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유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441
한자 道路遺構
영어의미역 Ancient Civil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Site Excavated during Construction Work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홍보식

[정의]

부산 지역에서 발견된 삼국 및 통일 신라 시대에 사용한 도로 유구.

[개설]

도로란 사람이나 우마차, 자동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을 말한다. 도로는 도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지지층인 기반층, 노면을 유지하기 위한 시공이 이루어지는 노체, 실질적인 도로 통행이 이루어지는 노면, 도로 좌우에 설치된 배수 시설, 노견 표지석 등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개활지 평탄면이라든가 고갯길 등 자연 지면을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도 다수 알려져 있다. 도로는 부설 목적에 따라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거나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는 간선 도로, 지방 거점과 지역 내를 연결하는 지방도, 일정 공간을 구획하는 구획 도로, 특정 시설, 공간으로의 진입로, 일시적으로 사용된 가설로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도로는 지역 내부의 사람이 왕래하거나 물자를 이동하고,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한 사회 기반 시설이었다.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각종 세금과 공납을 운송하는 기반 시설로서 매우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인 도로는 삼국 시대부터 전국 각지에서 확인되었고, 부산 지역에서도 고촌리 유적명례리 도로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고촌리 유적]

고촌리 유적에서 확인된 도로는 곡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면서 유적 내 서쪽 구릉의 말단부와 중앙 계곡부가 연결되는 부분과 유적 중앙부의 저습지를 관통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진행 방향은 동래~기장이다. 도로의 길이는 총연장 300m 이상, 노폭은 2.2~6m, 노면은 10㎝ 내외의 할석을 깔아 포장하였고, 170㎝의 차륜 폭이 확인되었다.

저습지의 남쪽 부분은 1㎝ 내외의 잔자갈을 2~2.5m의 폭으로 평평하게 깔아 노면을 조성하였고, 서쪽에 측구를 설치하여 빗물이 노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였다. 저습지 부분은 노면이 6m로 넓어지고, 측구는 만들지 않았고, 노면의 침하를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자연목을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놓았다. 노면에서 많은 수량의 토기편과 기와편이 출토되었는데, 토기의 특징으로 보아 도로는 6세기 후반에 설치되어 7세기 후반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례리 도로 유적]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도야 마을 앞에서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사용한 도로와 각종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다. 도로는 단단하지 않은 지면 위에 사람 주먹 크기만한 돌과 그보다 작은 자갈을 깔아 만들었고, 수레바퀴가 지나간 홈이 같은 간격으로 나 있었다. 수레바퀴로 인해 만들어진 홈의 폭은 10㎝ 내외이고, 수레바퀴 간의 간격은 90㎝ 내외이다. 도로는 울산 방향에서 기장읍 방향으로 향한다. 도로 좌우에는 부정형의 수혈이 다수 분포한다. 수혈은 깊이가 얕고, 시루·유개합(有蓋盒)·완(碗)·큰 항아리·옹(甕) 등 생활에 사용된 많은 수량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도로 좌우에 수혈이 다수 분포하는 점을 볼 때, 이곳 일대가 당시에는 정차 지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도로 유구는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부산 지역의 도로망과 도로와 관련한 시설물 등 교통 체계를 연구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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