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이남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839
한자 李南淑
영어공식명칭 Lee Namsu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 6월 17일연표보기 - 이남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8일 - 이남숙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8일 - 이남숙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 언도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이남숙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계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해성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여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남숙(李南淑)[1903~?]은 1903년 6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0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난 뒤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이었다. 대구에서도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李萬執), 남산교회 조사 김태련(金兌鍊), 신정교회 목사 정재순(鄭在淳), 천도교 대구교구장 홍주일(洪宙一), 계성학교 교감 김영서(金永瑞)를 비롯한 교사 백남채·김태식(金台植)·권의윤(權義允)·최경학(崔敬學)·최상원(崔相元),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이재인(李在寅)·임봉선(林鳳仙)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8일 이만집의 연설과 김태련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서문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계성학교·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합세하여 시위 군중은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문시장을 나선 시위대는 대구경찰서와 종로를 거쳐 동성로를 향하여 행진하였고, 대구 해성학교(海星學校) 졸업생 이남숙도 시위에 동참하였다.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동성로에 있던 달성군청에 이르자 기관총과 착검한 소총으로 무장한 일제 군경은 시위 군중을 폭압적으로 진압하여 157명을 검거하고 그중 67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때 이남숙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이남숙은 201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 받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