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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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村里咸安趙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Haman Jo Clan in Gochon-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 있는 함안 조씨 세거지.
고촌리의 옛 이름은 돋골이다. 고촌은 돋골의 본 마을, 오래된 마을이라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또한 마을 앞 화산등(花山嶝)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면 마을 가득 꽃이 핀다고 하여 꽃촌이라 하였다가 후에 고촌으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본래 후당(後唐) 사람이었으나 신라 말기 귀화한 조정(趙鼎)을 시조로 한다. 조정은 고려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등과 교유가 두터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 통일에 큰 공을 세워 개국 벽상 공신으로 대장군에 봉하여졌다. 고촌리에는 함안 조씨가 가장 먼저 입거하였는데, 대략 임진왜란 직후인 1600년경이다. 입향조는 동은공파(東隱公派) 파조 조근(趙墐)의 증손자인 조징서(趙徵瑞)가 사천[현재 사상]에서 이거하였다. 조징서의 자는 문원(文元)이고 묘소는 무지산 원지곡에 있다. 선대에 도유사를 지낸 조완벽(趙完璧)[5대조], 참봉과 좌수를 지낸 조주광(趙珠光)[고조할아버지], 장의를 지낸 조석룡(趙錫龍)[증조할아버지], 별감을 지낸 조석룡(趙碩龍)[할아버지]과 조유철(趙有哲)[아버지] 등이 있다.
고촌리는 북서쪽의 개좌산[451m]과 운봉산[454m]을 중심으로 서쪽에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북쪽으로도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북동쪽 산지에서 발원한 고촌천이 서쪽으로 흐르고, 북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흘러 고촌천과 합류하여 남쪽에서 석대천에 유입한다. 하천 유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지에 해당한다.
2013년 현재 고촌리의 함안 조씨는 대부분 이주하고 3~4가구만 살고 있다. 고촌리 함안 조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는 대부분 준호구(準戶口)와 호구 단자(戶口單子)이며, 그 외 첩(帖) 4점과 소지(所志)[청원서] 2점 등이다. 준호구와 호구 단자의 시기는 1732년(영조 8)에서 1894년(고종 31)까지이며, 신호적은 1897년(고종 34)에서 1906년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