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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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歸好餘錄東萊府圖 |
영어의미역 | Map of Dongnae in Joseon Gwiho Yeorok[Japanese Records of Jos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허경진 |
1878년에 발행된 『조선 귀호 여록』에 삽입된 부산 동래 지도.
『조선 귀호 여록(朝鮮歸好餘錄)』 「동래 부도(東萊府圖)」는 이시바타 사다[石幡貞][1839~1916]가 부산 동래의 모습을 일본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그린 그림 지도인데, 『조선 귀호 여록(朝鮮歸好餘錄)』[日就社, 1878] 곤책(坤冊) 4~5면에 실려 있다.
일본 관리관(管理官) 곤도 신조[近藤眞鋤]가 동래 부사 홍우창(洪祐昌)과 1876년 12월 17일에 「부산항 조계 조약(釜山港租界條約)」을 맺을 때에 이시바타 사다가 수행했는데, 그가 홍우창과 주고받은 글들을 모은 「동래 증답(東萊贈答)」이 『조선 귀호 여록』 곤책 권2 첫 부분에 실려 있고, 그 앞장에 「동래 부도(東萊府圖)」가 실려 있다. 이시바타 사다 자신은 말이 어눌하고 글도 분명치 못해, 조선의 근래 사정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물어오면 「부산 백영(釜山百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글자가 거칠고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자, 직접 그림 몇 폭을 그려 책 속에 함께 넣었다. 그림과 책을 대조해서 보며 마음속으로 분명히 깨닫게 되기를 바란 것이다.
『조선 귀호 여록』 「동래 부도」는 동래천(東萊川)[온천천] 위에 놓인 세병교(洗兵橋)를 건너 오른쪽 동래읍성으로 들어가는 구도로 그리고, 왼쪽에는 녹양정(綠楊亭)을 그렸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동래부 지도(東萊府地圖)」의 동래읍성에는 10여 개의 건물을 표시했는데, 이시바타 사다가 그린 『조선 귀호 여록』 「동래 부도」에는 「동래부 지도」에 없는 추오헌(秋梧軒)만 그려져 있다.
『조선 귀호 여록』 곤책 권2의 7면부터 실린 「동래 증답」에 “관리관과 동래 부사가 추오헌에서 회담하였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시바타 사다는 일본인 독자들에게 추오헌을 보여주기 위해 동래읍성에 추오헌 한 건물만 표시하였다. 세병교는 일제 강점기에도 온천을 오가는 길목으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이 시기에도 일본인들이 추오헌과 녹양정을 오가는 길목으로 중요시한 듯하다. 탕파거사(宕坡居士)가 지은 칠언 절구 제화시가 실려 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동래부 지도」가 소속된 여러 고을과 진관(鎭管), 왜관까지 포함해서 그린 조감도인 것과 달리, 『조선 귀호 여록』 「동래 부도」는 왜관[당시 조계]에서 바라보는 동래읍성을 간결하게 그렸다. 「동래부 지도」에 소개되지 않은 추오헌과 녹양정, 세병교를 그리고, 다른 지도와 달리 칠언 절구 제화시를 삽입해, 지도보다는 그림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였다.
1876년에 동래 부사 홍우창과 함께 왜관의 경계를 측량해 조계(租界)로 변경하는 작업을 수행한 일본 외교관 이시바타 사다가 동래부의 그림 지도를 직접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일본 관리관 곤도 신조와 동래 부사 홍우창이 1876년 12월 17일에 「부산항 조계 조약」을 맺은 장소 추오헌을 표시한 것에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