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31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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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鳥島農樂 |
영어공식명칭 | Jodo Nongak|Farmer’s Music of Jodo-myeon, Jindo-gun |
이칭/별칭 | 조도 금고농악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2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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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조도농악 진도군 향토문화유산 무형유산 제11호에서 진도군 향토무형유산으로 변경 |
채록지 | 조도농악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
가창권역 | 조도농악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
성격 | 농악 |
문화재 지정 번호 | 진도군 향토문화유산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농악.
[개설]
조도에서는 농악이란 말 대신 ‘금고’라는 말을 더 많이 썼으며, 농악 연행을 두고 ‘금고 친다’고 했다. 정월 초하룻날 당에 제를 올린 후 이튿날부터 보름까지 각 가정집에서 ‘마당밟이’[마당밟기]를 하면서 금고를 쳤는데 저녁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밤 12시까지 쳤다고 한다. 또한 다른 마을에 가서 치는 마당밟기는 ‘걸궁’이라고 하며, 상대 마을에서 실력을 보고 허락해 줘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조도농악은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활발하게 전승되었다. 그 배경에는 해마다 열리는 8·15광복을 기념하여 열린 조도면민체육대회가 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조도면민체육대회는 당시 목포와 광주에서 유학을 하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광복의 기쁨을 나누고 주민 단합을 위해 연 것이었다. 조도면민체육대회에서는 농악 대회나 강강술래 대회가 열리곤 했는데, 이런 대회를 통해 농악인들은 마을 간 농악을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학습의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하조도에서는 창리, 유토리, 산행리, 읍구리 농악대가 유명했고, 상조도에서는 맹성리, 여미리, 율목리, 동구리(조도면) 농악대가 유명했다고 한다.
조도농악은 2005년 제1회 진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고, 2022년에 열린 제46회 전남민속예술축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조도농악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조사는 2021년에 실시된 「진도군 향토문화유산 자료조사 연구용역」[남도학연구소]을 통해 이루어졌다. 조사자 김현숙과 이옥희 등이 조도농악의 전승 내력, 내용과 특징, 전승자 등에 대한 학술 조사를 수행하였다.
[구성 및 형식]
조도농악 연희자의 구성은 집사 1, 농자천하지대본기 1, 횃불 1, 포수 1, 쇠 3~4, 징 1~2, 장구 2~3, 북 3~5, 소구 10~20, 상무 3~6, 각시 2~3, 중 1 등으로 이루어진다. 예전 마당놀이를 할 때에는 나발까지 포함해서 규모를 갖추어 편성했다고 한다. 규모를 줄인다면, 징이나 장구는 하나만 있어도 되고 북과 상무가 많아야 좋다고 한다. 조도농악대 구성에서 특이한 존재는 상무 또는 농기라고 불리는 배역이다. 이들은 전립을 쓰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닭 털 한 움큼이 달린 돌무채를 머리 꼭대기에 단 채 뒷짐을 지고 돌리거나 색띠를 들고 춤을 추는 동작 등을 주로 한다. 그리고 포수는 짚으로 만든 모자와 가면을 쓰고 목총을 든다. 포수는 우습게 재밌게 노는 사람이라고 한다.
조도농악의 명인으로는 꽹과리의 김경춘·허시조·김석태·박헌일·최별진·박억배·김귀호·한경조, 징의 장석찬·한경열, 장구의 김중동·이병조, 북의 박경배·김유복, 상무의 이구조·이소자·이내숙·김상복, 포수의 김명길 등이 있다. 2025년에 조도농악을 이끄는 상쇠는 이운홍[1948년생]이다.
[내용]
조도에서 가장 규모 있게 펼쳐지는 농악은 마당밟이다. 조도에는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농악 한 번 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마당밟이를 선호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정초가 되면 우선 마을 수호신을 모신 당에서 당굿을 치고 공동 우물에서 샘굿을 친다. “나갈 때도 샘굿, 들어올 때도 샘굿”이라고 하여 샘굿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샘굿을 친 뒤에 각 가정을 돌면서 마당놀이를 한다.
1. 길갓굿 - 사립굿 - 샘굿
질갓굿 가락을 치면서 마당놀이를 하고자 하는 집 문앞에 도달하면 사립굿[새팍굿, 문굿]을 친다. 사립굿은 일채굿[느린 일채-일채-잔일채], 이채굿[이채-움매갱깨-잔일채]을 치고 ‘갱캥 울려라’ 가락을 네 번 치고 잔일채를 간단하게 쳐서 맺는다. 다시 길갓굿을 치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만약에 샘이 있으면 샘굿을 친다. 샘굿도 사립굿과 같은 방식으로 일채굿과 이채굿을 치고 ‘갱캥 울려라’ 가락을 네 번 치고 잔일채를 간단하게 쳐서 맺는다.
