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37
한자 慶一銀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 4월 28일연표보기 - 경일은행 창립
해체 시기/일시 1933년 12월연표보기 - 경일은행 선남은행에 흡수합병
성격 기관단체|은행

[정의]

1920년 4월 28일 대구광역시에서 한국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금융 기관.

[설립 목적]

경일은행은 대구와 경상북도에서 상업금융 시설이 부족하여 금융기관의 설립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1912년의 개정 「은행령」에 따른 고금리 문제에 대처하고, 금융경색을 완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경일은행은 1920년 1월 7일 설립 허가를 받은 뒤 준비 과정을 거쳐 1920년 4월 28일 창립되었다. 경일은행의 자본금은 200만 원이었다. 1931년 10월 경일은행선남은행과 합병을 추진하였다. 그에 따라 경일은행은 1933년 12월 선남은행에 흡수합병되고, 선남은행대구상공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구상공은행은 나중에 조선상업은행에 합병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일은행의 창립총회는 130여 명의 주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창립총회에서는 정관 및 임원 선거가 있었다. 이사에 장길상, 장직상, 유시일, 이병학, 손호근, 서병규, 윤호병, 강석희, 이선호 등 9명을 선임하고, 감사에 조남탁, 키시모토[岸本說次郞], 홍두희, 오배근 등 4명을 선임하였으며, 상담에 오쿠라[小倉武之助]를 선임하였다.

경일은행은 1922년 5월 22일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7월에는 장길상이 은행장에 취임하였다. 경상남도 밀양에 지점을 설치한 이래 여러 과정을 거쳐 영천, 예천, 대구 서부, 김천 등에도 지점을 설치하였다.

경일은행의 중역은 경상북도 지역의 지주와 자본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9명의 이사 가운데 손호관과 유시일은 장길상이 매제였다. 또한 1927년에 장택상이 경일은행의 이사로 선임되면서 장길상 집안의 영향력은 막대하였다. 실제 이사의 규모뿐 아니라 장길상 3형제의 주식 보유 규모는 1920년 25%에서 1927년 37%까지 확대된 것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경일은행의 영업은 예금에 비하여 만성적 대출 초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대출 형태는 대부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당좌대월, 할인어음, 위체 수형 등의 순서를 보였다. 이처럼 장기성을 가진 고정 대부가 압도적이었고, 1928년부터는 부동산담보대출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자금 회수율이 낮아져 은행 경영에 악재로 작용하였다.

경일은행은 경영 악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자본금을 200만 원에서 140만 원으로 감자해서 불량 자산을 정리하였다. 그 뒤 예금은 줄고, 차입금이 늘어나면서 총독부와 조선은행의 간섭을 피할 수 없었다. 경일은행은 총독부의 일반은행 통폐합 정책이 추진될 때 선남은행과 합병을 추진하였으며, ‘대구상공은행(大邱商工銀行)’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재출발하게 되었다. 대구상공은행은 그후 상업은행에 합병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일은행장길상 집안을 중심으로 대구와 경상북도의 지주와 자본가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일반은행이다. 영업을 한 이래 경영난에 부딪히며 선남은행에 흡수 합병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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