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81 |
---|---|
한자 | 韓國往復樞要書 |
영어음역 | Hanguk Wangbok Chuyoseo |
영어의미역 | Travelogue of Korea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1872년 조선과 일본 간의 왕복 문서 가운데 중요한 사항을 모아 엮은 책.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은 조선으로 왕정복고 사실을 알리는 사절단을 보냈으나, 조선 측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외교 문서가 서계(書契)의 형식 및 용어가 구규(舊規)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접수하지 않았다. 이에 일본은 조선 시대 양국 간의 외교를 담당해 온 쓰시마 번[對馬藩]을 통해 외교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는데, 『한국 왕복 추요서(韓國往復樞要書)』는 이 시기 조선과 일본 간의 왕복 문서 가운데 중요한 것을 모아 왜관에서 기록으로 남겨 둔 것이다.
1책 104장의 문서로, 내변(內邊)은 17.4×11.9㎝이고, 책 크기는 23.4×15.8㎝이다. 일본어로 기록되었다. 표제는 ‘무진년래 한국 왕복 추요서(戊辰年來韓國往復樞要書)’로 되어 있다. 본래 왜관과 부산 일본 영사관에서 소장해 오다가 1936년 10월 20일 부산부립도서관으로 이관되었으며, 1937년 4월 1일 정식으로 도서 대장에 등록되었다.
104장의 문서에는 약조문(約條文)을 비롯하여 메이지 정부가 조선으로 보낸 서계문, 동래부와 왜관의 관원이 주고받은 서한 등 33건의 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한 소 시게마사[宗重正] 쓰시마[對馬] 도주(島主)의 활동을 촉구하는 내용과 세견선(歲遣船)의 척수, 외교 문서인 서계(書契) 형식과 서계 사건에 대한 논의 과정, 부산에서 발생한 양국인 사이의 분쟁에 관한 내용, 표류민 문제 등인데, 특히 서계 사건이 당시 양국 사이에 큰 외교 문제로 떠올랐던 만큼 서계 문제와 교린 관계의 회복에 관한 문서가 많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정한론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대조선 외교 정책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이 시기 부산의 왜관은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를 규명하는 중요한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