2. 마당굿
길갓굿을 치면서 마당으로 이동하여 마당을 먼저 세 번 돈다. 액운이 있는 집[원하는 집]은 뒤안을 돌아 주는데 이것을 ‘집 울린다’고 한다. 뒤안을 돌기 어려운 집이면 가옥 양편 끝에서 쳐 준다. 대개는 마당만 세 바퀴 돈다. 길갓굿을 넘겨서 일체굿[느린 일채-일채-잔일채]을 치면 사람들이 모두 마당으로 나와서 한바탕 춤을 춘다. 이어서 이채[이채-잔일채]를 쳐서 맺고 바로 이어서 이보다 속도가 좀 더 느린 삼채[삼채-이채-잔일채]를 친다. 그다음 굿거리 허튼 가락을 내고 달고 맺고 풀기를 몇 차례 하면서 길게 치면 모두 춤을 추고 논다. 굿거리를 맺으면 바로 일채굿[일채-잔일채], 이채굿[이채-움매갱깨-잔일채]으로 이어 맺는다. 주인은 이미 쌀그릇에 수저를 꽂고 수저에 실타래를 걸쳐 놓고 물 한 그릇을 담은 고사상을 차려 놓고 마당에 금고꾼들이 먹을 음식을 내놓는다. 포수는 고사상에 인사하고 쌀은 자기가 메고 있는 자루에 담고 물은 지붕에 뿌린다.
3. 벅구놀이
다 같이 음식을 먹고 나서 한바탕 마당놀이를 펼치는데 이를 벅구놀이라고 한다. 이 벅구놀이에 대해 ‘농악에서 하는 쇼’라고 하며, 설쇠와 종쇠가 농악대원을 데리고 노는 것이라고 한다. 대원들을 설쇠 편과 종쇠 편으로 공평하게 나뉘어서 설쇠와 종쇠가 양쪽 끝에 서고 둥글게 ‘반달 모양으로’ 정면을 보고 서 있는 가운데 설쇠가 오른쪽 끝에서 ‘갠-지’를 몇 회 치고 나서 서서히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잽이들을 점고하듯이, 서로 호흡을 맞추는 듯이 혹은 잽이들을 어루는 듯이 ‘갱 캥 갱 캥 갱 캥’을 계속 친다. 한 번은 내리치고 한 번은 올려 치기를 계속하면서 왼편 끝까지 가면 난타를 하고 다시 돌아오면서 이와 똑같이 한다. 제자리로 와서는 난타를 풀고 나서 “어” 하고 외치고 나서 머리 위에서 ‘깻’ 하고 막음채를 칠 때에 장구나 북도 함께 ‘딱’ 하고 친다.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징수는 징을 한 번 친다. 그러면 오른편 종쇠 편에서도 이와 같이 하고 왼편으로 왔다가 오른편으로 돌아가 난타를 쳐서 ‘어’와 ‘깻’과 ‘징’을 2회 한다. 다음 설쇠가 이를 받아서 치고 갔다가 돌아와서 ‘어’, ‘깻’, ‘징’을 3회 한다.
그다음 징은 쉬고 설쇠가 굿거리 한배로 ‘갱-마깽, 갱깽-’을 치면 종쇠가 이를 받아서 친다. 또 설쇠가 ‘갱캔-지, 갱캥-’을 치면 종쇠가 이에 화답을 한다. 2회 주고받기를 한 후에 같이 ‘갱-마르개르, 갱-깽-깽, 개개갱-깽, 갱-깽-깽’ 하는 가락을 종쇠는 똑같이 치면서 상무와 각시광대와 함께 태극기를 그리면서 놀고 상쇠는 자유롭게 변화 가락을 구사하면서 악기잽이들과 호흡을 맞춘다. 이어 자진가락으로 넘기는데 갑작스레 빠른 가락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몰아간다. 즉흥연주로 자진풍장굿가락을 치다가 상쇠의 신호로 북, 장구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쳐야 하는 가락이 네 장단이 있다. 이때에는 북과 장구가 왼손을 오른쪽으로 넘기는 것도 서로 잘 맞추어야 한다.
벅구놀이 후반에는 설쇠가 장구, 북, 소구, 상무 등 각 잽이 중에서 잘하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놀게 하는데 장구놀이-북놀이-소구놀이-상무놀이-각시광대의 순서로 설쇠의 인도에 따라 진행된다. 옛날에는 열두발 상모도 놀았다고 한다. 개인 놀이를 할 때에는 종쇠는 제자리로 돌아가 있고 설쇠만 놀이를 보여 줄 잽이를 불러내기 위해서 움직인다. 벅구놀이가 끝날 때에는 ‘진(陳) 싼다’고 하여 덕석말이를 하였다가 푼다.
4. 정지굿 – 방굿 – 마리굿
벅구놀이가 끝나면 정지[부엌]굿, 방굿, 마리[마루]굿의 순으로 이어진다. 정지굿은 잔일채굿-이채굿-잔일채굿으로 맺은 후에 다 함께 “어이~” 하고 나서 “정-지, 구석도, 니[네]-구, 석--” 하는 운율을 맞춰 함께 외치고, ‘갠-지, 개깬지, 개깬지, 갱--’의 가락을 합주하고 “방-구, 석-도, 니-구, 석--” 하고 외치고 ‘갠-지, 개깬지, 개깬지, 갱--’ 가락을 합주하고, 이런 방식으로 “마-리, 구석도, 니-구, 석--”‘갠-지, 개깬지, 개깬지, 갱--’“삼사-, 십이-, 열두-, 구석-”‘갠-지, 개깬지, 개깬지, 개깽-’의 가락을 친다. 그리고 “개깬지, 개깬지, 개깬지, 개깬지” 하는 가진삼채를 연속으로 몰아서 친 후 움매갱깨로 연결하고 ‘깽-, 깽-, 울려, 라-’ 가락을 네 번 치고 가락을 넘겨 맺는다.
