에 나와 늦도록 팔지 못하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 겨우 팔았다. 김상술은 서둘러서 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지게 꼭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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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김상술의 효자비. 김상술의 노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온 마을 사람들이 본받게 하고자 세워진 비이다. 양지면 대대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다른 비들과 함께 세워져 있다. 비좌와 월두형의 비신을 갖추고 있는 효자비이다. 비신 앞면에 “효자김상술지비(孝子金相述之碑)”라 새겨져 있다. 원래의 비는 도로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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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인 출신의 효자. 김상익은 향리에서 글방을 차려 훈장을 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좌수의 직책을 맡아 향치에 힘썼다. 평소 효심이 두터웠기로 마을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중 부친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자 몸소 탕약을 끓여 간병하였고, 천수를 다하자 멸성지정(滅性之情)으로 애도하였다. 예에 어긋남이 없이 장례를 마친 후 3년의 거상 중에 하루도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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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익의 효자비. 양지면 제일리 마을 입구 도로변 오른쪽에 남서향(南西向)으로 세워져 있다. 김상익의 부친에 대한 지극한 효행과 언행을 마을 사람들이 사표로 삼을 수 있도록 마을 입구에 세워졌다. 시멘트 기단 위에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옥개석을 갖추고 있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에 황색 운모가 혼입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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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이옥(爾玉), 호는 경호(耕湖). 김새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살았으며, 슬퍼함이 형언할 수 없었다. 그의 효행에 하늘도 감복하였다. 이를 테면, 제사를 지낼 음식이 다 떨어지면 꿩이 부엌으로 날아들었고, 사슴 한 마리는 묘 옆을 지키며 사람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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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다. 1657년(효종 8) 진사가 되었으며,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이 된 후 이조좌랑·정언·지평·부교리·수찬·헌납·교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674년 겸보덕(兼輔德)에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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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남은 일찍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엿보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21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遠三面)에서 황경준(黃敬俊)·김은수(金殷秀)·최상근(崔相根)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2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원삼면사무소 앞에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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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호(金灝)이다.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고, 1696년(숙종 22)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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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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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의 열부. 본관은 상주(尙州). 부사를 지낸 황탁(黃鐸)의 딸로, 김치복의 아들 통덕랑(通德郞) 김수로(金洙老)의 처이다. 사주단자로 혼약을 맺었던 김수로가 불행히 요절하자 부음을 듣고 생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약혼자의 초상을 치르기 위하여 소복으로 삿갓가마를 타고 시댁을 찾았다. 3년 동안 상을 치르며 하루 세 번씩 상식을 올리고 3년 마지막 탈상 때 파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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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김순일은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부대장이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8월에는 군대를 해산하는 조치를 취했다. 군대 해산은 이전의 의병 운동을 의병 전쟁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투쟁에 가담하였다.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의병 활동이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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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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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김세필 묘역 안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억의 선정비. 김억이 음죽현감 재직 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도장골 경주김씨 선영 내 김억 묘의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비신 앞면에는 “현감김공억청백선정비(縣監金公嶷淸白善政碑)”라고 되어 있고, 왼쪽 끝에 “천계오년삼월 일립(天啓五年三月 日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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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달은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21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에서 황경준(黃敬俊)·김은수(金殷秀)·최상근(崔相根) 등과 만세 시위 운동에 참가하였다. 김영달은 2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원삼면사무소 앞에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는 일제 경찰들이 시위 군중을 향하여 총을 발사함에도 불구하고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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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거주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여(錫汝), 호는 연농(硏農)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용인현 수여 남동에서 거주하였다.