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59
한자 徐相燉 古宅
이칭/별칭 서상돈,대구근대골목,이상화 고택,계산동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6-1[계산동2가 83-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51년 - 서상돈 출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3년 - 서상돈 사망
이전 시기/일시 2008년 - 서상돈 고택 이전
현 소재지 서상돈 고택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6-1[계산동2가 83-1]지도보기
성격 가옥
양식 팔작기와집
정면 칸수 4칸[안채]|3칸[사랑채]
측면 칸수 2칸[안채]|2칸[사랑채]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개항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의 주택.

[개설]

서상돈 고택(徐相燉古宅)은 개항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상돈[1851~1913]의 주택이다.

[위치]

서상돈 고택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 83-1번지에 있다. 근대문화체험관이상화 고택 부근이다.

[변천]

서상돈 고택의 건립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2008년 이상화 고택 바로 옆으로 이전·복원되었고, 서상돈 고택터에는 현재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져 있다.

[형태]

서상돈 고택은 2003년 조사 때 건축면적 89.6㎡였다. 안채, 사랑채, 곡간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남향으로 좌정하고 있는 안채 좌우에 아래채와 곡간채, 앞쪽에 대문채와 연결된 사랑채를 배치한 튼‘ㅁ’자형 구조였다. 아래채는 후대에 건축하였기 때문에 원래는 튼‘ㄷ’자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과 안채, 사랑채 사이에는 붉은벽돌로 쌓은 아치형의 중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적법, 구성 기법 등을 보아 중국인들이 세운 종교 계통의 건물과 유사한 형태이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었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부엌과 안방을 배치하고, 우측에는 건너방을 배치하였다. 안방과 건너방 앞에는 대청과 연결된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툇마루의 각 칸에는 미세기 문을 달았고, 하부 고막이는 타일로 마감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는 대청과 연결된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툇마루의 구성은 안채와 같다. 아래채는 시멘트블록조 1층의 슬래브 지붕집이다. 곡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집이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배치하였다. 대문간채는 사주문으로 가 부재의 치목·장식 수법이 간결하여 근대 시기 주거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2020년 현재 서상돈 고택은 대문 안쪽에 벽돌로 담장을 쌓고 안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안채 건물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ㅡ자형이다. 부엌, 대청마루, 안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청마루 앞쪽에 유리문을 달아 놓았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ㅡ자형이다. 마루에 유리문을 달아 놓았다. 안채와 사랑채는 전통 한옥이 아닌 도시형 개량 한옥이다.

[현황]

서상돈 고택은 현재 9시부터 18시까지 시민에게 개방되고 있다. 매주 월요일, 공휴일, 명절 연휴에는 휴무이다.

[의의와 평가]

서상돈 고택은 근대 시기 전통가옥이 근대 주거 형태를 수용하여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또한 이상화 고택과 함께 대구 지역의 중요한 거점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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