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913
한자 李宗勉
영어공식명칭 Lee Jongmyeon
이칭/별칭 오정(悟庭)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0년연표보기 - 이종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8월 - 이종면 대구광학회 발기인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0년 3월 25일 - 이종면 대한협회 대구지회 부회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17년 - 이종면 명신여학교 운영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이종면 대동사 사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이종면 학교평의원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32년 6월 23일연표보기 - 이종면 사망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계몽운동가|경제인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자 경제인.

[개설]

이종면(李宗勉)[1870~1932]은 대구에서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주식회사 대동사(大東社)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호는 오정(悟庭)이다.

[가계]

이종면의 아버지는 이석진이고, 어머니는 이예숙이다. 동생은 이영면(李永勉)이고, 아들은 시인 이근상(李根庠)이다.

[활동 사항]

이종면은 1906년 8월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대구광학회는 민지 개발과 교육 장려를 주요 방침으로 설정하였다. 1907년 1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1908년 대한협회 대구지회 설립에 참여하여 이일우(李一雨)·박기돈(朴基敦) 등과 함께 임원선정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08년 3월 25일 창립대회에서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설립 1주년이 되던 1909년 3월 25일 제2회 임원선거회에서 총무로 선출되었고, 1910년 3월 25일에 열린 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7년 2월부터 사재를 들여 명신여학교(明信女學校)의 운영을 맡았으며, 일제가 지방 통치 자문기구로 설치한 대구부협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종면은 1920년 자본금 70만 원으로 국내외 무역을 주로 하는 주식회사 대동사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하였다. 대동사는 1927년 경북산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대구에서 한국인 자본만으로 운영되던 회사였다. 또한 1921년부터 1930년까지 일제가 조선인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하여 만든 대구학교평의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대구부 당국이 도시 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관민 합동으로 대구빈민구제회를 만들었을 때에도 정해붕(鄭海鵬)·서병조(徐丙朝)·정재학(鄭在學)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종면은 1932년 6월 23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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