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51
한자 -修女院-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1[남산동 190-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12월 15일연표보기 -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6월 29일 -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1[남산동]지도보기
원소재지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1[남산동]
성격 건물
양식 벽돌조|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혼합
측면 칸수 894.3㎡[연면적]
관리자 성바오르수녀회유지재단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의 수녀원.

[개설]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은 1915년 드망즈(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 주교가 계산성당 로베르(Achille Paul Robert)[한국명 김보록] 신부의 도움을 받아 건립한 수녀원이다.

1911년 6월 11일에 대구 천주교회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드망즈 주교는 주교관, 성당, 신학교 건립 등과 관련된 수많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수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닫고 프랑스 성바오로수녀회에 대민 봉사와 의료 사업을 담당할 수녀 파견을 요청하였다. 1914년 수녀의 파견이 결정되자 헝가리인 바야 주교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수녀원 건축 작업을 착수하였다. 대지는 서상돈(徐相敦)이 자신이 경영하던 앞고개의 넓은 화원을 무상으로 기증하였고, 건물의 설계는 드망즈 주교가, 공사는 중국인들이 담당하였다. 1915년 ‘코미넷관’이 준공되었다.

1915년 9월 22일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수녀원의 분원장에 뱅상 수녀가 임명되고, 도쿄의 프랑스 수녀인 오루시아 수녀, 서울의 한국인 수녀 임안나마리 수녀와 최막달레나 수녀가 파견되어 대구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설립되었다. 1916년 2월 19일 마리 도나티엔느 수녀가 제1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위치]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해당되며, 코미넷관은 성바오로애덕원 뒤편에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성당과 함께 있다.

[변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점점 강압적이 되었다. 1944년에 이르자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도 전쟁에 나간 일본 군인들의 방한복을 만드는 군수공장, 방공 훈련소로 징발되었다. 해방 이후 수녀원으로 복귀되었고, 일본 관구에 속하여 있었던 수녀원이 한국 관구로 승격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두 번째 해산명령을 겪었지만, 단 한 명의 지원자 외에는 다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형태]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은 화강석 기초 위에 붉은벽돌과 흑색 벽돌로 지은 지상 2층, 지하 1층의 건물이다. 건물의 평면은 ‘ㄷ’자형이며, 건물 앞면 중앙에 위치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이다. 오른쪽 측면에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아케이드를 설치한 통로를 두고, 통로 양 끝에는 계단실과 연결되는 출입구를 두었다. 처마는 흑색 벽돌을 3단으로 내어서 쌓았고, 지붕은 모임지붕으로 지붕 위에는 도머창[dormer窓, 지붕의 경사면 위로 튀어나온 작은 지붕이 있는 창]과 굴뚝을 설치하였다.

[현황]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은 현재 수녀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어 1990년 12월 15일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은 대구의 천주교 역사를 담고 있는 붉은벽돌로 지어진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서구식 건물로 종교사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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