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296
한자 桂山洞二街
영어공식명칭 Gyesan-dong 2ga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대구부 계산동2가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경상북도 대구부 계산동2가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계산동2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북도 대구시 계산동2가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1년 -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에서 대구직할시 중구 계산동2가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대구직할시 중구 계산동2가에서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로 개편
성격 법정동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계산동2가(桂山洞二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는 계산동 계산과 뽕나무골목 등이 있다. ‘뽕나무골’, ‘뽕나무꼴’로도 불렸던 뽕나무골목은 현 경상감영공원에 세거하고 있던 명나라 출신 두사충(杜師忠)이 1601년 경상감영이 이전하게 되자 지금의 뽕나무골목으로 거주지를 옮겨 생계 수단으로 뽕나무를 심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계산성당 주차장 동쪽에서 약전골목 일대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대구근대화골목 관광지의 주요 동선에 위치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명칭 유래]

계산동의 유래가 되는 ‘계산(桂山)’은 계수나무가 많이 자라던 작은 언덕을 말하나 지금은 실체를 찾을 수 없다. 근대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동산 우측 가장자리로 대구천이 흘러 앞산에서 발원한 달서천으로 합류하고 대구천 아래 제방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 마을을 ‘계산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원래 경상북도 대구부 서상면 지역이었다. 1911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동산동 일부를 합쳐 경상북도 대구부 대구면 명치정2정목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경상북도 대구부 계산동2가로 이름을 바꾸었고, 1949년 대구의 시 승격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계산동2가가 되었다. 1963년 구제(區制) 실시로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가 되었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1981년 대구직할시 중구 계산동2가, 1995년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가 되었다.

[자연환경]

계산동2가 서쪽에는 동산[청라언덕] 아래로 흘러 달서천으로 합류하였던 신천의 지류인 대구천이 있었으나 현재는 복개된 상태이다. 계산동 일대는 평지라는 지형적 환경과 더불어 대구의 중심부여서 일찍부터 근대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현황]

계산동2가중구 계산동1가, 남성로, 남산동, 동산동, 덕산동, 동성로 등지와 경계를 이룬다. 북동쪽은 남성로, 서쪽은 서성로, 남쪽은 대구 동서 간 중심 도로인 달구벌대로에 접하여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다.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대구근대화골목에 속하여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대구 최초의 천주교회인 계산성당[사적 제290호]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 저항 시인인 이상화(李相和) 고택, 서상돈(徐相敦) 고택,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 장군 생가,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하였다가 귀화한 명나라 출신 두사충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뽕나무골목 등 명소가 즐비하다. 또한 대구 상업의 중심지로 현대백화점, 염매시장, 인접한 남성로약전골목 등이 있어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장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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