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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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福泉洞古墳群-號出土板甲- |
영어의미역 | Plate Armor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 Site 57 in Bokcheon-dong in Busan |
이칭/별칭 | 복천동 고분군 57호 묘 출토 판갑옷,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종장판 정결 판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복천동 50]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현주 2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의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철제 판갑옷.
1989년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에 대한 제3차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에서는 4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판갑옷이 출토되었다. 현재 복천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판갑옷은 부산·김해·울산·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4세기 대의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갑옷의 일종으로, 철판을 못으로 고정하여 만든 판갑옷이다. 주로 대형 고분에서 많은 무기류와 함께 출토되고 있어 매장된 주인공이 전사적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로로 긴 철판을 못으로 연결하여 만든 철제 갑옷으로, 작은 비늘 같은 쇳조각을 가죽으로 엮어 만든 비늘 갑옷[찰갑(札甲)]과 대비하여 판갑(板甲)이라고 한다. 좌우 전동부(前胴部)[몸통 앞부분]는 몸통 부분 2매씩과 양 옆구리 부분 2매씩으로 구성되었고, 후동부(後胴部)[몸통 뒷부분]는 3매로 구성되었다. 몸통 뒷부분의 상부에는 뒷목 부분을 방어하기 위한 후경부(後頸部)[뒷목 가리개]가 반달 모양 철판에 에워싸였고, 좌우 양옆 목을 에워싼 반달 모양 측경판(側頸板)[옆 목 가리개]이 있어 착장자의 위세를 돋보이게 한다.
갑옷의 상단부 가장자리는 구멍을 촘촘하게 뚫고 가죽끈을 꿰매어 끝마무리하였고, 갑옷의 맨 밑단에는 가로로 긴 철판[도련판]을 대어 갑옷의 형태가 틀어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좌측과 우측 옆구리 부분에 2개의 개폐 장치를 두어 전동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장치하였으며, 앞섶 부분은 가죽을 안팎으로 감싸 끝단을 마무리하였다. 한편 갑옷을 착장하고 전동부를 여미기 위한 고정용 구멍이 양 옆구리 쪽에 세로로 2개씩 나 있으며, 후동부에는 어깨에 걸치기 위한 멜빵용 구멍이 4개 있다. 크기는 높이가 52.8㎝, 후동부 최대 폭이 32.4㎝이다.
4세기 대에 해당하는 종장판 철제 갑옷의 지판(地板)[관(棺)의 밑바닥 널] 구성과 비교하였을 때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판갑옷의 가장 큰 특징은 양 옆구리에 해당하는 무판을 각각 2매로 짜고, 그것이 기능적으로 개폐 기능을 겸비하여 자유롭게 좌우 개폐가 가능하게 설계하였다는 점이다. 개폐 장치는 좌우 앞 몸체와 뒤 몸체 사이에 세로로 길게 가죽을 덧대고, 철판 외연을 따라 1㎝ 간격으로 뚫은 구멍을 통해 가죽으로 엮어 유동성을 확보하였다. 특히 동체부를 구성하는 철판은 짧게 재단되어 길이로 이어 붙인 부분이 다수 확인되고, 뒤 몸체는 작은 철판을 덧붙이는 등 수리의 흔적이 확인된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57호 출토 판갑옷은 4세기 대에 세로로 긴 판갑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지판의 배열을 후동판 3매로 구성한 점, 목 뒷부분의 연결 역시 세로로 긴 철판을 연결한 점, 섶판이 없는 점 등에서 비교적 이른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지판의 재단이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동부와 무판의 일부를 자른 후 그 길이가 짧아 다시 덧붙인 점, 그리고 얇아진 부위를 철판을 덧붙여 수리하는 등 판갑 제작에 일정한 정형성이 없는 점으로 보아, 매장 의례에 사용하기 위하여 급하게 제작되어 나타난 양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