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소홀함이 없이 항상 곁에서 모시고 입에 맞는 음식과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준비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여 용인현에서 이름난 효자였다. 1859년(철종 10) 사마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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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김영희의 정려각. 김영희의 본관은 경주로, 조선 후기인 1826년(순조 26)에 경기도 광주시 야곡에서 태어났다. 15세 때인 1840년에 용인현 남동마을로 이사하여 살았다. 가세가 몹시 곤궁하였으나 정성을 다해 양친을 부양하였다. 34세 되던 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모친이 별세하자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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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충정공 김약시(金若時)의 후손이다. 김우형은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657년 정언(正言), 1661년 헌납·사간, 이듬해 집의·홍문관교리를 지냈고, 시독관으로 임금 앞에서 통감강목과 대학을 강론하였다. 1669년 좌부승지, 이듬해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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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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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에 있는 병자호란 때 의병장 김원립의 기념비. 경주김씨 계림군 김균(金稛)의 9세손이었던 갈천 김원립은 1590년(선조 23)에 증 참판 김성진의 아들로 출생하여 1613년(광해군 5)에 등과하였고, 대과를 거쳐 능주목사가 되었다. 김원립은 능주목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649년 9월 7일, 김원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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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수원부 양지현(현재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살던 선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1806년(순조 6) 각 지역 유생의 건의에 따라 예조에서 왕에게 효자를 보고하였는데, 이때 증직(贈職)의 특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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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인 출신의 효자. 김유는 도적들이 밤에 칼을 들고 집안에 침입하여 그 어머니를 찌르려 하자 맨 몸으로 달려들어 대신 죽었다. 그의 아내와 딸 역시 그 뒤를 이어 따라 죽었으나, 어머니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이 일이 임금님께 전해지자 효·열 3개의 정려(旌閭)가 내려졌다고 전하나, 읍지에 기록만 있을 뿐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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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김유의 초상화. 단령(團領)과 오사모(烏紗帽)를 갖춘 전형적인 관복본의 초상화로 얼굴과 몸체 모두 좌안 9분면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 ‘검재김선생화상 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 六十四歲時寫)’라고 표제를 종서(縱書)하여 검제 김유의 나이 64살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은 사모를 썼으며, 짙은 녹색의 단령을 입었다. 두 손은 공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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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김유의 초상화. 단령(團領)과 오사모(烏紗帽)를 갖춘 전형적인 관복본의 초상화로 얼굴과 몸체 모두 좌안 9분면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 ‘검재김선생화상 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 六十四歲時寫)’라고 표제를 종서(縱書)하여 검제 김유의 나이 64살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은 사모를 썼으며, 짙은 녹색의 단령을 입었다. 두 손은 공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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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김유의 초상화. 단령(團領)과 오사모(烏紗帽)를 갖춘 전형적인 관복본의 초상화로 얼굴과 몸체 모두 좌안 9분면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 ‘검재김선생화상 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 六十四歲時寫)’라고 표제를 종서(縱書)하여 검제 김유의 나이 64살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은 사모를 썼으며, 짙은 녹색의 단령을 입었다. 두 손은 공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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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부. 본관은 안동(安東). 통덕랑 권재응(權載應)의 딸이며, 동몽교관으로 추증된 의성김씨 김유성(金維城)의 처이다. 의성김씨 가문은 김치복과 그의 며느리 황씨, 손부(孫婦) 조씨 등 3세에 걸쳐 정려를 받은 가문으로 증손부 권씨가 정려문을 받음으로써 4세에 걸쳐 효자·효부·열녀의 정려를 받은 가문이 되었다. 병환이 위중한 시아버지를 위해 남편과 함께 3일간 기도를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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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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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경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건립된 전통 가옥. 안채와 사랑채를 두이(二)자로 배치하고, 사랑채를 길 쪽으로 개방하여 지은 집이다. 정남향의 동사택인데 서사택처럼 우당좌주의 간잡이를 선택하고 있다. 현관은 동남쪽 모를 접어서 일곱 개의 계단을 놓고 설정했다. 뒤로 건넌방과 작은 부엌이 배치되어 있는데, 건넌방에는 모서리에 ㄱ자형 창을 시설하고 뒤쪽 부엌에는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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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몽골 침입시 처인성 전투에서 승리한 승장. 일찍이 중이 되어 백현원(白峴院)에 머무르고 있던 중에 몽골의 침략을 받았다. 1232년(고종 19)에 처인성(處仁城) 전투와 1253년(고종 40) 충주성 전투에서 몽골군을 크게 격퇴하였다. 1232년(고종 19)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처인성(處仁城)에서 처인성민들과 함께 몽골의 원수 살리타[撒禮塔]를 활로 쏘아 죽이고 몽골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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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은수는 당시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에서 여인숙을 경영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모색하였다. 