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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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院君肖像畵 |
영어의미역 | Portrait of Daewongun |
이칭/별칭 | 「대원군지초상」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성훈 |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으로 추정되는 초상화.
대원군 초상화(大院君肖像畵)에는 화면 좌측 상단에 예서로 ‘대원군지초상(大院君之肖像)’이라고 적혀 있어 초상화의 주인공이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1820~1898]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대원군으로 불린 사람은 이하응 외에도 선조(宣祖)의 아버지인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岹)[1530~1559]와 철종(哲宗)의 아버지인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1844]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죽었으므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고종의 아버지인 이하응은 79세에 죽었으므로 노년의 모습을 포착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이하응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1880년 그의 61주갑을 기념해 제작한 「이하응 초상(李昰應肖像)」[흑건 청포본]은 물론 1882년 청나라의 보정(保定)에 유폐되었을 당시[1882~1885] 그린 초상화, 그리고 1882년 중국 청진에서 찍은 사진과 비교했을 때 대원군 초상화의 주인공은 위 세 이미지 속 이하응과 많이 닮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눈이 움푹 팬 듯한 모습은 서로 비슷하나 그 외 외모의 특징은 서로 차이가 많이 난다. 대원군 초상화 속 인물의 경우 수염이 길고 얼굴 옆면까지 수염이 무성하게 자라 있으며 얼굴은 다소 갸름한 데 비해, 위 이미지들 속 이하응은 얼굴 옆면에 수염이 거의 자라지 않았으며 얼굴은 다소 살집이 붙어 약간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대원군 초상화의 인물이 좀 더 노년에 이른 이하응일 가능성도 있으나, 그림 상단에 쓴 표제가 오기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원군 초상화는 2004년 10월 4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대원군 초상화의 세로와 가로 길이는 각각 81.3㎝, 41.5㎝이다. 바탕은 비단이고 그 위에 채색을 올린 그림이다. 그림 속 인물이 쓴 ‘산(山)’자 모양의 관 정면에는 원형의 붉은색 술이 달려 있고, 관 뒤에는 양 갈래로 갈라져 인물의 가슴 부분까지 내려오는 파란색의 띠가 부착되어 있다. 흰색의 옷 위에 옷깃이 둥근 푸른색 겉옷을 겹쳐 입었으며, 가슴 아래쪽에는 관대를 착용하였다. 관대의 일부는 발 부분까지 내려온다. 그리고 양손에는 상단 중앙에 금속 장식이 달려 있는 사각의 자줏빛 함을 받들고 있다. 이 인물이 착용한 관과 의복은 조선에서 양반들이 상용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대원군 초상화 속 인물은 나이가 많은 듯 수염이 가슴 부분까지 길게 내려오고 흰색 털이 군데군데 보인다. 털은 얼굴 옆면까지 빈틈없이 나 있다. 인물의 이목구비는 주로 붉은색 선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두 눈을 움푹 꺼진 듯 보이게 하기 위해 눈 주변을 여러 겹의 선들로 표현한 것이 특징적이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도는 살색으로 채색하고, 뺨과 이마, 코 부분은 부분적으로 밝게 처리해 음영을 주었다. 세밀하게 표현된 얼굴과 달리 의복은 음영 표현 대신 선묘 위주로 간략히 묘사하였다. 함은 검은색으로 음영을 두드러지게 표현해 의복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대원군 초상화는 선묘와 음영이 함께 적용되어 인물의 입체감이 완벽히 구현된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