정지굿 다음에는 방굿을 치는데 요즘은 방굿을 잘 안 치고 마리굿으로 바로 넘어간다고 한다. 이동할 때는 길갓굿가락을 친다. 마리굿은 다 같이 ‘어이~’로 호흡을 맞추고 나서 “마-리, 구석도, 니-구, 석--”‘갠-지, 개깬지, 개깬지, 갱--’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방-구, 석-도, 니-구, 석--”, ‘갠-지, 개깬지, 개깬지, 갱--’, “정-지, 구석도, 니-구, 석--”, ‘갠-지, 개깬지, 개깬지, 갱--’, “삼사-, 십이-, 열두-, 구석-”‘갠-지, 개깬지, 개갠지, 개깽-’을 치고 정지굿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진삼채-움매갱깨-깽깽울려라로 넘겨 맺는다. 형태는 같으나 마리굿에서는 마리 구석을 먼저 부르고 정지굿에서는 정지 구석을 먼저 부르는 점만 다르다. 좌도굿에서 고사소리로 외치는 일반적인 구호들보다는 많이 느린 템포로 느린자진모리 혹은 빠른굿거리 한배로 부른다. 마리굿이나 정지굿을 칠 때에는 주인이 돈을 내놓는다. 정지굿을 칠 때 가마솥 뚜껑을 열어 놓고 마리굿을 칠 때는 쌀독 뚜껑을 열어 놓는다.
5. 청령 - 이동
마리굿이 끝나면 마당으로 나와서 마당을 세 번 돌고 주인을 향하여 둥글게 늘어서서 ‘청령’을 한다. 설쇠가 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가락을 다소 가미해 읊는 청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희 금고들 각각 정열하라.[전원: 예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狀)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 조선이 수소(雖小)나 예의지방(禮義之邦)이니 예(禮) 불가폐(不可廢)라. 금일(今日) 〇〇〇께옵서 일금(一金) 〇〇원과 그 외 주육을 무수 지급하였으니 사당은 너희들이 각각 입석하여 차례로 보일 것이로되 예절(禮節)이 불민고(不敏故)로 공수정대 하였다가 명금(鳴金) 일성(一聲)에 도회(都會)로 보여라.”
설쇠가 청령을 하면 치배들은 “예이~” 하면서 악기도 함께 어루면서 인사를 한 후 일채와 이채로 간단히 쳐서 맺는다. 이어 길갓굿을 치면서 마당을 세 바퀴 돌고 밖으로 나가 다음 집으로 향한다.
[현황]
조도농악은 2021년 12월 21일에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 무형유산 제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관련 조례에 따라 진도군 향토무형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도농악은 진도의 다른 농악과 비슷하면서 다른 부분이 있다. 즉 장구보다 북가락이 우세하고, 양손에 북채를 쥐고 치며, 춤추기와 상모돌리기에 치중하는 ‘상무’라는 배역이 다수 있고, 판굿이 마당밟기의 마당굿 안에서 미분화된 상태로 연행된다는 점 등은 진도농악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도농악만의 특징도 적지 않다. 첫째, 양손으로 북을 치는 점은 같지만 오른손 북채로 북가죽과 북통을 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북통과 북가죽의 모서리인 북 테두리를 연속적으로 치면서 섬세한 리듬을 엮어 내는 점이 진도 내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둘째, 벅구놀이 연행에서 설쇠와 종쇠가 양쪽 끝에 서서 반대편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마치 점호하는 듯 혹은 호흡을 맞추는 듯 서로 번갈아 하는데, 이는 군사훈련 장면을 방불케 한다. 진도 내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셋째, 닻배에서 만선을 했을 때 치는 풍장굿가락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점이다. 풍장굿가락에서 각자 즉흥적인 가락을 치다가도 여러 잽이가 일제히 호흡을 맞추어 똑같은 가락으로 치는 신명 나는 대목은 구경꾼들의 춤을 가장 많이 이끌어 내는 대목이다. 넷째, 조도농악의 또 다른 특징은 각시가 두세 명 등장한다는 점이다. 진도 외 다른 지역에서 양반이라는 잡색이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데 비하여 조도농악에서는 양반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반촌 사회가 아닌 상민(常民)들만의 사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지역에서 반촌 사회의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양반에 대한 조롱으로 푸는 것에 비하여 조도농악에서는 여러 명의 남자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여자로 꾸미고 등장시켜 웃고 즐긴다. 조도농악 특유의 잡색놀이라고 할 수 있다. 조도농악이 개성적인 무형유산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