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56
한자 河允實
영어공식명칭 Ha Yunsil
이칭/별칭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서문시장 만세 시위,대구 독립만세운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하윤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8일 - 하윤실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 참여
출생지 대구 - 대구광역시
거주|이주지 수창동 -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하윤실(河允實)[?-?]은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의 중구 수창동에서 거주하였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계성학교 교사 백남채(白南採)·최상원(崔相元)·권의윤(權義允)·최경학(崔敬學) 등은 학생들의 만세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때 최상원은 하숙하고 있던 대남여관(大南旅館) 주인의 아들 허범(許範)에게도 참여를 권유하였다. 허범은 3월 6일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최상원의 말을 전달하였고, 하윤실도 이에 동조하여 허범·백기만(白基萬)·김수천(金洙千)·김재소(金在炘)·박노일(朴魯一)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8일 하윤실을 비롯한 200여 명의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서문시장 근처로 집결하였다. 오후 3시가 되자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李萬執)의 연설과 남산교회 조사 김태련(金兌鍊)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서문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계성학교·대구 성경학교·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합세하여 시위 군중은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문시장을 나선 시위대는 대구경찰서와 종로를 거쳐 동성로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동성로에 있던 달성군청에 이르자 기관총과 착검한 소총으로 무장한 일제 군경은 시위 군중을 폭압적으로 진압하여 157명을 검거하고 그중 67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때 하윤실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고,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출감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