각지의 독립운동 소식을 주민들에게 전파하면서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던 가운데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주민들을 규합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3월 21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좌항리에서 황경준(黃敬俊)·최상근(崔相根)·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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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이중의 선정비. 1782년(정조 6) 용인에 부임하여 1783년(정조 7)까지 재임한 김이중의 선정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 도로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옥개석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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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통 가옥. 김인화 가옥은 사랑채를 배치하고 행랑채까지 둔 집으로 박곡리에서는 가장 큰 집 가운데 하나이다. 집의 상량문에 병자년(丙子年)이라 쓴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에 지은 집이다. 이즈음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민족 전체가 수난을 겪던 시기로서, 당시에 농촌에서 이 정도 큰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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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일찍이 용인 탁영봉(濯纓峰)의 한림대에서 김구(金龜) 등과 학문을 하였다. 그에 따라 봉우리도 김일손의 호를 따 탁영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이 되었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다가 곧 정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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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장옥은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의병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된 이후 용인·광주·양지·죽산·양성 등지를 주무대로 의병 활동을 활발히 벌였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일진회 등의 친일 분자를 처단하는 등 항일 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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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재천은 26세의 나이에 이익삼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제2차 용인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익삼 의병부대는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제2차 의병 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부대로, 30~40명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주요 활동지는 경기도 광주·용인·죽산·양성 등지였으며, 1908년 1월에서 1909년 6월까지 군수금 모집과 교전 활동을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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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증조는 지중추부사 김영유(金永濡), 할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 아버지는 김세필(金世弼)이며, 외조는 이탁(李鐸)이다. 김저는 1539년(중종 34)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박사, 이조좌랑을 지냈다. 1545년(명종 1)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중형을 받고 안동으로 유배되었으며, 1547(명종 2)년 벽서(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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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김정석은 출생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장한 후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동진리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는 한편 상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던 중 1909년 5월 이덕경 부대에 투신하여 의병이 되었다. 이덕경의 의병 활동으로 현재 알려진 것은 주로 군수품 확보 투쟁에 관한 것이다. 1909년 6월 의병장 이덕경 및 동료 의병 1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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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주원은 대한제국의 군부 경리국 제1과장 3등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황해도 연안군과 전라남도 옥과군의 군수를 지내는 고위 관직에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그 후 중국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가, 1915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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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광교산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座) 김영(金瑛)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이며, 어머니는 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경상도·함경도의 병영에 근무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동부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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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 자는 수보. 아버지는 진사 김구(金龜)이다. 김집은 가난하였지만 부모를 섬기는 일에 성심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을 앓자 변을 맛보아 징험하고 엉킨 머리에서 이가 떠나게 하였다. 어머니가 꿩을 먹고 싶다고 하자 부엌에 들어가 꿩을 잡았고,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이를 구해 공양했다. 마침내 상을 당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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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庵). 조부는 김려(金濾), 아버지는 형조참의 김언침(金彦沈)이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고, 156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570년에 검열(檢閱)이 되고, 이후 대교·봉교·전적·형조정랑·검상·사인·이조정랑 등의 관직과 지평·집의·정언·헌납·사간·수찬·교리·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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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연은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주민들을 규합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3월 21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에서 황경준(黃敬俊)·최상근(崔相根) 등 200여 명과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원삼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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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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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서흥(瑞興). 