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협의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281
한자 大邱府協議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대구부협의회 설치
개칭 시기/일시 1931년 4월연표보기 - 대구부협의회에서 대구부회로 개칭
성격 식민통치기구|자문기관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대구부윤의 행정 자문 기관.

[개설]

일제는 1914년 「부제」[제령 제7호]와「부제시행규칙」[부령 제3호]을 제정한 뒤 경성, 부산, 평양 등 12개 지역에 각 부(府)의 자문기관으로 부협의회를 설치하고, 의장은 부윤이 맡도록 하였다. 부협의회는 부윤 및 협의회 의원으로 조직하고, 부윤이 의장이 되어 부의 조례를 설정 또는 개폐, 세입과 세출의 예산편성 등을 맡았다. 협의회 의원은 부윤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타 사항에 대하여 자문을 하였다. 도장관(道長官)이 부 주민 중에서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아 협의회 의원을 임명하였고, 임기는 2년이었다. 협의회 의원은 조선인과 일본인 반반으로 구성되었다.

[설립 목적]

일제는 지방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대구부협의회(大邱府協議會)를 설치하였다.

[변천]

1914년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에 부의 자문기관으로 대구부협의회가 설치되었다. 도장관(道長官)이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아 대구부 주민 중에서 대구부협의회 의원을 임명하였고, 임기는 2년이었다. 1910년대 대구부협의회 의원은 조선인 5명, 일본인 5명으로 총 10명이었다. 1910년대 임명된 대구부협의회 의원은 당대 대구를 대표하는 지역 유지들이었고, 일제 식민정책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이 다수였다. 1910년대 대구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한국인으로는 서병조, 정해붕, 이일우, 서병규, 박기돈, 최만달, 이장우, 이종면, 이병학 등이 있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가 조선의 지방제도를 개편하면서 1920년부터 협의회 의원 선출 방식이 임명에서 선출로 바뀌었고 임기도 3년으로 늘었다. 1920년 대구부협의회 의원이 선거로 선출되면서 대구부협의회 의원은 지역 유지나 종래 명명가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현안을 해결하여 줄 수 있는 변호사, 교육가, 약종상 등의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1920년부터 1939년까지 총 7회에 걸쳐 대구부협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면서 대구부협의회 의원 수도 달라졌다. 1920년 5월부터는 16명, 1923년 11월부터는 20명, 1931년에는 30명으로 증가하였다. 1920년대 대구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한국인으로는 이정희, 한익동, 양익순, 서병조, 정해붕, 이장우, 서병주, 서병조, 박병태, 한익동, 서기하, 서철규, 김의균, 정용기, 류교하, 조주영, 한익동, 김의균, 정도균, 손동식, 김두성, 김정오 등이었다.

1931년 4월 「부제」의 개정 및 읍면제와 도제의 신설을 골자로 한 법령이 제정되면서 지방제도가 전면적으로 개편되었다. 1931년 4월 종래 자문기관이었던 도·부·면 평의회가 의결기관인 도·부·읍 의회로 개편되었다. 의원의 임기는 종전 3년에서 4년으로 1년씩 연장되었다. 따라서 대구부협의회대구부회로 명칭이 바뀌었고, 대구부회 회원의 임기는 4년이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부협의회의 자문 사항은 주로 세금 관련 업무에 한정되었다. 1931년 대구부협의회가 의결기관인 대구부회로 개편되면서 대구 지역의 수해, 지역개발, 교육기관 등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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