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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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Doljjakgol Village |
이칭/별칭 | 돌작골 마을,계곡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돌짝골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형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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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42년 -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사정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49년 -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사정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출장소 사직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출장소 사직동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사직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동래구 사직동에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돌짝골 마을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돌짝골 마을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돌짝골 마을은 돌작골 마을로도 불리는데, 쇠미산 끝자락의 돌이 많은 골짜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지금도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돌짝골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돌짝골 마을이라고 하였고, 계곡 마을이라고도 불렀다.
돌짝골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돌짝골 마을은 1942년 10월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사정(社町)에 속하였다. 1949년 8월에는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출장소 사직동으로 개편되었고, 1957년 1월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이 되었다가 1963년 1월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며 부산직할시 동래구 사직동이 되었다. 1979년 1월 사직동의 행정동을 사직 1동·사직 2동으로 나눌 때 사직 2동에 속하였다. 1995년 1월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돌짝골 마을이 되었다.
돌짝골 마을의 서쪽 일원에는 쇠미산이 있고, 동쪽은 경사지를 이루며 아래로 낮아진다. 북쪽은 딧밭등 마을과 연결되고, 남북 방향은 비교적 트인 공간을 이루어 공기가 꽤 좋은 편이다.
돌짝골 마을은 지금의 사직 2차 삼정 그린코아 아파트 부근에 있었다. 이 마을에 오랫동안 살았던 주민 이용수의 증언에 의하면, 이 마을 위쪽 쇠미산 너덜겅에서 채취한 돌의 품질이 우수해 1960년대 부산 시내에서 한옥을 지을 때 온돌방에 사용하는 구들장의 70~80%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마을이 있었던 지역은 쇠미산으로 이어진 능선과 가까이 있어 새로운 주거지로 인기가 좋아 일반 주택, 시영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고 사직초등학교, 사직 종합 사회 복지관 등이 세워졌다. 서쪽 쇠미산 기슭을 따라 사직동 산복 도로인 쇠미로가 지나가며, 돌짝골에는 이곳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등산로가 있다. 또한 산 중턱에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