자(字)는 여문(汝文), 호(號)는 창죽헌(倉竹軒)이다. 아버지는 충무위 부사과 김린(金燐)이다. 죽산부 양지현(陽智縣) 월노동(月老洞)[현재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에서 태어났다. 1555년(명종 10) 6세 때 서당(書堂)에서 글을 깨우쳐 즉흥시를 지었으며, 9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그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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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 자는 수지(綏之), 호는 졸암(拙庵).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도를 잘 알고 시행하였으며, 극진하고 성실하게 부모를 공경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간절히 기도하던 중 어느 날 탁발승이 나타나 비방을 알려 주었는데 이는 참으로 구하기 힘든 약이었다. 전전긍긍 애태우던 중 부인이 이유를 묻자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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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매능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치복의 정려각. 김치복 효자정려각(金致福 孝子旌閭閣)은 조선 후기인 1831년(순조 31)에 명정된 김치복 효자정려문부터 1860년(철종 11)에 명정된 권씨 효부정려문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의성김씨 일문에서 나온 효자·열녀·효부인 김치복 효자정려문, 황씨 열녀정려문, 권씨 효부정려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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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였다. 1759년(영조 35)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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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오석(吾石, 烏石), 본명은 김학소(金學韶)이다. 김혁은 1875년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1900년 1월 육군 참위로 임관, 육군정위로 군무하던 중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되자 항일 투쟁을 결심하고 고향인 경기도 용인으로 돌아왔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여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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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상리에 건립된 전통 가옥. 마을 안길에서 고샅으로 들어오면 세 번째에 있는 집이다. 김학수 가옥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에 안채만 따로 지었다가, 20여 년 뒤에 사랑채를 지었다. 안채를 지은 후 생활 형편이 나아지자 사랑채를 다시 증축한 것이다. 집터는 이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좋은 명당자리라고 한다. 자좌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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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서흥(瑞興). 할아버지는 충무위 부사과 김린(金燐)이고, 아버지는 김충수(金忠守)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버지 김충수가 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농민을 규합해 의병을 조직하여 10월 말경에 죽산(竹山)의 청용산(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옥신리 경계)에 주둔하고 있던 왜장(倭將) 후쿠시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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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현은과 김구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인도 남천축 출신의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 10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두었다. 그 후 10세 구형왕(仇衡王)이 532년(법흥왕 19) 신라에 항복하고 상등이라는 작위와 가락을 식읍으로 하사받았으며, 그의 아들 김무력(金武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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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염을 시조로 하고 허구년을 파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성(姓)은 원칙적으로 아버지를 따른다. 그러나 유독 어머니의 성을 따라 가문을 창업하고 2천여 년을 이어온 성씨가 있다. 바로 허씨(許氏)다. 김해(金海)·하양(河陽)·양천(陽川)·태인(泰仁) 네 본관의 허씨들의 시조 어머니는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이다. 허 황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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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오석(吾石, 烏石), 본명은 김학소(金學韶)이다. 김혁은 1875년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1900년 1월 육군 참위로 임관, 육군정위로 군무하던 중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되자 항일 투쟁을 결심하고 고향인 경기도 용인으로 돌아왔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여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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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혁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비. 김혁(金爀)[1875~1936]의 본명은 학소(學韶), 호는 오석(吾石)이고 경주김씨 갈천공파, 김원립의 11세손이다. 1875년 10월 6일,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에서 출생, 육군정위로 경성시위대 보병으로 근무하다가 군대의 해산으로 낙향하였다. 1919년 3월, 용인 신갈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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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혁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비. 김혁(金爀)[1875~1936]의 본명은 학소(學韶), 호는 오석(吾石)이고 경주김씨 갈천공파, 김원립의 11세손이다. 1875년 10월 6일,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에서 출생, 육군정위로 경성시위대 보병으로 근무하다가 군대의 해산으로 낙향하였다. 1919년 3월, 용인 신갈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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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김현수는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1909년 음력 3월 10일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소운동의 이재봉(李在鳳)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징취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를 끌고 경기도 용인군 고석동(古石洞) 덕현(德峴)으로 가서 군자금 5원을 거두었다. 