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소 마을[대연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658
한자 龍沼-大淵洞-
영어의미역 Yongso Village[Daeyeon-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용소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선석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04년 - 동래부 남하면 용소동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동래부 남하면 용소동에서 동래부 남촌면 대 1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40년 - 대 1리, 대 2리가 통합되어 대연동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53년연표보기 - 대연출장소 설치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시에서 부산직할시로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부산직할시 대연출장소로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부산직할시 남구 대연동으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남구 대연동에서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으로 편입
상세 주소 용소 마을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500 일대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있었던 마을.

[명칭 유래]

마을에 있는 늪지의 모습이 용(龍)이 소(沼)에서 날아오르는 것과 같아서 용소(龍沼) 마을[대연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마을의 형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약 500년 전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380년 전 창녕 영산에서 금산 김씨(錦山金氏)가 이주해 왔다고 전한다.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1904]에 동래부 남하면의 용소동에 13호가 거주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복 이전까지는 경주 이씨·금산 김씨·남평 문씨(南平文氏)·김녕 김씨(金寧金氏) 등 120여 호가 살았다고 한다.

1914년 동래부 남촌면 대 1리, 1940년 대 1리대 2리가 통합된 대연동에 속하였다. 1953년 부산시 대연출장소 관할이었으며, 1957년 대연동으로 명칭이 확정되어 지금까지 이른다. 1963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73년 부산직할시 대연출장소로 승격하였다. 1975년 부산직할시 남구 대연동, 1995년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의 용소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용소 마을은 본래 습지이었다. 북쪽에는 황령산이 있었고, 동쪽의 바닷가 쪽은 갯등[바닷가 쪽에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작은 언덕]이 있었다. 습지는 바다에서 밀려오는 모래와 황령산에서 흘러내리는 토사(土砂)로 만들어졌다. 당시 동쪽 해안은 사분포였고, 동남쪽 해안은 분포였다. 2012년 현재 습지[용소]는 사라져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지만,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에서 대천중학교까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현황]

1940년대 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이 들어서면서 사분포와 분포가 매립되었고, 이후 경성대학교가 들어서며 일반 주택가와 문화 시설·음식점 등 상가만 300여 곳이 넘게 형성된 번화가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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