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 소보 수보 기념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943
한자 南方沼洑修洑記念碑
영어의미역 Stone Monument for the Southern Pond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39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차철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기념비
재질 화강암
크기 118㎝[높이]|31㎝[너비]|11㎝[두께]
건립 시기/일시 1940년 5월연표보기 - 건립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395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마을 소작인들이 저수지를 건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장안 반룡리 상평(上坪)과 하평(下坪)의 토지는 비옥하나 물대기가 어려워 가뭄이 들면 흉작이 들었다. 1939년 가뭄이 크게 들었는데, 경상남도회(慶尙南道會)의 보조금 2,500엔과 마을 지주들이 부담한 1,698엔으로 저수지 둑을 쌓았다. 둑의 높이는 3승, 길이 27.2m[90척], 폭 2.1m[7척], 깊이 6.96m[23척]이었다. 관개 시설이 확충되어 물 걱정이 없어지자, 1940년 5월 소작인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를 세웠다.

[위치]

남방 소보 수보 기념비(南方沼洑修洑記念碑)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395번지 반룡 마을 어귀에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이수(螭首)는 없고 방형(方形)의 대석(臺石)이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18㎝, 너비 31㎝, 두께 11㎝이다. 비문의 글씨는 해서체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남방 소보 수보 기념비’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반룡리 상평과 하평은 토질이 비록 비옥하지만 수원(水源)이 모자라서 조금 가뭄이 들면 작물이 거의 고사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이곳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근심스런 눈썹을 펼 여유가 없어진 지가 오래되었다. 지난 기묘년 큰 가뭄 때 도회 의원 정인주(鄭寅湊)와 면장 윤□동(尹□東), 유지 김주호(金周昊) 등 제씨가 보를 보수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에 도비 보조금 2,545엔과 지주 부담금 1,698엔의 자금을 모아 하천 바닥 암반 가운데까지 가로로 파고드니 길이가 90자요, 폭이 7자요, 깊이가 23자가 되었다. 거기에 황사(荒砂)를 제거하고, 점토를 주입한 다음 땅 밑에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상하의 금평(金坪)에 물을 대니, 비로소 소작농의 고통을 해소시켜 농사의 경영을 보증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공로가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칭송하는 바이다. ‘메마른 하천에 보가 완공되니/ 이 누가 내려 준 일인가?/ 도내의 보조가 크고 많으니/ 농민들 노력으로 보답하기 쉬워라/ 깊고 견고하게 쌓아 올리니/ 장마와 가뭄에도 편리하다네/ 들녘의 물들이 길이 있는 한/ 은혜와 혜택이 끝이 없으리.’ 소화 15년[1940] 5월[盤龍上下坪 土地質雖良沃 水源缺乏 少有旱魃 所謂作物 幾至枯死 此地營農者 未暇展愁眉久矣 至己卯大旱 道會議員鄭寅湊·面長尹□東·有志金周昊諸氏 酬議修洑 鳩財道費補助金二千五百四十五円·地主負擔金一千六百九十八円 橫鑿川底巖盤之陸 長九十尺幅七尺 深二十三尺 除去荒砂 取入粘土 引土地下流水 通灌上下金坪 解消小作之苦痛 保證大本之經營 其功也 不少矣 吾人爲此如頌 乾川完洑 是誰之賜 道助多大 民功答易 鑿築湥固 潦旱便利 野水長在 惠澤不匱 昭和十五年五月日]”이라 적혀 있다.

뒷면에는 “남방 소보답 소작인들이 같이 세우다. 당시 소보 수호자는 송인창·김석주·최팔룡·장은오[南方沼洑沓小作人同建之建 故當時洑守護者 宋寅昌 金石柱 崔八龍 張殷五]”라고 되어 있다.

[현황]

현재 남방 소보 수보 기념비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남방 소보 수보 기념비는 향토사 연구의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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