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138
한자 聖母聖堂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 71[서성로 20]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고소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성모성당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성모성당 소실
원소재지 성모성당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 71[서성로 20]지도보기
성격 성당
양식 목조|한옥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던 개항기 성당.

[개설]

성모성당은 대구 최초의 종교 건물로 한옥 구조의 성당이었다. 대구성당 초대 주임신부인 로베르(A. P. Robert)[한국명 김보록(金保祿), 1853~1922]가 건립하였다.

[변천]

성모성당은 1898년 지어졌고, 1901년 2월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로베르 신부는 성모성당 소실 후 신자들을 독려하여 1903년 4월 고딕식의 성당과 사제관 건물을 다시 신축하였다.

[연혁]

대구 천주교 성당의 초대 주임신부인 로베르는 1891년 말에 대구 읍내의 남산공소로 거처를 옮겨 선교활동을 하였다. 신자 수가 늘어나자 새로운 성당이 필요하였다. 로베르 신부는 현 주교좌 계산성당 서편의 동산을 매입하려고 하였으나 노인 신자들의 반대로 남산성당[현 주교좌 계산성당]에 부지를 확정하였다. 로베르 신부는 1,000명의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목조 성당[36칸]을 짓고자 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공사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달성공원 쪽의 대어벌[인교동]에 있는 정규옥이 새로 지은 큰 기와집을 매입하여 수리하고 성요셉성당이라 이름 짓고, 남산에 성당을 지을 때까지 임시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성당 건축을 도모하였다.

새 성당은 한옥 기와집이었고, 공사는 1897년 3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1898년 6월 기와집 성당이 완공되었고, 외벽과 종각 공사를 진행하였다. 1898년 9월 1일 사제관과 해성재 건물이 완공되었다. 로베르 신부는 12월 25일 성탄절에 비에모(Pierre Marie Paul Villemot)[한국명 우일모(禹一模), 1869~1950] 신부와 함께 성대한 봉헌식을 하였다. 그리고 새로 지은 성당의 주보로 루르드의 성모님을 모시고, ‘성모성당’이라 불렀다.

[형태]

성모성당은 로베르 신부의 설계로 건립되었고, 로베르 신부를 따르던 한국인 신자들이 참여하여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모성당은 그리스 십자형(Greek cross) 평면에 팔작 기와지붕을 올렸다. 각 날개부의 전면과 측면이 9척(尺)[약 2.73m]씩 3칸, 모두 9척 9칸씩 총 45칸 규모의 건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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