그 후 이익삼 의병장과 더불어 경기도 용인군 상동면 금현 김종옥(金鍾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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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숙(平叔). 1735년(영조 11)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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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개화파 김홍집의 불망비. 김홍집이 관찰사로 재임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 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신은 월두형이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76㎝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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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중(子中), 호는 낙애(樂涯). 1691년(숙종 17)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갑과(甲科) 제2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지사(知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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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입는 옷.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출생과 동시에 쌀깃에 싸 두었다가 3일 또는 일주일이 지난 후 목욕을 시킨 후에 입히는 옷이다. 입히는 시기는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었으며, 태어난 후 바로 입히거나 임의대로 입히는 경우도 많았다. 아기의 보온과 위생에 중점을 두고, 품이 크고 넉넉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에 좋고 입고 벗기기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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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향수산에 서식하는 딱따구리과에 속하는 새. 딱따구리과에는 크낙새·쇠딱따구리·청딱따구리·까막딱딱구리·오색딱따구리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9종류가 분포한다. 이 가운데 개미잡이·붉은배오색딱따구리는 철새이고, 크낙새는 한국 특산종이며, 청딱따구리는 한국과 일본 특산종이다. 날개 길이는 25㎝, 몸 길이는 46㎝ 정도로 온몸이 검은 새이다. 수컷은 머리 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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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와 맹리에 걸쳐 있는 산. 마을에서는 태미산·퇴비산·까진봉 등으로 부르며, 태미나 퇴비 등의 명칭은 8부 능선에 테뫼식 토축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테뫼산이 태봉산으로 변음된 것이다. 까진봉은 산사면을 깎아 내린 다음 안쪽의 흙을 파서 깎여 나간 경사면에 판축한 것이 봉우리 8부 능선을 한바퀴 돌았으므로 그 형태를 보고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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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야산 전역에 분포하는 꿩과에 속하는 새. 꿩은 한자로 치(雉), 야계(野鷄), 개조(介鳥) 등으로 불리며, 우리말로는 수컷을 장끼, 암컷은 까투리라 한다. 꿩과에는 세계적으로 190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꿩은 아시아 동남부에서 중국 동북 지방에 걸쳐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토와 제주도를 비롯하여 육지와 4㎞ 이상 떨어지지 않은 큰 섬에 분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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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야산 전역에 분포하는 꿩과에 속하는 새. 꿩은 한자로 치(雉), 야계(野鷄), 개조(介鳥) 등으로 불리며, 우리말로는 수컷을 장끼, 암컷은 까투리라 한다. 꿩과에는 세계적으로 190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꿩은 아시아 동남부에서 중국 동북 지방에 걸쳐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토와 제주도를 비롯하여 육지와 4㎞ 이상 떨어지지 않은 큰 섬에 분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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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내가 꼬마신랑이었어. 키 작다고 나만 맨날 꼬마신랑 시키네.” 학일마을 면민의 날이나 마을 행사 때마다 꼬마 신랑역을 하고 있다는 강춘자(67세) 씨. 꼬마신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 70년대 후반에 인기를 끈 꼬마신랑 아역배우가 떠올랐다. 어떤 행사인지 여쭸더니 면민의 날 행사를 자랑하듯 늘어놓았다. 그가 보여준 꼬마신랑 옷은 전통혼례 때 남자들의 복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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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남자들이 들에서 꼴을 베며 부르던 노동요. 「꼴노래」는 남자들이 들에서 꼴을 베면서 부르던 노래로, 지게를 지고 가면서 부르는 「지게동발」과 비슷한 민요이다. 용인 지역에서는 소의 먹이로 쓰이는 풀을 꼴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용인 지역에서 불리는 「꼴노래」는 「지게동발」의 사설처럼 통속 민요인 「청춘가」나 「백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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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자연농원이란 이름으로 1976년에 개장한 에버랜드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있는 종합 행락지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놀이동산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2002년 세계 유원지 입장객수 순위에서 6위에 올랐다. 삼성 그룹의 하나인 삼성 에버랜드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6년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영원과 활력을 의미하는 ‘에버(EVER)’와 자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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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야산 전역에 분포하는 꿩과에 속하는 새. 꿩은 한자로 치(雉), 야계(野鷄), 개조(介鳥) 등으로 불리며, 우리말로는 수컷을 장끼, 암컷은 까투리라 한다. 꿩과에는 세계적으로 190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꿩은 아시아 동남부에서 중국 동북 지방에 걸쳐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토와 제주도를 비롯하여 육지와 4㎞ 이상 떨어지지 않은 큰 섬에 분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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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서 이주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주국은 정종(定宗)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1721년(경종 1) 3월 23일 용인 원삼면 문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함(李函)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陵城具氏)이다. 이주국이 태어나던 날 밤 부친의 꿈에 한 마리 검은 용이 대들보를 타고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