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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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沙- |
영어의미역 | Daesa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대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갑철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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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4,058㎢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상덕리에 속함 |
변천 시기/일시 | 1978년 -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상덕리가 부산직할시 북구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89년 - 부산직할시 북구 강동동에서 부산직할시 강서구 강동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강서구 강동동에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은로 개편 |
관련 지명 | 대사 1구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1통·2통 |
관련 지명 | 대사 2구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3통·4통 |
관련 지명 | 대사 3구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5통·6통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 있는 자연 마을.
서낙동강이 범람할 때마다 쌓인 모래가 형성한 큰 언덕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대사리(大沙里)라고 불렀다. 대사 마을은 대사 1구, 대사 2구, 대사 3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사 1구 마을은 본래 대사 마을로 불렸고, 2구 마을은 400~500년 전에는 늪지대로 황새가 많이 서식한다고 관마(鸛馬)라고 하였다. 대사 3구인 강동동 5통은 평진(平津), 강동동 6통은 대평(大平) 마을로 불렀다.
대사 마을은 400~500년 전 박씨와 지씨가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본 마을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김해도호부 하동면에 속하였으며,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1912]에는 김해군 덕도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락면에 편입되어 김해군 가락면 상덕리에 속하였다. 이후 1978년 부산직할시 북구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 부산직할시 북구 일부와 경상남도 김해군과 의창군 각 일부를 합하여 신설된 부산직할시 강서구에 속하였다가,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 속하여 현재에 이른다.
대사 1구 마을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우에다 요시오[植田義夫]의 개인 농장이 개설되었는데, 1978년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으로 바뀌었고, 여기에서 1945년 부산경남화훼원예농협을 창설하였다. 대사 2구 마을은 김씨, 지씨, 유씨의 집성촌으로 갈대밭을 개간하여 벼와 보리농사를 주로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배 재배가 이루어지며 한때 배 산지로도 유명하였다.
서낙동강과 평강천 사이 삼각주상에 발달한 마을로 강동동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서낙동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모래 언덕이 핏대섬, 딴치, 영천 등의 명칭으로 남겨져 있다.
대사 마을은 과거 하운을 이용한 나루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으나, 육로 교통이 발달하며 부산과 김해를 연결하는 교통 요지가 되었다. 마을의 북단에 남해 고속도로가 동서로 가로질러 통과하며 북부산 톨게이트가 있어 관문의 역할을 한다. 그 남쪽으로 부산 김해 간 국도 14호선과 부산 김해 간 경전철이 지난다. 국도 14호선은 교통량의 증가로 현재 왕복 8차선으로 확대되었다.
대사 1구 마을에는 대사초등학교와 대사교회, 부산강동우체국, 부산경남원예농협 본소와 화훼공판장, 양수장, 김해교[선암 다리]가 있고, 대사 2구 마을에는 강동동 주민자치센터와 강동파출소, 강동농협 본소와 하나로마트 농산물산지유통센터, 강동보건지소, 대사경결교회, 소심어린이집 등의 편의 시설이 있으며, 대사 3구 마을에는 할매 당산과 태고종 용화사가 있다. 이 지역에는 1990년대부터 사상·김해 공단 근무자들이 유입되어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하였으나, 현재는 그들이 모두 떠나고 농업이 토박이들의 주 소득원이 되고 있다. 대사 1구 마을은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이 농업 기반을 제공하며, 대사 2구 마을은 깻잎 특산지로 알려져 시설 원예 농업이 발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