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련사 동래부 인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485
한자 海蓮寺 東萊府 印床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영도구 벚꽃길 117 해련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조선 후기 - 해련사 동래부 인상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5년 8월 26일연표보기 - 해련사 동래부 인상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해련사 동래부 인상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재지 동아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3지도보기
원 소재지 해련사 - 부산광역시 영도구 벚꽃길 117지도보기
성격 인상(印床)
재질 목재
크기(높이,둘레) 총고 54㎝, 천판 최대폭 43.5㎝, 족부 높이 38.3㎝, 족대 두께 1.4㎝
소유자 해련사
관리자 동아대학교 박물관(위탁관리)
문화재 지정 번호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동 해련사(海蓮寺)에서 소장하고 있는 행사나 연회 때 사용하는 인상(印床).

[개설]

해련사 동래부 인상(海蓮寺 東萊府 印床)은 행사나 연회 때 사용하는 가구의 일종으로 소나무를 재료로 하여 상하 2층의 천판(天板), 난간, 운각(雲刻) 및 족통(足筒) 등으로 짜여있다.

[형태]

해련사 동래부 인상의 전체적인 형태는 조선시대 연향 가구(宴享 家具)의 일종으로 국가 행사나 연회 때 사용하던 주정(酒亭), 다정(茶亭) 및 아가상(阿架床)과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수리할 때 일부 못이 사용된 곳을 제외하면 모두 전통 짜임이나 나무못에 의한 결구(結構)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상의 구조는 팔각 천판에 난간이 가식된 2층, 사각 천판에 난간이 가구되어 있는 1층, 그리고 운각과 호족형 족통 및 족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천판의 가장자리를 몰딩기법과 같은 귀접이로 깎아 바탕에 뇌록 안료로 칠을 한 후 먹으로 연화문을 그려 놓았다. 호족형 족통 상부의 경우 하판 천판 모서리에 장방형의 홈을 내어 장부짜임한 후 다시 2층 천판에서 대나무 못으로 결속하였다. 또한 족통에는 대나무 마디형의 동자주와 같은 안쪽 풍혈과, 초새김과 같은 당초문 바깥쪽 풍혈이 조각되어 있으며, 족대는 X자형으로 턱짜임하여 다시 족통에 장부짜임으로 결속시켰다.

[특징]

해련사 동래부 인상은 1층 천판 하부에 기록된 묵서명(墨書銘)을 통해 일본에 파견된 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였던 1811년 신미통신사행(辛未通信使行) 때 사용하였던 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 무신이었던 류상필(柳相弼)이 대마도를 다녀와서 쓴 사행(使行) 기록인 『동사록(東槎錄)』에 정사(正使)인 김이교의 집사로 좌수영 장교 박수량, 부사(副使)인 이면구의 집사로 좌수영 장교 이의준이라는 사행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인상의 묵서명에 박수량과 이영준이 기록되어 있다. 이영준의 경우 이의준과 동일인으로 파악되는데 두 기록 중 하나는 오기로 보인다. 따라서 이 인상은 동래부 소유의 인상(印床)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해련사 동래부 인상은 통신사와 관련된 귀중한 유물일 뿐 아니라 1811년 마지막 신미통신사행의 일면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가치가 지닌 자료이다. 특히 1811년 이전에 제작되어 동래부에서 사용하였던 연향 가구의 형태 및 제작 편년을 제공해 주는 유물로 미술사 측면에서도 가치가 매우 크다. 2015년 8월 26일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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